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와 피아트 500의 연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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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와 피아트 500의 연애편지
  • 존 시미스터, 앤드류 프랭클
  • 승인 2014.05.15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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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친애하는 존에게

오늘 시승에 나와 대단히 고마웠습니다. 귀하와 귀하의 새 차를 보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서신이 비판적으로 시작되지 않기를 빌면서 이런 말을 해야겠군요. 비록 미니는 귀엽지만 한 가지 상당한 결함이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귀하가 즐기는 동안 이 주장이 편견이었다는 게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그 안에 들어가 엔진을 점화하면 미니는 그냥 가자고 하는 대로 데려다줍니다. 그렇다면 재미는 어디 있습니까? 실제로 내가 깊이 생각한 끝에 피아트 엔진룸을 하루 종일 샅샅이 뒤져봐야 할 여러 가지 이유를 알려드리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랬다면 오랜 시간 끙끙거리다가 별로 재미를 못 봤을 것입니다. 귀하는 우리가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가 끝까지 약점을 캐려는 뜻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귀하가 건물을 떠날 때 우리가 볼 수 있었다는 걸 간과하고 뺑소니를 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피아트 500은 온종일 완벽하게 거동했지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줘 오래된 차의 첫째 의무를 다했습니다. 하루 종일 빗나가고도 집으로 나를 데려다줬습니다. 지칠 대로 지치고 약간 좌절감을 느꼈지만 아주 의기양양했습니다. 다음 주말과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127개의 롤슨 공구로 해야 할 일을 알게 됐으니까요. 이게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개성’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개성을 지나치게 발휘하여 RAC 구조대의 신세를 져야 할 때까지는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내 차는 결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너무 빗나가기 전에 끝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귀하에게 알렉 이시고니스가 있고, 내게 단테 지아코자가 최고의 카드로 남았을 경우 누가 이길까요? 

앤드류 드림

Dear. 친애하는 애드류에게

글쎄요, 나 역시 집에 돌아왔어요. 아주 작고 오래되고 영향력 있고 무척 사랑스런 차를 몰아보니 기분이 아주 좋더군요. 나도 귀가 요란하게 윙윙거리고 있습니다. 1959 미니는 고속에서 결코 정숙하지 않으니까요. 기본형 엔진이 아닌 이 특별한 차 역시 프로토타입 미니의 매력적인 결함을 갖고 있지요. 알렉 이시고니스가 반대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엔진을 가로놓아야 했던 바로 그 카뷰레터가 얼었습니다. 오늘 아침 배기열이 얼음을 녹이도록 규칙적으로 차를 세워야 했지요. 고객들이 똑같은 고역을 치러야 했다면 큰 재앙이었을 테지요.

그래서 우리가 만나기 전에 엔진룸을 데우는 하찮은 일을 해야 했지요. 하지만 날씨가 더 따뜻하고 드라이버가 귀마개를 제대로 하고, 창문에 김이 서리지 않는다면 미니는 분명히 보다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입니다. 패키지를 보세요. 더 좋습니다.

피아트는 뒤 엔진형이었어요. 그게 소형차의 기본이고 앞 엔진·뒷바퀴굴림(FR)보다 패키지에 이점이 있으니까요. 비틀, 르노 4CV와 피아트 600을 모방했지요. 반면 미니는 그런 틀을 깼습니다. 이시고니스는 수평적으로—심지어 가로로 놓기를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는 그가 처음이 아니었을 뿐이에요.
몇 세대에 걸쳐 모든 이탈리아 가족을 500에 우겨넣다니 실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나와 귀하에게 매력 있는(그리고 매력 있게 느린) 500은 재미있는 장난감이고 이탈리아의 국가적 기념물입니다. 한데 지난날 500은 본격적인 가족용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미니는 자동차 역사상 그보다 한층 복잡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시고니스는 미니를 최소형 4인승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생뚱하고 너무 비싸지요. 그리고 BMC의 스포츠 브랜드로는 불편하게도 꼬부랑길에서 빨리 몰기에는 과거나 지금이나 좀 뭣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미니의 자이언트 킬러적 개성이 패션세터와 모터스포츠계에서 다 같이 꽃을 피운 겁니다. 이로써 길이 3m의 박스가 피아트를 압도하고 다기능의 위력을 과시한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피아트를 힘차게 몰며 보잘것없는 18마력(귀하의 피아트는 한결 빠른 22마력이 아니기 때문에)을 한껏 끌어내는 재미가 대단했습니다. 싱크로메시와 변속이 정확할 때 레버 저항이 전혀 없지요. 따라서 간결하고 작은 변속이 즐거웠습니다. 엔진은 즐겁게 둥둥거렸고, 뒷창에 김이 서리면 몸을 돌려 닦을 수 있었지요. (상대적인) 고속으로 몰 때 피아트는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뒷바퀴가 스윙액슬 서스펜션으로 까다로운 캠버를 잘 소화하지요.

그러나 미니를 몰 때에는 본격적인 랙&피니언 스티어링을 쓰고 제대로 된 4기통 수랭식 엔진의 매끈한 감각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하에게 2점을 드리겠어요. 피아트는 정상적인 강철 스프링의 승차감이 더 좋고, 수동식 윈도가 부럽습니다. 그런데 미니의 공간이 훨씬 넓은 이유는 도어가 얇기 때문만이 아니지요. 덩치가 더 큽니다. 사실 피아트 500은 오리지널 미니가 커 보이게 하는 유일한 4륜 4인승입니다.

최고의 트럼프는? 되돌아보면 이시고니스는 지아코자보다 유리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좋은 동반자였습니다. 지아코자는 미니가 눈부시다고 생각했어요. 모방이 찬사와 같다면, 지아코자 디자인의 아우토비앙키 프리물라와 피아트 128을 드립니다. 둘 다 가로놓기 엔진에 앞바퀴굴림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미니가 이긴 것 같군요. 이들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모양과 기능이 뛰어난 도어힌지 대상을 받을까요?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존 드림

Dear. 친애하는 존에게

간결하고도 알찬 대답 고맙습니다. 귀하의 미니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쿠퍼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내가 몰아본 차 가운데 제일 멋졌습니다. 지적한 대로 스티어링이 탁월하고, 최신형 금호타이어를 신고 있어 그립과 제동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도자기의 미덕은 점토가 아니라 도공의 기량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감상의 대상으로 이들이 경쟁하는 처지인지는 확실하지 않군요. 캐비넷 도어를 갖춘 초기 누오바 500은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가장 예쁜 소형차입니다. 반면 미니는 이시고니스의 디자인 변수를 상쾌하고도 원만하고 유려하게 형상화했습니다.

어느 쪽이 ‘첫째냐’ 게임을 한다면 500이 미니보다 2년 앞서 양산에 들어갔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하지만 가로형 엔진과 앞바퀴굴림은 사실상 미니에 들어오기 25년 전 세상에 나왔어요. 그러니 전혀 신기하지 않습니다.

귀하는 500의 성능을 조롱합니다. 한데 미니가 앞서 나가는 유일한 이유는 엔진에 달아놓은 애프터마켓 쇼록 슈퍼차저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더군요.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게 없다면 피아트보다 겨우 34마력이 많을 뿐이고, 미니가 훨씬 무겁고 크니까 별거 아니지요.

미니가 500보다 다방면으로 손을 뻗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그나마 복스홀 아스트라가 에리얼 애텀보다 능력의 폭이 넓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한데 이 경우 어느 쪽을 몰고 싶은가는 뻔하지요. 그걸 목적의 적합성이라 부릅니다. 목표로 삼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잣대를 가리킵니다. 둘 다 도시 환경에 적합한데 피아트는 주차와 회전능력에서 미니를 앞서고, 찬미하는 눈길은 피아트 1000에 미니는 3입니다. 산악도로에서는 어느 때나 피아트를 고르겠어요. 둘 다 느리지만 적어도 500은 재미와 관심을 집중하는 비-싱크로 기어박스, 매력적인 엔진 노트와 정확한 스티어링을 갖췄습니다.

또 지적할 게 있습니다. 미니는 ‘제대로 된’ 4기통 엔진을 장착했다고 했더군요. 하지만 최근 새 차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신형 미니가 아니라 최신형 피아트 500의 2기통을 골랐다면서요? 그렇다면 2기통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한층 깔끔한 도어힌지 해법을 제시하고 그렇게도 무시하려는 피아트 엔진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려해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아우렐리오 람프레디가 설계했지요. 그의 CV를 바탕으로 막강 V12 엔진이 태어나 페라리의 첫 번째 F1 그랑프리와 1954년 르망 24시간 승리를 이룩했습니다. 귀하의 A시리즈를 누가 설계했는가를 내게 일깨워주려 할까 걱정입니다.

안녕 

앤드류 드림

Dear. 친애하는 앤드류에게

A시리즈 엔진은 빌 애플비의 지휘 하에 에릭 베어햄이 설계했습니다. 내가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전문가들 사이에는 해리 웨스레이크라는 이름이 더 쟁쟁하지요. 그는 심장형 연소실을 설계했습니다. 아울러 포드의 최고속 스몰블록 V8과 1960년대 F1 이글팀의 상당히 귀여운 V12 개발 책임자였어요.
 
내게 핵심적인 기적은 A시리즈는 비크로스플로, 5포트 실린더 헤드의 A시리즈가 현재와 같은 성능을 발휘한다는 데 있습니다. BMW 총수 레너드 로드 경이 새 차에 기존의 엔진을 쓰라고 명령했습니다. 가장 편리한 방법이었지요.

나도 피아트 500 오너입니다. 그러니 귀하의 탁월한 득점력에 축하를 보내야겠군요. 하지만 내 피아트는 사운드가 순수한 2기통을 얹었습니다. 아울러 가로놓기 엔진, 앞바퀴굴림과 거의 수직인 스티어링을 갖췄습니다.

이시고니스의 가로형 엔진의 앞바퀴굴림은 자동차계 최초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이 레이아웃을 인기의 절정으로 끌어올려 요즘 가장 흔한 자동차 구조 가운데 압도적인 선두가 됐습니다. 
귀하의 피아트는 자동차 디자인에 그처럼 영속적인 충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제 공랭식은 적어도 서방세계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이 좋아하는 분명한 예외 말고는 뒤 엔진 모델이 없지요.

하지만 그건 여기서 논의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나온 최고의 소형차가 어느 것이냐를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최고’가 무슨 뜻이냐가 걸리는군요. 귀하의 사랑스런 피아트는 설계목적을 눈부시게 해내는 최고의 극소형차지요. 내 미니는 현대의 기준에 따르면 작고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최고의 아주 작은 차입니다. 그럼 여기서 휴전에 들어갈까요?

언제나 변함없는, 
존 드림

Dear. 친애하는 존에게

휴전합시다.

안녕
앤드류 드림

글: 존 시미스터, 앤드류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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