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AMG가 다듬어 내놓기 시작한 G-클래스가 떠맡고 나선 게 바로 그런 역할이었다. 물론 이 차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세상에 나온 G-클래스는 벤츠의 최장수 모델이다. 아울러 구체적인 계획표에 ‘생산 종결’이 쓰여 있지 않은 유일한 제품이기도 하다. 우리 눈앞에 등장한 이 차는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업그레이드를 거친 G-클래스다. 앞서 말한 세 부류의 팬층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재발명’을 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걸작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콘 같은 차를 재발명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느냐다. 이 경우 메르세데스는 알루미늄 살갗 밑에 있는 거의 대부분을 바꿨다. 하지만 모습만은 잘 보존했다. 윈드실드를 뒤로 기울여 바람소리를 줄이고 대시보드에 박힌 수많은 디지털 다이얼 공간을 좀 더 넓히고 싶은 유혹을 받았지만, 바꿔봐야 크게 손질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앞좌석에서 내다보이는 절벽 같은 전방시야를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도어 힌지도 눈에 띄게 그냥 뒀다. 도어 개폐 메커니즘도 그대로 넘겨받았다. 덕분에 오너들이 삐거덕거리는 기계적 사운드를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신형은 모든 규격이 커져 길이 53mm와 너비 64mm, 높이 15mm가 늘었다. 그밖에 G-클래스의 근본적인 변화는 실내에서 드러났다. 구조적으로 실내는 네모난 패널을 살려 고전적인 감각을 유지했다. 네모난 패널은 2개의 12.3인치 디스플레이와 나란히 놓였다. E-클래스에서 빌려온 부품이 많았다. 하지만 안락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알맞게 부티가 났다. 그런데 이 차 안에 디자인광을 뒤집을 만한 변화는 없었다(나아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든든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드라이버가 메르세데스의 전면개조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앞 서스펜션 터릿을 연결하는 신형 브레이스의 힘은 대단했다. 사다리 프레임과 보디의 비틀림 강성이 50% 이상 올라갔다. 역사적으로 G-클래스는 저기어 재회전볼 세팅을 적용해왔다. 때문에 일단 코너 입구에 들어가면 핸들을 풀기 시작해야 출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G-클래스 오너들은 오래전부터 불만을 터트렸다. 결국 지금은 전자기계식 랙&피니언으로 바꿨다. 이와 같은 변화를 위해 메르세데스는 튼튼한 솔리드 앞액슬을 버렸다. 대신 사다리 프레임에 직접 올린 더블 위시본을 썼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G-클래스의 엄청난 지상고를 유지하기 위해 AMG 디자인팀은 아래쪽 위시본의 접착점을 최대한 높여야 했다. 따라서 1mm를 다퉈야 했다. 공교롭게도 액슬간의 지상고는 6mm 늘어 241mm로 올라갔다. 덕분에 토요타 랜드크루저를 계속해서 앞서나갔다. 이탈각과 도하수심을 비롯해 이 차의 오프로드 활력은 책 한권을 채울 만큼 많았다. 험악한 오프로드에 들어가면 신형 G-클래스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항목에서 구형을 앞질렀다. 한편 우리는 이 차를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의 매끈하게 흘러가는 아스팔트에 올렸다. 그러자 새 차는 수 십 년간 G-클래스를 외면했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빼어난 핸들링이었다.
현대화한 앞액슬에 더해 신형 리지드 뒷액슬이 뒤를 받쳤다. 파나르 로드를 쓰는 4개 트레일링암이 원치 않는 횡 운동을 막았다. AMG 모델이 신고 있는 굿이어 이글 F1 타이어가 말을 잘 들었다. 롤링은 스티어링 인풋과 조화를 이뤘고, 타이어 접촉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마찬가지로 무게중심이 아주 높아 앞 타이어가 언더스티어에 시달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지점이 언제 다가올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당연히 코너에 들어갈 때는 참을성이 있어야 했다. 그러면 G63은 뒷바퀴로 만족스런 균형을 잡아 점진적으로 토크를 노면에 전달했다. 약간 심술궂지만 구식 재미를 보여줬고, 황당하게 빠르기도 했다. 50/50 토크분할을 후방 편향적 60/40으로 조절해도 역동적 성능을 해치지 않았다.
이로써 드라이섬프의 형제 메르세데스-AMG GT R 슈퍼카를 뛰어넘는 위력을 뽐낸다. 최고시속은 220km. 한데 0→시속 100km 가속시간이 4.5초여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강 엔진은 메르세데스 9G-트로닉 토크컨버터 박스와 짝지어 실로 위풍당당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5.5L M157만큼 날이 서지는 않았으나 볼륨만으로는 구형 못지않게 거창했다. 가령 크루징에서 멀리나마 나란히 달리는 차가 있다면 옆구리로 빠지는 배기가 위협적이었다. 이 차는 여전히 소심한 드라이버는 금방 지쳐버릴 괴물이었다. 이런 점에서 G500·G350d와는 달랐다. 신형 G-클래스는 검증해야 할 항목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다음 기회에 완전한 시승을 해야 할 대상이다. 새 차는 풍부한 핵심 성격을 지키면서도 폭넓게 다시 뜻매김한 머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