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 마틴 100년사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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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 100년사의 이정표
  • 앤드류 프랭클
  • 승인 2013.10.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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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이 창사 100년을 축하한다.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은 각기 다른 시대의 이정표적 모델 4개를 모았다. 얼마나 많은 DNA를 공유하고 있을까?

애스턴 마틴의 역사는 더할 수 없이 복잡하다. 때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몰렸다. 그에 비해 영국 왕실은 거의 직선적으로 오랜 세월을 잘 적응해왔다고 할 만하다. 지난 100년 동안 애스턴 마틴은 지구상에서 가장 탐나는 브랜드로 군림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침에 회사에 나가던 사장이 저녁이면 영영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던 암담한 시절도 있었다.

고인이 된 빅터 곤틀리트는 애스턴이 한때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사연은 이렇다. 1990년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해 쿠웨이트 왕실의 애스턴 마틴을 몽땅 파괴해버렸다. 그 뒤 애스턴은 쿠웨이트 왕실이 새로 사들이기 위해 내놓은 돈으로 몇 달 동안 사원의 임금을 줄 여유가 생겨 위기를 넘겼다.

애스턴은 롤스로이스만큼 귀족적인 이름이 아니고, 벤틀리나 재규어만큼 모터스포츠에서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 한데 전 세계를 향해 가장 탐나는 영국차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감히 단언하지만 다른 어느 브랜드보다 ‘애스턴 마틴’이라는 응답이 더 많을 터이다. 영국 레스터셔에는 광활한 공군기지가 있다. 그 한복판의 콘크리트 활주로에 서서히 솟아오르는 4대의 애스턴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날씨가 몹시 궂었고, 주위 환경이 말할 수 없이 삭막했지만 이들 4대는 지극히 아름다웠다. 애스턴 100년사를 통틀어 골라 뽑혀 여기 나왔다. 그럴 수 없이 수수께끼 같은 이 브랜드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대표작들. 아울러 100년 동안 보전되어온 오리지널의 성격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알려준다.

이때쯤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은 차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너무나 많은 차가 있다. 우선 2L 스포츠가 빠졌다. 되돌아보면서 DB1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이게 되었고, 데이비드 브라운 경의 애스턴 제1호였다. 그리고 경주차도 끼어 있지 않았다.

1970년대, 80년대와 90년대의 V8을 대표하는 모델도 없었다. 내게 한 대를 더 추천하라고 했다면(DB7은 이 기사의 다른 데서 다루고 있어 제외하고), 1970년대 말의 ‘오스카 인디아’ V8 밴티지를 넣었을 것이다. 한데 애스턴 100년사의 각 단계를 설명하는 모델을 4대로 제한하기로 했고, 애스턴 마틴 역사를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오로지 각 단계의 최고를 선발하기로 했다. 제2차 대전 이전의 대표작을 고르기로 하자 얼스터가 유일한 대상으로 떠올랐다. 기술이사 아우구스투스 ‘버트’ 베르텔리의 본격적인 영국 스포츠카 디자인이었다.

다음으로 데이비드 브라운의 오리지널 애스턴 마틴 가운데 최고작품. 펠트햄의 애스턴 본고장에서 만든 마지막 차이기도 했다. 기술적으로 DB2/4 MkIII이었지만 MkIII(DB3으로는 단 한 번도 불려지지 않았다)으로 널리 알려졌다. 여기 나온 애스턴 가운데 제일 알려지지 않은 차였다. 한데 나중에 알게 될 터이지만 그 차를 빼면 우리 이야기는 완결되지 않는다.

그 뒤에 DB5가 등장했다. 007 영화 <스카이폴>에서 대니얼 크레이그가 몰고 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바로 그 차. 여기 나온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잡지를 잘못 골랐다. 뉴포트 패그널 시대의 격변기에 나온 애스턴의 정수라 하겠다.

마침내 우리는 현대로 들어와 신형 뱅퀴시를 만났다. 100주년 기념 페인팅을 하고, 순은 배지를 달았다. 격납고 앞에 서 있는 뱅퀴시는 억지로 꾸몄다거나 어색하고 생뚱하게 보이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선대들이 어깨 너머로 기웃거리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그처럼 찬란한 동반자 가운데 있다니 으쓱하기도 했다. 그렇게 첫 시험은 끝났다.

1935 Ulster
애스턴을 세계 자동차계의 지도 위에 올려놓은 것은 제2차 대전 이전의 모델이었다. 한데 어느 수준에서나 이들은 뒤따르는 다른 차와는 닮지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상당히 젊은 차가 애스턴 탄생 80주년에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기 애스턴은 작고 콤팩트한 스포츠카로 싱글캠의 4기통 1.5L 엔진을 얹었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 파워보다 감량에 의지했다. 심지어 가장 빠른 모델도 출력은 81~86마력에 불과했다. ‘얼스터’ 도로경주 버전 가운데 이 차는 개인에게 팔기 위해 만든 겨우 20대 가운데 하나였다.

얼스터는 어느 시대의 초등학생들에게 몽정과도 같았다. 당대의 어린이 잡지 <보이스 오은>에서 잘라낸 차. 용감한 사나이 아치는 물방울무늬 스카프를 쓴 절세 미소녀를 끼고 황당한 속도로 달려갔다. 그와는 달리 오늘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무대는 이 황량한 비행장뿐이었다.

그래도 저 커다란 스티어링 뒤에 올라 시간을 역주행하는 미묘한 감동에 잠겼다. 다이얼은 무질서하게 사방에 널렸고, 끝없이 줄지은 스위치도 있었다. 한데 시동을 걸려면 2개만 건드리면 마그네토와 연료펌프가 작동했다. 스티어링의 큰 레버로 점화를 억제한 뒤 엄지로 시동버튼을 누르자 즉각 점화됐다. 목적이 뚜렷한 사운드는 목이 쉰 듯 요란했다.

어디나 도전이 널려 있었다. 기어에는 싱크로메시가 없어 위치가 엉뚱했다. 따라서 3단과 4단이 1단과 2단 왼쪽에 있었다. 페달도 마찬가지. 브레이크가 오른쪽에, 액셀이 중간에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얼스터는 예상보다 몰기 쉬웠고, 엔진은 말을 잘 들었다. 레이스로 단련된 이 차는 6,000rpm 이상에서 안전했지만, 아주 방어적인 4,500rpm에서도 모든 기어에서 거침없이 토크를 뿜어냈다.

기어박스의 경우 손과 발을 한껏 빨리 놀려야 했다. 기어조작을 할 때마다 클러치를 두 번 밟고, 감속 단계마다 드로틀을 밟아야 했다. 그러면 뱅퀴시를 제외하고 여기 나온 어느 차보다 변속이 빨랐다. 바로 전체적인 감각이 그랬다. 정확한 기술의 절묘한 보석이었고, 모든 동작이 지극히 기계적이고, 대홍수 이전에 등장한 것치고는 핸들링과 스티어링이 아주 정확했다. 오직 브레이크만 나이가 들었다. 어쨌든 이 차의 레이스 혈통을 확인하는 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이 차는 마술 그 자체였다.

1958 DB2/4 MkIII
제2차 대전 후 애스턴 마틴은 괜찮은 섀시를 갖췄다. 만일 디자인이 처음 나왔던 1939년 양산에 들어갔다면 시대를 몇 광년이나 앞섰을 것이다. 한데 그에 상응하는 엔진이 없었다. 애스턴의 새 주인 데이비드 브라운이 대 망치로 이 문제를 내리쳤다. 다름 아닌 WO 벤틀리가 설계한 2.6L 트윈캠 직렬 6기통 엔진을 설계한 라곤다를 통째 사들였다. 따라서 그의 섀시를 벤틀리 엔진과 짝지어 1949년 DB2가 태어났다.

그 뒤 10년에 걸쳐 이 차는 계속 진화를 거듭했다. 3.0L 엔진을 받아들였고, 세계 최초의 해치백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 엔진은 106마력에서 일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1957년에 나온 MkⅢ의 경우 출력은 162~217마력으로 뛰어 오리지널보다 2배를 넘어섰다.

사실 이 차는 DB5보다 겨우 3년 뒤에 나왔다. 그러나 기술은 시대를 달리할 만큼 큰 격차가 벌어졌다. 실제로 겉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성격은 DB5보다 얼스터에 가까웠다. 이 차는 영국의 대로를 두둥실 떠다닐 그랜드 투어러는 아니었다. 골수까지 스릴을 안기려는 살벌한 스포츠카. DB2/4가 잘 해낼 수 있었다. 이 차의 엔진은 활력이 넘치고 최단거리 직선코스에서도 시속 160km를 넘어섰다.

그와 동시에 쌍둥이 파이프에서 즐겁고 요란하며 난폭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기어변환은 느렸고 어쩐지 농기계 같은 낌새를 보였다. 그런데 적어도 조절장치만은 제대로 돌아갔다. 심지어 브레이크도 좋았다. 이 차는 처음으로 디스크를 받아들인 최초의 애스턴. 제동력이 믿음직했다.

하지만 MkIII의 마력은 핸들링에 있다. 이 차는 드리프트에 다시 좀 더 드리프트 하도록 설계됐다. 그리고 재미의 유일한 한계란 엉망인 록에 있었다. 다른 누군가의 54년 묵은 값진 차를 드로틀을 가볍게 밟으며 빗길 커브에 몰아넣었고, 테일 슬라이드로 가속했다. 실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스티어링을 반대로 완전히 꺾어 운전재미를 맛볼 수도 있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차였다.

1963 DB5
나는 DB5를 MkIII처럼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 007 영화 <스카이폴>에 나왔던 차. 우리가 시승하는 하루 동안의 보험료가 300만 파운드(약 51억1천800만원) 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몰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로드카는 관객동원용 스포츠에는 약하다. 하지만 DB5는 예외였다. 그 아름다움은 실로 초월적이었고, 그 차를 몰아보고 실망할까 두려웠다.

이미 반세기 동안 대대적인 찬사를 받아온 차가 과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DB5는 기꺼이 그 기대에 보답했다. MkIII과는 너무나 달라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가장 기본적 수준에서 볼 때 슈퍼레제라 스페이스프레임 구조를 갖췄다. 반면 MkIII은 아주 영리하지만 여전히 기초적인 사다리 섀시에 보디를 볼트로 고정했다. DB5 엔진은 여전히 트윈캠 직렬 6기통이지만 타데크 마레크가 설계해 WO 벤틀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아울러 기어박스는 4단이 아니라 5단이었다.

하지만 DB5를 몰아볼 때 이런 스펙이 암시하는 것 이상의 차이를 깨닫게 됐다. 실내는 넓고 호사스럽게 꾸몄다. 엔진은 매끈하게 조용했고 승차감은 실로 비범했다. 아울러 현대의 기준에 비춰 봐도 빠른 느낌이 들었다. 당대에 이 차는 4.0L 289마력 엔진을 얹었다. 그 뒤 이 차가 어떤 손질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데 제일 가까운 선배보다는 현대적 애스턴처럼 솟구치는 토크를 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DB5는 시속 225km 이상으로 달린다고 알려졌고, 지체 없이 최고시속에 도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차는 스포츠카가 아니고, 사실 4대 모델 중 드라이버의 개입이 가장 적은 차였다. 그와는 달리 장거리 투어러였고, 유럽의 최고 명소를 2주일 동안 둘러볼 완벽한 머신이었다. 나아가 가장 현대적인 체증을 배기관의 콧김으로 뚫고 머리카락 하나 흩날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애스턴의 정수를 이렇게 잡는다면 DB5는 상상을 넘을 만큼 뛰어나다.

2013 Vanquish
그렇다면 이 현대적 플래그십 애스턴의 좌표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물론 약간 번거롭지만, 스피드, 그립, 브레이킹에서 다른 모델과는 딴 세상의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DB5와 얼스터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이들의 성격을 어떻게 가늠하느냐는 문제다.

게다가 뱅퀴시는 그 위상에 딱 들어맞아 즐거웠다. MkIII과 DB5의 중간 어디쯤이었다. 핸들링은 모든 지시에 응답했고, 거의 보디롤링 없이 코너정점을 공격적으로 물고 돌아갔다. 그립이 전혀 없는 좁은 타이어를 신은 구형처럼 핸들링이 점진적이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른발의 요구는 결코 맹목적이 아니었다. 그 엔진은 지난 세기에 설계됐고, 한 쌍의 포드 V6에서 나왔다. 그러나 지금도 이 차의 위대한 심장으로 힘차게 고동치고 있다.

결론
어느 모델을 고를까? 이 행사는 승자와 패자를 가려낼 비교시승이 아니다. 한데 얼스터는 트랙용, MkIII는 일상용이고, DB5는 휴가용으로 가름된다. 애스턴 마틴이 브랜드의 바탕이 되는 성격과 가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뒷받침했다. 뱅퀴시는 어느 경우에도 깊은 인상을 줬다. 이제 애스턴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우리가 밝혀낸 자질을 바탕으로 좌우를 기웃거리지 않고 똑바로 앞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글: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1935 Aston Martin Ulster
0→시속 97km 가속: 9.0초(추정)
최고시속: 165km
무게: 940kg(추정)
엔진: 직렬 4기통, 1493cc,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RWD
최고출력: 86마력/5250rpm
최대토크: na
변속기: 4단 수동
연료탱크: 68L

1958 Aston Martin DB2/4 MkIII
0→시속 97km 가속: 8.0초(추정)
최고시속: 200km
무게: 1240kg
엔진: 직렬 6기통, 2922cc,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RWD
최고출력: 182마력/5500rpm(DBD 제원기준)
최대토크: na
변속기: 4단 수동
연료탱크: 71L

1963 Aston Martin DB5
0→시속 97km 가속: 6.5초(추정)
최고시속: 230km
무게: 1465kg
엔진: 직렬 6기통, 3996cc,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RWD
최고출력: 286마력/5500rpm
최대토크: 39.8kg·m/3850rpm
변속기: 5단 수동
연료탱크: 71L

2013 Aston Martin Vanquish
0→시속 97km 가속: 4.1초(시속 100km)
최고시속: 295km
무게: 1739kg
엔진: V12, 5935cc,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RWD
최고출력: 573마력/6750rpm
최대토크: 63.2kg·m/5500rpm
변속기: 6단 자동
연료탱크: 7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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