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덜어낸 순수한 기계, 영국의 키트 카
상태바
모든 것을 덜어낸 순수한 기계, 영국의 키트 카
  • 닉 캐킷
  • 승인 2014.03.07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케이터햄 세븐에 도전하는 3대의 트랙데이 스페셜

영국에는 직접 자동차를 조립해서 탈 수 있는 키트 카 문화가 있다. 처음에는 완성차에 매겨지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직접 조립을 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간소한 구조의 ‘달리기 위한 차’를 만드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달리는 데 필요한 것만을 갖춘 소박한 차는 가볍고 날쌔 재미가 있다. <오토카>의 닉 캐킷(Nic Cackett)이 키트 카를 타러 나섰다.
 

키트 카의 최고는 케이터햄 세븐이다. 비록 케이터햄이 세븐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40년 전 로터스로부터 세븐의 생산 권을 산 이후로 옛날의 전통을 꾸준히 이어오는데 공헌한 것만은 최고로 쳐야한다. 그래서 4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버지와 아들이 차고에서 뚝딱거리며 자동차를 만드는 흐뭇한 광경을 계속 볼 수 있게 됐다.

케이터햄 세븐의 뒤를 이어 1980년대부터 다양한 신참 키트 카들이 등장했다. 가격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해 조그만 시장에서도 여럿이 살아남았다. 지금도 영국에는 25개가 넘는 군소 메이커가 세븐과 같은 키트 카를 팔고 있다.
 

이들 중 빼어난 차들을 모아 영국의 블라이튼 트랙으로 향했다. 내가 1년 넘게 타고 있는 차는 케이터햄 세븐 슈퍼스포트. 이 차를 몰고 널리 돌아다녔고, 때로는 저주를 퍼부었지만, 곧잘 빙그레 웃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즐거움을 안겨주는 차다. 몰아붙일 때면 새삼 놀라면서 차와 깊은 유대관계를 쌓았다. 맞다. 사랑에 빠지곤 했다. 활력 넘치는 포드 엔진, 명쾌한 비중의 스티어링, 지극히 정확한 LSD와 충분한 그립이 어우러졌다. 때문에 키트 카의 벤치마크로 충분하지 않을까?

첫 번째 비교 시승차는 R10이다. 경쟁자 중 가장 느린 차다.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타이거 레이싱이 만든 이 차는 106마력짜리 1.6L 엔진을 얹는다. EU의 CO2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출력이 낮아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케이터햄 세븐 기본형인 160과 비슷한 정도. 역동성을 살짝 줄였을 뿐이다. 엔진 출력은 낮아도 몰아붙일 때면 은근슬쩍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과감하게 액셀과 스티어링을 휘두를 때는 적절한 수준의 야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냥 달릴 때는 평탄하다.
 

이번엔 그레이트 브리티시 스포츠카에서 만든 제로(Zero)로 옮겨 탔다. 들어앉는 기분이 상쾌했다. R10보다 맞춤과 마무리가 훨씬 뛰어났다. 카펫도 정성을 들였고, 좌석은 몸을 잘 받쳐준다. 그레이트 브리티시 스포츠카의 길고 깊은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제로의 엔진은 직렬 4기통 2.0L ‘제텍’ 엔진이다. 출력을 182마력으로 끌어올려 속도와 배기음을 강화했다. 서스펜션은 기본형이다. 때문에 차체가 쉽게 기울어졌고, 유연한 스티어링 감각은 트랙에서 전속력으로 돌격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여유롭게 운전하듯이 달렸다. 수동 5단 변속기는 약간 헐렁했지만 엔진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카랑카랑했다. 하지만 힘차게 몰아붙이려 안달할 정도의 흥분은 없었다.
 

그와 달리 로우 스트라이커(Raw Striker)는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객관적으로는 결함이 많은 차지만 특이한 매력이 있다. 이색적인 포드 4.44 디퍼렌셜에 시퀀셜 기어박스의 조합은 특이했다. 차주는 값이 얼만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좌석 조절 기능이 없고 변속기가 매끄럽지 않다고 말해줬다. 한편 차는 언제나 힘차게 잘 달렸다. 직렬 4기통 2.0L 듀라텍 엔진은 208마력을 냈다. 부드러운 제로보다는 좀 고집스럽다.

이에 비해 닥스 러시는 진정한 괴수다. 비교 대상으로는 지나칠 정도의 성능을 갖춘 차라 이번 시승에 나선 다른 차들과는 비교하지 않기로 한다. 거의 대부분을 카본 파이버로 만든 400kg짜리 차체에 약 406마력짜리 엔진을 단다. 엔진은 스즈키의 바이크, 하야부사의 엔진에 구형 F1 터보를 단 것. 차주 던컨 카우퍼는 힐클라임과 스프린트 레이스에 나가 상당한 성공을 가뒀다. 이 차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낸다면 엄청난 드라이버다.
 

하지만 같은 하야부사 엔진을 얹고도 완벽히 다른 차가 있다. 바로 MK 인디 R이다. 케이터햄 세븐과는 좀 다른, 짝퉁 로코스 혈통이긴 하지만 DIY 마니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승차의 엔진은 스즈키 하야부사에 쓰이는 1.3L 엔진. 11,500rpm에서 출력 203마력을 낸다. 꽤 아찔하다.

변속은 큼직한 기계식 패들 시프트로 한다. 대시보드는 카본 파이버. 바이크의 계기판을 심어놓았다. 바이크 엔진을 얹어 저속에서는 다루기 힘들었다. 하지만 제대로 몰아붙이면 엄청난 활력이 샘솟았다. 정확한 스티어링과 듬직한 그립, 초고회전 엔진이 만나 쾌감을 선사했다. 한계 이상으로 몰아붙여 미끄러져도 쉽게 바로잡을 수 있어 더욱 스릴이 넘쳤다.

잠재력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케이터햄, 그리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화끈한 도전자의 비교는 즐거웠다. 시승이 끝나고 가격을 묻자, MK 스포츠카스 관계자는 공장에서 바로 만든 인디 R을 2만 파운드(약 3천470만원)에 주겠다고 했다. 옵션을 단 케이터햄 세븐 슈퍼 스포츠보다 1만 파운드(약 1천 730만원)이나 싸다. 타이거도 약 2만 파운드, 제로도 약 2만 파운드.  다만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옛 방식으로 직접 조립하는 키트를 사면 그보다 훨씬 가격이 내려간다.

글: 닉 캐킷(Nic Cacket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