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Jeep Rubicon 10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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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Jeep Rubicon 10th
  • 최주식
  • 승인 2013.10.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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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도 안 되는 곳을 간다는 한숨 섞인 탄식이 새나왔다. 하지만 지프 루비콘 10주년 에디션은 말도 안 되게 급경사와 급강하의 산악지대를 능숙하게 타고 넘었다. 한숨과 감탄사의 차이는 종잇장처럼 얇았다

‘Keep Calm you're in lake tahoe’
리노 공항 어딘가에서 본 이 문구는 낯선 여행지의 성격을 어렴풋이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런데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어떤 위험 또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2차 대전 당시 영국 왕실의 대국민 슬로건으로 ‘Keep Calm And Carry On'이란 말이 나온 배경처럼 말이다. 그런 한편 ‘Keep Calm’이란 말에는 어떤 일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는 힘이 있다.

공항청사 내에서 만나는 카지노 머신들은 이곳이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이고,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품고 있는 네바다 주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마중 나온 지프 직원을 만나 숙소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는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은 거친 자연이 휴양지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노곤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장거리 비행 뒤의 피곤함이 눈꺼풀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눈부신 아침햇살이 넓은 창 가득 벼락처럼 쏟아졌다. 이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할 때다. 지프 루비콘 트레일.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오프로드 코스 등반을 앞두고 있다. 지프는 루비콘 탄생 10주년 기념모델을 내놓고 이 차와 함께 루비콘 트레일을 준비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로드 테스트는 없지 않을까. 7월 14~15일의 일정에는 중국, 싱가포르, 한국 저널리스트들이 참가했다.

아침 8시, 숙소를 출발한다. 루비콘 트레일에 도착하기까지 온로드 드라이빙은 올 뉴 그랜드 체로키와 함께한다. 시승차는 최고급 모델인 서밋. 그랜드 체로키는 세대를 거듭하며 보다 다양한 목적의 지프에서 프리미엄 SUV로 거듭났다. 그랜드 체로키 서밋은 고급스런 스타일부터 품질감 높은 실내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럭셔리 SUV의 반열에 올라선 느낌이다. 여기에 콰트라 리프트 에어 서스펜션, 셀렉 터레인 트랙션 관리 시스템 등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이 그만의 매력을 더한다.

신형 8단 변속기가 적용된 뉴 그랜드 체로키는 매끈한 변속으로 부드럽게 달린다. 달리기는 조용하고 가속도 상쾌하게 빠르다. 캐주얼하게 느껴졌던 그랜드 체로키는 고급 슈트와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호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말이 호수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게 바다와 다름없다. 호숫가에 정박한 요트들도 흔히 바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스케일을 다시금 보게 하는 장면이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와인딩 로드를 뱀같이 감아 달린다.

아침 10시 30분, 이윽고 루비콘 트레일 출발점에 도착했다. 이제 평탄한 길은 끝났다. 그랜드 체로키에서 지프 랭글러로 짐을 옮기며 마음의 벨트를 조여 맨다. 바위산이라 숲의 청량함은 없다. 푸르고 높은 하늘, 태양은 뜨겁다. 어느새 휴대전화의 신호는 꺼져 있다. 1박2일 동안 문명과 단절된 채 이 산을 오롯이 견뎌내야 한다. 믿을 것은 지프 루비콘뿐이다.

지프 랭글러 중 극한의 성능을 지닌 루비콘은 지난 2003년 첫선을 보였다. 그 1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은 “지프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헌정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게 마이크 맨리 지프 CEO의 말이다. 그는 또한 “지프 루비콘 10주년 에디션은 전문적인 튜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밝혔다.

지프 루비콘 10주년 에디션은 2도어 지프 랭글러, 4도어 랭글러 언리미티드 두 종류로 나온다. 선라이더 소프트톱이 기본이고, 검정색 3피스 프리덤 하드톱, 차체 색상의 하드톱 모델 등이 있다. V6 3.6L 285마력 휘발유 엔진에 수동 6단 기어가 기본이고, 자동 5단 기어를 선택할 수 있다. 10주년 에디션은 일반 랭글러 루비콘보다 지상고가 127mm 높아졌다. 타이어는 BF 굿리치 265/70 R17을 달고 알루미늄 휠 테두리에 랭글러 아이콘 로고를 새겼다. 펜더에 새겨진 10주년 기념로고가 특별함을 더한다.

보닛 위의 듀얼 인테이크는 엔진 냉각에 도움을 주고 외관을 더 강력하게 보이도록 한다. 프론트 범퍼는 윈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빨간색 견인 후크가 눈에 띈다. 견고해 보이는 락 레일은 모파(Mopar)가 만든 것으로 트레일에서 차체가 손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테일램프 보호대도 모파의 순정품이다.

나와 등정을 함께할 파트너는 검정색 4도어 3피스 하드톱으로 루프를 떼어내 트렁크에 실어놓은 상태였다. 변속기는 수동 6단. 중국 팀에서 수동 기어에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한 대뿐인 수동 6단 모델은 자연히 한국 팀의 차지가 되었다. 실내에서는 붉은색 가죽시트와 등받이에 자수로 새겨진 10주년 기념 로고가 특별함을 더한다. 파워 윈도 버튼은 센터 페시아에 모여 있는데, 도어를 떼어내고 주행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실제 미국의 도로에서 도어를 떼어내고 달리는 지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시보드에는 액슬의 종류와 액슬비, 타이어 크기, 트랜스퍼 케이스 크롤비 등 차의 기술 데이터를 나타낸 명판이 붙어 있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는 스웨이 바 분리 스위치, 액슬 락 스위치가 달려 다양한 오프로드 환경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수동 트랜스퍼 기어를 4L에 넣고 출발이다.

루비콘 트레일은 타호 호수 서쪽에 자리한 길이 35km 구간의 험난한 코스를 말한다. 구간 중에는 일부 도로를 포함하고 있는데 맥킨니 루비콘 스프링스 로드라 불린다. 원래 1890년대~1920년대 이 지역 리조트 호텔로 가는 역마차를 위한 길이었다. 자동차로 처음 이 길을 달린 것은 1908년이었고, 19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프로드 마니아들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최초의 개척자는 마크 A. 스미스(Mark A. Smith)라는 사람. 그는 1953년, 155명의 친구들과 함께 각자 자신의 지프를 타고 캘리포니아 주 타호 호수로 가는 길에 거친 화강암 루트를 통해 시에라 네바다 산을 넘었다. 이것이 공식적인 최초의 루비콘 트레일 지프 횡단이자 최초의 ‘지프 잼보리’가 되었다. 이후 수만 명의 지프 마니아들이 자신의 지프와 함께 루비콘 트레일을 횡단해왔다. 마크 A. 스미스는 지금도 지프 브랜드와 함께 루비콘 트레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루비콘일까. BC 49년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 북쪽의 ‘루비콘’ 강을 건너며 운명적인 선택을 한다. 그 결과 로마의 역사는 달라졌다. 이 코스의 초기 개척자들이 그 이름을 따서 붙였다. 그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린다는 지프의 정신과 부합하는 것. 실제 루비콘 트레일에 오르면 앞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무리 험한 길일지라도.

좁고 가파른 길을 십여 대의 지프가 줄지어 오르니 그 모습이 장관이다. 그것도 최신의 루비콘 10주년 모델들이니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트레일에서 저마다의 지프를 몰고 모험을 찾아 나선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길을 양보하며 서로 주고받는 따뜻한 시선에서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한다. 말하자면 이곳은 지프의 성지. 지프 마니아라면 누구나 이곳을 등정하는 꿈을 꾸기 마련이다.

하지만 트레일 도전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로드라고 불리는 지역조차 험로이지만 로드라 부를 수 없는 구간도 트레일의 절반에 이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 섞인 탄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차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에 좌우의 고저차가 너무 크다. 높낮이와 경사가 다른 바위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느 바퀴든 접지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경은 넓어진다. 거대한 화강암 판 위로 큰 바위와 암석이 산재한 지대는 황량해보였다. 이곳을 자동차로 지난다는 사실은 무모해보였다. 낭떠러지가 보이기 시작할수록 아찔함은 더 깊어진다. 거의 45도에 가까운 기울기로 암벽을 통과할 때는 마치 차체가 전복될 것만 같은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가드레일도 없는 곳에서 구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난이도가 높은 구간을 하나씩 통과해낼 때마다 성취감이 쌓여간다. 이런 맛에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것일 게다.

사실 트레일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지프의 재발견이다. 단지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이라 말하면 지프의 능력을 반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프 루비콘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곳을 넘어가고 내려갔다.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다른 차들도 다닐 수 있는 루트를 만든다는 것이지만, 이 궤적은 지프 아니면 도저히 지날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실제 지프 브랜드는 신차 개발을 위해 루비콘 트레일을 적극 활용해왔다. 이를 통해 락 트랙(Rock-Trac) 4:1 트랜스퍼 케이스, 콰드라-드라이브 II(Quadra-Drive II), 트루 락(Tru-Lok) 락킹 액슬 디퍼렌셜, 분리형 프론트 스웨이 바, 차체 하부 스키드-플레이트 보호장치, 프론트 데이나 44(Dana 44) 액슬, 롱-트래블(long-travel) 멀티링크 서스펜션 디자인 등 혁신적인 기술들을 개발, 적용해왔다.

낮은 기어를 주로 사용해야 하는 지형에서 수동 6단 기어는 오히려 자동 기어보다 편하고 유용했다. 루비콘 10주년 에디션의 경우 73.1:1의 크롤(crawl)비로 어떤 장애물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었다. 또한 내리막 급경사의 경우에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것만으로 매우 안정적으로 내려왔다.

차가 가야 할 방향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타이어의 위치 선정만 제대로 하면 나머지는 지프가 알아서 다 해준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길을 만나도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때로 하체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차체는 조금의 휘어짐이나 패인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프레임 섀시, 강철 보디의 강인함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다.

저녁 6시, 마침내 루비콘 스프링스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프에 모여든 지프 루비콘들은 거친 바위산을 넘어왔지만 모두 상처 없이 멀쩡했다. 종일 일행을 따라다녔던 헬리콥터도 모두의 무사귀환을 반기며 쉼터에 내려앉았다. 낮은 뜨거웠지만 밤은 매우 차가웠다. 통신이 단절된 상황은, 모처럼 만의 자유를 주었다. 어느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일찍 일어났다. 밤 사이 곰이 다녀갔다고 했다.

다음날 하산하는 코스는 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더 깊은 급경사와 급강하가 이어졌다. 몸은 어제의 감각을 재빨리 찾아냈다. 하산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평지를 만나 질주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어떤 사람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이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도로에서 만난 지프 역시 확 달라보였다. 그 차이는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프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트레일 가이드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낯선 나라에서 온 초보자들이 루비콘 트레일을 완주하기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지프 관계자를 비롯해 루비콘 트레일을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글: 최주식, 사진: 크라이슬러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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