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코, 바람 같은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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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코, 바람 같은 여정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4.11.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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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년에 걸친 폭스바겐의 스포츠카 여정은 시로코 3세대를 통해 완결되었다. 50여 년간 폭스바겐의 스포츠 쿠페 계보를 이어온 5대의 차를 살펴보자.
 

카르만 기아: 잘생기고 비싼 비틀.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보다
1950년대 초반, 세계는 2차 대전의 상흔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여가고 있었다. 이에 맞춰 폭스바겐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줄 자동차를 만들기로 한다. 독일의 코치빌더 카르만에게 생산을 맡기고,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기아(Ghia)가 디자인을 하기로 했다. 바탕이 될 차는 폭스바겐 비틀이었다. 비틀의 플랫폼을 개조해 늘씬한 쿠페를 만들기로 한 것.

폭스바겐은 1953년 파리모터쇼에서 첫 스타일링 콘셉트를 공개했다. 비틀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매끈하고 유려한 디자인으로 여럿을 사로잡았다. 1955년에 타입 14, 카르만 기아라는 이름으로 양산을 시작했다. 엔진은 두 가지가 있었다.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1.2L와 1.3L 엔진이었다. 각각 34마력과 50마력을 냈다. 출력은 낮아도 820kg의 낮은 공차중량 덕분에 1.2L 모델과 1.3L 모델이 각각 최고시속 120km, 150km를 냈다.

성능으로는 진짜 스포츠카와 대결이 힘들었다. 대신 멋진 2+2 쿠페를 원하는 이들을 파고들었다. 절묘한 니치마켓을 찾아낸 셈. 고성능보다는 다룰 수 있는 여유를 노렸다. 카르만 기아는 1955년 양산 첫 해에 1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수출량이 증대되며, 생산대수도 두 배로 늘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1957년에는 컨버터블 모델도 추가했다.

1961년에는 타입 34, 카르만 기아라는 후속 모델을 내놓는다. 하지만 가격과 스타일이 문제였다. 1960년대 당시 타입 34 카르만 기아는 폭스바겐에서 가장 비싸고 사치스러운 차였다. 비틀을 두 대 살 수 있을 정도의 비싼 가격이 발목을 잡았고 폭스바겐은 오래된 비틀의 후속으로 골프를 장만했다. 결국 카르만 기아는 1974년 생산을 중단했다.
 

시로코 1세대: 잘 달리는 좋은 차, 골프를 바탕으로 만든 스포츠 쿠페
야심작인 골프 1세대와 함께, 폭스바겐은 카르만 기아의 후속을 재빠르게 준비해갔다. 카르만 기아의 교훈은 하나였다. 멋진 디자인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하고 비싼 차가 아닌, 기본기와 주행성능을 강화한 차를 만드는 것. 골프의 성공 가능성을 믿은 폭스바겐은 스포츠 쿠페를 골프 출시 6개월 만에 내놓아 분위기를 몰아칠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골프를 바탕으로 새로운 스타일링을 더하고, 더욱 스포티한 주행을 위해 거의 모든 부분의 재설계에 돌입한다. 디자인은 골프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다시 맡았다. 골프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 후, 생산 물량을 해결한 폭스바겐은 시로코를 출시한다. 1974년에는 유럽, 1975년에는 북미시장에 진출한다.

초기 모델은 직렬 4기통 1.1L부터 1.7L 엔진까지 총 5종류에 달하는 다양한 엔진을 얹었다. 변속기 또한 수동 4단, 수동 5단, 자동 3단 등을 갖췄다. 유럽과 미국시장 양쪽을 동시에 노리는 폭스바겐의 다양한 파생 모델 전략이 먹혔다. 스포티한 디자인에 매료된 소비자들은 시로코를 택했다. 불세출의 해치백, 골프를 바탕 삼은 탄탄한 품질과 스포티한 감각을 위해 거의 모든 부분을 재설계해 얻은 주행성능이 이목을 끌었다.

시로코 1세대는 후속모델인 시로코 2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1981년 은퇴한다. 양산 대수는 약 50만4천대에 달했다. 짧은 기간 동안 폭스바겐 스포츠 쿠페의 계보를 확실하게 쌓은 차다.
 

시로코 2세대: 더 강력해질 수 있었던, 비운의 계승자
시로코 1세대는 1974년부터 1981년까지 50만대가 팔렸다. 1세대 모델만 680만대가 팔린 골프에 비하면 한참 작을지 몰라도, 스포츠 쿠페로는 아주 고무적인 성과였다. 때문에 폭스바겐은 디자인을 크게 바꾼 2세대 모델을 1981년에 내놓는다. 조르제토 주지아로 대신 자사 디자인 팀을 통해 아주 공격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직렬 4기통 1.3L부터 1.8L 엔진까지 5종류의 엔진을 내놓은 것은 1세대 모델과 동일했다. 다양한 엔진 라인업과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전략도 마찬가지. 1992년 단종되기 전까지 약 29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나름 훌륭한 성적이었지만, 1세대의 업적에 못 미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폭스바겐의 고성능 스포츠 쿠페 전략 때문이었다. 시로코는 훌륭한 스포츠 쿠페였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이보다 더 뛰어난 고성능 스포츠 쿠페, 코라도를 1988년 출시하며 고성능 스포츠 이미지를 더하고자 했다.
 

코라도: 시대를 앞선 진짜배기 운전 머신
코라도는 폭스바겐의 고성능 모델 만들기를 다시 정의한 차다. 골프 2세대의 A2 플랫폼을 바탕 삼았지만, 골프보다 더 크고 강한 엔진을 얹어 주행성능을 한껏 끌어올렸다. 운전 재미에 대해 수많은 잡지의 극찬이 뒤따랐다. “죽기 전에 꼭 몰아봐야 할 차 중 하나”, “폭스바겐이 만든 차 중 운전자를 위한 최고의 차” 등 많은 찬사와 사랑을 받았다.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링에 강력한 엔진을 아울러 보기에도 멋졌다. 첫선을 보인 1988년에는 직렬 4기통 1.8L 138마력 자연흡기 엔진과 1.8L 슈퍼차저 160마력 엔진을 얹었다. 충분한 성능이지만, 이름값을 드높인 진짜배기는 1992년 추가된 VR6 엔진이다.

VR6 엔진은 V형 6기통 엔진의 양축 실린더 각도를 15 로 만든 엔진이다. 크기가 작아 엔진룸 공간은 직렬 4기통만큼 차지하면서도, 부드러움은 직렬 6기통에 필적하는 장점이 있었다. 이 VR 엔진 구성은 이후 골프의 고성능 모델인 골프 R32에도 적용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특이한 점은 이 시대부터 전동식 리어 스포일러를 적용했다는 점. 운전자가 직접 버튼으로 높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다 좋은 차지만 이번에도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생산대수는 약 9만7천대. 1989년 등장해 1995년 단종됐고, 한동안 폭스바겐은 스포츠 쿠페 생산을 그만둔다. 2008년 시로코 3세대가 등장할 때까지….
 

시로코 3세대 : 화려한 귀환, 폭스바겐이 그토록 원했던 진짜 스포츠카
2006년, 폭스바겐은 제네바모터쇼에서 콘셉트 카 한 대를 공개했다. 이름은 ‘IROC’(이록). 초대 시로코와 같은 진한 초록색의 강렬한 차체와, 골프를 바탕 삼은 차체, 시로코 1세대가 선보였던 자리라는 점은 시로코의 후계자가 등장한다는 기대에 불을 댕겼다. 사실 시(이록)코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반증이다.

2008년, 약속을 지키듯 폭스바겐은 시로코를 내놓았다. 2세대 단종 후 16년 만의 화려한 복귀였다. 폭스바겐의 스포츠 쿠페를 기다린 이들에게는 달콤한 보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능을 보장하는 골프의 단단한 A5 플랫폼을 바탕으로 스포츠 성능을 위해 재설계와 튜닝을 거친 시로코 3세대는, 1세대에 바치는 완벽한 오마주였다.

기다린 시간이 길었다. 허나 시대의 변화만큼 첨단화된 기술과 성능이 기다림의 아쉬움을 환호로 바꿔냈다. 골프와 같은 플랫폼을 쓸지언정, 시로코의 낮고 넓은 차체가 빚어내는 능숙한 코너링 실력은 플랫폼을 나눠 쓰는 형제 모델과는 다른 감각을 내세운다. 게다가 전자식 디퍼렌셜의 역할을 하는 XDS가 코너링 할 때 안쪽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 언더스티어를 없앤다. 아무리 몰아쳐도 코너 안쪽을 파고든다.

시로코 3세대는 실용성을 약간 포기한 대신 진짜 스포츠카가 됐다. 원래 스포츠카는 불편하다. 시로코이기에 그 불편함의 강도가 줄어들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골프와 같은 효율을 누리면서도 개성과 운전의 재미는 그 이상이다.

최근 폭스바겐은 시로코의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더욱 완벽한 차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엔진 라인업 모두를 손보며 출력을 끌어올렸다. 1.4L 터보 엔진은 180마력, 2.0L 터보 엔진은 220마력을 낸다. 디젤 엔진도 184마력으로 뛰어올랐다. 라인업의 최고봉 시로코 R은 280마력으로 출력을 올리며 더욱 거센 야성미를 뽐낸다. 폭스바겐이 원했던 진짜 스포츠카는 시로코 3세대로 완성되었다.

글 · 안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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