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현인의 경량 오픈카
상태바
세 현인의 경량 오픈카
  • 맷 프라이어, 맷 샌더스, 닉 캐킷
  • 승인 2017.05.23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ORGAN 3 WHEELER
맷 프라이어(Matt Prior)

신약성경 마테복음 2장 1절에 따르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한겨울에 동방박사 3명이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를 경배하려 찾아왔다. 우리 성경은 ‘동방박사’라 했으나 영어성경은 이들을 세 현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리 <오토카>의 세 사나이는 스스로를 한겨울에 오픈카를 몰고 나선 지혜롭지 못한 세 얼간이(three unwise men)라 불렀다.

그들은 생뚱한 겨울축제에 한여름용 오픈카 3대를 몰고 나와 수백km 떨어진 혹한의 땅을 휘몰아치기로 했다. 기껏 개를 데리고 이웃 펍을 오갈 고장이었다. 우리 시승팀은 나와 닉 캐킷(Nic Cackett), 맷 샌더스(Matt Saunders)로 짜였다. 여기서 각자 다른 차를 몰고 서로 상대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미리 알려야겠다. 우리가 다른 차를 제치고 하필이면 모건 3 휠러를 골랐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그건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하자. 모건 3 휠러를 연속 13시간동안 몰고 나자 손가락 감각이 사라졌다. 그래도 케이터햄 세븐이나 아리엘 노매드를 몰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그 까닭을 밝히겠다. 

 

어쨌든 이번 도로여행은 영국 남서해안에 가까운 체더 협곡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웨일스의 해안에서 마무리했다. 그 중간에 몇 곳의 절경을 마음껏 즐겼다. 타이밍과 공격무기가 모두 황당하다고 밑자리를 깔고 나왔다. 그럼에도 날씨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드라이빙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공교롭게 체더는 서머싯주 크루컨의 아리엘 공장에서 멀지 않았다. 거기서 샌더스는 노매드를 받아왔다. 캐킷은 잉글랜드 서리에 있는 케이터햄 판매본부에서 세븐을 넘겨받았다. 나는 <오토카>의 장기시승차 모건 3 휠러를 몰고 나왔다. 

나는 그냥 재미로 차를 몰고 다니기를 무척 좋아한다. 에어컨과 블루투스 그리고 팝 마스터도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나의 모건은 이미 상당한 거리를 달려왔고, 따끈한 음료와 샌드위치를 들고 지도를 살피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게다가 난방장치를 손댈 필요가 있었다. 3 휠러에는 열선 좌석이 있었으나 히터가 없었다. 

 

어쨌든 M3/A303 고속도로는 모건에 가장 어울리는 코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체더 일대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대형 V2 2.0L 엔진이 공회전에서 온몸을 흔들었다. 그때 섀시의 구조강성에 대한 걱정은 싹 가시고 말았다. 그 대신 통괘한 굉음이 단단한 암벽을 흔들었고, 저절로 웃음이 터져 입이 쩍 벌어졌다. 

그밖에도 미소 지어야할 일이 많았다. 먼저 스타일이 그랬다. 운전위치도 썩 좋았다. 직선적이고 느긋하며 나직했다. 마치 욕조 바닥에 앉아있는 듯했다(때로는 비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실제로 그럴 수도 있었다). 간격과 비중이 좋은 페달, 반응이 상큼한 스티어링과 직선적이고 적극적인 엔진 반응이 그랬다. 

 

모건의 역동적 성능도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케이터햄 및 노매드와 같은 의미의 스포츠카는 아니었다. 게다가 노매드는 역동성으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차로 꼽혔다. 반면 모건은 하나뿐인 뒷바퀴로 돌아갈 수 없는 요철이 있었다. 하지만 보디 컨트롤과 승차감, 그리고 핸들링이 좋았다. 슬쩍 언더스티어로 몰아넣자 겨울 타이어를 신긴 뒷바퀴가 저속에서도 스핀을 일으켜 주행라인을 흔들었다. 

한편 우리는 사진 찍기 좋은 자리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서머싯을 떠나 웨일스를 향했다. 도중에 그림 같은 경치를 찍기 위해 명승지에도 들렀다. 세븐과 노매드는 일찌감치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건은 달랐다. 날씨가 아주 나빠 제대로 앞을 보려면 에어스크린 가장자리를 돌아봐야 했다. 도로는 조용했으나 모건의 속도가 너무 느려 시속 100km는 제한속도나 목표가 아닌 이룰 수 없는 야망같았다. 

보는 이를 사로잡은 것은 스타일, 사운드와 감각만이 아니었다. 냄새도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흙탕, 소똥, 연료, 후끈한 배기, 심지어 화끈한 스카렉스트릭 엔진의 열기도 마찬가지였다. 3 휠러는 지극히 낭만적이었고 격정적이었으며 드라이버를 완전히 끌어들였다. 모건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샤워를 해야 하는 타입이었다. 경이롭고 눈부셨다. 그러는 사이에 요금소가 있는 세번 브리지에 들이닥쳤다. 요금소 직원이 그냥 통과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세바퀴 모터바이크니까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이래도 멍청한가?
 

ARIEL NOMAD
맷 샌더스(Matt Saunders)

남부 웨일스가 저쪽 어디에 있었다 - 적어도 나는 그러기를 바랐다. 아리엘 노매드의 운전석에서 보이는 거라고는 안개에 싸인 세번 브리지뿐이었다. 다리,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모든 차량이 높이 150m 허공에 떠있는 것 같았다. 그 일대를 거대한 구름이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 시승차에 달린 5000파운드(약 742만원)짜리 오린스 댐퍼라면 그 정도의 공중낙하는 견딜 만했다. 

이 환상적인 차의 운전대를 잡는 시간이 길수록 자신감이 부쩍 늘어났다. 경량 스포츠카가 투어링에서 이처럼 좋을 수는 없었다. 내가 뒤따르는 케이터햄과 모건은 분명히 그렇지 않았다. 두 차의 드라이버는 벌써부터 무전을 통해 다음에 들어갈 주유소를 들먹이고 있었다. 한데 나는 이때 50L 연료탱크(체더부터 100km를 달려왔는데도 90%가 남아있는)를 깔고 있었다. 풀사이즈 윈드실드(서리제거기, 와이퍼가 달린)가 앞을 가려줬다. 이 차는 사이드 페어링이나 도어가 없었지만 오른쪽 팔꿈치의 바람을 잘 막아줬다.  

 

아리엘 노매드를 손질한 사람의 너그러운 인심 덕분에 나는 편안하고 자신만만했을 뿐 아니라 몸이 따뜻했다. 노매드에는 차가운 겨울날에 대비해 난방 장비가 갖춰졌다. 12V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전기담요와 전기조끼 그리고 열선장갑이 마련됐다. 실로 메르세데스 S클래스의 장비로나 어울릴 수준이었다. 다만 S클래스보다 훨씬 재미있고, 루프에는 4개 루프바 빔이 줄지었으며, 케이블 윈치를 달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비공식 헤드업 디스플레이마저 갖췄다. 계기 디스플레이의 변속램프는 고정 스티어링 꼭대기에 막혔다. 윈드실드와 자연스런 시각 바로 위에 완벽하게 반사됐다. 

노매드의 파워트레인은 장거리 정속주행에도 잘 어울렀다. 우리는 M4 도로를 따라가다 북쪽 브레컨 비컨스를 향했다. 상당한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했다. 다른 두 대보다 기어비는 더 느슨했고, 그들보다 토크가 더 컸다. 노매드는 고속도로에서 아주 느긋했다. 조용하기는 글러버렸으나 맛깔스런 액셀을 밟을 때마다 슈퍼차저가 쓰레기통에 갇혀 화난 5살배기의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헐렁한 안전벨트가 딱딱한 등받이의 조수석을 끈질기게 쓸었다. 소음을 피할 수 없었고, 귀마개가 필요했다. 

 

훨씬 재미있는 A 및 B급 시골길에 들어갔다. 우리 3대 대열의 꼴찌를 달리는 내 자리가 최상이었다. 나는 플랫 캡을 쓴 사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늘 시승 드라이버로 체격이 딱 알맞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모건 3 휠러에서 나오더니 속도가 뚝 떨어지는 까닭이 무엇인지 살피고 있었다. 우리는 느린 차량대열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차량점검을 잘하고 있었다. 다시 그를 실은 차는 절묘하게 잔잔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앞을 달리던 케이터햄은 로터리와 교차로를 힘들이지 않고 빠져나갔다. 

그러나 노매드는 어느 라이벌 못지않게 역동적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내가 이전에 몰아본 어느 모델보다 승차감이 훨씬 단단하고 핸들링이 평탄했다. 상당히 무겁고 덜덜거리는 스티어링이 그보다 좀 더 똑똑히 덩치를 알려줬다. 하지만 여전히 놀랍도록 나긋하고 괴기할 만큼 안정된 승차감을 보여줬다. 때문에 둔덕을 만날 때마다 좀 더 빨리 달리고 싶었다. 

 

우리는 좁고 도로 표지판이 없는 B급 도로에 들어섰고, 도로변 울타리가 바싹 다가왔다. 카마던셔의 숲과 골짜기가 우리를 맞았다. 중형 해치백은 이 구간이 넓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매드처럼 작은 차로 달릴 때는 다음 코너를 걱정할 까닭이 없었다. 불과 1km 구간에서 노면이 건조했다가 습기가 찼다가 또 진창으로 변덕을 부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립을 찾으려 버둥거릴 까닭이 없었다. 스티어링이 접촉정보를 아주 명쾌하게 전달했기 때문에 브레이크 페달 감각이 안티 록처럼 안전장치로 아주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그런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 겨울 길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 너무 쉬워 2시간쯤 남겨두고 숲속의 진창길에서 재미를 보기로 했다. 스타일에 힘입어 아리엘과 세븐 사이에 재미있는 진창싸움이 벌어졌다. 둘 다 똑같이 균형이 잡히고 조절력이 뛰어났다. 우리가 자갈길을 찾았을 때 노매드는 때를 만났다. 단연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했다. 

앞으로 내 안경에서 흙을 닦아내고, 신발에서 잔돌을 털어낼 일이 남았다. 하지만 그밖에 어느 새 차가 한겨울의 어두운 한 달을 눈부시게 빛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밖에 수많은 세팅과 시나리오에서 그토록 강력한 매력을 발산할 새 차가 얼마나 나올까? 어느 라이벌이 이토록 완전하고, 이토록 뛰어난 기술을 담아내고, 이토록 쓸모있고 재미있을까? 내 눈에 들어온 모래와 내 입안의 떫은 흙맛이 신기했다.  
 

CATERHAM SEVEN 310R
닉 캐킷(Nic Cackett)

진창을 뒤집어쓴 늙고 불쌍한 샌더스. 마치 안경 쓴 네오와 같은 몰골로 노매드에 갇혀 있었고, 매트릭스의 열과 연결돼 있었다. 세븐을 타고 있던 나는 12V 전기용품을 쓸 필요가 없었다. 사냥개에 달라붙은 진드기처럼 작은 실내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방형 모노코크를 파고드는 것은 아리엘의 오렌지 립케이지를 타고 곡예를 하는 것보다 쉬웠다. 다만 다이어트로 한 해를 더 보냈으나 S3 섀시의 앙상한 콕핏에 맞추기는 어려웠다. 

310R은 틸릿 시트를 달고 나왔다. 내가 몰고 다닌 장기시승차 슈퍼스포츠와 똑같은 시트였다. 플라스틱 거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공주처럼 드라이버의 몸통을 죄었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일단 안에 들어가 4점 안전벨트를 매면 케이터햄은 합법적인 다른 어떤 로드카 못지않게 순수한 드라이빙 준비를 마쳤다. 마치 대포에 장전된 포탄과 같았다. 

 

여기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310R의 1250파운드(약 185만원)짜리 ‘날씨 보호’(WP) 옵션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히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소프트톱 때문은 아니었다. 한데 케이터햄이 재치있는 이름을 갖다붙인 완전한 윈드실드와 비닐 도어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이들을 달고 헤어왁스보다 머리를 보호하기에 좀 더 좋은 것(프라이어와 샌더스가 시속 100km 이상에서 써야 했던 본격적인 헬멧은 아니다)을 마련해야 했다. 아울러 겨울 드라이빙 유토피아에서 이상적인 체온을 유지하려면 6겹의 옷을 입어야 했다.

한편 케이터햄은 출력을 살짝 올려 큰 선전효과를 거뒀다. 세븐의 152마력은 슈퍼스포츠에 담긴 똑같은 자연흡기 1.6L 포드 시그마 엔진의 140마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어쨌든 이 모델은 파워, 스피드와 가격의 최고 타협이라는 명성을 그대로 살렸다. 

 

샌더스는 그룹 B 레이스카처럼 중부 웨일스의 새카만 아스팔트를 누볐다. 목석같은 심장의 소유자, 사고가 날까 벌벌 떠는 심약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샌더스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20분 뒤 임시 도로 표지판이 나왔다. “전방 커브의 진창 주의!” 나는 쿠웨이트의 모든 고급 휘발유를 준다 해도 세븐과 바꿀 생각이 없었다. 물에 젖은 풍경에 입이 쩍 벌어지고 머리가 텅 빈 인간에게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있었을까? 그런 기억이 없었다. 한 시간 뒤 나는 이 자랑스런 대열의 선두에 다시 나섰다. 들판과 골짝이 얼룩진 카만턴셔를 가로지르며 자르고 내려꽂히고 떠올랐다. 어두워가는 아름다움, 퍼덕이는 성난 기류와 완벽한 랙 앤 피니언이 무게 540kg 세븐을 다스리는 힘찬 스릴만이 살아있었다. 

   
 

여기서 완전신형 에이븐 WV7 겨울타이어가 힘을 보탰다. 그 타이어를 신기기 위해 310R의 날씬한 13인치 합금 휠 대신 15인치를 달아야 했다. 그럼에도 성능은 그대로 빛났다. 비교적 온화한 조건에서 빛바랜 겨울타이어를 넘어섰다. 린브라이언 저수지를 둘러싼 도로는 길이 약 35km의 1차선 아스팔트였다. 우리 세 각다귀가 먹기 위해 싣고 온 도시락보다 더 큰 차가 달리기에는 아슬한 구간에서 황당한 재미를 맛봤다. 

그러나 몰번, 크루컨과 다트퍼드로 가는 길과 아찔한 즐거움이 우리를 압도했다. 웨일스의 구름장이 시커멓게 짙어올 때 우리는 해변으로 가는 마지막 구간에 접어들었다. 사진기자 루크 레이시는 어스름의 마지막 촬영을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투입했다. 프라이어는 그 이전의 오후 활동을 ‘적절했다’고 간결하게 요약했다. 우리가 맞선 극단적 경험의 핵심을 따뜻하고 호의적으로 간추린 한마디이기도 했다.

이들 3대는 혹한 속에서 기본적인 안락성을 희생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돌격형 여행과는 정반대로 다양한 도로와 풍경을 감상하며 10배가 넘는 보상을 받았다. 세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하지만 세븐에만 한정되지 않는 것)은 눈앞의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었다. 린브라이언 일대에서 310R은 힘차고 예리했다. 구동축은 의외로 말을 잘 들었고, 해안으로 가는 흐르듯 빠른 A482에서는 이상하게 훌쩍 뛰고 떠오르기도 했다. 진창에서 투덜대는 초크루저에 들어갈 때는 위시본이 격렬하게 까닥거렸다.  

 

마침내 우리는 북서쪽으로 마지막 구간에 들어갔다. 농로보다 약간 좋은 도로에서 업계 표준 에이븐 타이어가 신경을 다독였다. 800파운드(약 118만원)짜리 옵션인 헤드램프는 울타리를 기웃거렸다. 비나 바람이나 눈이나 밤의 어둠을 가리지 않고 온 세상을 뒤질 작정이었다. 한데 지금 당장은 굽이치는 카디건만의 200km 해안에 인적이 없었다. 제 정신이면 누구나 가까운 펍에 들어가 죽치고 있었다. 그다지 어리석지 않은 세 사나이가 온 바닷가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눈부신 빛줄기가 아직도 따뜻한 차체의 흙탕에 번들거렸다. 그리고 마지막 빛의 불씨가 겨울 바닷가를 떠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