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디자인‧부품‧재산권(지적이거나 그밖의)을 포기하고 오로지 차에 롤스로이스 배지를 달 수 있는 권리만 사들였다. 그럼에도 BMW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역사를 끌어대어 이익을 얻기 위해 전통이라는 카드를 써먹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년이면 헨리 라이스가 첫차를 내놓은 지 11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그에 앞서 1913 알파인 트라이얼의 100주년을 자축했다.
그중 3대는 롤즈의 워크스팀이었고, 나머지 한 대는 개인이 몰고 나온 이른바 프라이비터카. 개성파 오너 제임스 래들리가 영국 런던의 브라운스 호텔에서 알프스까지 몰고 달렸다. 고스트 4대가 1~4위로 선두 독점. 게다가 한 개 스테이지를 제외하고 모조리 선두를 휩쓸었다. 바로 여기서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드는 롤스로이스의 명성이 반석 위에 올라섰다.
내가 고스트를 몰아본 지 얼마쯤 지났다. 한데 571마력을 내는 V12 6.6L 트윈터보의 막강 파워에도 전혀 스포츠카 행세를 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금이나 과거나 언제나 스포티한 성격은 롤스로이스가 아닌 다른 브랜드에나 어울린다. 그와는 달리 고스트는 그 길이만큼이나 깊은 토크의 물결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도로를 흘러갔다. 결코 들뜨지 않고 에어스프링의 호사에 실려 미끄러져나갔다.
그 나름대로 이 서스펜션은 페라리 458만큼 조심스레 보디 동작을 조절했다. 물론 난폭하게 슬라이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롤즈를 그런 식으로 시험한다는 것 말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어느 좌석에 앉는 게 가장 좋은가를 가려내기로 했다. 운전대를 잡기보다는 운전대를 맡기는 게 좋은 브랜드가 있다면 바로 롤스로이스. 한데 운전석에서, 조수석에서, 뒷좌석에서 수백 킬로미터를 달린 뒤에도 나는 운전대를 잡는 쪽이 마음에 들었다. 가령 이 차가 팬텀이라면 언제나 뒷좌석이 어울린다.
래들리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가당찮게 너그럽고 믿음직한 오너 존 케네디가 서 앉아 있었다. 그는 런던에서 알프스로 오는 6,000km 여정 가운데 이미 3,000km를 아무 탈 없이 몰고 왔다. 그 차의 크기, 연령과 수백만 파운드의 가치 때문에 드라이버는 으레 떨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 탈 없이 잘도 달렸다. 당대의 많은 차와는 달리 페달은 재래식으로 배열됐고, 기어는 눈에 익은 4단 ‘H’형이었다. 나아가 직렬 6기통 7.4L엔진은 180rpm(사실이다)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엔진 스톨은 있을 수 없을 듯했다.
뒤이어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100살 먹은 차가 자동차박물관을 교묘히 피해 몇 년 동안 달팽이 걸음으로 돌아다니다가 갓길에 고꾸라졌다. 그 나이가 되면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이 차는 달랐다. 한번 매끈하게 스피드를 올리더니 3단으로 올라가 힘차게 산허리를 누볐다. 추격전을 벌이던 촬영 팀부터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알파인 트라이얼 고스트를 뜨겁게 달굴 만큼 손질하면 시속 97~113km로 하루 종일 즐겁게 돌아다닐 만했다.
오직 차를 세울 때라야 그 나이를 느낄 수 있었다. 뒷바퀴에만 작은 드럼 브레이크 2개가 달렸고, 브레이크를 혹사하면 제동력을 잃었다. 다시 현대의 고스트로 돌아왔다. 나는 BMW가 롤스로이스의 역사와 전통을 우려먹으려 했다고 비난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요즘 거의 모든 특수차 메이커들이 대기업의 품에 들어갔다. 그런데 BMW가 롤스로이스 브랜드의 정수를 이해하려는 자세는 다른 스페셜 오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리지널과 최신형 사이에 그 오랜 세월이 가로놓였음에도 이들 두 고스트의 성격은 괄목할 만큼 비슷했다. 아마도 외모와는 달리 둘 다 허세가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려는 순수한 열정을 담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철저한 기술적 성실성을 가차 없이 추구하며 승차감과 세련미를 가다듬었다. 그 과정에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을 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헨리 라이스 경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한데 지금 그가 살아 있어 신형 고스트의 실내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