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대결, 케이터햄 세븐 160 VS 62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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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대결, 케이터햄 세븐 160 VS 620R
  • 앤드류 프랭클
  • 승인 2014.10.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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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파운드짜리 315마력 620R과 1만5천 파운드짜리 81마력 160 중 어느 케이터햄 세븐이 더 재미있을까? <오토카>의 앤드류 프랭클이 확인해봤다.

우리 <오토카>가 어떤 차를 다른 차와 비교할 때에는 대개 마지막에 가서야 결론을 내리곤 한다. 그래야 독자 여러분에게는 읽을거리가, 우리에게는 할 이야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여러분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다. 케이터햄 세븐 620R은 신형 케이터햄 세븐 160보다 운전이 더 흥미진진하다. 놀랄 만한 결론은 아니다. 전자는 스즈키 경차에 쓰인 660cc 엔진을 얹었고, 후자는 무게당 마력비가 맥라렌 P1과 맞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160은 지름길에서 르노스포르 클리오를 떼어놓기 위해 애를 써야 하겠지만, 620R은 부가티 베이론을 모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비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차들은 좀처럼 비교하지 않는다. 나아가 같은 모델에 해당하라는 차라면 더욱 그렇다. 또한 620R은 160보다 출력은 거의 네 배에 가깝고 값은 세 배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고민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재미로 치면 다르다. 사람들은 빠른 것과 재미있는 것의 개념을 실제보다 훨씬 더 비슷한 것으로 너무 자주 혼동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 가지 기준 사이에는 어느 정도 확대해석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어느 한쪽이 만족스러울수록 다른 한쪽도 더 좋아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그러면 두 대 중 아랫급에 해당하는 모델부터 살펴보자. 3기통 엔진을 얹은 160은 1만 5천 파운드(약 2천640만원)를 밑도는 깜짝 놀랄 값을 내세우고 있다. 케이터햄이 내놓은 최신형 세븐이기는 하지만, 81마력이라는 평범한 출력과 초경량 차체, 라이브 액슬 방식 뒤 차축 구조를 갖춘 이 차는 지난 30년 동안 만들어진 모든 케이터햄 모델보다 콜린 채프먼이 원래 로터스 세븐을 만들려 했을 때의 개념에 훨씬 더 가깝다.

조립하는 데 2천 파운드(약 350만원), 도색하는 데 1천150파운드(약 200만원)를 더 들이고 나면 매력이 조금 퇴색되겠지만, 이 차는 판매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차만의 고유한 장점은 모든 케이터햄 모델 중 아마도 가장 유용한 차라는 사실일 것이다.서킷이나 달리기 좋은 시골길의 A지점부터 B지점까지 달릴 때의 빠른 모습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부족한 출력, 그리고 그에 알맞은 딱딱하고 얇은 타이어와 라이브 액슬 구조 때문에 낮아진 접지력 덕분에 케이터햄으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 굳이 서킷이나 산길을 찾지 않아도 된다.

작고 반응이 뛰어난 스즈키 엔진이 곁들여진 160은 법적인 제한속도 내에서 놀라울 정도로 적당히 미끄러지고 드리프트를 할 것이다. 또한 다루어야 하는 무게가 500kg을 밑돌고 섀시가 무척 다루기 좋아서, 법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슈퍼 영웅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매일 달리는 길에서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차의 문제점은 흔히 예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성능이 절망적인 수준도 아니고 작은 터보 엔진의 반응이 더디지도 않다. 그러나 5단 변속기의 기어비는 어색하다. 2단 기어비가 1단처럼 써도 좋을 정도로 너무 낮아서(변속기가 4단처럼 느껴질 정도다), 3단으로 옮기면 작은 엔진이 매끄럽게 토크를 이어나가지 못한다.

아울러, 부드러운 서스펜션과 좁은 타이어에서 뛰어난 승차감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라이브 액슬 구조가 그런 기대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하체의 움직임은 작게는 들썩거리는 정도에서 크게는 출렁이는 정도까지만 오갈 뿐이다.

620R의 주행 질감에 관해서는 생각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시퀀셜 기어가 선택한 기어 단수를 유지하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도 마찬가지다. 두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쥘 수 있는 모든 것 가운데 케이터햄의 최상위 모델에서 가장 생기발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근원은 2.0L 슈퍼차저 엔진에서 나오는 315마력의 출력이 아니라 토크다.

옆에 탄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운전자가 킥킥거리게 만드는 것은 차의 성능 그 자체가 아니라 빠른 반응이다. 훨씬 더 빠른 다른 케이터햄들로 그런 영역에 이르려면 낮은 단수의 기어로 회전수를 높여야 하는 반면, 620R은 4단 기어에서 3,000rpm 정도로 무난하게 회전수를 맞추도록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쉽게 야수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리고 나면 운전자가 얼마나 거칠게 달릴 수 있는지, 또는 운전자가 어느 정도까지 거친 달리기를 감당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620R은 빨리 달리기가 절대로 쉽지 않고, 그런 점을 고려하면 160과 정반대 성격을 지닌 차다. 섀시를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나름대로 160의 섀시만큼 고분고분하다. 그러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고 슬릭 타이어가 차원이 다른 접지력을 지닌 덕분에 모든 일이 12배는 더 빠르게 일어난다. 그만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도 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거나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장소를 찾는다면, 620R은 황홀함으로 넋을 빼놓을 것이다. 그리고 차체는 돌이킬 수 없는 각도까지 드리프트를 하고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620R을 몰고 즐겁게 달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를 인적이 없는 곳까지 끌고 가야 한다. 시동을 걸자마자 이웃 사람들의 잠을 깨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를 제대로 몰 수 있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아마도 두뇌가 마비될 듯한 소음을 견뎌야 할 것이다. 트레일러가 필요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620R이라면 주인이 아직 안전벨트를 매고 있을 시간에, 160의 운전자는 아무도 몰래 차를 끌고 나와 이미 몇 군데 코너에서 드리프트를 했을 것이다.

나는 620R이라는 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이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더 흥분되고 몰입할 수 있으며 열정적인 차는 없고, 훨씬 더 합리적인 가격의 160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할 만큼 현실적인 세상에서 실제로 구입해 쓸 수 있는 세븐으로서는 160이 더 경쟁력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다. 좀 더 출력이 높고 차동제한 디퍼렌셜과 더 매력적인 휠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아쉽지 않은 차인 것은 사실이다. 620R과 마찬가지로, 160은 속속들이 세븐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차는 작고 가볍고 출력이 부족한 스포츠카를 사랑했던 콜린 채프먼이라도 납득할 만하다. 나아가 그가 만족할 만한 차라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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