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i3, 현실에서 만나는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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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i3, 현실에서 만나는 오래된 미래
  • 이경섭
  • 승인 2014.05.15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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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차라고 해서 지루함을 견뎌야 할 이유는 없다. BMW i3라면

BMW. 한눈에 딱 알아볼 수 있다. ‘전기차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봐도 그렇다. 특별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원래 BMW 라인업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고 친근하다. 디테일한 요소로 따지자면 모터쇼에서 보던 비전 이피션트 다이내믹스의 오랜 잔상일 수 있겠지만 전체적 이미지가 그렇다. 이런 차는 오직 BMW만이 만들 수 있는 차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것이 바로 선도 브랜드가 가진 힘일 것이다.

전기차는 우리에게 이미 오래된 미래다. 자동차가 도달해야 할 최후의 성지, 수없이 상상하고 그려본 미래 차의 정체는 전기차였다. 그러니 BMW i3을 앞에 두고 마침내라는 감탄사를 써도 좋을까? 그러기엔 좀 어색하다. 미래는 어느 틈에 슬그머니 우리 곁에 와 있다. 이런 표현이 합당하다. 오늘은 언제나 어제의 미래다. 일반도로에서 하이브리드가 아닌 오직 순수한 전기로만 동력을 얻는 자동차를 타보게 된, 오래된 상상의 체험이다.

‘BMW 최초의 프리미엄 순수 전기차라는 호칭답게 i3은 빛나는 보석상자 같다. 귀엽지만 비싸고 한눈에 귀한 물건이라는 느낌이 든다. 전체 비례나 균형감도 뛰어나다. 신선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미래 차의 모습이다. 블루 컬러의 키드니 그릴은 그저 BMW i의 상징으로 기능할 뿐이지만 스포티하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살린다.

독특한 건 도어를 여는 방식인데 양문형 냉장고처럼 좌우 여닫이로 열리는 코치도어 타입이라 B필러가 없다. 뒷좌석에 타기 편하고 공간도 넓으며 보기에 유니크하고 재미있는 구성이지만 실제 사용자들에겐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 뒷문은 앞문을 열어야 열 수 있는 방식이라 뒷자리 승객은 앞사람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내릴 수가 없다. 일상용 패밀리카로는 적잖이 불편할 부분인데 분명한 건 BMW가 패밀리를 염두에 두고 이 차를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물론 네 명이 타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긴 하다. 보닛 아래엔 엔진 대신 충전 플러그가 들어 있고 배터리는 트렁크 아래에 들어 있다. 트렁크 크기도 적당한 수준.

독특한 도어를 열고 뒷자리부터 탑승해본다. 어린이나 여성들도 타고 내리기 편할 듯싶다. 뒷자리 공간도 생각보다 여유롭다. 앞 시트가 얇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성인 둘이 타도 넉넉한 정도다. 운전석에 앉으면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실 책상에 앉은 느낌이랄까. 심플 그 자체다. 전반적으로 화사하면서도 고급스럽고 독특한 재질이 만족스럽다. 전면부에는 일반적인 계기반 대신 디스플레이 패널이 두 개 장착돼 있다. 조수석 앞쪽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담당하는데 화면도 크고 재질도 태블릿 PC처럼 고급스럽다. 운전석 디스플레이는 속도계와 충전시간, 항속거리 등 기본적인 주행정보를 보여준다. 곡선 처리된 원목 장식의 디스플레이 주변 대시보드는 소소한 물건을 놓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많은데 유용성과 디자인 가치를 살리려면 아무것도 두지 않는 편이 좋겠다. 인테리어 재질은 천연 가죽과 원목, 양모, 기타 재생 가능한 소재를 사용했는데 시각적으로나 촉감으로나 BMW의 프리미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운전석이나 뒷자리나 시야가 넓고 개방감이 크다는 것도 장점.

BMWi3에 많은 혁신 요소를 담았다. 오늘 시승의 주요 포인트는 실용성, 일반적이지 않은 차로서 운전자가 감내할 불편이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과 자동차가 가진 고유의 운전 재미를 얼마나 가졌는가 하는 점. 이 차가 다른 국산 전기차들과 차별되는 점은 양산 모델을 개조해 만든 차가 아닌 완전히 독자적으로 개발된 전기차라는 점이다. 따라서 유니크하고 미래지향적 스타일은 물론 콘셉트 자체가 분명히 다르다. i3은 차체를 CFRP(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만들었다. 차체뿐 아니라 시트와 트렁크 부분을 모두 같은 재질로 만들어 차체를 최대한 가볍게 했다. CFRP의 사용으로 인한 차체 경량화는 전기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B필러를 제거해 실내 접근성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가장 독특하게 느껴지는 점은 기어 노브. 사전 정보를 모르고 이 차를 탄다면 시동을 못 걸고 헤맬 수도 있다. 시동 버튼이 스티어링 휠 옆에 자리 잡은 기어 노브 안쪽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스티어링과 가장 가까운 쪽에 기어노브가 있다는 점은 인체공학적 디자인일지 몰라도 처음엔 몹시 어색하다. 게다가 기어를 바꾸는 방식도 노브를 비트는 방식이다. 위로 비틀면 전진, 아래로 비틀면 후진, 주차 버튼은 위에 따로 있다. 조작이 어색하지만 이내 적응된다. 종종 자기만의 특이한 방식을 강요하는 건 BMW의 전통적 심술인데 매번 금세 손에 익는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대시보드 중간에 있는 공조장치 버튼들은 기존 방식과 똑같아 어색하다. 하이테크 분위기에 구식 아날로그가 조합된 것 같다. 인테리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

스티어링 휠도 기존 디자인과 다르게 BMW i 스타일을 적용했지만 조작 버튼은 기존 방식과 동일하다. 별다를 것 없는 휠인데 손에 쥐는 순간 감성은 기대감으로 차오른다. 당연히 시동음은 없다. 패널에 ‘READY’라는 파란 글씨가 나타날 뿐. 그러면 달릴 준비가 된 것이다. 기어를 D로 옮기고 출발.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으로 시트가 등을 확 밀친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전기모터 특유의 가속감이 힘차다. 제원상 최대토크 25.4kgm에 최고출력은 170마력. 매끈하면서 날렵한 거동이 스포츠카를 몰듯 호쾌함을 선사한다. 액션 영화의 스펙터클한 장면에서 묵음 버튼을 누른 듯한 기이한 기분이지만 속도를 높여갈수록 더해지는 민첩한 핸들링은 기대 이상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운전 재미는 단순히 동력성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해 추가되는 무게는 경량 소재의 시트를 장착해 상쇄했고 차체 중앙의 낮은 위치에 설치된 배터리 팩은 50:50의 무게 배분을 가져왔다. 기본 장착되는 19인치 경합급 휠은 가벼우면서도 뛰어난 비틀림 강성을 발휘한다. 특별히 이 휠은 개별 제작된 낮은 구름저항 타이어(155/70 R19)와 함께 민첩하고 다이내믹한 주행성을 발휘하는 데 일조한다. 20인치 경합금 휠은 옵션.

BMWi3의 성능을 실현하는 e 드라이브에 혁신을 이뤘다. 차량 후륜 차축에 가까이 장착된 전기모터는 높은 수준의 접지력과 즉각적인 응답성을 발휘한다. 전기모터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출력은 단단한 서스펜션 세팅과 정확한 스티어링, 9.86m의 최소회전반경과 어우러지며 역동적인 핸들링을 제공한다. BMW i3 모델 전용으로 개발된 하이브리드 동기식 전기모터는 고속주행에서도 힘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준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km 도달 시간은 3.7, 시속 100km까지는 7.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스포츠 주행에 유감이 없다.

운전 중 특이하게 느껴지는 점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 브레이크가 강하게 걸리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는 에너지 회복 모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전기모터는 주행에서 발전 단계로 전환돼 배터리에 전원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운전자가 제어 가능한 제동 효과를 발휘하는데 저속 주행에서는 풋 브레이크가 필요 없을 만큼 효과적이다.

가득 충전된 리튬 이온 배터리로 일상적으로 주행할 경우 130~160km 정도의 거리를 운행할 수 있다. 에코 프로 모드로 운행한다면 20km가 추가된다. 이보다 긴 주행거리를 원한다면 레인지 익스텐더(range extender) 엔진을 선택하면 된다. 전기모터 옆에 장착돼 34마력의 힘을 내는 650cc 2기통 엔진은 배터리 충전 상태가 설정값 미만으로 떨어질 때 주행 중 일정 수준의 배터리 충전 상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레인지 익스텐더 엔진을 이용하면 주행 가능 거리가 최대 300km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운전하는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주행 가능한 잔여 거리를 표시해주는 디스플레이 화면이다. 기이한 운전 재미에 맛 들려 조금만 신나게 달리자면 금방 숫자가 뚝뚝 떨어져 소심한 애간장을 졸이게 만든다. 이 부분은 충전 인프라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충전 인프라와 상관없이 발생할 수 있는 염려에 대해 BMW는 아주 스마트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방법은 완전 네트워크화 된 전기차를 만드는 것. i3은 자동차와 운전자, 외부 사이에 광범위한 정보교환이 가능한 BMW 커넥티드 드라이브 서비스를 제공한다. 운전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자신의 차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최적화된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설정할 수 있다. 입력된 목적지가 주행 가능 거리를 넘어서면 에코프로 플러스 모드로 변경하라고 조언하며 여정을 마칠 때 예상되는 배터리 잔량도 정확하게 제공해준다. 물론 공공 충전소가 확충돼 있다면 경로 중에 이용할 수 있는 충전소 위치도 알려준다.

BMW i3은 단순히 배기가스 제로인 친환경차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이빙의 재미와 일상적 실용성을 동시에 도모한다. 120km로 제한된 행동반경 때문에 멀리 갈 수도 없어 서울 근교에서 한나절 타본 BMW i3은 기대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다. 예상되는 전기차의 한계를 얼마나 극복했는가가 궁금했는데 BMW는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듯싶었다. 세련된 스타일은 어딜 가나 우호적 시선을 불러 모았다. 가속은 시원했고 몸놀림은 가볍고 재빨랐다. 친환경차라는 이유로 지루함을 감내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차였다. 대신 충전 인프라를 하루빨리 늘리라고 공공에 강요할 뿐. i3은 현재 유럽에선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정확한 국내 공식 판매가격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지자체와 정부 보조금 2300만원 가량을 적용한다면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할 금액은 4천만원 초반 정도로 예상된다. 생각보다 비싸다. ‘프리미엄미래에 치러야 하는 뼈아픈 차액인지도 모른다.

글: 이경섭 (자동차 칼럼리스트), 사진: 이근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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