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미니멀리스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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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도 미니멀리스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가?
  • 아이오토카
  • 승인 2012.03.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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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 시트로엥 라코스테 컨셉트의 디자이너의 이야기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시트로엥 라코스테 컨셉트는 현대 디자인과 건축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에 충실한 차다. 즉 ‘재료에 충실하라’, ‘간결할수록 강렬하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세 명제에 의해 태어난 차다.

혁명적인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는 집을 ‘생활하는 기계’라고 믿었다. 적어도 그는 직접 지어 살았던 푸에르토리코의 작은 오두막에서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우리들은 그의 제자들이 만든 거대한 아파트와 영혼이 없는 콘크리트 주택단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러나 건축가는 오직 하나의 고객만을 상대한다. 건축가는 한 개의 디자인으로 하나의 고객을 설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동차 메이커는 일생에 집 다음으로 커다란 투자를 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수천 명의 고객을 매달 설득해야만 한다.

덕분에 자동차산업은 순수한 모더니즘적 발상의 습격을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고, 그 주된 이유는 돈을 엄청나게 많이 들인 디자인이 대량으로 재생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차의 모습은 자동차가 선택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고수하고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지 않고, 인테리어는 재료에 충실하지 않으며,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간결한 것은 절대 강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모더니즘에 근거한 차를 만들려는 시도는 몇 번이나 있어 왔고, 수많은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진정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차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왔음은 분명하다. 물론, 몇몇 시도는 성공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기도 했는데 시트로엥 2CV나 오리지널 랜드로버 같은 차들이 그 예다.

최근 들어 이렇게 모더니즘을 제대로 구현한 차는 판유리로 만든 유리창, 해먹으로 된 뒷좌석, 싱글 와이퍼와 비대칭형의 강철 프레스 그릴을 갖춘 1980년의 피아트 판다가 유일했다. 모더니즘의 공식은 더 이상 부활하지 못했다. 철저하게 기능적이었던 르노 4의 재탄생 루머는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단골메뉴이긴 하지만 그때마다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지나치게 검소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간단 단순의 원칙은 지키지만 좀 더 친근하고 좀 더 기술적으로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는 차를 만들기 위한 대안이 있을 것이다. 즐거움과 레저는 드러내지만 반대로 기술적이고 심각한 이미지는 덜어낸 이 차들을 포스트모던 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원칙에 너무 충실하지 않은 차들이다.

1983년의 오펠 주니어(Junior) 컨셉트카는 이런 포스트모던 카의 첫 시도로, 계기판과 지붕 패널을 바꿔 달아 재구성할 수 있는 컬러풀한 도심형 미니카였다. 가변성과 기능성에서 비롯된 형태였다. 폭스바겐은 1992년에 치코(Chico) 컨셉트카에서 비슷한 개념을 시도했다.

더 최근 들어서인 2010년에는, 시트로엥이 여기에 실린 라코스테 컨셉트카를 내놓았다. 파리모터쇼에 나온 싸구려 보석 중 하나로 쉽게 잊어버렸을 컨셉트카다. 하지만 라코스테는 자동차를 경험의 수단으로 여기는 신세대를 위해 젊은 세대의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새로운 종류의 차로 나아갈 길을 아주 잘 제시했다.

라코스테는 셀린 베넷(Celine Venet)이 디자인했다. 34세의 디자이너인 그녀는 PSA(푸조-시트로엥) 소속으로, 지금은 파리 외곽의 벨리지 스튜디오의 벽 너머에 있는 푸조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라코스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심각해질 필요가 없는 차입니다. 조금도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베넷은 4년간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르노의 바르셀로나 스튜디오와 세아트의 마르토렐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휴대폰 회사인 알카텔에서 잠시 일한 뒤에 시작한 자동차 디자인은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자동차 디자인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생활을 쉽고 편리하게 만드는 아이디어들을 바로 일과 연결시킬 수 있었구요.”

베넷의 졸업 작품은 빠르게 공동화되고 있는 프랑스의 시골환경을 고려해, 베이스 섀시를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이동우체국, 병원 그리고 영화관으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가변 유틸리티 차였다. 흥미롭게도, 학위를 받기 전에 그녀가 고등학교에서 전공한 것은 사회복지학이었다. 자동차 디자이너로서는 드문 배경이다.

졸업 후, 그녀는 일본에 있는 닛산 스튜디오의 디자인 탐구 및 쇼카 부분에서 3년간 일하며 일본어도 배웠다. 그녀는 당시를 스스로를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1990년대 르노의 쇼 카 디자인 책임자가 되기 전에 영국 GM과 GM 미국 본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장-프랑수아 베넷(Jan-François Venet)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에 시트로엥로 옮긴 뒤, 베넷은 당시 브랜드 영역 확장을 시도하던 프랑스의 의류 브랜드 라코스테와의 협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녀는 조사한 작은 포트폴리오를 모아서 시트로엥 사람들, 그리고 라코스테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마치 ‘숙제’ 같았다고 회상한다. 개발은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라코스테 디자인 팀에서 2009년 말에 시작되었고 완성까지 9개월이 걸렸다.

“시트로엥에서 만들려고 한 것은 레트로 같은 것이 아니었어요” 베넷의 말이다. “시트로엥에는 느긋함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이 있어요. 다루기 쉽고 운전하기 쉽고 이런 행동들을 좋은 기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죠”

인상적인 스타일링 요소들(테니스 네트를 형상화한 휠, 인테리어에 쓰인 폴로셔츠 직물 등)을 제쳐 놓더라도, C1 크기의 이 컨셉트카에는 여러 모로 심사숙고한 내용이 가득하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맨 처음에 영감을 준 아이템은 두터운 밑창을 가진 스니커였어요. 라코스테의 측면 바디와 휠 아치의 뚜렷한 대비의 바탕은 거기에서 온 거에요. 보디는 작지만 역동적이어서 언제든 모험을 위해 준비되어 있죠. 활짝 열린 측면에는 속도감과 함께 운전자가 평소 갇혀 있는 껍질에서 나와 자유롭게 달리는 이미지를 담았어요”

라코스테에는 유틸리티 차량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한 질문을 담은 디자인 요소들이 가득 담겨있다. 계기판은 최소한의 수준을 제외하고는 극도로 단순화시켰다. 히터 조절장치조차 없는 대시보드에는 크고 네모난 점으로 구성된 커다란 LCD 띠를 넣었다. 페달은 바닥에 붙은 두 개의 조그마한 패드가 전부다. 기어 레버는 T바 아래의 천장 마감재로 옮겨 놓았다. 트렁크는 거대한 서랍처럼 슬라이드 방식으로 나오고 후방 시트의 쿠션부는 트렁크로 움직일 수 있어 실내 뒤쪽을 고무 완충재로 둘러싸인 커다란 짐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가능한 한 단순하게 축소시켰습니다. 저는 단순함의 철학을 믿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짜증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고지식하지는 않지만 낙관적이면서 느긋한 구석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운전자 중심적이지 않은 차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껍질을 만들어 씌우는 대신 지붕을 열고 비와 바람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친구와의 우정이 샘솟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그녀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려는 이러한 접근방식이 여성적 사고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물어 보았다. “여성적이라기보다는 세대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정과 단순함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 차에 담겨 있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기술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친구와 가족을 멀리하게 될 만큼 우리는 정보 과잉에 시달리고 있으니까요”

사실, 베넷이 ‘자동차의 개념을 배제한다’고 말하는 열정은 뭉툭한 보닛 위로 밀려 나와 접히는 앞유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대시보드 위로 접어놓을 수 있는 스티어링 휠 같은 세부적인 부분으로까지 확대된다.

그 결과로 해변 언덕의 오두막 같은 차가 만들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베넷의 표현처럼 매우 남부 프랑스 같은 분위기의 차이면서 한편으로는 르 꼬르뷔제의 오두막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의심할 바 없이 모던하면서도 훨씬 친숙하고 친근하다. 신세대에게 자동차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냥 자동차를 더 친숙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도 최소한만 남겨두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양산차 업체가 지난 수십 년간의 관행과 주장을 모두 뒤집어엎는 이런 차를 생산할 수 있을까? 전후 궁핍의 시대가 끝나면서 미니멀리즘의 상징과도 같았던 비틀과 미니는 사라져버렸다. 풍요가 미덕인 이 시대에 2CV나 르노4를 부활시키려는 시도 또한 시도에만 머물렀다.

아마도 베넷이 제안한 자동차의 ‘자동차다움’에 대한 제안은 우선 올해 르노 트위지의 출시를 통해 시험대에 오를 듯하다. 이 전기차 역시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옆 부분이 개방되었으며 달리기에 필요한 최소한만 갖추었다. 만약 트위지가 시장에서 통한다면 라코스테 또한 환상의 차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본에 충실했던 다섯 대의 차들

1961 르노4
30년간 총 800만대 판매되었지만 부활하기에는 너무 실용성을 중시했다.

1969 BMC 9X
미니의 후속. 더 작고 더 가벼웠지만 실내는 넓었다. 부품수도 42%나 적었다.

1983 오펠 주니어
실내 구성을 바꿀 수 있었던 초기 포스트모더니즘 컨셉트카.

1985 아프리카
2CV의 부속과 합판으로 만든 개발도상국용 차.

2004 피아트 에코베이직
무게가 750kg에 불과했고 플라스틱 보디와 초염가 생산방식으로 만든 초고연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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