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바람, 마세라티 르반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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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바람, 마세라티 르반떼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7.05.1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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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찬란하신(神)-도깨비. 요즘 화제의 드라마다. ‘도깨비’가 이토록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진 적이 있었던가. 그건 스토리를 밀고나가는 작가와 그 역할을 맡은 배우의 힘도 있을 것. 그러니 극중에서 그, 도깨비가 타는 차 또한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BMW X5가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때 시승차를 몰고 나갔더니 누군가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이거 원빈이 타는 차 아니에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가을동화>가 방영될 무렵, 2000년도의 일이다. 그런데 도깨비는 어떤 차를 타고 다닐까. 바로 오늘 만나는 마세라티 르반떼다.

 

“SUV가 아니라 마세라티다.” 브랜드 최초의 SUV 르반떼에 대해 마세라티가 강조하는 말이다.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지만 이제 스포츠카 전문회사에서 SUV를 만드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므로 SUV는 SUV. 특히 르반떼가 속한 럭셔리 SUV는 브랜드 수익성을 위해서도 외면하기 어려운 세그먼트다. 저마다 논리를 갖다 붙이지만 키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첫인상은 말 그대로 마세라티다. 단지 전면에 부착된 삼지창 마크 때문은 아니다. 디자인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일 것이다. 마세라티는 르반떼를 개발하며 중점을 둔 부분을 디자인, 럭셔리, 주행성능 세 가지로 함축해서 표현했다.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의 세로 바는 간격이 무척 넓은데, 벌레가 들어가기 쉽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감안한 듯 에어 덕트 입구는 닫혀 있다. 자동 에어 셔터(Electric air shutter) 기능으로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주행중 속도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열린다. 공기 흐름을 조정함으로서 공기 저항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마세라티 모델로는 최초로 적용한 장치다. 르반떼의 공기저항계수는 0.31Cd, SUV로는 놀라운 수치다.

   

LED 주간주행등은 낮에도 밝게 빛난다. 도깨비 눈썹 같다고 할까. 헤드램프는 LED는 아니고 바이-제논 타입인데, ‘어댑티브 프론트 라이팅 시스템’으로 주행상황에 따라 빔 모드를 조절할 수 있다. 가령 가로등이 드문 밤길운전에서 수동으로 하이빔을 조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 옆면을 보면 보닛이 무척 길다. 차체 길이는 5005mm로 5m가 넘는다. 포르쉐 카이엔(4885mm)보다 20mm 더 길고 레인지로버(4999mm)보다도 6mm 더 길다. 휠베이스도 3004mm로 3m가 넘는데 카이엔(2895mm)보다 109mm 길다. 그만큼 실내공간이 넓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C필러 옆으로도 쎄타 엠블럼, SUV지만 롱 노즈 숏 데크의 스포츠카 비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은 역시 마세라티 답다. 다만 뒷모습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고 평범한 해치 스타일로 보인다.

 

도어를 열면 찬란한 분위기. 장미꽃밭 같다. 붉은색 가죽과 푸른 바탕 계기는 살짝 구성은 바뀌었을지언정 익숙한 마세타리 스타일 그대로인데, 무언가 특별함은 바로 ‘에르메네질도 제냐’옵션을 더했기 때문. 제냐의 원단은 시트 등받이 일부와 도어 패널 등에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가죽이 아닌 직물이 얼마나 고급스러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100년 역사를 지닌 두 이탈리아 브랜드의 협업은 그 자체로 희소가치를 높여주는 것. 시트에 앉으면 마치 제냐의 명품 슈트를 착용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마그네슘으로 제작된 대시보드 위의 8.4인치 터치 스크린에는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트 오토를 비롯해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메뉴는 좀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새로 적용된 로터리식 노브로 비교적 쉽게 다룰 수 있다. 단순해서 오히려 쓰기 좋은 케이스.

 

시승차는 르반떼 S로 페라리로부터 이식받은 V6 3.0L 430마력 트윈 터보 휘발유 엔진을 장착했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자리한 시동 버튼을 누르면 심장이 깨어난다. 배기음은 아무래도 세단이나 쿠페보다는 울림이 약하다. 밖에서 보았을 때 긴 보닛은 운전석에서는 그다지 의식되지 않는다. 그런 느낌은 그저 키가 조금 높은 마세라티일뿐 SUV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과 같다. 게다가 차체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어 온로드에서라면 더한층 자세를 낮추어 주행할 수 있다.

 

출발은 부드럽다기보다 순조롭다. 울컥하며 과하게 힘을 쏟아내는 타입도 아니다. 서서히 속도를 높여나가면 일반적인 고출력차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노멀 모드에서는 저회전에서부터 최대토크가 발휘된다. 힘들이지 않고 가속하지만 최고출력이 발휘되는 구간은 5750rpm에 이르는 고회전이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일상 주행에서는 2000rpm 아래에서 충분하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싣는 순간 돌변한다. 르반떼의 의미가 잔잔한 바람이 강풍으로 변하는 지중해 바람임을 상기한다. 강풍으로 변하는 순간이지만 당황스럽지는 않다. 차체 밸런스가 좋기 때문인데 무게중심은 낮고 섀시는 강건하다.

새벽부터 날린 눈발이 잦아드는 아침, 도로는 젖어있고 바깥쪽 노면에는 눈이 쌓여있다. 21인치 P제로 타이어는 안정적인 접지력을 유지한다. 네바퀴굴림 Q4는 100% 뒷바퀴굴림으로 달리다가 필요할 때 빠르게(0.15초) 앞바퀴에 구동력을 보낸다. 빙판길에 진입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하므로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동급에서 유일하게 기계식 차동제한장치(LSD-Limited Slip Differential)를 뒤 차축에 달고 있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고 보면 오프로드 모드를 비롯해 경사로 감속 주행장치(HDC) 등 SUV 패키징에 상당히 신경 쓴 모양새다.  

 

I.C.E. 모드로 바꾸면 효율성이 향상되고 기어 변속이 좀 더 매끄러워진다. 접지력이 낮은 주행상황에서 적합한 모드. 오버 부스트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연료소모를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유용하다. 그리고 스포트 모드. 좀 더 단단해진 감각으로 응답성이 빨라지는 것은 예상하는 바지만 마세라티 특유의 사운드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강풍은 어느새 폭풍이 되어 휘몰아친다. 0→시속 100km 가속 5.2초의 가속력은 수치 이상의 날렵한 감각을 보여준다. 여기에 토크 벡터링 시스템이 받쳐주는 코너링 성능은 승차고가 높은 SUV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브레이크 역시 매우 강력한 응답성을 보여준다.  

 

스티어링은 속도에 따라 변하지만 전반적으로 무거운 편이어서 활기찬 느낌은 아니다. 기어  레버는 새로 바뀌기를 기대했으나 기존 마세라티 방식 그대로인 점이 아쉽다. 대신 패들 시프트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손 끝에 길게 와닿는 차가운 금속성, 낭창낭창한 움직임은 마치 검(劍)을 다루듯, 차가운 감성으로 속도를 다루는 기분을 준다. M 모드에 두면 기어가 고정되어 순전히 운전자의 의도만으로 조정된다. M 위치에서 스포트 모드로 바꾸면 르반떼의 저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파고가 높을수록 즐거운 파도타기처럼.  

 

앞 더블 위시본, 뒤 5링크 서스펜션은 강성을 높인 구조로 주행성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스포츠 스카이훅 시스템은 불필요한 진동을 흡수하는 댐퍼의 기능을 더욱 강화한다. 전반적인 특성은 안락함보다는 스포티한 성격으로 드러난다. SUV의 기능에도 충실하지만 본질은 마세라티다운 스포츠카인 것. 르반떼 S는 강력하다. 다만 도깨비 바람같은 강력함은 고회전에서 발휘된다. 연비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대목. 찻값을 고려해도 현실적인 선택은 디젤 모델에 기울기 쉽겠다. 어떻든 마세라티의 첫 SUV는 나만의 특별한 개성을 찾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더해진 도깨비의 마법이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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