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의 ‘다재다능함’과 함께한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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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의 ‘다재다능함’과 함께한 1박 2일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7.10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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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가장 다재다능한 SUV’를 목표로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개발했다고 했다.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지난해 뉴욕모터쇼에서 선보인 ‘디스커버리 비전 콘셉트’를 모체로 태어났다. 디스커버리 비전 콘셉트는 그 이름처럼 디스커버리 브랜드의 미래상(像)을 제시하는 콘셉트 카였다. 레인지로버 패밀리의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담아낸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디스커버리 비전 콘셉트의 양산형이 디스커버리 스포츠다.
 

■ 디스커버리 패밀리의 새 식구
모델명에 ‘디스커버리’가 붙어서인지 신형 디스커버리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디스커버리 4의 아랫급 콤팩트 SUV로, 사실상 프리랜더 2의 뒤를 잇는 후계자의 위치다. ‘사실상’이라고 한 것은, 랜드로버가 프리랜더의 직계후손임을 부인하기 때문. 실제로 디스커버리 스포츠 출시 이후에도 프리랜더의 판매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프리랜더를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랜드로버는 어째서 프리랜더의 그림자를 애써 걷어내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랜드로버의 새 전략은 레인지로버, 디스커버리, 디펜더 3개의 서브 브랜드로 라인업을 묶어 제품 콘셉트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레인지로버에는 ‘고급스러움’(Luxury), 디스커버리에는 ’여가’(Leisure), 디펜더에는 ’다목적성’(Dual Purpose)이라는 방향성을 부여했다.
 

디스커버리 브랜드는 귀족적인 레인지로버와 정통 오프로더 디펜더 사이에서 양쪽의 특성을 모두 지닌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디스커버리 브랜드의 엔트리 모델이며,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사촌형제다. 이보크와 마찬가지로 도심형 콤팩트 SUV지만, 다목적성과 실용성을 보다 강조해 차별화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전체적으로 레인지로버 라인업에 가까운 세련된 모습이지만, 두꺼운 C필러는 프리랜더나 디스커버리의 것을 연상시킨다. 옆모습의 인상을 결정짓는 C필러에서 특유의 정체성을 표현함으로써 이 차가 디스커버리 패밀리의 일원임을 나타내고 있다.
 

날렵한 몸매여서 길어 보이지만, 메르세데스-벤츠의 막내 세단 CLA클래스보다도 4cm 짧은 콤팩트한 크기. 길이×너비×높이가 4,590×1,894×1,724mm로, 프리랜더보다 약간 크고, 디스커버리보다는 많이 작다. 하지만 너비는 디스커버리보다 불과 2cm 남짓 좁을 뿐이다. 휠베이스는 2,741mm로 프리랜더보다 8cm 가량 길다.

주요 라이벌들과 비교하면, 아우디 Q5와 BMW X3보다 짧고, 메르세데스-벤츠 GLK클래스보다 길다. 너비는 X3과 GLK보다 넓고, Q5보다 좁다. 높이는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가장 높고, 휠베이스는 가장 짧다. 그럼에도 Q5 대비 2열 다리 공간은 60mm 더 넓고, 트렁크 용량은 뒷좌석을 모두 눕혔을 때 최대 1,698L로 1,560L인 Q5보다 넉넉하다.

국내에는 같은 엔진을 달고 사양을 달리한 두 가지 트림(SE, HSE 럭셔리)으로 판매되며, 판매가격은 SE가 5천960만원, HSE 럭셔리가 6천660만원이다.
 

■ 매끄럽고 쾌적한 온로드 주행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에 앞서 준비운동으로 약 70km의 포장도로를 먼저 달렸다. 온로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숙성과 승차감이었다. 꽤 속도를 높여야 비로소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있는 힘껏 가속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엔진 소리도 잠잠했다. 특히, 노면소음을 아주 잘 틀어막았다.

탄탄하게 조율한 서스펜션은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줬다. 과속방지턱을 빠르게 지나가도 결코 허둥대거나 덜컹거리지 않아 승차감이 고급스러웠다. 코너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움직임이 깔끔하고 민첩하다. 틀림없이 재규어의 노하우가 반영된 결과이리라. 다만, 스티어링에는 약간의 유격이 있고, 마음을 건드리는 감칠맛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다.
 

엔진은 이보크와 같은 직렬 4기통 2.2L 터보 디젤. 1,750rpm에서 최대토크 42.8kg·m, 3,500rpm에서 최고출력 190마력을 낸다. 변속기도 ZF 자동 9단으로 이보크와 같다. 2단 출발이 기본이며, 스포츠 모드에서는 1단부터 물린다. 엔진의 초기반응은 약간 굼뜬 편. 터보래그와 2단 출발이 맞물려 초반 가속에서는 한 템포 느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터보차저가 제대로 힘을 보태기 시작하면 매끄러운 가속이 꾸준히 이어졌다.

여간해선 9단에 들어가지 않아 9단의 활용도는 기대에 다소 못 미쳤다. 물론 시프트패들이 달려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9단에 넣을 수 있다. 9단에서 시속 100km로 항속하면, 엔진회전수는 겨우 1,400rpm을 유지했다.
 

■ “차를 믿고 그대로 통과하세요”
1시간 반 가량의 온로드 주행을 마치고 토함산 아래 주차장에 집결했다. 코스는 오프로드 동호인과 선수들이 개척한 길을 행사에 앞서 랜드로버코리아가 손본 곳이라고 했다. 총 길이는 약 20km. 구불구불한 비포장 산길 20km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이날 점심 이후 시작된 시승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계속됐다.

인스트럭터가 탑승한 선도차를 따라 줄지어 출발했다. 코스 초입은 숲이 우거진 평탄한 자갈길이었지만, 곧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박힌 울퉁불퉁한 길로 바뀌었다. 요철에 따라 차체가 요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흔들리되 거칠거나 뾰족한 충격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서스펜션이 온로드에서만큼 오프로드에서도 훌륭했다.
 

10분쯤 지났을까. 그저 흙길을 잠깐 밟아보게 하려는 계획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주행한다기보다 돌파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험로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처음엔 너무 깊다고 생각되는 움푹 팬 곳은 피해갔는데, 인스트럭터가 무전기로 이렇게 말했다. “차를 믿고 그대로 통과하세요.”

인스트럭터의 말대로 차를 믿어보기로 했다. 노면 상태를 무시하고 과감하게 나아갔다. 그저 운전대를 잡고 가속페달을 밟는 것만으로 거친 요철이든 깊은 물웅덩이든 미끄러운 진흙이든 거뜬히 통과했다. 당연히 차는 크게 뒤뚱거리고 타이어에서는 요란한 진동이 올라왔지만, 날것이 아닌 정제된 느낌이라 불쾌하지는 않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터레인 리스폰스)을 갖췄다. 4가지 모드(일반, 풀·자갈·눈, 진흙, 모래)를 지원하며, 선택한 모드에 따라 엔진, 변속기, 스티어링, 섀시, 네바퀴굴림 시스템의 세팅이 바뀐다. 사실 그냥 일반(자동) 모드에 둬도 웬만한 곳은 다 헤쳐 나갔지만, 지형에 맞춰 선택해주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보닛 끝으로 경사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급사면 속도제어장치(HDC)가 매우 유용했다. HDC를 켜고 경사로에 들어서자 차가 엔진과 브레이크를 스스로 조절하며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 채 저속으로 내려갔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버튼으로 간단히 속도를 높이거나 줄일 수 있었고, 운전대만 잡고 있으면 나머지는 차가 알아서 했다. 전진뿐만 아니라 후진에서도 가능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정상에 오르자 묘한 정복감과 희열이 느껴졌다. 서킷 등 온로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운전 재미였다. 정상에 오른 기자들의 상기된 표정이 모든 걸 대신 말해줬다.
 

■ 호화로움 넘치는 랜드로버의 플래그십
다음날 이른 아침,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에 올랐다. 전날 랜드로버의 엔트리 모델을 경험했으니, 플래그십 모델도 타보자는 심산이었다.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은 레인지로버 롱 휠베이스 가운데 휘발유 엔진을 단 모델로,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도 최상급 모델이다. 분명 뛰어난 오프로드 역량을 갖췄겠지만, 산에서 굴리기엔 2억6천590만원이나 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길이는 5,199mm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롱 휠베이스 모델과 거의 같다. 휠베이스는 3,120mm에 달해 일반 레인지로버보다 20cm 가까이 길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모두 뒷좌석 공간에 할애했다. 실내는 호화로움을 넘어 사치스럽다. 심지어 천장마저 질 좋은 천연가죽으로 꼼꼼히 덮었다.

뒷좌석에 앉자 무릎 앞 공간이 어림잡아 최소 30cm는 되어 보였다. 또한, 천장이 드높아 대형 세단에 앉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 2열은 좌우 독립시트로 2명이 앉을 수 있는 구성이고, 최대 17°까지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고급 목재로 치장한 센터콘솔에는 공조장치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작하는 컨트롤러와 함께 개인용 테이블이 달렸고, 샴페인 병과 잔을 꽂아둘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510마력을 발휘하는 V8 5.0L 슈퍼차저 엔진은 나지막이 크르릉 소리를 내며 무게가 2,665kg나 되는 거구를 힘들이지 않고 이끌었다. 마치 거대 함선의 브리지에서 함대를 지휘하는 기분이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른 호숫가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흰색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래피 블랙의 모습을 밖에서 봤다면, 우아하게 물살을 가르는 요트처럼 보였을 것이다.
 

■ 삶을 풍요롭게 하는 SUV의 본질
국내에서 팔리게 될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상당수는 어쩌면 회사, 마트, 학교나 학원 등을 오가는 데에만 쓰일지도 모른다. 굳이 산길을 마구 달릴 것이 아니더라도 궂은 날씨에도 언제 어디서나 안심하고 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값어치는 하는 셈이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그렇게만 타기에는 너무 아까운 차다. 만약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구입한다면 일상에서 벗어나 꼭 모험을 떠나보길. 누구나 쉽게 오프로드 주행을 즐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도구로서의 자동차, 이것이야말로 스포츠 유틸리티 비클(SUV)의 본질 아닐까.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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