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 뱅퀴시, 부드러운 진화를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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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 뱅퀴시, 부드러운 진화를 택하다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9.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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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의 신형 뱅퀴시가 유럽에서 가장 혹독한 시승 환경에서 최종 평가를 받고 있다. 맷 선더스(Matt Saunders)가 동행했다

자동차 메이커는 화려한 신차발표회와 거창한 모터쇼 스탠드에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새 슈퍼카와의 극적인 첫 만남은 어스레한 지하주차장에서 이뤄졌다.
월요일 저녁. 우리 머리 위에서 긴 여름날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스페인 도시 그라나다는 차분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바로 한층 아래에서 시동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에 이어 사나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엄청 지루한 2분이 지난 뒤, 어마어마한 회전반경을 가진 차가 살금살금 코너를 돌았다. 그 차의 LED가 수많은 야간경비원의 랜턴처럼 어스름 속에 번들거렸다. 이윽고 눈에 익은 크롬 그릴과 위풍당당한 모습이 드러났다. 우리 머리 위에서는 V12 엔진이 낮게 흥얼거리는 놋쇠소리가 유난히 또렷이 들렸고, 한결 윤택한 기질을 드러냈다. 우렁찬 굉음은 메아리치고 다시 되울렸다.

보조석 문이 열렸고, 나는 몸을 안으로 디밀었다. 얼마 뒤 우리는 그라나다의 저녁 도로에 나갔고, 신형 애스턴마틴 뱅퀴시로 산길을 향해 달려갔다.

야수, 돌아오다
애스턴마틴은 새로운 양산 플래그십을 6주년이 되는 날에 발표했다. 굿우드 페스티벌에 맞춘 날이었다. 가장 큰 뉴스는 뱅퀴시라는 이름이 돌아왔다는 것. 애스턴의 충성파가 무척 사랑했던 차에 마지막으로 쓰였던 이름이었다. 보다 스스럼없는 동료들끼리는 ‘야수’(the beast)라고 했던 차였다.

지금 이 이름은 오리지널보다 덜 근육질적인 새 차를 가리킨다. 비라지나 DB9보다 훨씬 예리하게 조각됐다. 근육질이지만 유혹적인 곡선을 뒤엎을 만큼 ‘군살’이 붙지는 않았다. 몇 가지 각도에서 의미 있고 흥미로운 머신이다. 가령 이 차는 애스턴의 카본파이버 보디의 시리즈 모델 제1호다. 그러면서 실용적인 차이기도 하다. 백지에서 출발한 완전신형이기보다는 ‘잘못된 곳은 고치자’는 진화형이다. 직접 보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뱅퀴시의 휠베이스는 DBS‧DB9와 똑같지만 전체적으로 약간 더 길고 넓다. 이 회사의 제4대 ‘수직-수평’ 플랫폼을 사용한 신형 애스턴 제1호. 주로 접착식 압출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애스턴에 따르면 재설계하고 최신 접합‧양극 산화 처리한 플랫폼이다. DBS보다 뱅퀴시가 50kg 넘게 가볍고, 강성은 30% 올라갔다.

이 차의 V12 엔진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시동을 걸면 사운드가 똑같으면서 즐겁기도 하다. 2012년에도 6.0L 자연흡기 포트 분사 V12 엔진을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슈퍼카 메이커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나 애스턴에 따르면 쾰른에서 만든 V12 엔진의 개성과 반응이 정서적 매력의 핵심이다. 뱅퀴시를 위해 엔진을 완전히 손질했고, 가변 밸브 타이밍, 더 큰 흡기 밸브를 갖춘 신형 실린더 헤드, 신형 흡배기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아울러 웻섬프는 차안에서 19mm 더 낮게 자리 잡았다. 출력은 10% 올라가 565마력. 토크는 63.0kg‧m로 커졌다.

“파워가 커져 그립이 더 필요하다” 내 왼쪽에 앉은 사나이가 말했다. 그는 대형 애스턴을 절묘하게 몰아갔다. 뱅퀴시의 기술감독 폴 토머스. 이 차의 성능을 하나로 뭉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섀시와 파워트레인에서 스펙과 전자장비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더 넓은 뒷타이어(305 섹션 ZR20)를 받아들였다” 그의 말. “섀시 밸런스 또는 NHV(소음‧진동)의 어느 것도 희생시키지 않고 그립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늘어난 성능과 그립 때문에 더 큰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디스크는 여전히 기본장비인 카본-세라믹(지금 앞 액슬에는 398mm)이다. 그러나 DBS보다 한 단계 크다. 우리는 더 올라간 강성과 서보 지원 수준을 시험했다. 그밖에도 새로운 부품도 검증했다. 운전을 할 때 페달 피드백으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섀시로 볼 때 우리는 애스턴의 능력한계 안에서 홀로 앞섰다. 하드웨어는 대체로 똑같다. 앞뒤에 더블위시본이다. 트레드는 약간 더 넓고, 스프링이 좀 더 단단하다. 스티어링 랙은 DBS보다 약 15% 빠르다. 그런데 승차감은 아주 편안하다. 특히 3모드 적응형 댐퍼의 역할이 크다. 그립이 높고 정확하다. 그래서 이런 도로에서 운전하기는 그만이다. 하지만 이 차는 무엇보다 앞선 그랜드 투어러. 아주 편안하게 500km를 달린 뒤 이런 도로에 들어올 수 없다면 우리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해야 한다.”

가면 갈수록 산길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토머스가 ‘이런 도로’라고 했던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믿을 수 없는 꼬부랑 산길은 더욱 조용하고 가팔랐다. 옆에 앉은 승객을 편안하게 하고 운전에 열중하느라 토머스는 뱅퀴시의 핸들링을 깊이 파고들 기회를 잡았다. 안정 컨트롤을 해제하고 브레이크를 제대로 써보기로 했다. 천둥소리를 내며 돌파하는 코너 정점에서 출구까지 검은 두 줄이 그어졌다.

적어도 조수석에서 느끼는 횡그립에서 뱅퀴시는 정말 아주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급커브의 대단한 고속에서 롤링과 언더스티어의 저항도 과거의 수많은 대형 애스턴과는 달랐다. 아울러 엉덩이를 풀려면 상당한 힘이 들었다. 토머스가 한계에서 점진성과 조절능력을 점검할 때 확연히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 차는 DBS만큼 장난을 치지 않는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서 스티어링이 돌아갈 때마다 다음 진입 포인트에 눈길을 꽂았다. “기어박스는 자동뿐이고 오픈 디퍼렌셜을 택했다. 우리 고객들의 피드백이 그래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악물고 있는 드라이브트레인과 똑같은 인상을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초고속 코너에서 액셀을 그렇게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다” 그의 설명은 이어졌다.

“그 대신 훨씬 매끈하고 쓰기 쉬운 드라이브트레인을 만들어냈다. 바로 우리가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내가 초기 성능 세팅을 직접 담당했다면…”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기계적 디퍼렌셜로 갔을 것이다. 코너 출구에서 좀 더 안정되고, 트랙션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취향이다”

그렇다면 지금 바꾸면 될 게 아닌가? “스펙 변경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고객에게 차를 보낼 때까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부품 바꾸기를 하려면, 주말을 모두 바쳐야 한다. 어느 엔지니어든 타협할 때가 있다. 우리 일이 원래 그렇다. 거대한 마스터플랜에서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알아주는 녀석 폴 토머스. 아니, 누구나 이런 차를 맡기고 싶어 할 그런 친구다. 디퍼렌셜에 상관없이 그는 감동적인 파워 슬라이드로 대형 애스턴의 운전성능을 자랑했다.

열을 올리다
화요일 늦은 아침. 휴양지 시에라 네바다에서 멀지 않은 해발 2,600m에서 오야 데 라 모라의 햄버거 가게는 정신없이 북적댔다. 이럴 수가. 이곳은 스키 휴양지. 하지만 철지난 체어립트는 33℃의 열기 속에 쓸쓸하게 비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카페는 으레 스키폴과 고글을 갖춘 스키족을 대접하던 곳. 그런데 오늘 주차장은 가득 찼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인에다 이 경우에는 영국 미드랜즈 사투리를 쓰는 한 사나이가 파라솔 밑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애스턴 마틴의 정규적인 세계 개발 시승 코스다. 지난 2년간 뱅퀴시는 50℃의 미국 대스 밸리와 -30℃의 북극으로 달려갔다. 그와 함께 뉘르부르크링을 비롯해 유럽의 프루빙 그라운드를 찾아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에도 A395는 그라나다를 북쪽으로 벗어나 보기 드문 기회를 찾았다.

“이곳은 고산의 끈덕진 열기 속에서 시험할 수 있는 유럽의 몇 안 되는 시승 코스다” 애스턴 파워트레인 매니저 존 맥클린의 설명이다. 그의 등 뒤에는 기술진이 노트북과 시승 스케줄을 안고 바삐 돌아갔다. 존은 운전성능과 기계의 정밀도에 이르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기준을 들이댄다. “해수면에서 2,500m 넘는 이곳까지 올 수 있다. 모두 한 시간 남짓이다. 한 해 중 이때에는 30℃를 내려가지 않는다. 엔진에 대단한 부담을 준다. 여기서는 대기압의 70% 속에서 한계에 도전한다. 냉각시스템은 그보다 더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그는 숨을 돌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대체로 계측에 힘을 기울인다. 기술진은 며칠 동안 계속해서 연료-공기 혼합 상태를 측정한다. 고개를 치고 올라가 5분간 엔진을 정지시켰다가 급발진해 정확히 연료가 공급되는지 검사한다. 정차시간을 점점 길게 잡으면서 그 시험을 반복한다. 과거에 V12 엔진이 센서와 조절장치 문제에 걸려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엔진을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런 문제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 뒤 존은 나를 태우고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어젯밤과는 전혀 달랐다. 뒤따르는 차가 없는 한 끊임없이 감속과 가속을 되풀이했다. 패들을 오르내리며 뱅퀴시의 6단 변속기를 일일이 점검했다. 그러면서 거친 기어단수를 찾아냈다. 개발팀의 일원으로 ZF 전문가 한 사람이 함께했다. 각단의 변환압력을 바꾸고 가능한 한 각단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그 대신 변환속도는 약간 떨어졌다.

“문제가 하나가 있었는데 느꼈나?” 그가 물었다. 나는 아는 척 할 만큼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뱅퀴시는 흠잡을 데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맥클린은 2↔3단 수동변환을 몇 번 반복했다. 변환 끝에 아주 미미한 떨림이 있었다. 그는 나중에 자기 팀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나는 거의 감지할 수 없는 드라이브트레인 문제를 찾는 걸 포기했다. 대신 뱅퀴시의 실내에 집중했다. 휠베이스가 변하지 않았는데도 애스턴은 실내공간이 상당히 넓어졌다고 했다. 기함 애스턴이 끌어들이는 압도적인 남성 고객의 큰 체구를 좀 더 편안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다리공간은 65mm, 각 좌석의 새로운 팔꿈치 공간은 75mm 늘어났다. 가장 좋아진 것은 무릎공간이었다. 대시보드는 DBS보다 훨씬 날씬했다. 다른 어느 모델보다 감각으로 느끼는 실내공간이 크게 늘었다. 애스턴의 가죽 내장, 바느질과 대시보드 소재는 전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성가신 낡은 내비게이션, 멀티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사라졌다. 이 차는 보기에 좋고 쓰기 쉽다.

우리가 오야 데 라 모라로 돌아왔을 때 주차장은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이 코스를 사용하는 메이커는 애스턴만이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 신형 르노 클리오 2대가 있었고, 다른 구석에는 심하게 위장한 란치아 몇 대가 웅크리고 있었다. 한편 살짝 위장한 포르쉐 마칸 옆에 서 있는 아우디 Q5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애써 눈길을 돌리고, 애스턴 시승팀에게 부담을 주기 않기로 했다. 이런 자리에서 뱅퀴시를 오래 드러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라나다로 내려가 런던의 히스로 공항으로 날아가야 했다. 폴, 존과 애스턴 팀은 시에라 네바다 도로에서 며칠을 더 머물러야 했다. 잠시 나는 누가 뱅퀴시를 몰고 돌아가는 일을 맡을까 궁금했다. 래피드와 밴티지가 우리 시승대열에 모두 끼어 있었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큰 놈’의 조수석에서 하루를 보낸 뒤라 경쟁은 박 터지게 치열했다.

어쨌든 애스턴은 이 차를 재발명하지 않았다. 단지 모서리를 손질했을 뿐이었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나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의 라이벌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객들이 요구하는 신형 기함 V12 GT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처럼 간단했다. 야망이 없다고 탓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연말쯤 몰아보면 정말 아주 훌륭한 차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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