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디펜더,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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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디펜더, 길을 열다
  • 최주식
  • 승인 2020.11.22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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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디펜더는 자연 속 깊이 다가가고 싶은 열정을 깨운다

길은 누군가가 지나가고 그것이 이어질 때 만들어진다. 대부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차가 다니는 길 또한 마찬가지다. 험난한 오프로드라고 해도 누군가 지나갔다면 그 다음 차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앞 차가 디펜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웬만한 SUV라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맞다, 디펜더는 요즘 잊고 있던 단어 4×4, 그리고 오프로더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가 디펜더를 론칭하며 유명산 자락의 ‘길 아닌’ 오프로드를 시승 코스에 넣은 이유다. ‘가는 곳이 길이 되는 전설적 오프로더’라는 ‘수사’(修辭)를 글이 아닌 경험으로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터레인 리스폰스는 어떤 지형에서도 적합한 모드로 길을 만들어 나간다

단종 이후 그야말로 재탄생한 신형 디펜더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유연해진 모습이지만 특유의 각진 실루엣은 그대로다. 첫눈에 보는 순간, 이 차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노마드 감성 또한 여전하다. 가장 큰 차이라면 세련미가 더해졌다고 할까. 예전 스타일은 좀 투박했다. 

개발 과정의 우선순위는 역시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것. 충분한 접근각(38°)과 탈출각(40°)을 위해 앞뒤 오버행을 최대한 짧게 설계했다. 스페어 타이어를 제외한 차체 길이가 4.7m로 디스커버리보다 20cm 짧지만 휠베이스는 3022mm로 더 길다. 그만큼 뒷좌석 탑승자 공간을 배려했다. 뒷좌석은 40:20:40으로 분할 폴딩되며 모두 접었을 때 적재공간은 2380L에 달한다. 

 

험로를 달려 정상에 오르는 일은 디펜더에겐 어렵지 않다

직선 형태의 볼드한 사이드 캐릭터 라인은 멀리서 봐도 디펜더임을 말해준다. C-필러를 바디컬러로 처리한 건 시그니처 그래픽. 이전 세대에도 적용되었던 루프 알파인 라이트 윈도가 뒷좌석에 추가적인 개방감을 준다. 랜드로버 개발자들이 디펜더를 테스트하며 알프스 산맥 오를 때 산 정상을 보고 싶어 했던 열망을 디자인에 반영시킨 결과물이다.

전면을 보면 딱 벌어진 어깨와 돌출형 보닛, 그리고 독특한 범퍼 디자인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전 세대 원형 헤드램프를 재해석한 LED 헤드램프 옆으로 사각형 형태의 보조램프가 달렸다. 코너링 라이팅 기능과 오토 하이빔 어시스트 기능도 적용되었다고. 매끈하게 자른 듯한 후면부에는 풀사이즈 스페어타이어를 매달았다. 트렁크 바닥이 아닌 외부에 장착한 이유는 충분한 탈출각을 확보하기 위해 리어 오버행을 짧게 설계했기 때문. 옆으로 여닫는 테일게이트는 소프트 클로즈드 기능도 갖췄다. 자른듯한 뒷모습은 단호하고 견고한 느낌을 더해준다. 

 

인테리어는 순수한 기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실용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주요 특징은 센터페시아를 가로지르는 마그네슘 합금 빔. 항공기에 사용하는 소재로, 그 표면을 노출시켜 디자인 일부로 활용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동반석 대시보드의 디펜더 로고가 있는 부분이다. 도어쪽에는 볼트를 그대로 노출시켜 터프한 인테리어 느낌을 살렸다. 센터콘솔과 도어포켓 등 충분한 수납공간이 있고 바닥에는 내구성 높은 고무소재를 사용해 세척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내게 배정된 시승 모델은 디펜더 110 D240 SE. D240 S와 런치 에디션 가운데 위치하는 트림이다. 인제니움 4기통 2.0L 디젤엔진으로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43.9kg.m을 낸다. 자동 8단 ZF 변속기와 별도의 2단 로 기어를 매칭했다. 에어 서스펜션은 지상고의 높이를 75mm까지 높여주고, 오프로드 조건에서 추가로 70mm 연장할 수 있다. 최대 145mm까지 차체를 높일 수 있으며, 도강 높이는 900mm다. 안전벨트를 풀면 하차 신호로 읽고 자동으로 지상고를 낮춘다. 

 

실내는 기능적이면서 실용적이다. 터프함과 세련미를 잘 어울렸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디펜더, 오랜만의 유명산 등정이다. 과거 디펜더는 시트에 앉았을 때 마치 군용트럭에 앉은 것처럼 경직된 자세였다. 이번 디펜더는 기본적인 자세는 변함없지만 우선 편안하다. 그립이 좋은 스티어링 휠부터 적당한 위치의 기어레버 그리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모두 쉽게 통제권에 들어온다. 인테리어는 전통과 첨단, 그리고 터프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10년 이상 통행하지 않았다는 오프로드 구간에 들어서며 차고를 높인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로 레인지를 활성화시킨 다음 D 모드에 넣고 출발이다. 그리고 터레인 리스폰스 모드를 변경한다. 컴포트, 에코, 스노, 머드, 샌드, 암석/도강 모드 중 노면 상황에 맞춰 고르면 된다. 새로운 피비 프로 인포테인먼트의 터치 스크린으로 간단히 작동시킨다. 

 

더 넓어진 뒷좌석은 개방감도 크다
뒷좌석은 40:20:40으로 분할 폴딩되고 모두 접으면 2380L의 적재공간이 마련된다

길은 쉽게 열어주는 듯하다가 돌연 여기까지라는 듯 문을 닫는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서면 디펜더가 아니다. 날카로운 바위를 기우뚱하게 타고 넘지만 균형을 놓치지 않는다. 바위가 많을뿐 아니라 상당한 급경사도 이어진다. 바디 강성이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한다. 타이어 성능도 놀랍다. 

새로운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의 D7x 플랫폼을 통해 개발된 신형 디펜더는 기존 바디-온-프레임 방식의 레인지로버, 디스커버리보다 3배 더 견고하다 한다. 브랜드 역사상 최고의 바디 강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루프 적재 하중 300kg을 견디고 최대 3.5톤의 견인력을 발휘한다. 낯선 오지를 여행할 때 듬직한 스펙이다. 

 

가다보면 하늘만 보이는 곳이 나온다. 이렇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구간에서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를 켠다.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을 때는 미리 카메라를 작동해서 확인하고 진입하는 게 좋다. 보닛 아래 전방이 카메라를 통해 다 보인다. 클리어사이트 룸미러 역시 후방 시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계곡을 지나는데 물이 줄어 수심은 거의 없다. 만약 어느 정도 물이 차 있다면 최대 도강 깊이 900mm 점검창으로 그래프를 확인 할 수 있다. 센서는 좌우측 사이드미러 하단에 내장되어 있다. 오프로드에서는 액셀러레이터를 멈추지 않고 점진적으로 유지하면서 올라가야 효과적이다.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한 것이므로 빨리 달릴 필요는 없다. 더불어 나뭇가지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자세도 중요하다. 

 

짧은 온로드 구간에서 2.0L 엔진 이상의 다이나믹한 성능, 스포츠 모드 변경 이후 달라지는 응답력을 확인했다. 그런 다음 다시 일반 오프로드 구간을 통해 해발 800m가 넘는 유명산 정상에 도달했다. 멀리 산봉우리가 첩첩이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얼마만인가. 오랜 마스크 생활에 지쳐있던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 험로를 달려 낯선 오지를 찾아가는 여행에 대한 열정 또한 언제 사라졌던가. 디펜더가 이런 열정을 깨웠다. 단지 ‘길 아닌’ 길을 만들어내는 물리적 길뿐 아니라 마음 속 길도 하나 열었다. 

 Fact File  Land Rover All New Defender D240 SE
가격    9560만 원
크기(길이×너비×높이)    5018×1996×1967mm 
휠베이스    3022mm 
엔진    직렬 4기통 1999cc 디젤 
최고출력    240마력/4000rpm 
최대토크    43.9kg·m/1400rpm 
변속기    자동 8단 
최고시속    188km(안전 제한)
0-시속 100km 가속    9.1초
연비(복합)    9.6L/km
CO2배출량    204g/km 
서스펜션(앞/뒤)    더블 위시본/인테그랄 멀티링크 
브레이크(앞/뒤)    모두 V디스크 
타이어(앞/뒤)    모두 255/60 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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