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말리부 디젤, GET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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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말리부 디젤, GET WILD
  • 안민희
  • 승인 2014.05.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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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 세단에 야성미를 바란다. 획일적인 2.0L 휘발유 엔진이 지겹다. 그러나 무난함을 따르는 국산 중형 세단에선 바라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쉐보레가 일을 냈다. 유럽산 디젤 엔진을 얹어 야성미를 채운 국산

중형 세단은 심심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남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무난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리부 디젤은 달랐다. 거친 숨 몰아쉬는 디젤 엔진 하나가 불어넣는 재미가 차별화를 더했다. 처음부터 완성도 높았던 말리부에 뛰어난 디젤 엔진을 얹은 결과는 더하기그 이상이었다.

무난함을 표방하는 국산 중형 세단에 부족한 하나를 꼽는다면 박력 부족이다. 게다가 배기량을 따르는 자동차세 때문에 대다수는 2.0L 휘발유 자연흡기 엔진을 얹는다. 부드럽게 달리기에는 좋아도 힘 부족을 느낄 때가 많은 이유다. 좀 더 강한 엔진을 얹었으면 하지만, 대안을 찾기가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트렌드는 변하는 법. 최근 디젤 엔진을 얹은 수입차들이 공세를 펼치자, 디젤 엔진은 힘과 높은 연비 모두를 원하는 이들이 꼽는 엔진이 됐다. 하지만 국산 브랜드들의 변화 속도는 느렸다. 신중했다고 말하기에는 디젤 엔진을 얹은 수입 세단의 공세가 아주 거셌다. 디젤 특유의 진동을 잠재우고 두툼한 토크와 뛰어난 연비를 매력으로 내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지금까지는 디젤 엔진을 얹은 중형 세단을 사려면 수입차를 택해야만 했다. 수입차의 뛰어난 만듦새는 인정하지만, 가격 부담이 적은 국산차가 조금 더 합리적인 선택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말리부 디젤의 등장이 더욱 반갑다. 수입차의 대안이라는 점도 있지만, 쉐보레가 국내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 만들기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기대도 크다.

말리부는 기본기가 상당히 좋은 차다. 안락하고 편안한 주행은 물론이고, 운전자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특히, 쉐보레 브랜드만의 차 만들기 정서가 녹아 있다. 이는 디자인, 실내, 운전 감각 모두 마찬가지다. 큼지막한 버튼을 늘어놓은 실내는 직관적이다. 쓰기 쉬운 구성이다.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불안감 없는 주행 감각도 매력적이다. 말리부의 개성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특유의 개성은 디젤 엔진을 얹으며 더욱 강화됐다. 1,645kg의 공차중량을 여유롭게 떠밀어주는 넉넉한 힘 덕분에 운전이 한층 편해졌다. 게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가속의 질감이 호쾌하다. 호쾌한 가속에 안정감을 더하니 화끈하게 달리기에 딱 좋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내의 골목길을 천천히 빠져나간다. 이목을 끌지 않는 단정한 디자인이지만, 정장 입고 넥타이 맨 사내들의 시선이 꽂힌다. 디젤 특유의 엔진음 때문에, 말리부 디젤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심히 차를 지켜보는 시선들, 호의적인 눈길들이다. 현재 국산 중형 디젤차를 산다면, 경쟁자 없는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에 그만큼 구매를 고려하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

국산 경쟁자가 없다보니 말리부 디젤은 수입 디젤 세단들과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진검승부를 펼쳐야 할 때. 그래서 쉐보레는 유럽산 엔진을 가져왔다. 유럽 차들과 같은 이점을 갖고 제대로 붙어보려는 의도다. 쉐보레 크루즈 디젤과도 다른 엔진을 얹어, 각 차의 차별화를 더하는 이점도 한 몫 했다.

말리부 디젤은 GM 계열사 중 독일 오펠의 직렬 4기통 2.0L 디젤 CDTI 엔진을 단다.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35.8kg·m을 낸다. 오펠의 엔진이라지만 알파로메오 디젤 엔진과 혈통이 같다. 피아트 그룹이 쓰는 커먼레일 디젤 JTD 엔진이 원조라 그렇다. GM과 피아트가 결합했을 때 같이 개발한 엔진이다. 양사 분리 후 각자 개발을 더했지만 그 기반이 같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멈춰 있을 때에는 디젤 특유의 소리와 진동이 들린다. 소리가 나는 부분을 열심히 틀어막긴 했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밟아 나아갈 때면 흥을 돋우는 요소가 된다.

가속은 빠르면서도 능청스럽다. 속도감이 적은 탓에 계기판을 볼 때면 어느새 생각보다 속도가 붙어 있는 상태였다. 토크를 초반에 몰아 쓰는 엔진은 빠르게 변속을 이어 속도를 올린다. 회전수를 낮춰 달릴 때면 2,000rpm을 넘기자마자 변속하지만, 가속 페달을 조금 깊게 밟으면 회전수를 높이려는 듯 변속을 미룬다.

수동 모드로 변속할 경우 5,000rpm까지 엔진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중속의 힘을 강조한 엔진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 4,000rpm을 넘기면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또한 엔진회전수를 올리니 그만큼 들이치는 엔진 소리도 커진다. 엔진회전수를 중간대로 유지하며 달리며 넉넉한 힘을 끌어내는 주행이 어울린다.

회전수를 낮춰 벚꽃 핀 시내를 달렸다. 교통 흐름이 빠르지 않은 도로에서는 엔진을 다독이며 달려야 했다. 저속부터 가속이 후련하지만 교통 사정이 받아주질 못했다. 회전수를 낮춰 달렸음에도 디젤 특유의 소리는 조금 들리는 편이다. 반면 속도를 높이면 디젤 엔진의 소리는 사라진다.

말리부 디젤은 고속주행이 어울리는 차다. 6단 기어의 기어비가 꽤 길어 속도 대비 엔진회전수의 상승이 적다. 그래서 빠르게 달려도 엔진이 성내질 않는다. 달리면 달릴수록 조용해지는 기분이다. 넉넉한 토크를 앞세운 가속이 시원해 절로 속도를 내게 됐다. 속도를 높일수록 만족스러웠다. 고속에서의 불안감이 적었기 때문이다.

말리부의 승차감은 살짝 단단한 편이지만,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 폭이 여유가 있다. 그래서 노면의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낸다. 직진 성능과 승차감이 뛰어난 이유다. 그만큼 속도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고속 순항에도 여유가 있다. 대신 코너에 뛰어들었을 때 차체가 기우는 폭이 크게 느껴졌다. 익숙해지면 능숙하게 코너를 탈 수 있다. 세팅에 대해서는 직진 안정성이 뛰어나니 충분히 납득이 간다.

아쉬운 점도 있다. 기어레버 위에 자리한 토글스위치의 위치다. 기어레버를 끝까지 내려 수동 모드로 바꿔서 쓰기에는 위치가 부적절하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꽤 멀리 떼야 하기 때문이다. 패들 시프트를 달아줬더라면 엔진회전수를 조절하며 달리는 재미가 더 컸을 것이다.

디젤 세단에 기대하는 가장 큰 덕목은 연비다. 절대 연비를 감안하지 않고 시내와 고속도로를 마음껏 쏘다니고 얻은 결과는 14km/L였다. 시험 삼아 트립 컴퓨터를 리셋하고 고속도로를 천천히 달릴 때면 이를 훌쩍 넘어서지만, 호쾌한 주행을 즐겨도 뛰어난 실 연비를 보여주는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디젤 중형 세단이 진작 있어야 했단 생각이 든다. 우리의 머릿속 디젤 엔진에 대한 선입견은 일부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그 선입견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진정 달리기를 즐길 만한 차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같은 거리를 달린다 치면 뛰어난 연비와 강력한 토크로 보답한다. 23일 동안 연비에 구애받지 않고 운전을 즐겼다. 휘발유 엔진으로 힘겹게 얻어낼 연비를 디젤 엔진으로는 마음껏 달려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입견을 한 번에 바꿀 순 없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각의 차를 원한다면 말리부 휘발유 모델을 살 것이다. 하지만 달리는 맛이 있고 연비가 뛰어난 차를 찾는데다 고속주행을 즐긴다면 말리부 디젤은 최고의 차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2.0L의 배기량에선 샌님 같은 휘발유 세단보다 박력 넘치는 디젤 엔진의 감각이 더 좋았다.

글: 안민희, 사진: 임재천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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