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GT, 기블리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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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GT, 기블리 디젤
  • 안민희
  • 승인 2014.08.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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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블리를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 뜨거운 바람이 확 불었다. 10년 전을 떠올렸다. 나는 자동차 마니아이자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용인 스피드웨이로 가는 국도변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차를 보았다. 문을 닫은 정비소 마당에 홀로 서 있는 붉은색 차. 직선으로 이뤄진 90년대의 디자인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동 중이기에 그 차를 본 것은 약 4초 정도 될까? 3초면 사랑에 빠진다던데, 난 그 차와 사랑에 빠졌다. 비록 “잠깐만 차를 세워주세요”란 부탁도 못할 만큼 소심했지만.

결국 접이식 자전거를 들고 용인 에버랜드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차를 다시 보기 위해서다. 허나 돌아온 곳에는 붉은색 차가 없었다. 문도 닫았으니 물어볼 수도 없어 더 허탈했다. 그런데, 홀로 커버를 씌운 차가 있었다. 각진 디자인이 슬쩍 드러났다. 차주가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살짝 커버를 벗겼다. 그 차였다. 삼지창 모양의 엠블럼을 단 붉은색 차. 크림색 가죽과 나무의 조화로 호화로움을 자랑하는 실내. 실내에는 마세라티라고 적혀 있었다. 한참 인터넷을 뒤져서야 이름을 알았다. ‘기블리’ 2세대. 한참 동안 날 설레게 했던 꿈의 차다.

10년이 지나 꿈꾸던 차를 다시 만났다. 3세대 모델로 되살아난 기블리는 쿠페가 아닌 세단이다. 허나 명작의 이름을 잇는다는 것이 아주 반가웠다. 유려한 선으로 날카롭게 빚은 디자인은 지금 시대의 경향 중에서도 최첨단에 선 모습이다. 매혹적인 모습이 마음을 홀린다. 과거와의 고리는 무엇으로 찾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새롭다.

문을 열자 단순하면서도 호화로운 실내가 펼쳐진다. 가운데 센터 페시아를 중심으로 날개 펼치듯 만든 좌우 대칭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촉감이 아주 뛰어난 가죽과 검정과 붉은색의 색상 대비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 손닿는 곳곳에 가죽을 덮었다. 질감이 무척 좋아 자꾸 쓰다듬고 싶어질 정도다. 최고급 가죽 중 하나인 폴트로나 프라우(Poltrona Frau)라고 한다.

시승차인 기블리 디젤에 더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조합은 강렬했다. 알루미늄으로 포인트를 더해 차가운 분위기를 낸다. 대시보드 가운데를 차지한 아날로그 방식의 시계는 클래식한 감성을 불어넣는다. 처음엔 그 크기가 작다 생각했다. 그런데 밤에 은은한 불빛을 내뿜는 시계를 보니 절대 작은 사이즈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기 딱 좋은 크기였다.

계기 조작의 대부분은 중앙의 8.4인치 터치스크린으로 한다. 실내 디자인이 간략한 이유다. 마찬가지로 아래 달린 에어컨 조작부의 구성은 단순하다. 버튼을 눌러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인데, 이는 터치스크린에서도 할 수 있다. 전자식 기어레버의 조작감은 약간 낯설다. 제자리에 맞물리는 느낌이 아니라, 막대를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상대적으로 패들 시프트의 조작감이 더 좋다. 패들 시프트는 꽤 깊게 당겨 기어를 맞물리듯 바꾸는데, 너무 유격이 짧아 버튼처럼 느껴지는 타 기종에 비하면 훨씬 조작감이 좋다. 계기판 가운데는 큼지막한 스크린을 달았다. 속도, 연비, 타이어 공기압, 상태 설정 등 다양한 정보를 띄운다. 주행 중 상태 변경, 기능 변경도 띄운다. 주행 중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미리 확인하라는 보챔일까.

시동을 걸고 바깥에 섰다. 아이들링 상태에서도 으르렁댄다. 기블리 디젤의 엔진은 VM 모토리에서 개발한 V6 3.0L VGT 디젤이다. 페라리 F1 엔진 디자이너였던 파올로 마르티넬리가 개발 감독을 맡았다. 마세라티의 이름에 걸맞은 성능을 낸다. 최고출력 275마력은4,000rpm에서, 최대토크는 61.2kg·m로 2,000~2,600rpm에서 나온다. 성능을 위해 가변식 터보차저와 가변흡기 매니폴드를 단 것이 특징이다. 저속 구간에서 유속을 빠르게 바꿔 터보차저를 언제나 빠르게 돌리기 위해서다. 배기가스량이 많아지는 고속에서는 좁혔던 통로를 다시 넓혀 더욱 강한 성능을 끌어낸다.
 

엔진 세팅은 상당히 역동적인 면을 강조한 느낌이다. 가속 페달을 그리 깊게 밟지도 않았건만 등을 마구 떠민다. 회전 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엔진 회전수를 낮게 유지할 때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조용하게 다녀야 할 때를 감안한 세팅이다. 허나 조금만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소리가 실내로 들어온다. 마세라티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소리다. 듣기 좋은 소리를 위해 마세라티는 배기관 근처에 두 개의 액추에이터를 달아 음색을 강조했다.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더욱 소리가 잘 들린다. 엔진 회전수도 쉽게 떨어트리지 않고 유지하며 달리기를 재촉한다. 기어레버 옆 ‘M’ 버튼을 눌러 수동 모드로 바꾼다. 패들 시프트의 작동 유격이 조금 넓고 끝까지 당겼을 때 살짝 맞물리는 느낌이 든다. 실내로 들이치는 소리가 참으로 묘하다. 2,000rpm 전까지는 저음의 브라스 소리가 난다. 3,000rpm을 전후로 소리가 바뀌어 더 몰아치듯 맹렬한 소리로 바뀐다. 재즈 트럼펫 주자의 연주처럼 마음을 달군다. 소리로 운전자를 유혹한다. 가속 페달을 더 깊이 밟아 엔진을 보채면 환상적인 소리를 들려주겠다며 끊임없이 마음을 헤집는다. rpm에 따라,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이 유혹을 피하는 방법은 크루즈 컨트롤뿐이다. 8단을 물린 상태로 속도별 기어비를 확인해봤다. 시속 110km 정속 주행 시 1,500rpm, 시속 120km에서는 1,750rpm이다. 약하게 드로틀을 여는데다 엔진 회전수가 낮으니 엔진음은 들리지 않는다. 조용한 주행을 만끽했다. 고속도로에서 실제로 확인한 연비는 15km/L를 약간 넘긴다. 배기량을 감안할 때 매우 만족스럽다.
 

속도를 높이란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7단과 8단을 제외하면 기어비를 짧게 맞물려 가속이 더 긴박한데다, 발끝으로 큰 토크를 조절하는 맛에 빠지게 된다. 가볍게 달려 나간다. 토크 덕분에 실제 속도보다 더욱 큰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수동 모드에서도 4,500rpm을 넘어서면 자동으로 변속한다. 계속 기어를 바꿔가며 속도를 높여간다.

가속 페달을 짓누르며 코너를 탈출할 때는 약한 타이어 비명소리가 들렸다. 뒷바퀴굴림인데다 힘을 함부로 쏟아낸 탓이다. 물론 주행안정시스템이 개입해 바로 자세를 잡는다. 타이어는 콘티넨탈 콘티스포츠 콘택트5다. 콘티넨탈의 스포츠 타이어 중 2번째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국내에 수입되는 고성능 차는 대부분 이 타이어를 장착한다. 등급은 오버 Y다. Y등급은 시속 300km 주행을 연속 2시간 동안 견딜 수 있는 타이어에 주어지는 등급이다. 뒷좌석 다리 공간은 보통 수준이다. 뒷좌석에서 승차감은 뛰어났다. 순항을 할 때라면 소리 없이 흘러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특별한 편의장비는 찾을 수 없지만 특이하게도 뒷좌석 가운데 암레스트에 12V 시가 잭과 usb 어댑터를 하나씩 챙겼다.

마세라티 특유의 소리를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기블리 디젤을 꼭 타보길 권한다. 마세라티 특유의 혈기는 그대로다. 평소에는 한없이 순하다가도 몰아칠 때면 그 끝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속도감이 주는 불안함을 이겨내며 가속 페달을 꽉 밟아야 한다. 정복하기 위해 마음 단단히 먹고 덤벼야 하는 차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허나 마세라티만은 달랐다.
 

가격이 비슷한 BMW 535d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집요하게 몰아붙일 때 둘 모두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지만, 운전자가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다르다. 5시리즈가 합리적이고 탄탄한 주행감각이라면, 기블리는 운전자를 계속 흥분시킨다. 맘먹고 몰아칠 때야 본질을 보여준다. 뛰어난 코너링을 바탕으로 스릴을 즐긴다. 일반적인 주행에서 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열정적인 주행을 원한다면 기블리다. 중요한 차이는 카리스마다. 수백km가 넘는 구간을 달리며 기블리 디젤을 만끽했다. 헤어짐이 아쉽지 않도록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 느긋하게 몰 때는 편안하게 달려줬지만, 어느새 스포츠 모드에 수동 변속으로만 달리게 됐다. 계속 치솟는 힘과 소리에 이끌려 더욱 빨리 이 차를 모는 법을 익히려 들었다.

소리와 감성만으로 마세라티를 설명할 순 없지만, 계속 빠져들게 만들고 매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디젤이라고 해도 마세라티의 감각은 여전히 짙다. 강력한 성능과 안락함을 동시에 갖춘 황홀한 GT. 게다가 경제성도 뛰어나다. 여행과 스포츠 주행을 즐기는 이에게 걸맞을 이상적인 GT다.

글 · 안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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