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만 해도 재규어는 연간 6만 대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이제는 F-페이스 한 모델만으로도 그만큼은 판다. XE가 XF의 아래 모델인 것처럼, E-페이스도 F-페이스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는다. 대다수 다른 차들에서 ‘E’라는 글자가 전기를 뜻하는 것과는 다르다. E-페이스는 이런 차다. 재규어에게는 일탈이나 다름없는 첫 소형 SUV이지만, 사람은 우아한 세단과 스포츠카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이안 칼럼의 작풍이 뚜렷한 디자인을 입은 4.4m 길이의 SUV가 등장한 이유다.
차체 구조는 흥미롭다. E-페이스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트와 레인지로버 이보크 플랫폼이 바탕이 되었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생산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영국 해일우드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생산능력이 포화상태이기 때문. 늘 그렇듯 사람들이 SUV를 좋아하는 탓이다. 그 대신 이 차는 먼저 오스트리아에 있는 매그나가 만들고, 나중에는 재규어랜드로버의 중국 현지공장에서 생산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차체 앞쪽에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고 모노코크 구조 대부분이 철제인 이 차는, 과거 재규어 모델들처럼 뒷바퀴굴림 방식을 쓰는 대신 거의 앞바퀴굴림 모델처럼 설계했다. 시승한 차는 네바퀴굴림이었지만 출시 때부터 앞바퀴굴림 모델도 판매한다.
이보크와 크게 다른 점들은 또 있다. 스티어링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앞 서스펜션 서브프레임을 섀시에 견고하게 설치했다. 뒤쪽 서스펜션은 재규어의 인테그럴 링크 구조를 쓴다. 그러나 최저지상고와 차체 높이가 이런 수준이고 대부분 강판 소재로 된 모노코크 구조를 쓰는 차는 부분적으로 경량소재를 사용하더라도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시승차로 나온 모델의 무게는 1894kg으로 같은 엔진의 F-페이스가 1770kg인 것과 비교하면 E-페이스는 100kg 이상 더 무겁다.
실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재규어다운 모습이다. E-페이스 실내는 F-타입에서 처음 시작한 주제를 따라서, 운전석과 동반석 영역을 뚜렷하게 구분했다. 동반석은 탁 트인 대시보드가 마치 화려한 사무실 로비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폭포장식처럼 떨어져 내리고 운전석은 좀더 운전자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커다란 손잡이가 놓여 있다. 일부 플라스틱은 독일차에 쓰인 것들만큼 견고해 보이지는 않고, 기어레버 주변의 커다란 금속 색상 플라스틱은 빛 반사가 심하다. 그러나 만약 실내가 프리미엄 느낌이 나는지 묻는다면 확실히 그렇다고 하겠다.
P300이라는 표시가 붙은 이 차의 엔진에 물리는 트랜스미션은 ZF 자동 9단이고, 가로배치엔진에 알맞게 특별히 설계했다. 이 모델에서는 네 바퀴 모두를 굴린다. E-페이스에 올라간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두 종류다. 하나는 이보크에 쓴 것과 다를 바 없는 할덱스 시스템이다. 일반조건에서는 앞바퀴를 굴리지만, 바퀴가 헛돌면 최대 100%까지 뒷바퀴로 구동력을 전달한다.
다른 종류는 가장 출력이 높은 가솔린과 디젤모델에 쓰는 GKN 시스템인데, 하필이면 포드 포커스 RS 것과 같다. 이 시스템은 더 영리하고, 필요할 때 뒷바퀴로 토크를 보내는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 뒤 디퍼렌셜 양쪽에 클러치가 있어 왼쪽과 오른쪽으로 배분하는 동력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쓴 목적은 E-페이스에 뒷바퀴굴림 느낌을 더 강화하려는 데 있다. 포커스 RS에서는 뒤 차축으로 토크의 최대 70%를 보낼 수 있지만, 이 재규어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재규어는 이 부분을 공개하기 바란다) 이유로 최대 50%만 뒤쪽으로 보낸다. 적응형 댐퍼는 나중에 더해질 예정이고, 21인치 휠이 추가된다.
얼마나 역동적일까? XE와는 얼마나 비슷할까? 글쎄. 상당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실내 수납공간은 적절하고, 뒷좌석은 납득할 만하며, 트렁크 용량은 577L에 이른다. 스티어링 휠은 꽤 넓은 범위로 조절할 수 있고, 록투록 약 2.5회전인 스티어링 휠 움직임은 전형적인 재규어식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뒷바퀴굴림용 ZF 8단 자동변속기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러움은 이 차에 쓰인 9단 변속기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마치 듀얼클러치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브레이크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 자연스럽게 천천히 움직이는 정도가 덜하다.
차를 몰고 50m 시험을 해봤다. 차에 대한 느낌이 쏟아져 나올 만큼 중요한 첫 시승이다. 재규어라면 대개 나긋나긋하고 옛 친구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곳에서, 이 차는 약간은 ‘뉘신지?’라고 묻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나면 개선된 차체 기울어짐과 승차감을 느끼게 되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키 큰 차가 꾸준히 타협을 원한다. 내키는 대로 차를 몰면 키 크고 역동적인 차의 까다로움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차체를 높여 롤 중심과 무게중심을 높이면 코너에서 차가 기운 채로 타이어 접지력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커진다. 따라서 안티롤바를 강화하면 그런 현상이 줄어들지만 그와 함께 승차감에 영향을 끼친다.
문제 해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적응형 댐퍼나 능동형 안티롤바를 다는 것이다. 전자는 E-페이스 일부 모델에 쓸 예정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어느 쪽이든 모두 근본적으로 큰 키 때문에 무거운 차를 더 무겁게 만든다. 그러나 재규어는 반드시 멋지게 달려야 한다. 사람들이 재규어를 사는 두 가지 큰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재규어는 늘 동급에서 가장 멋있는 자동차고, 달리기가 만족스러운 차다. 그러나 이 차급에서는 역동적인 주행능력으로 돋보이기는 쉽지 않다. 적당히 타협한 차들이 계속 나오는 이상, 재규어는 현실적으로 최대한 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처럼 힘없는 칭찬을 곁들여 혹평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은 높이가 1.65m에 길이는 4.4m이면서 XE처럼 달리는 차를 원한다. 욕심이 크다고나 할까.
E-페이스는 확실히 고유의 개성이 있다. 재규어 전매특허인 스티어링 감각 그리고 전통적인 재규어다운 승차감은 아닐지언정 차체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다스리는 특성-그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에서 비롯되는 승차감은 예상대로 훌륭하다. 커브를 달릴 때에도 E-페이스는 투지로 밀어붙이는 것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언더스티어 상태가 되지만 잘 억제하고, 급격한 코너링에 차체 뒤쪽이 잘 따르는 것은 물론 포커스 RS처럼 토크 배분도 잘 이루어진다.
뒷바퀴굴림 XE 세단이라면 아주 평범한 모델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주행감각을 즐길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앞바퀴굴림 포드 피에스타만큼 재미있는 차일까? 별로 그렇지 않다. 하지만 좋은 차이고 능력이 뛰어난 차냐고 묻는다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차 높이, 시야, 차체 제어 특성, 접지력, 구동력 그리고 힘찬 달리기를 기준으로 능력을 이야기한다면, 이 차는 앞서 말한 두 가지 특성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빠른 차일 것이다. 엔진은 회전수가 높을 때 약간 불편하지 않은 요란함이 있지만 차분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차들이 모두 그렇듯, 엔진이 내는 소리보다는 빼어난 모습이 더 돋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 눈길이 쏠린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쳐다보고, 사진을 찍고, 차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차와 브랜드에 대해 대단히 좋은 평가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이 E-페이스에 4개의 별점이 주어지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