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럭셔리의 재발견, 30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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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럭셔리의 재발견, 300C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1.0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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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감성을 가미해 미국식으로 표현한 풀 사이즈 세단. 아메리칸 럭셔리가 진화하고 있다

위엄. 300C를 보자마자 든 첫 생각이다. 풍채가 당당하다. 언뜻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이런 대형 세단의 고객층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기 마련. 우스워 보이거나 만만해 보이면 곤란하다. 300C는 풀 사이즈 세단의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다.

가로줄을 촘촘히 넣은 커다란 그릴이 달린 300C의 얼굴은 존재감이 크다. 앞서 가는 운전자가 룸미러를 통해 보면 위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보면 전형적인 3박스 형태다. 쿠페처럼 날렵하게 생긴 세단이 주류를 이룬 지금, 네모난 모양은 오히려 독특한 인상을 준다. 유럽식 디자인을 추구하는 다른 미국 브랜드 제품과 달리 300C에는 미국적 풍미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정직한 3박스 형태지만, 지나치게 완고하거나 고지식해 보이지는 않는다. 곡선적인 요소를 잘 담아낸 덕분이다. 딱딱해 보일만한 부분은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했다. 맺고 풀어준 기교가 절묘하다. 부풀어 오른 근육질 펜더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차체 옆면을 시원스레 가로지르는 캐릭터라인은 스포티하다.
 

뒤는 300C에서 가장 미국차다움이 살아있는 부분이다. 1960년대 미국차를 연상케 하는 수직 테일램프의 역할이 크다. 양쪽 테일램프 사이의 널찍한 공간은 크라이슬러의 엠블럼 ‘프로그레시브 윙’만 붙이고 여백으로 남겼다. 작은 부분보다 큰 그림을 중시하는, 다분히 미국식 표현이다. 외부의 모든 금속 장식은 은은하게 광을 내 차분하고 고급스럽다. 크라이슬러는 ‘플래티넘 크롬’이라고 표현한다.
 

실내는 고급스럽게 꾸몄다. 센터페시아 위쪽에 있는 아날로그시계가 이 차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실내디자인이 외장 디자인 방향과는 약간 어긋나 있다. 직선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 외부와 달리, 실내는 주로 곡선이 쓰였다.
 

시트에서는 미국적 취향이 묻어난다. 품질 좋은 나파 가죽이 쓰인 300C의 시트는 크고 푹신해서 거실 소파에 앉은 듯 편안하다. 실내조명 테마는 밝은 색조의 파란색(사파이어 블루). 계기판도 파란색으로 화려하게 빛난다. 그런데 300C의 품격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한색보다는 난색 계열의 차분한 조명이 낫겠다. 조명은 젊은 느낌을 낸 반면, 우드 트림은 지나치게 고전적이다. 안과 밖, 그리고 실내 디자인 요소들 사이에 미묘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센터페시아에는 8.4인치의 큼직한 터치스크린과 공조장치 버튼, 오디오 다이얼만 있을 뿐이다. ‘유커넥트’(Uconnect)라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각종 기능을 통합하고 버튼 수를 줄였다. 직관적이라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도 화면에서 시트 열선을 켜고 싶으면 스크린 하단 공조장치 아이콘을 터치한 뒤 다시 열선 아이콘을 터치해야 하는 식이다. 사용빈도가 높은 기능은 따로 버튼이 마련되면 좋겠다.
 

센터콘솔에 자리한 컵홀더에는 냉장기능과 온장기능을 함께 넣었다. 컵홀더 2개를 각기 따로 조절할 수 있다. 안쪽의 흰색 조명 띠가 냉장 버튼을 누르면 파란색, 온장 버튼을 누르면 빨간색으로 바뀐다. 냉·온장 기능 자체도 좋고, 시각적인 피드백도 만족스럽다. 천장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파노라마 루프는 개방감이 뛰어나다.
 

엔진은 V6 3.6L 자연흡기 휘발유.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6.0kg·m을 내는 펜타스타(Pentastar) 엔진은 V6 특유의 비단결 같은 소리를 나직하게 내며 거의 2톤에 달하는 300C를 기분 좋은 페이스로 부드럽게 가속시킨다. 소음을 틀어막아 바로 앞에서 돌아가는 엔진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노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소리와 풍절음도 잘 억제됐다.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에 286마력의 심장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저단에서 기어비가 촘촘한 ZF 8단 자동변속기와 합심해 시원하고 매끄럽게 가속을 이어갔다. 고속으로 갈수록 가속감이 현저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속도제한기가 작동하는 속도에서도 엔진에는 여유가 남아 있다.
 

제원표에는 4,800rpm에서 36.0kg.m, 6,350rpm에서 286마력을 낸다고 되어 있지만, 넓은 영역에 걸쳐 힘이 골고루 퍼져 있는 느낌이라 굳이 다그치지 않아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힘이 풍부하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한때 미국 대형 세단은 모호하고 생기 없는 스티어링, 둥둥 떠다니는 듯한 서스펜션, 형편없는 움직임을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300C는 그 시절을 아득한 옛날로 만들어 버린다. 300C의 승차감은 55시리즈 타이어를 끼우고도 생각 외로 단단하다. 고속 주행 시 안정적이고, 전후좌우 쏠림을 잘 억제한다. 작은 요철을 지날 때 약간 거친 느낌이 있다. 승차감은 전반적으로 유럽 세단을 닮았다.
 

저속에서 가볍고 여유가 넘치던 스티어링은 중·고속에서 적당히 무겁고 정확해진다. 센터가 약간 느슨하고 노면 정보를 잘 전달해주지 못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타깃에 맞게 잘 조율됐다고 판단된다.

시승차는 네바퀴굴림 모델이다. 300C의 AWD 시스템은 평소에는 뒷바퀴만 굴리다가 노면 상태나 주행 상황에 따라 네바퀴굴림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능동형 트랜스퍼 케이스와 앞 차축 동력 제한장치가 매끄럽게 작업을 수행한다. 동력 변환은 계기판 중앙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불필요한 구동을 막아 연비를 5% 개선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주행 조건에서 시험해본 결과, 빠른 코너링에서도 네바퀴굴림으로 전환되는 일은 드물었다. 웬만해선 계기판에 표시된 RWD가 AWD로 바뀌지 않았다. 뒷바퀴굴림의 주행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세팅으로 짐작된다. 겨울철에 접어들었으니, AWD를 보게 될 일이 많아지겠다.

300C AWD 모델에는 ‘레인 브레이크 서포트’라는 기능이 들어갔다. 와이퍼가 작동하면 브레이크에 주기적으로 압력을 가해 빗길이나 눈길에서 제동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차의 성격과 한계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과격하게 다뤄봤지만, 사실 300C는 스티어링 휠을 가볍게 쥐고, 느긋하게 시트에 기대어 음악을 들으며 미끄러지듯 여유롭게 달릴 때의 감각이 가장 좋다. 물론 와인딩에도 결코 서투르지 않다.
 

존재감 넘치는 크기에 남성적이고 박력 있는 정통 세단을 선호한다면 꽤 빠져들 만한 자동차다. 잘 조율된 주행감각은 미국차에 대한 지난날의 막연한 의심과 편견을 불식한다. 300C의 기원이 유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다임러·크라이슬러 시기에 개발된 선대 모델은 벤츠 E클래스(W210)와 서스펜션 부품을 공유했다. 현행 300C는 크라이슬러 독자 개발 모델이지만, 서스펜션은 선대 모델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300C는 아메리칸 럭셔리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글 · 임재현 에디터
사진 ·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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