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쉬움 남긴 급발진 재현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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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쉬움 남긴 급발진 재현 실험
  • 안민희
  • 승인 2013.07.0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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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세미나를 통해 급발진 논란이 다시금 불거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급발진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6월 26일부터 27일까지 치러진 ‘급발진 공개 재현 실험’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 실험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했으며, 지난 5월에 치러진 민·관 합동조사를 보완하는 것이다. 실험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6건의 급발진 추정사고를 조사했다. 하지만 차의 결함이 발견되지 않아 현상 재현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번 재현 실험에서 다룬 항목은 다음과 같다. △ECU 내부 습기 △배터리 차체 접지에 의한 전기장 문제 △ECU 부하로 인한 연산 지연 △연소실 내 카본퇴적 △전기·전자적 오류 △가속페달 오조작 등이다.

▲ 센서 전압 인가 실험 장면
기자가 참관한 26일에는 현대 YF 쏘나타를 대상으로 가속페달 센서(APS) 등 센서 전압 인가, 드로틀 바디 강제 개방 실험을 진행했다. 이 두 건은 평가위원회에서 직접 진행하고, 이후 진행된 자동차 실내 및 ECU 가습, 자동차 부위별 정전기 및 고조파 발생 실험은 신청자가 진행했다.

이번에 치러진 실험결과에 대해 먼저 밝힌다. 전체 실험 결과 이상은 없었다. ECU에 대한 습기, 전기충격, 가열, 회로 단선 등 모든 실험이 정상 값을 냈다. 급발진연구회(회장 김필수)가 주장했던 진공배력장치의 압력서지 현상을 가정한 실험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안전모드로 전환됐고 급가속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는 이번 실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실험 중 하나인 ‘ECU 가습’을 예로 들어보자. 이 실험은 ECU가 습기의 영향을 받아 이상을 일으킬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험의 신청자는 “비가 오는 상황에서 급발진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만일 신청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러 부분을 의심해 볼 수 있다. ECU 또는 센서의 오작동, 고장을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됐다. 실험 전 실험자는 “이 차의 ECU는 수리하며 교환된 상태니 참고하라”라고 전했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다. 이후 실험은 차에 스팀 청소기를 넣어 습기를 가득 채우고, ECU에 물을 뿌려 이상이 없는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건 코미디다. 자동차 내에 스팀 청소기로 습기를 가득 채운다고 하더라도 오작동을 일으킬 확률은 영(0)에 가깝다. 자동차회사가 바보는 아니다. 신차 출시 전 수많은 실험을 거친다. 그 실험 중에는 전자 장비에 이상 전류 및 강한 전자파를 가하는 실험뿐만 아니라, 극서극한에 자동차를 방치하고 며칠간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실험도 있다.

▲ ECU와 EDR 등 자동차 전장 부품들을 분해·전시했다.
ECU에 물을 붓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의 ECU 및 전자 계통에는 미세한 코팅이 되어있다. 방진과 방수, 전자파를 막기 위한 것이다. 안전이 증명된 사항의 실험을 개별 진행 했을 때, 과연 어떤 이상이 일어날지는 의문이다.

급발진은 여러 종합적인 상황이 맞물려 발생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통제 요건들을 하나씩 나눠 진행했다. 솔직히 뻔했다. 정상적인 경우 ECU는 이상 신호가 검출되면 안전 모드로 들어간다. 이미 자동차 회사에서 여러 번 반복한 실험이다.

급발진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요건들을 동시에 적용하는 실험 또한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통제하기 쉬운 하나씩의 변수를 실험하는 것 정도로 급발진을 찾을 수 있었다면, 국토교통부의 뒤늦은 실험보다 자동차회사에서 먼저 찾았을 것이다.

또한, 다이나모 계측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안전과 정확한 계측을 위해 자동차를 다이나모 위에 완전히 묶어 놓고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재현 실험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이날 참석한 업계 관계자는 “만의 하나라도 급발진이 존재한다면, 마땅히 즉각 조취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자동차회사도 급발진의 존재 자체를 찾지 못했다. 찾는다면 무조건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명확하게 급발진이라 정의내릴 수 있는 사례를 찾진 못했다. 만일 급발진 재현이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겠다. 하지만 재현 자체가 안 되는 상황에서 급발진의 원인을 찾아내기란 상당히 어렵다”라고 기자에게 전했다.

▲ 드로틀 밸브 강제 개방 실험 장면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급발진이라는 적과 싸워야 하는 업계 관계자의 말도 이해가 간다. 급발진이 간단한 실험으로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라면, 이미 그들은 답을 찾았을 것이다.

다만 기자는 국토교통부의 자세가 매우 실망스럽다. 센서 전압 오류와 드로틀 강제 개방의 가설에 대한 해답을 공개적으로 제시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실험을 포함하더라도, 이날 치러진 실험은 자동차회사의 실험을 사람들 앞에서 매우 빈약하게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자는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의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급발진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토교통부가 앞으로도 급발진 조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더 나은 수준의 실험을 마련하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기자는 자동차회사 또한 믿지 않는다. 이날 기자는 업계 관계자에게 부품 노후화, 고장으로 인한 급발진 가능성을 물었다. 그는 “고장으로 인한 것은 급발진이 아니다. 어느 누가 엔진이 6000rpm으로 도는데 변속기를 D단에 넣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전자식 변속기의 고장 가능성은 묻지 않았다.

글: 안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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