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티를 이해하는 10개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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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티를 이해하는 10개의 키워드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1.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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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 위의 슈퍼카, 부가티는 그 이름만으로도 경탄을 불러일으키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부가티를 이해하는 10개의 키워드를 뽑았다.
 

1. 에토레 부가티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 · 1881~1947)는 17세가 되던 1898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자전거 및 삼륜차 제조업체의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2개의 엔진을 단 원동기 부착 이륜차를 만들던 그는 1900년에 처음으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자동차 제작기술을 익혔다. 1909년 당시 독일제국 영토였던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몰샹에 공장을 세우고, 에토레 부가티 자동차(Automobiles Ettore Bugatti)를 설립했다. 부가티 모델명에 들어가는 ‘EB’는 에토레 부가티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1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한 ‘부가티의 전설’(Les Legendes de Bugatti) 시리즈의 완결판은 ‘에토레 부가티’로, 부가티는 창업주에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부가티 역사 속 중요 인물과 모델을 기념하는 ‘부가티의 전설’ 시리즈는 총 6가지 테마로 기획됐으며, 테마별로 오직 3대씩 총 18대가 제작됐다. 마지막 여섯 번째 모델인 에토레 부가티 에디션은 역사적 모델인 타입 41 르와이얄(Royale) 중 섀시번호 41111 모델이 바탕이 됐다. 짙은 파란색과 은색 페인트는 푸른빛이 감도는 탄소섬유와 금속질감을 살린 알루미늄으로 재해석됐다. 가격은 235만 유로(약 31억8천425만원)였으며, 공개되기 전에 이미 판매가 완료됐다.
 

2. 로제트 무늬
부가티 가문은 17세기부터 뛰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한 밀라노의 명문가였다. 에토레 부가티의 할아버지 루이지 부가티는 건축가였고, 아버지 카를로 부가티는 아르누보 가구 디자이너로 명성이 높았다. 카를로 부가티에게는 예술계 유명인사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되는 자코모 푸치니와 점묘법으로 그린 알프스 풍경화로 유명한 신인상주의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도 있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한 예술가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에토레 부가티는 심미성을 매우 중시했으며, 엔진과 나사까지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는 엔진룸 내부와 엔진 블록에 로제트(rosette · 장미꽃 모양의 다이아몬드) 무늬를 넣는 등 자동차를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기계로 작은 부채꼴 무늬를 반복해서 새겨 넣어 전체적으로 비늘을 두른 듯한 느낌을 주는 로제트 무늬는 베이론 16.4의 알루미늄 센터페시아에 그대로 재현됐다.
 

3. 춤추는 코끼리
에토레 부가티의 동생 램브란트 부가티(Rem-brandt Bugatti · 1884~1916)는 어려서부터 예술에 재능을 보였다. 카를로 부가티는 그를 공학자로 키우려던 계획을 접고, 밀라노의 브레라 예술학교에 입학시켰다. 졸업 후 프랑스로 건너간 램브란트 부가티는 야생동물에 심취해 파리 식물원과 벨기에 앤트워프 동물원 등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작품 활동을 했다. 클래식 부가티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램프란트 부가티의 조각은 오늘날 예술품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대표작은 〈춤추는 코끼리〉다. 타입 41 르와이얄의 라디에이터 뚜껑 위에 선 코끼리 장식품은 〈춤추는 코끼리〉 연작 가운데 하나를 주물로 떠낸 것이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던 램브란트 부가티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의무병으로 자원입대했다. 그는 종전 후 전쟁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졌으며, 앤트워프 동물원이 사료 부족을 이유로 자신의 작품 대상이 된 동물들을 안락사 시키기 시작하자 크게 절망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그는 1916년 1월 8일 3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가티는 지난 3월 ‘부가티의 전설’ 시리즈 네 번째 모델로 ‘램브란트 부가티’를 선보였다. 램브란트 부가티 에디션은 브론즈 클리어 코팅된 탄소섬유 차체가 특징이며, 실내 곳곳에 〈춤추는 코끼리〉가 부조로 장식됐다. 가격은 218만 유로(약 29억5천390만원)였으며, 공개 시점에 모두 판매가 완료됐다.
 

4. 이사도라 던컨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 1877~1927)은 당대 최고의 무용수이자 오늘날 현대무용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21살 때 유럽으로 건너가 고대 그리스풍 의상을 입고 맨발로 춤을 추며 신무용의 기틀을 다진 그녀는 50살이던 1927년 9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젊은 자동차 기술자 브누아 팔체토와 함께 드라이브에 나섰다. 그녀가 탄 자동차가 무엇이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부가티 타입 35라는 설과 아밀카 그랜드 스포트라는 설이 있다. 이 두 모델은 모양이 매우 비슷해 자주 혼동된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브누아 팔체토를 ‘부가티’라는 별명으로 불렀을 정도로 부가티 자동차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출발하기 전 던컨은 그녀의 친구 마리 데스티가 선물한 러시아 태생 예술가 로만 차토프의 긴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배웅 나온 데스티에게 “난 사랑에 빠졌어”(Je vais a l'amour)라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난 그녀는 목에 두른 긴 스카프가 차체 바깥으로 돌출된 뒷바퀴에 감기는 바람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5. 부가티 오토레일
부가티는 1933년 프랑스 국철에 납품할 철도 차량을 생산했다. 에토레 부가티는 타입 41 르와이얄을 생산하고 남은 엔진을 기관차에 썼고, 다른 부품들도 활용했다. 1933년 시험운행 당시 최고시속 172km를 낸 부가티 오토레일은 현대 고속열차의 시초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33년 5월 파리-도빌 노선에서 첫 운행을 시작했고, 평균시속은 116km이었다. 일부 구간에서는 시속 196km까지 달렸다. 부가티 오토레일은 당시 부가티 재정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고, 총 85대가 생산됐다. 프랑스 국철은 1958년까지 부가티 오토레일을 운용했다.
 

6. 타입 57SC 아틀란틱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은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Jean Bugatti · 1909~1939)가 남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대서양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친구를 기리는 뜻에서 아틀란틱(Atlantic · 대서양)이라고 이름 지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오직 4대가 제작돼 현재 2대만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자동차 가운데 하나다. 1대는 패션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소유하고 있다. 그는 1988년 1천500만 달러(약 160억원)에 매입해 9,600시간을 들여 완벽한 상태로 복원했다. 현재 가치는 최소 4천만 달러(약 428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다른 1대는 미국 옥스나드의 뮬린 자동차박물관에 있다.
 

오픈월드 게임 ‘그랜드 세프트 오토’(GTA) 시리즈에 나오는 ‘Z-타입’은 타입 57SC 아틀란틱을 모델로 한 가상의 자동차다. GTA의 세계관에서 Z-타입은 ‘트뤼파드’라는 가상의 프랑스 고급차 회사가 1937년에 제작한 자동차로 설정돼 있다. 지난해 9월 선보인 ‘부가티의 전설’ 시리즈 두 번째 모델은 ‘장 부가티’였다. 그의 대표작인 타입 57SC 아틀란틱의 이미지를 담은 것이 특징. 도어트림과 시트 사이에는 타입 57SC 아틀란틱의 실루엣을 수놓았다. 장 부가티 에디션의 가격은 228만 유로(약 30억9천만원)였다.
 

7. 부가티 아우토모빌리 SpA
1909년 설립된 부가티는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47년 만인 1956년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987년,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가 부가티 상표권을 인수해 이탈리아 모데나 인근 캄포갈리아노에 공장을 세우고 부가티 아우토모빌리를 설립함으로써 부가티 브랜드를 되살렸다. 다만, 새로운 부가티는 이전의 부가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로마노 아르티올리는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쿤타치를 디자인한 마르첼로 간디니와 쿤타치의 V12 엔진을 설계한 파올로 스탄자니를 영입해 슈퍼카를 개발했다.

부가티는 1991년 9월 15일 에토레 부가티 탄생 110주년이 되던 날 EB 110을 공개했다. EB는 에토레 부가티, 110은 에토레 부가티 탄생 110주년을 뜻한다. EB 110은 V12 3.5L 쿼드터보 엔진으로 최고출력 561마력을 냈다. 1992년에는 최고출력을 611마력으로 끌어올리고 무게를 150kg 줄인 EB 110 SS(슈퍼스포트)를 선보였다. 아르티올리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부가티 아우토모빌리가 불과 설립 8년 만인 1995년에 파산하면서 부가티는 다시 한 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다우어 레이싱은 부가티 공장의 조립라인에 남아 있던 미완성된 EB 110들과 부품을 사들여 ‘다우어 EB 110’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8. 부가티 오토모빌스 S.A.S.
폭스바겐은 1998년 5월 부가티 상표권을 인수하고, 파리모터쇼에서 555마력의 2도어 쿠페 콘셉트 EB 118을 공개했다. 이듬해 부가티 오토모빌스를 설립하고, 제네바모터쇼에서 EB 218,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18.3 시론(Chiron), 도쿄모터쇼에서 EB 베이론 18.4 등 부가티의 새로운 시대 개막을 알리는 3대의 콘셉트 카를 차례로 선보였다. 2000년 12월에는 1856년 건설돼 에토레 부가티의 영빈관으로 쓰였던 유서 깊은 샤토 상 장(Chateau Saint Jean)을 매입해 부가티 본사로 쓰기 위한 재단장에 들어갔다. 2003년에는 생산 공장인 부가티 아틀리에(Bugatti Atelier)를 몰샹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예술가의 작업실을 뜻하는 아틀리에라고 이름 붙인 공장은 착공 1년 만인 2004년에 완공됐다. 2005년 9월 3일, 샤토 상 장과 부가티 아틀리에의 문을 열고 베이론 16.4의 생산을 개시했다.
 

9. 피에르 베이론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려던 피에르 베이론(Pierre Veyron · 1903~1970)은 친구인 알베르트 디보의 설득으로 경주선수가 됐다. 부가티 37A로 출전한 그는 1930년 제네바 그랑프리에서 첫 승을 거뒀고, 1939년에는 부가티 타입 57C 탱크로 르망 24시에서 우승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했다. 그가 속한 레지스탕스 조직의 리더는 1929년 제1회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부가티 타입 35B로 우승한 그로버 윌리엄스였다. 윌리엄스는 1943년 8월 나치에 체포됐고, 1945년 3월 작센 하우젠 강제 수용소에서 처형됐다. 피에르 베이론은 레지스탕스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1970년 몬테카를로와 니스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이즈에서 세상을 떠난 피에르 베이론은 부가티를 대표하는 모델명으로 부활했다.
 

10. 베이론 16.4
2001년 9월 양산 결정과 함께 모델명이 ‘부가티 베이론 16.4’로 최종 확정됐다. 16.4는 16기통, 4개의 터보차저를 뜻한다. 개발단계에서 초고속 주행 시의 안정성과 열처리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양산형은 2005년 10월 11일 전설의 자동차 경주 타르가 플로리오가 열린 곳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마도니에 산에서 첫선을 보였다. V8 엔진 2개를 연결한 W16 엔진은 데뷔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양산차 가운데 최다 실린더 수를 자랑한다.

나사부터 타이어까지 부품 하나하나가 베이론 16.4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됐다. 티타늄으로 만든 나사는 한 번 풀면 파손돼 재사용이 불가능하며, 가격은 개당 150달러(약 16만원)다. 미쉐린이 특수 제작한 런플랫 타이어는 16,000km마다 교체해야 하고, 타이어 1세트 가격은 4만2천 달러(약 4천500만원)다. 3번째 타이어 교체 시 휠도 함께 교체해야 하는데, 휠 1세트 가격은 6만9천 달러(약 7천397만원)에 달한다.

부가티 회장 겸 벤틀리 CEO인 볼프강 뒤르하이머는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벤틀리와 부가티 고객은 확연히 다르다”며, “벤틀리 고객은 평균 8대의 자동차를 소유한 반면, 부가티 고객은 평균 84대의 자동차, 3대의 제트기, 1대의 요트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론 16.4는 총 450대(쿠페 300대, 로드스터 150대)가 한정 판매될 예정이며, 쿠페는 지난 2011년 9월에 300대가 모두 판매돼 이미 생산이 종료됐다. 지난 8월에는 405번째가 생산돼 고객에게 인도됐다. 이미 30대의 주문이 더 들어와 있기 때문에 판매 완료까지 15대만 남겨놓은 상태다.

시장조사회사 샌포드 번스타인이 지난해 8월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베이론 16.4 1대당 461만7천500유로(약 62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발비용과 생산비용을 모두 감안한 것으로, 베이론 16.4로 인한 폭스바겐의 총 손실액은 17억 유로(약 2조3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글 · 임재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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