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의 얼굴속에 감춰진 야수의 심장, 포르쉐 카이엔 G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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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의 얼굴속에 감춰진 야수의 심장, 포르쉐 카이엔 GTS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10.2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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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카이엔으로 해본 일이 많다. 피크닉 바구니를 챙겨 봄날의 소풍도 다녀왔고 배에 차를 싣고 섬으로 건너가 황홀한 낙조를 감상하기도 했다. F1 서킷에서 짜릿한 레이싱도 즐겼고 오프로드 체험장의 험로와 진창길을 내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해보고 싶은 경험이 있다. 오토캠핑이다.

오토캠핑에 맛들이고 나서 뻔질나게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에 카이엔을 타는 회원이 있다. 글도 잘 써서 추천후기에 가끔 캠핑 후기가 올라오는데 사진 속 검정 카이엔은 숲속의 캠핑장에서도 근사하게 어울렸다. 후기에 주인은 이렇게 썼다. “미안하다. 니 친구들은 청담동, 가로수길을 누비는데 넌 맨날 이런 데만 데리고 다녀서”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더 부러워졌다. 카이엔으로 떠나는 오토캠핑이라니.

카이엔을 보고 오토캠핑을 떠올리는 건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카이엔은 짐 많이 싣고 쓰임새 많은 평범한 SUV가 아닌 말 그대로 스포츠카이기 때문이다. 포르쉐의 별종이 아니라 스포츠카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날 때부터 스포츠카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갖고 만들어졌다. 몇 년 전 태백 서킷에서 열린 포르쉐 월드 로드쇼에 참가했을 때 전문 드라이버가 태워준 택시 드라이브를 경험하고는 그간 “포르쉐 너마저?”라는 오해와 실망을 딱 멈춰버린 기억이 있다.

카이엔 뒷자리에 앉아 고속으로 헤어핀을 돌 때 무식의 소치를 인정했다. 카이엔은 뼛속 깊이 스포츠카라고. 유행 따라 만든 범상한 SUV가 아니라고. 세상에! 그때 심정적인 속도는 시속 200km로 코너를 도는 것 같았다. 바로 이런 면이 카이엔을 단번에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우뚝 서게 만든 이유다. 가장 빠른 SUV가 되는 것. 포르쉐라면 언제나 가장 빨라야 하니까.

그래도 이번 시승은 반드시 캠핑으로 가리라 마음… 먹었는데 아뿔싸! 시승 당일 비가 오신다. 우중 캠핑도 나쁘진 않은데 문제는 젖은 텐트를 말릴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어깨가 피곤해져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 그 대신 어여쁜 여성을 태우고 좀 멀리로 다녀오기로 했다. 사진가가 차를 건네주면서 “촬영은 다 했으니 편하게 시승만 하시면 돼요”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맘 편히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보기로 한다. 맘만 먹는다면 카이엔에 태울 어여쁜 여성은 줄을 섰다. 게다가 GTS라니까.

“꺅!” 시동을 걸자 엔진소리와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문자로는 도무지 옮길 수 없는 포르쉐 노트. 그냥 한글로는 “부앙!”이라고 쓰기로 하자. 포르쉐를 선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소리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가속을 시도할 때마다 터져주는 배기 사운드는 그 어떤 교향곡보다 가슴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자꾸만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고 틈만 보이면 ‘쏘고’ 싶어져서 옆구리가 근질근질해진다. 그러면 연비는 당연히 손해를 보겠는데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이 장착된 것으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실은 턱없다.

카이엔 GTS에 얹힌 엔진은 카이엔 S의 V8 엔진을 업그레이드해 최고 420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52.6kg·m. 다이내믹한 스포츠 주행에 맞도록 조율된 엔진은 8단 팁트로닉S 변속기와 맞물려 파워풀한 주행을 선보인다.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은 5.7초, 시속 160km 가속은 13.3초, 시속 80km에서 시속 120km 추월가속은 3.8초로 가공할 만한 순간 가속력을 보여준다. 최고속도는 시속 261km. 이렇듯 힘과 속도에 대한 스펙을 지루하게 나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보통의 SUV에겐 최고속도나 제로백 같은 데이터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카이엔은 다르기 때문이다. 제원표에 적힌 저 숫자를 다시 읽어보라. 그냥 딱 잘라서 스포츠카다.

카이엔 GTS는 포르쉐의 SUV 라인업 서열상 카이엔 S와 카이엔 터보 사이에 위치한다. 카이엔 터보와 구별되지 않는 외관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휠하우스는 한층 커진 느낌이고 인상적인 디자인의 20인치 휠은 GTS의 특별한 캐릭터를 한껏 살려준다. 뒤쪽 루프 스포일러와 아래쪽 차체 컬러의 사이드 스커트 역시 개성적이다. 눈으로 스포츠카로서의 카이엔 GTS를 탐한 다음 차에 올라 실내에 오르면 시동을 걸기도 전에 몸으로 먼저 파워와 속도를 느낄 수 있다. 스티치 장식이 매끈한 알칸타라 가죽 소재의 스포츠 시트는 몸에 꼭 맞춘 듯 안정감이 넘치고 착 붙는 촉감이 그만인 스웨이드 소재 스티어링 휠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차를 컨트롤할 것 같은 자신감을 불어 넣는다. 새롭게 장착된 패들 시프트도 스포츠 주행을 한껏 부추기는 요소. 시동을 걸면 포효소리 “부앙!” 이제 심장으로 이 우람한 스포츠카를 체험할 차례다.

차체를 한껏 낮추고 서스펜션을 스포츠 모드에 맞춘 뒤 속도를 높였다. 6,500rpm까지 쭉 뽑아주는 자연흡기 엔진의 파워가 통쾌할 만큼 명치끝을 자극한다. 스포츠 모드에서 변속기는 6단에서 고정된다. 최고속이 6단에서 나온다는 얘기. 7단과 8단은 노멀 혹은 컴포트 모드에서 여유로운, 그리고 경제적인 항속 주행용이다. 비가 흩뿌리는 노면은 속도를 즐기기에 적당하진 않지만 ‘칼질’이 필요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며 주행을 즐기기에 좋았다. 거친 노면을 통과할 때 동승자는 “엉덩이가 딱딱하다”며 불평하면서도 순간 속도를 올릴 때마다 금방 흥분해서는 가는 신음소리를 연신 흘렸고 넘치는 가속도를 즐기기엔 편도 백리 길은 너무 짧았다.

카이엔 GTS은 여자들 앞에서 폼 잡기 좋은 차지만 여성 운전자에게 더 어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단지 포르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차체가 낮아져 안정감이 좋아져서 그런 게 아니라, 스티치가 세련된 알칸타라 가죽 시트가 명품 백을 연상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무엇보다 카이엔 GTS가 강하고 빠른 차라서 그렇다. 진실을 말하자면 강하고 빠른 건 여자들이 더 좋아한다. 차라고 다르지 않다. 다음에 만나는 이 차의 주인은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차주가 내 아내라면 상상만으로 숨이 턱 막히겠지만.

글 : 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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