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고스트, 영감을 함께한 100년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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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고스트, 영감을 함께한 100년의 형제
  • 앤드류 프랭클
  • 승인 2013.08.23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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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메이커나 역사적 전통을 사랑한다. 차를 팔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설사 모두가 허방이라도 그토록 오래 살아남은 원로라면 권위가 있게 마련이다. 오늘날의 롤스로이스와 100년 또는 그 이상이 넘는 롤스로이스 사이에는 배지 이상의 공통점이 없다. 그 이음새마저 1998년에 잘려나갔다. 독일의 BMW가 롤스로이스 PLC(항공기‧선박 엔진과 전력회사)에 4천만 파운드(약 692억원)를 지불했다.

그때 디자인‧부품‧재산권(지적이거나 그밖의)을 포기하고 오로지 차에 롤스로이스 배지를 달 수 있는 권리만 사들였다. 그럼에도 BMW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역사를 끌어대어 이익을 얻기 위해 전통이라는 카드를 써먹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년이면 헨리 라이스가 첫차를 내놓은 지 11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그에 앞서 1913 알파인 트라이얼의 100주년을 자축했다.

뭐라고? 롤스로이스 랠리카를 케이터햄 리무진의 재미있는 콘셉트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런 사례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1970년 런던-멕시코 랠리에 실버 섀도우가 출전했다. 한데 100년 전 고난의 2,900km 랠리에 롤스로이스 고스트 4대가 출전했다. 랠리 루트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이탈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를 관통했다.

그중 3대는 롤즈의 워크스팀이었고, 나머지 한 대는 개인이 몰고 나온 이른바 프라이비터카. 개성파 오너 제임스 래들리가 영국 런던의 브라운스 호텔에서 알프스까지 몰고 달렸다. 고스트 4대가 1~4위로 선두 독점. 게다가 한 개 스테이지를 제외하고 모조리 선두를 휩쓸었다. 바로 여기서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드는 롤스로이스의 명성이 반석 위에 올라섰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알프스로 돌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알파인 트라이얼 센티너리 고스트로 무장했다. 런던-알프스 랠리 성공 100주년을 축하하는 고스트는 35대를 만들 계획이다.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사실. 우리가 몰고 온 그 옛날의 실버 고스트는 오리지널 롤스로이스팀의 유일한 생존차. 더구나 래들리가 몰았던 바로 그 차다. 래들리의 차는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의 조각가가 원래 만든 나체의 여인 청동상을 달았다. 도대체 그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신형 고스트를 먼저 시승했다.

내가 고스트를 몰아본 지 얼마쯤 지났다. 한데 571마력을 내는 V12 6.6L 트윈터보의 막강 파워에도 전혀 스포츠카 행세를 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금이나 과거나 언제나 스포티한 성격은 롤스로이스가 아닌 다른 브랜드에나 어울린다. 그와는 달리 고스트는 그 길이만큼이나 깊은 토크의 물결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도로를 흘러갔다. 결코 들뜨지 않고 에어스프링의 호사에 실려 미끄러져나갔다.

그 나름대로 이 서스펜션은 페라리 458만큼 조심스레 보디 동작을 조절했다. 물론 난폭하게 슬라이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롤즈를 그런 식으로 시험한다는 것 말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어느 좌석에 앉는 게 가장 좋은가를 가려내기로 했다. 운전대를 잡기보다는 운전대를 맡기는 게 좋은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롤스로이스. 한데 운전석에서, 조수석에서, 뒷좌석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달린 뒤에도 나는 운전대를 잡는 쪽이 마음에 들었다. 가령 이 차가 팬텀이라면 언제나 뒷좌석이 어울린다.

래들리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가당찮게 너그럽고 믿음직한 오너 존 케네디가 서 앉아 있었다. 그는 런던에서 알프스로 오는 6,000km 여정 가운데 이미 3,000km를 아무 탈 없이 몰고 왔다. 그 차의 크기, 연령과 수백만 파운드의 가치 때문에 드라이버는 으레 떨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 탈 없이 잘도 달렸다. 당대의 많은 차와는 달리 페달은 재래식으로 배열됐고, 기어는 눈에 익은 4단 ‘H’형이었다. 나아가 직렬 6기통 7.4L엔진은 180rpm(사실이다)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엔진 스톨은 있을 수 없을 듯했다.

나는 알프스의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고 있었는데도 케네디는 2단에서 출발하라고 훈수를 뒀다. 기어를 조작할 때마다 레버가 게이트 옆에서 잠깐 머물렀다. 그러면 3단으로 올라가기 전에 옆으로 살짝 밀었다. 클러치를 두 번 밟고, 새 기어에 적합한 스피드로 내려가는 데 필요한 것보다 좀 더 시간 여유를 뒀다. 그러자 금방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없어도 쉽게 다룰 수 있었다.

뒤이어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100살 먹은 차가 자동차박물관을 교묘히 피해 몇 년 동안 달팽이 걸음으로 돌아다니다가 갓길에 고꾸라졌다. 그 나이가 되면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이 차는 달랐다. 한번 매끈하게 스피드를 올리더니 3단으로 올라가 힘차게 산허리를 누볐다. 추격전을 벌이던 촬영 팀부터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알파인 트라이얼 고스트를 뜨겁게 달굴 만큼 손질하면 시속 97~113km로 하루 종일 즐겁게 돌아다닐 만했다.

그러나 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페이스의 변화는 파워 전달 방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엔진의 포효나 아우성이 들리지 않았다. 첫 요철을 만나면 좌석에서 깨끗이 튕겨나갈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와는 달리 사방에 온통 정적이 감돌았다. 이 차, 이 골동품은 고요하고 편안했다. 피스톤은 각기 배기량이 1L를 조금 넘었으나 아주 부드러웠다. 그리고 서스펜션은 반타원형 리프스프링으로 도로와 호흡을 같이했다.

오직 차를 세울 때라야 그 나이를 느낄 수 있었다. 뒷바퀴에만 작은 드럼 브레이크 2개가 달렸고, 브레이크를 혹사하면 제동력을 잃었다. 다시 현대의 고스트로 돌아왔다. 나는 BMW가 롤스로이스의 역사와 전통을 우려먹으려 했다고 비난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요즘 거의 모든 특수차 메이커들이 대기업의 품에 들어갔다. 그런데 BMW가 롤스로이스 브랜드의 정수를 이해하려는 자세는 다른 스페셜 오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리지널과 최신형 사이에 그 오랜 세월이 가로놓였음에도 이들 두 고스트의 성격은 괄목할 만큼 비슷했다. 아마도 외모와는 달리 둘 다 허세가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려는 순수한 열정을 담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철저한 기술적 성실성을 가차 없이 추구하며 승차감과 세련미를 가다듬었다. 그 과정에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을 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헨리 라이스 경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한데 지금 그가 살아 있어 신형 고스트의 실내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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