클래식한 감각,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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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한 감각,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3.2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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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에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의 지붕을 열고 달렸다. 엔진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고 온몸이 벌벌 떨렸다. 추워서일까? 아니면?

우리 <오토카 코리아>는 영국 <오토카>의 한국판 라이선스 잡지다. 그러다보니 <오토카>의 원문 기사를 늘 접하기 마련. 가끔 애스턴 마틴이 시승기에 등장할 때면, 대부분이 아주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직접 접하지 못한 차이기에 늘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애국심이 섞인 칭찬 아닐까 생각했다.
 

드디어 오늘 애스턴 마틴을 만났다. 시승차인 DB9 볼란테를 바라보는 순간, 아름다운 자태에 바로 빠져든다. 날카로움을 섞어냈지만 다분히 여성적인 디자인이다. 예쁜 여자에 약한 남자는 예쁜 차에도 약하다는 생각이다. 뒤로 향할수록 넓어지는 차체의 볼륨감은 넓은 뒷바퀴, 즉 고성능을 암시한다지만, 내게는 그저 육감적인 몸매로 보인다. 대형 로드스터에 기대하는 대부분의 디자인 요소가 살아 있다. 공기를 자르는 날카로운 디자인, 가운데를 잘록하게 처리하는 캐릭터 라인, 풍성한 리어펜더가 그렇다.
 

도어 손잡이가 보이지 않는다. 잠금 키를 해제하고 크롬 덧댄 앞부분을 눌러, 튀어나오는 뒷부분을 잡아당기면 열린다. 화려한 실내가 펼쳐진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를 가죽으로 감쌌다. 매끄럽고 보들보들한 촉감의 가죽이 만족감을 준다. 대부분의 고급차들은 운전석 아랫부분을 감싸지 않는다. 발이 쉽게 닿아 가죽이 쉽게 상하거니와 만족감을 크게 더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 허나 볼란테는 아래도 전부 감쌌다. 버튼을 제외하면 플라스틱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아주 곱게 다듬은 메탈과 가죽의 조합이 고풍스럽다. 다만 허술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에어컨 송풍구와 창문 스위치는 볼보의 것을 가져다 썼다. 그리고 문을 여닫을 때면 보이는 어설픈 힌지, 열리고 닫히는 내비게이션 덮개의 마무리 등이 그렇다. 손으로 만드는 차의 특징이랄까. 손으로 빚어내는 부분은 좋지만, 아무래도 몇몇 부품은 다른 곳의 검증된 부품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화려하게 다듬은 좌석은 이 차를 더욱 탐내게 하는 요소. 최대한 낮추니 바닥에 붙어버린 기분이다. 조금 더 노면과 가깝게 앉아 차를 즐길 수 있다. 뒷좌석이 있지만, 분별력 있는 성인이라면 자제하는 것이 낫겠다. 앞좌석을 최대한 앞으로 밀어도, 키 180cm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는 다리, 무릎 공간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붕을 씌운 상황에선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지붕을 연 상황에선 롤러코스터 타듯이 몸만 유리창 밖으로 빠져나온 모습이 된다.
 

센터페시아 구성은 직관적이다. 버튼은 많아도 관련된 버튼을 모아 달고, 메뉴를 구분한 덕에 쓰기 편했다.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는 맨 아래 달린 레버. 생뚱맞다. 눌러보니 볼펜이 나온다.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라고 한다. 왜 볼펜이 필요할까 고민해보니, 쉽게 답이 나온다. 동반석에 태운 여성에게 이 볼펜으로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라는 것 아닐까. 왠지 이런 아날로그적인 작업 방식이 통할 것 같다. 애스턴 마틴이라면 말이다.
 

실내의 화려함은 잘 알겠지만, 영국의 우리 <오토카> 패밀리가 왜 애스턴 마틴 DB9을 좋아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영국 차 특유의 주행감각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냉큼 키를 꽂아 엔진 시동을 걸었다. 아이들링 상태부터 그르렁대는 엔진에 절로 기대가 커졌다. 회전수를 낮게 유지할 때면 기분 좋은 울림이 들린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달라지는 음색, 발을 땔 때마다 터지는 콩 볶는 소리가 어서 달리자 재촉한다.
 

시내를 달릴 때조차 엔진의 허밍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까진 엔진회전수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한 상황. 엔진의 진짜 노래는 회전수를 올려야 들린다. 가속페달을 꽉 밟았다. 3,000rpm을 기점으로 엔진의 목소리가 바뀐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묵직한 저음은 사라지고 묵직하고 맹렬한 고음이 들이친다. 고회전형 엔진의 소프라노 사운드와는 다른 맛이 있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회전수를 높이며 커지는 소리, 균일하게 더해지는 힘에 홀린다.
 

고배기량 자연흡기엔진답게 힘은 균일하게 상승한다. 요즘의 변속기와 비교하면 기어비가 약간 넓은 자동 6단 변속기라도 괜찮은 이유다. 1단은 빠르게 가속하기 위해 짧게 잡고, 6단은 넉넉히 잡아 고속도로에서 연비를 아낄 항속용 기어로 사용해야 하니, 2~5단까지의 구간으로 넓은 속도 범위를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쉴 틈 없이 빠른 가속을 보채는 지금의 자동 8단 변속기에 비하면 분명 모자란 부분일지도 모른다. 허나 아쉽지 않았다. 신기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엔진의 질감을 더욱 여유롭게 맛볼 수 있다.

시속 100km를 유지할 때 엔진회전수는 1,800rpm이다. 여유롭게 달릴 때 승차감은 차분했다. 서스펜션의 세팅은 조금 독특하다. 서스펜션의 강도와 움직이는 범위만 살펴보면, 독일 차보다 조금 무르고 이탈리아 차보다 조금 단단하다. 다른 도로 상황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고 본다. 요동치는 도로에서도 노면을 붙잡는 정도는 확실했다.
 

고속주행을 위해 어댑티브 댐퍼와 스포트 버튼을 눌렀다. 더 단단한 댐퍼 세팅이 고속주행에 알맞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엔진은 다시 울부짖는다. 안정감과 강렬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감성을 위한 세팅임이 분명하다. 비슷한 급에서 엄청난 속도와 안정감을 자랑하는 차를 탔을 때는 이만한 속도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도에 비해 속도감이 컸다. 짜릿함에 절로 가속을 그만둘 정도. 하지만 거동은 안정적이다. 다시 끝까지 가속페달을 밟았다.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들끓는다. 낮은 속도부터 느낄 수 있는 이 강렬한 감각은 분명한 매력이다.
 

핸들링 감각도 매력적이다. 차체의 거동을 자연스레 조절할 수 있어서다. 코너링도 안정적이지만 원한다면 뒤를 미끄러트릴 수 있다. 이 과정이 아주 점진적이다.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미끄러짐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된다. 스티어링은 작동감이 확실한데다 노면의 상태와 차체의 거동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예를 들자면, 차체는 부드럽게 노면을 지나더라도 손끝에는 오묘한 감각이 전해진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열고 달렸다. 다음날 몸살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볼란테의 모든 것을 만끽하고 싶었다. 바람은 더 불어도 하늘은 지극히 푸르렀다. 문득 경험하지 못한 옛 자동차의 세계를 상상한다. 신사가 거친 철마를 타고 달리던 시대 말이다. 그때의 자동차는 지금의 것보다 거칠었겠지만 더 순수했을 것이다.
 

볼란테는 지금의 자동차가 갖는 신뢰성과 세련미에 고전적인 자동차의 강렬함, 속도감을 잘 녹여냈다. 오래된 구석도 꽤 있다. 고가의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안전 경고 장치가 없고, 편의장비도 조금은 부족하다. 손으로 만드는 회사의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그것뿐만 아니다. 좀 어긋나게 달린 후방카메라는 화소수가 부족하다.

그래도 난 이 차가 좋다. 클래식한 감각에 취해 밤새도록 계속 지붕을 열고 달렸다. 용감한 사나이답게. 바람에 눈물이 나고, 몸은 떨었다. 꼭 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날, 결국 몸살에 걸려 하루 종일 앓았다. 이 기사를 쓰는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몸은 계속 볼란테를 타는 듯 뒤로 쏠린다.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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