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뉴욕의 5번가. 노란 택시 한 대가 멈춰 서고 우아하게 머리를 틀어 올리고 블랙 드레스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내린다. 그녀를 홀로 남겨둔 채 택시는 떠나버리고 여자는 티파니 상점 앞에 서서 유리 안 값진 장신구를 들여다보며 빵 한 입 베어 물고 커피 한 모금 마시고는 마치 안도했다는 듯 짧은 미소를 남기고 집으로 간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여인의 고혹적인 자태를 함께 갖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홀리. 아니 사실 그녀의 이름은 없다. 그녀가 길에서 주워 온 고양이처럼, 그녀는 그저 그녀일 뿐이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부자인 남자를 만나 결혼해 부자가 되는 것. 그래서 우울해질 때마다 찾아가 유리 안을 들여다보는 티파니의 보석을 맘껏 사들일 수 있는 것. 그러면 더 이상 가난과 비참함에 찌들었던 과거는 없을 테니까.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고전 또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이 민망하지 않은 가치 있는 영화다. 1961년 작품이니 아마도 오래 전 누군가가 청춘일 때 극장에서 보았거나 그 이후 시간이 좀 더 흐르고 TV에서 보았거나 또 시간이 흘러 이번에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된 작품을 보았거나 했을 것이다. 어느 경우라도 좋다. 우리는 티파니 상점을 들여다보는, 블랙 드레스를 입은 그녀 홀리 또는 오드리 헵번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애틋하고 애잔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의 첫 장면, 티파니 상점 앞에 홀리를 내려준 택시는 그녀의 아슬아슬하고 가련한 꿈을 보았을 것이고 폴이 이사 온 날 함께 서서 잡은 택시는 홀리와 폴, 그리고 폴의 후원자인 연상의 마담이 대면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아챘을 것이고 구치소에서 나온 홀리를 태운 택시는 폴과 홀리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비를 맞으며 군말 없이 기다려준다. 영화 속에서 택시는 그렇게 홀리의 모든 것을 보아주고 감싸주고 은근한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조연이다.
그 뉴욕의 옐로우 캡들은 얼마나 많은 홀리를 보아왔을까. 얼마나 많은 폴을 보아왔을까. 긴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옐로우 캡은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안고 지금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글 · 신지혜(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