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배. 그는 만화가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그림체 좋고 철학도 있지만 스토리가 약하다는 둥 만화가 너무 어렵다는 둥 하는 사람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그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꿈이 있다. 아기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이 담긴 그림, 아버지의 그림. 돈이 없어 아버지 친구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하루빨리 성공해서 돈을 벌어 그 그림을 가져와야 한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어머니와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와 정배, 자신을 잇는 단 하나의 매개, 아버지의 그림.
다림. 그녀는 칼럼니스트이며 번역가다. 정확히 말하면 자칭이다. 사실 다림은 친구의 소개로 근근이 잡지에 실리는 칼럼을 손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영 방향을 엉뚱하게 잡아 잘리거나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상상력에 의지해서 모든 것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는 선수다. 번듯한 직업과 아파트가 있는 쌍둥이 남동생은 걸핏하면 무시하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다.
두 사람이 만났다. 엄청난 상금이 걸린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정배는 그림을 찾기 위해 자신의 전공이 아닌 성인만화를 그리려 하지만 스토리, 그놈의 스토리가 문제다. 그래. 스토리 작가를 쓰자. 그렇게 만난 다림. 허풍 심하고 계획도 없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있는 척, 아는 척 하기에 바쁜 그녀. 뭔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정배는 다림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그림을 그려 나간다. 두 사람. 당연히 티격태격이다. 잘 맞을 리 없다. 로맨스?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볼 법한 로맨스는 글자 그대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로맨스다. 우리의 현실의 로맨스는 어쩌면 쩨쩨하고 어쩌면 소심하고 어쩌면 느닷없다. 정배와 다름의 로맨스가 바로 그러해서 두 사람은 서서히 상대를 인정하고 사랑을 시작한다.
글·신지혜(아나운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