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향상, 8세대 폭스바겐 파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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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향상, 8세대 폭스바겐 파사트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4.12.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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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함으로 무장한 8세대 파사트는 프리미엄을 겨냥한다. 매끈하고 다이내믹하면서 효율적인, 모든 향상이 세련되게 이루어졌다

낯선 골목, 원색의 담장 아래 차를 세우면 어떤 노인은 흐뭇하게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고, 어떤 노인은 굳은 표정으로 거꾸로 손짓하며 가라고 했다. 보트가 정박해 있는 해안의 퇴락한 바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듯한 여자가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심심해 죽을 뻔했다는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신발을 핥는다. 멀리서 아름답게 보이던 풍경들은 가까이 다가서면 평범한 일상으로 다가올 뿐이다.

여기는 지중해 위에 떠 있는 이탈리아령의 샤르데냐 섬. 2년 전 7세대 골프를 론칭했던 곳이다. 오늘은 8세대 파사트를 이곳에서 만난다. 폭스바겐에게 이 섬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데, 폴로, 골프, 파사트 등 폭스바겐의 주력 모델들이 이 섬에서 론칭했고 그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란다. 다시 올 수 있을까 하고 떠났던 섬을 이렇듯 다시 찾게 된 데는 그러한 연유가 있은 덕분이다.
 

아담한 공항 청사를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만나는 폭스바겐 파빌리온. 주차장에 나란히 늘어선 신형 파사트들을 보는 순간 2년 전 장면이 오버랩된다. 기내에서 본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떠올랐다. 영화에서처럼 똑같은 시간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단지 골프에서 파사트로 차종이 바뀌었을 뿐,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경험이다. 푸른 하늘 위에 섬처럼 떠 있는 구름들, 주변의 사람들과 소리들, 같은 장소에 놓여져 있는 사물들마저 왠지 똑같은 분위기다.

세대가 바뀌면서 골프와 파사트도 닮아가는 것 같다. 골프의 세단 또는 왜건 타입의 상급 모델로서 착실히 진화해나가는 느낌. 그 진화는 이번 8세대에 이르러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파사트는 지난 1973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2천200만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파생모델을 포함한 파사트 시리즈는 폭스바겐 그룹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로 2013년 한 해에만 110만대가 팔렸다. 새로운 MQB 플랫폼을 베이스로 한 8세대 파사트는 대중적인 중형차 기반을 강화하면서 프리미엄의 영역을 겨냥한다. 그럼, 무엇이 달라졌을까?
 

새로운 플랫폼의 특징은 낮아진 차체(-14mm), 전체 길이는 짧아졌지만(-2mm) 늘어난 길이(+12 mm)와 휠베이스(+33mm) 그리고 이전 모델보다 85kg 가벼워진 무게, 20% 향상된 연료효율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외관에서 보면 프론트 그릴이 한층 간결해지면서 보닛 볼륨에서 이어진 선이 날카롭게 닿는다. 이 에지는 사이드 라인에서 한층 두드러지는데 트렁크 리드에서 단정하게 갈무리된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 다부진 인상을 주는 것, 말하자면 간결한 다이내믹이다. 그리고 LED 헤드램프를 새로 달았는데 이는 최고급 트림인 하이라인에서 기본 적용된다.

8세대 파사트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받고 시승을 시작한다. 이번에 타는 모델은 모두 유럽 버전이다. 먼저 건네받은 키는 1.4 TSI ACT 150마력 모델. ACT는 액티브 실린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적용되었다는 뜻. 주행상황에 따라 4개의 실린더 중 2개만 가변적으로 사용해 연료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1.4 터보 직분사 휘발유 ACT의 연비는 20.4km/L(CO₂ 배출량 115g/km). 이전 모델보다 20% 개선된 수치다.
 

실내도 간결하면서 고급스러워진 인상이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의 송풍구를 수평으로 길게 일체화시킨 디자인이 신선하다. 그밖의 계기 배열은 7세대 골프와 비슷하다. 좀 더 크고 세련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계기판이 다르다. ‘액티브 인포 디스플레이’라 부르는 새로운 형식이 두드러진다. 엔진회전계와 속도계 사이 정보창이 매우 넓은데, 여기에 내비게이션 모드를 선택하면 지도가 펼쳐지는 게 특징이다. 종래의 방식이 화살표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었다면 모니터의 내비게이션 지도화면이 그대로 보인다. 그만큼 넓다. 시선을 옮길 필요가 없어 운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와인딩 로드에서 코너의 방향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 유용하다. 한편 시승차에는 달리지 않았지만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옵션으로 준비된다.

시승차의 트랜스미션은 수동 6단. 준비된 휘발유 모델은 모두 수동 기어뿐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종적을 감춘 수동 기어가 여기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기어는 쉽고 매끈하게 꽂힌다. 모처럼 왼발로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직접 변속하는 손맛을 즐긴다. 회전 질감은 부드럽고 가속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사실 1.4 TSI라는 트림명이 아니면 2.0이라 해도 믿을 만큼 회전력이 풍부하다. 싱글 스크롤 터보는 단선적인 감각으로 파워 그래프를 끌어올린다. 초반부터 꾸준하게 밀어주는 힘에 터보랙은 살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진다. 최대토크 25.5kg·m은 1,500~3,000rpm 영역에서 터진다. 토크가 센 것은 아니지만 회전대는 거의 디젤과 같은 수준이다. 낮은 rpm에서 최대토크가 발휘되면 가속을 시작하면서부터 힘을 받는다. 그만큼 초기 가속력이 좋은 게 디젤의 장점. 휘발유 엔진이 그런 장점을 습득하고 연비도 좋다면 굳이 디젤을 선택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중형차급에 1.4L 엔진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다운 사이징 효과는 그런 선입견을 철 지난 유행가로 만들어버린다. 엔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차체 경량화와 더불어 전체 패키징의 진화가 함께 이루어낸 결과다. 한 모델의 세대를 바꾼다는 의미와 추구하는 방향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파사트 1.4 TSI를 타고 달리면 배기량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속에서 1.4 TSI는 부드러운 회전으로 여유 있게 달린다. 앞뒤 오버행이 짧아지면서 한층 민첩해진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어서 2.0 TDI 모델을 갈아탔다. 시승차는 여러 가지 TDI 버전 중에서 최상위인 240마력 바이터보. 최대토크는 51kg·m에 이른다. 강력한 토크에 네바퀴굴림 4모션이 기본으로 장착되고 7단 DSG 기어박스를 매칭하고 있다. 최고속도는 시속 240km에 이른다. 연비는 18.8km/L로 1.4 TSI ACT와 비슷한 수준이다. 좀 전에 1.4 TSI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이쪽으로 기운다. 미인에게 자꾸 눈길이 가듯 고성능 모델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카랑카랑한 소리부터 다르다. 하지만 억제된 소리는 거슬리지 않는다.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았을 때 솟구치는 토크, 밟자마자 뛰쳐나가는 디젤 특유의 터프한 가속감이 역시 TDI임을 상기시킨다. 드라이빙 모드는 모두 5가지. 에코, 컴포트, 노멀, 스포트, 인디비주얼 등. 스포트 모드로 바꾸면 한층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펀치를 날리는 주먹이 가장 꽉 쥐고 힘이 들어간 느낌. 당연히 스피드도 빨라진다.
 

수동 기어가 손맛이 있다고는 해도 DSG의 변속이 더 빠르고 편하다. S 모드에서 패들 시프트를 쓰면 재미있고 반응도 칼 같다. 진화를 거듭한 DSG는 변속이 한층 매끄러워진 감각. 속도의 고저 차이가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허둥대지 않는다. 가속은 강렬하게 이어지고 네 바퀴에 고른 접지력은 탄탄하다. 몸을 잘 잡아주는 시트, 단단하지만 무겁지 않은 하체가 안정감을 준다.

시승한 2.0 TDI의 실내는 인스트루먼트 패널에 우드 그레인이 들어가 있고 소재의 질감도 더 고급스럽다. 실내공간은 확실히 넓어진 느낌이다. 시트 위의 공간도 앞 13mm, 뒤 26mm 커졌다. 그리고 세단의 경우 트렁크는 586L로 21L 커졌다.
 

변화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보행자 모니터링 기능이 포함된 도심 긴급 제동(City Emergency Braking), 트레일러를 차 뒤에 연결했을 때 주차 등을 능수능란하게 도와주는 트레일러 어시스트(Trailer Assist), 급작스런 가속 등 긴급 상황에서 차를 강제로 멈춰 세우는 이머전시 어시스트(Emergency Assist), 차선이탈경고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에 기반한 교통정체 보조(Traffic Jam Assistant) 기능 등이 신형 파사트에 처음 적용되었다. 이런 기술들은 자율주행 자동차를 위해서도 쓰이게 될 것이다. 또한 스마트폰 앱을 연동시키는 미러링크 기능을 새로 적용하는 등 신선한 변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마지막으로 왜건 타입의 바리안트를 탔다. 2.0 TDI 4모션 DSG를 갖춘 모델이다. 매끈한 디자인은 왜건의 비율을 매우 근사하게 뽑아냈다. 뒤로 이어지는 선이 무척 간결해 콤팩트한 이미지를 준다. 여러 명의 트렁크 짐을 옮기면서 왜건의 쓸모를 확인한다. 많은 짐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넣는다. 이 과정이 세단보다 훨씬 쉽고 편리하다. 높게 열린 해치 게이트는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간단히 닫힌다. 물론 세단 트렁크도 마찬가지지만.

달리기는 세단과 비슷한 감각이다. 강한 토크와 여유 있는 출력으로 거뜬하게 속도를 높여나간다. 세단보다 뒤는 조금 무거운 느낌이다. 짐의 무게가 주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코너를 빠르게 돌 때 언더스티어가 나타났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자세를 바로잡는다. 5세대 할덱스 커플링 AWD 방식을 채용한 4모션은 평소 앞바퀴에 구동력을 집중하다 필요할 때 뒤로 배분한다. 슬립이 감지될 경우 리어 액슬에 토크를 집중시킨다. 여기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DCC)과 ESC를 통합한 전자식 디퍼렌셜 록(EDS)의 기능성을 높인 XDS+를 더해 안정적인 핸들링을 보장한다.
 

길가의 나무들은 대부분 키가 작았다. 낮은 풍경은 멀리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먼 곳은 아련했다. 파사트는 구불구불한 길을 뱀처럼 착착 감으며 내달렸다. 가까이 다가선 풍경은 건조한 일상을 드러내었고 그 건조함이 낯설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도 파사트는 쾌적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조용했다. 잔잔한 파도와 같이. 어느 순간 파사트는 샤르데나 섬의 일부가 되었고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섬은 또 한 차례 훌쩍 더 성숙해진 파사트를 육지로 내보낼 준비가 되었다.

글 · 최주식 편집장
사진 · Volkswagen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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