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데스밸리로. 벤틀리 컨티넨탈 GTC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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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데스밸리로. 벤틀리 컨티넨탈 GTC 스피드
  • 앤드류 프랭클
  • 승인 2013.04.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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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 차를 미워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맨더린 호텔 바깥에 9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골드에서 레드(그중 하나는 고름색 노랑이라 할 수 있었다)에 이르는 화려한 컬러의 9대가 오만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건 우리 여행의 번드르르한 시작이었다. 최근 <오토카>의 전직 편집차장 제임스 메이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몇 년 전 그는 중고 벤틀리 T2를 샀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롤스로이스보다 훨씬 멋졌기 때문이었다. 한데 5년 전 벤틀리는 대박을 터트려 생산물량이 영국 크루에서 독일 드레즈덴의 폭스바겐 공장으로 흘러넘쳤다. 그때 메이는 벤틀리를 팔고 중고 롤스로이스를 샀다. 벤트리를 좋아했지만 그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내가 GTC 스피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만일 몰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 차를 비난한다면 우리 잡지의 이 자리에서 발길에 채일 브랜드는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 GTC는 값비싸고 빠르고 스포티한 모델 가운데 내가 원치 않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오픈카에다 무겁다는 뜻이다. 벤틀리는 이 차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오픈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메이커에 따르면 최고시속 325km. 6.0L 트윈터보 엔진이 내뿜는 맥라렌 F1급 625마력 덕분이다. 하지만 내세우기를 꺼리는 사실이 있다. 무게가 5kg 모자라는 2.5톤이어서 중량 대비 출력이 포르쉐 카이맨 R에 한참 뒤진다.

그러나 깊이 조각된 운전석에 들어가 사방을 둘러보자 값과는 무관하게 스타일과 끝마무리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실내가 몸을 감쌌다. 그리고 보어를 힘차게 찧어대는 12개 피스톤의 아득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장거리 비행에 시달린 글쟁이의 푸석한 등골에 기대의 물결이 넘실댔다. 나는 잔뜩 들떴다. 그 뒤 이틀 동안 거의 운전으로 시간을 보냈다. 골든게이트 브리지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캘리포니아 수도 새크라멘토를 지났다. 뒤이어 산길로 들어서 타호 호수로 올라갔다.
 

거기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발 2,500m 고지대를 따라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매머드 호수를 지나 모하비 사막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여기서 우리는 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에 들렀다. 거기서 컨버터블 벤틀리를 시험할 이상적인 환경을 찾는답시고 온갖 시시한 구실을 둘러댔다. 어쨌든 우리는 엘미라지 호수바닥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속도제한에 얽매이지 않고 루프를 내리고 시속 322km(나르도에서 구형 GTC 스피드를 몰고 최고시속에 도전했다가 317km에 그쳐 실망했었다)에 도전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한데 겨울용 던롭 타이어를 신은 벤틀리를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러다가 삐끗해서 떨떠름한 보험청구서가 날아들까봐 찔끔했다. 할 수 없이 그 특별한 계획은 뒷날로 미뤘다. 이제 우리는 실속있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할지를 면밀히 검토했다. 우리 모두가 이 차를 알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 차는 기계를 다시 손질해 벤틀리가 무기급 성능을 발휘하게 된 벤틀리였다. 구형이 지키던 출력과 속도를 깨트렸고, 조금이지만 기록을 단축했다. 0→시속 100km 가속에 0.4초 줄었고, 최고시속은 3.2km 올라갔다. 모두 출력이 2% 올라가 거둔 성과였다.
 

사실 이 GTC는 그 이상을 담고 있었다. 이런 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벤틀리를 알 필요가 있다. 첫째, 벤틀리는 으레 공식 스펙을 무척 신중하게 잡는다. 따라서 엔진출력이 625마력이라 하면 공기가 희박한 최고온에서도 어느 오너든 625마력을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최고시속이 325km라고 하면 327, 328km과 그 이상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려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플라잉 스퍼로 나르도에서 시승했을 때 최고시속 318km라던 차는 레드라인에서 335km에 도달했다.

게다가 벤틀리는 다른 차를 넘어 파워와 성능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는 저력을 뽐냈다. 스펙을 자세히 보면 스프링율을 개선했고, 앤티롤바는 더 굵고 승차고는 10mm 내려갔다. 서보트로닉 스티어링에는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들어왔다. 하드톱 GT 스피드 쿠페처럼 신형 8단 박스의 혜택을 받고 있다. 여러모로 값진 장비이고, 빈약한 주행반경을 15% 늘렸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 차는 골수 스포츠카 팬들이 당장 끌려들 모델이 아니다. 가장 무거운 레인지 로버보다 훨씬 무거워 행동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숨을 돌려야 했다.
 

서둘러 안락의자에서 일어나려는 뚱보의 동작과 같았다. 스펙상 스피드가 뛰어나도 무게가 걸림돌이었다. 일단 속도가 올라가도 관성이 붙어야만 위력적인 성능을 실감할 수 있었다. 0→시속 160km 가속에 10.0초 이하가 돋보였다. 머지않아 이런 특성을 더 밝혀낼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북적대는 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벤틀리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마음을 끌었다. 나를 귀찮게 굴지 않았다. 실내가 이처럼 싸구려로 보이는 이유를 따질 생각도 없었다. 포르쉐 911 터보 카브리올레와 같다고 할까.

혹은 애스턴 마틴 DB9 볼란테만큼 큰 차임에도 운전석 다리공간이 어울리지 않는데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 SL과는 달리 작지만 쓸모 있는 뒷좌석이 있었다. 때가 되자 벤틀리의 진정한 능력이 저절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승차감. 흔들거리는 컨버터블은 접어두고 쿠페라도 대성공이라 할 만했다. GTC 스피드는 흔들거리지 않을 뿐더러 구조강성에 비례해 발걸음이 부드러웠다. 바람을 잘 다스려 목청을 돋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해발 2,400m에서도 놀라운 난방효율 덕분에 영하 20℃에서도 코트를 입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자 도로에는 단단히 다져진 눈이 덮여 있었고, 몇 달 동안 차가 다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여기서 막강 파워를 시험한다는 것은 도로시승 준칙을 성실하게 지키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알고 싶었다. 모든 전자장치를 해제하고 625마력을 뿜어낼 때 어떻게 되는가를…. 네 바퀴가 모두 팽이처럼 돌아갔고, 폭발하는 굉음이 산골을 울렸다. 하지만 믿음직한 겨울 던롭이 상당한 추진력을 남겨줬다. 그럼에도 이따금 경쾌한 도발(벤틀리가 그립을 풀도록 한층 잔인하고 파격적인 방법으로)로 수백 킬로미터의 잔잔한 정속주행에 스타카토를 넣었다. 그마저 닥쳐올 드라마의 서막에 불과했다.

얼어붙은 매머드 호수에서 40km 떨어진 퍼니스 크리크로 달려갔다. 미국에서 가장 낮고 건조한 곳. 게다가 공식적으로 가장 뜨거운 곳이었다. ‘용광로 계곡’이라는 그 이름이 잘 어울렸다. 이곳 지형은 마치 요철도 없는 달나라를 연상시키고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때문에 고속도로 순찰대는 숨을 곳이 없어 함정단속을 포기했다. 가속 페달을 내리밟자 벤틀리는 순식간에 시속 2km씩 올라갔다. 게다가 빈약한, 때로는 격렬하게 굽이치는 노면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육중한 차체가 도로를 내리눌렀다.
 

전자 댐퍼가 전달한 강철의지가 다듬은 GTC의 보디컨트롤은 어느 메이커라도 자랑할 만했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이처럼 핸들링이 탁월한 2.5톤 컨버터블을 달리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코너에서는 정확히 그리고 열성적으로 파고들어 힘차게 빠져나갔다. 심지어 스티어링을 통해 제법 상큼한 감각을 전달했다. 끝내 언더스티어가 있었지만 극히 가벼워 반가웠다. 문제가 있다면 그 동작의 성격을 가늠해야 한다는 것. 확실히 비범하지만 그처럼 무겁고 구조적으로 타협한 차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DB9 볼란테, 페라리 캘리포니아, 메르세데스 SL과 911 터보 카브리오가 한층 날렵하고 운전재미가 앞선다. 그중 가장 무거운 모델마저 GTC보다 0.5톤 남짓 가볍다. 아무튼 운전에 적극 개입할 수 없는 대신 실생활에 더 큰 의미가 있는 대목에서 보람을 찾았다. 요 며칠 내가 푹 빠졌던 유토피아의 꿈나라에서 실례를 찾을 수 있었다. 컨버터블이라고 드나들기 어려워야 할 이유가 없다. 값비싼 소량생산차가 실내의 인체공학이 엉망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시장에서 가장 세련된 최고급 캔버스 루프를 갖췄다는 내 견해를 바꿔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벤틀리가 이렇게 GTC 스피드를 세상에 내놨다는 것은 그만큼 현명하다는 증거다. 어떤 차는 보는 순간 살갗으로 파고든다. GTC는 그 반대다. 따라서 다른 어느 차보다 오너의 콧대를 드높여준다.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PR에 열을 올리는 스펙을 넘어 진정한 속살을 들여다보려면 몇 시간 동안 힘차게 달려봐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며칠 전까지 만능 사기꾼으로 보이던 이 차가 전혀 다른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DB9만큼 아름답지 않고, 캘리포니아만큼 역동적이지도 않다.

혹은 예상했던 대로 SL63 AMG만큼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지도 않았다. 사실 GTC는 동급의 희귀종. 이론보다 실제에 더 뛰어난 차. 여러 모로 어느 계절에나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쓸데없이 요란한 돈자랑으로 보이던 것이 완전히 자신에 찬 궁극적인 만능‧전천후 럭셔리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나는 전혀 싫어한 적이 없었다. 사실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다.

글: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Bentley Continental GTC Speed
0→시속 100km: 4.1초
최고시속: 325km
복합연비: 6.7km/L(유럽기준)
CO₂배출량: 347g/km
무게: 2495kg
엔진: W12, 5594cc, 트윈터보,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4WD
최고출력: 625마력/6000rpm
최대토크: 81.6kg·m/2000rpm
무게당 출력: 250마력/톤
리터당 출력: 104마력/L
압축비: 9.0:1
변속기: 8단 자동
길이: 4906mm
너비: 1966mm
높이: 1393mm
휠베이스: 2746mm
연료탱크: 90L
주행가능거리: 515km
트렁크: 230L
서스펜션: (앞)더블 위시본, 에어스프링, 안티롤바
             (뒤)멀티링크, 에어스프링, 안티롤바
브레이크: (앞)405mm V디스크
             (뒤)335mm V디스크
휠: 9.5J×21in
타이어: 275/35 ZR21

Aston Martin DB9 Volante
0→시속 100km: 4.6초
최고시속: 294km
복합연비: 6.4km/L(유럽기준)
CO₂배출량: 368g/km
무게: 1890kg
엔진: V12, 5935cc, 휘발유
구조: 프론트, 세로, RWD
최고출력: 517마력/6500rpm
최대토크: 63.2kg·m/5500rpm
무게당 출력: 273마력/톤
리터당 출력: 86마력/L
압축비: 10.9:1
변속기: 6단 자동
길이: 4720mm
너비: 2061mm
높이: 1282mm
휠베이스: 2740mm
연료탱크: 78L
주행가능거리: 502km
트렁크: 172L
서스펜션: (앞)더블 위시본, 코일스프링, 안티롤바
             (뒤)더블 위시본, 코일스프링, 안티롤바
브레이크: (앞)398mm 카본 세라믹형 디스크
             (뒤)360mm 카본 세라믹형 디스크
휠(앞/뒤): 8.5J×20in/11J×20in
타이어(앞,뒤): 245/35 ZR20, 295/30 Z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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