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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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신세계
  • 최주식
  • 승인 2014.07.3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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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kidult)족을 아시는지.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말하자면 ‘철들지 않는 남자들’이 이 범주에 들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 키덜트족이라 생각하는 20~30대가 꽤 많아서 이른바 동심 마케팅이 활발하다. 무선조종 자동차와 헬기, 프라모델, 그리고 아트토이 등이 대표적인 상품들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도 이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가끔 TV쇼 ‘안녕하세요’의 고민 사례로 나와 방청객들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물론 아이 방을 자신의 프라모델로 가득 채우는 등 적당한 선을 크게 벗어났을 때의 얘기지만.

아무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 이전의 생활 태도와는 달라져야 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을 때나 단 둘뿐인 신혼 때, 그리고 아이가 어릴 때와 컸을 때 선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차를 고를 때, 이런 사정을 고려하다보면 마음에 쏙 드는 차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애들 때문에 이 차를 샀어…” 평소 스타일과 다른 차를 구입한 뒤 변명처럼 하는 말은 익숙하다. 왠지 궁색하지만 다 이해한다. 자동차 회사가 소비자들의 이런 사정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다양한 세그먼트를 만들고 해치백 베이스로 세단이나 왜건을 만드는 등 카테고리를 넓힌다.

폭스바겐 골프는 누구나 좋아하는 차. 하지만 ‘때’를 놓치면 인연을 쌓기 어렵다. 아이가 자라고 어디 가족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좁은 트렁크가 마음에 걸린다. 차라는 게 마음 따라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주기를 타다보면 그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골프 스포츠밴을 만나는 순간 그 ‘때’라는 게 완전히 지나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난 5월 21일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 코트다쥐르 니스에서 그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니스 공항에서 만난 첫인상은 조금 커다란 골프, 확실히 왜건은 아니지만 미니밴보다는 좀 더 콤팩트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주황색 컬러가 살짝 낯선 느낌을 주었지만 익숙한 은빛 컬러는 골프 그 자체에 다름 아니었다. 골프 스포츠밴의 옛 이름은 골프 플러스. 골프의 MPV 버전으로 이미 독일에서만 5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업그레이드된 스포츠밴 콘셉트 카로 선보였는데 양산차와 거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2012년 7세대로 모델 체인지를 거치며 골프는 에스테이트와 네바퀴굴림 4모션, 핫해치 GTI와 골프 R, 전기차 e-골프 그리고 오늘 만나는 스포츠밴으로 라인업을 확장했다. 아, 또 있다. 올 가을 라인업 최초로 선보일 하이브리드 모델 골프 GTE가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스포츠밴. 확실히 플러스라는 이름보다 스포츠밴이라는 이름의 존재감이 주는 무게가 크다. 단지 소형 MPV의 성격을 넘어 미니밴 영역까지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개념이다.

골프 스포츠밴은 7세대부터 적용된 MQB(가로배치 엔진용 생산모듈)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차체 길이는 해치백보다 83mm 길고, 에스테이트(왜건)보다는 224mm 짧다. 해치백에 더 가까운 콤팩트한 사이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전 세대인 골프 플러스보다는 134mm 길다. 7세대 골프가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 너비는 해치백과 에스테이트보다 8mm 늘어났고 이전 모델보다는 48mm 넓어졌다. 차체 높이는 해치백과 에스테이트보다 126mm 높다. 전체적인 스타일을 요약하면 키 큰 골프가 되겠다.

휠베이스는 해치백과 에스테이트보다 50mm, 이전 플러스보다는 107mm 늘어났다. 앞 오버행을 20mm 줄여 다이내믹한 성능을 키우고 뒤 오버행을 47mm 늘려 짐 공간을 키웠다. 스포츠밴의 지향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름을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골프의 민첩한 주행성능을 최대한 살리면서 짐 공간의 확대라는 효율성을 추구한 것. 이처럼 차체를 키우면서도 전체적인 무게감량은 90kg에 이른다. 옆면을 보면 A필러와 D필러에 각각 작은 유리창이 추가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길어 보이는 효과를 주고 실내에서는 시야를 넓혀준다. D필러는 클래식 골프의 디자인큐 그대로. 디자인 총괄 클라우스 비숍은 “사이드 캐릭터 라인은 전형적인 골프를 정의하는 요소다. 이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 모두 품질과 정확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은 누구나 강조하는 요소지만 정확성이란 단어에서 40년을 이어온 골프의 본질을 느끼게 한다.

차체가 높아진 만큼 차에 오르내리기 쉬워졌고 시트 포지션은 해치백보다 59~85mm 높아졌다. 시트 조절은 수동식. 처음에는 드라이빙 포지션을 잡기가 조금 어려웠다. 시야는 넓어졌지만 SUV처럼 높은 것은 아니다. 자세를 너무 낮추는 것도 컨트롤에 좋지 않다. 달리면서 전후방 시야를 살핀 다음 적합한 자세를 조정해나갔다. 가로로 펼쳐진 대시보드가 편안하고 여유 있는 공간감을 준다. 운전자 쪽으로 살짝 기울인 센터 페시아 역시 해치백에서 보던 레이아웃 그대로. 뒷좌석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확 커진, 개방감이 확대된 골프를 느낀다. 2열 시트를 최대한 뒤로 조정하면 앞 시트를 뒤로 밀 수 있는 공간이 33mm 늘어난다. 키 큰 탑승객이 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수치로서 의미가 있다. 슬라이딩 파노라마 선루프가 시원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2열 시트를 앞뒤 180mm 범위에서 밀 수 있다는 점이다. 이 3인용 벤치시트는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60:40, 또는 40:20:40으로 개별 조정할 수 있다. 밀고 당기고 접는 다양한 솔루션에 따라 변화무쌍한 화물 적재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늘어난 공간은 이전 모델 대비 76L에 이르고, 최대 수납공간은 1,520L에 달한다. 그리고 차체 높이는 이전 골프 플러스와 같은데 실내공간은 앞쪽이 10mm, 뒤쪽이 32mm 높아졌다. MQB 플랫폼이 부린 마술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의 마술은 엔진이다. 스포츠밴에 달리는 6개의 엔진은 모두 완전 신형. 스톱-스타트 시스템을 기본으로 얹어 이전 모델보다 연료를 20% 덜 소모한다. 파워와 효율성을 겸비한 EU6 엔진임을 내세운다. 차체가 커지면서도 무게를 줄이고 연비도 향상시키는 공식은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4기통 터보 휘발유 직분사 엔진(TSI)은 1.2L 85마력, 110마력, 1.4L 125마력, 150마력 등 4가지, 터보 디젤 직분사 엔진(TDI)은 1.6L 110마력, 2.0L 150마력 2가지로 나뉜다.

가장 먼저 탄 모델은 2.0L TDI. 니스 공항에서 바로 만나 2명의 짐을 싣고 150km 남짓 거리의 숙소까지 동행하는 코스다. 7세대 골프의 모든 옵션을 적용한 패키징은 금세 익숙하게 다가온다. 열선 기능을 추가한 스티어링 휠은 GTI에 처음 도입된 프로그레시브 시스템을 적용했다. 점진적인 스티어링 기어 비율로 굽이진 길에서나 주차 때 움직임을 줄여준다.

상상했던 코트다쥐르의 옥빛 바다는 보이지 않고 이따금 지나는 프랑스 국적 차들이 다만 장소를 환기시켜줄 따름이다. 타이트함보다 약간 느긋하게 운전하는 분위기. 해치백의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약간 굼뜬 듯해도 정확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초록과 황토색이 뒤섞인 풍경 위로 푸른 하늘이 손짓한다. 좁은 길을 능숙하게 빠져나간 스포츠밴은 이제 고속도로를 달린다. 드라이브 버튼을 눌러 모니터에서 스포츠 모드를 선택한다. 처음에 조금 헐렁해보였던 차체는 스스로를 한껏 동여매 탄탄해졌다. 밴의 운전감각은 이미 해치백의 그것으로 전환된 느낌이다. 고속주행은 무척 안정적이고 원하는 속도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다만 소음이 커지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주행 소음이 스포티한 수준은 아니지만 거슬릴 정도도 아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와인딩 로드가 펼쳐진다. 근데 이 와인딩 로드가 수십 km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진다. 뱀처럼 이어지는 길 언덕 아래로는 그림처럼 집들이 들어서 종전의 황량한 풍경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길은 좁고 경사는 급하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갈 때 뒤가 조금 무겁다는 느낌(실제 제법 무거운 짐을 실었다), 해치백처럼 빨리 감아 따라오지 않는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잘 달렸다. 언더스티어가 억제된 느낌은 분명했다. ESC에 통합된 전자식 디퍼렌셜 락(XDS+)은 굽이진 길에서 조향각도를 줄이고 마찰력을 키워준다. 밴이지만 코너링은 역시 골프, 단단한 하체와 유기적인 서스펜션이 거친 와인딩 로드를 안심하고 달리게 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른 다음 잠시 쉬고, 1.4 TSI 150마력으로 갈아탔다. 디젤과 휘발유의 차이는 뭐랄까 구두와 운동화의 차이랄까.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속도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운동화가 편한 게 사실이다. 구두는 간단한 손질로 오래 쓸 수 있는 경제성을 자랑한다. 익숙해지면 구두 신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운동화에 익숙해지면 구두는 불편하다. 물론 취향 차이이고, 이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는 휘발유 차가 운동화처럼 편안하다. 토크보다는 풍성한 출력에 몸을 맡길 때 달리는 재미가 배가된다. 물론 휘발유 차의 장점은 대배기량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폭스바겐 엔진의 마술은 작은 배기량에서 그러한 파워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작은 엔진이 애쓰는 것은 그다지 눈치채기 어렵다. 웬만한 중형차 이상의 가속성은 충분히 발휘하므로. 아주 가끔 눈치채더라도 기름을 많이 뿌리고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7단 DSG와 매칭한 1.4 TSI는 18.5km/L의 연비(유럽기준)를 낸다. 0→시속 100km 가속 8.8초, 최고시속 212km를 낸다. 최대토크(25.5kg·m)의 범위가 1,500~3,500rpm 사이로 디젤 못지않은 토크밴드를 자랑한다. 토크의 세기가 작을 뿐 디젤의 장점을 상당히 흡수한 셈이다. 2.0 TDI의 경우는 최대토크 34.6kg·m이 1,750rpm에서 발휘된다. 연비는 23.2km/L!    가끔은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시승 코스 대신 누군가 칸느에 가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폭스바겐 스텝은 친절하게도 내비게이션 세팅을 해주었다. 왕복 160km. 다음 일정까지 빠듯한 시간이라 처음부터 액셀러레이터에 묵직한 힘을 실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골프 스포츠밴은 고속도로의 1차선에서 그 어느 차보다 빨랐다. 앞서 달리는 차가 스포츠카라고 해도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싶으면 하나같이 차선을 양보해 주었다. 양보 덕분이기는 해도 골프 스포츠밴이 그만큼 달릴 실력은 된다는 애기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아랑 드롱이 요트의 키를 잡고 있는 장면이 낡은 페인트 간판으로 내걸린 골목, 거리의 카페들, 해변가에 촘촘히 줄지어선 차들, 그리고 해안의 모래사장, 정박해 있는 하얀 요트들…… 영화제 기간이었지만 레드카펫은 보지 못하고 서둘러 차머리를 돌려야 했다. 짧은 기억을 위한 여정은 멀고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좁은 골목, 단단한 보도블록 위에서 골프 스포츠밴은 능숙했고 우리 일행과 완벽히 하나가 되었다.

골프 스포츠밴은 여행지에서 최고의 파트너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유럽의 좁은 도로에서 적응하는 콤팩트함, 여유 있는 실내공간과 넉넉한 짐칸, 시간을 줄여주는 고속 주행성능, 그리고 와인딩 로드에서 발휘한 정확한 핸들링까지…… 만약 유럽에서 가족여행을 한다면 꼭 렌터카로 추천하고  싶은 차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만나고 싶다. 반가운 소식은 이전 골프 플러스는 수입되지 않았지만 골프 스포츠밴은 수입된다는 사실. 아쉬운 소식은 수입 시기가 내년 하반기로 너무 멀다는 것이다. 계획이란 항상 수정될 수 있는 법. 좀 더 빨리 국내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 최주식, 사진 · 폭스바겐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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