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려서, 인피니티 QX50
상태바
시간을 달려서, 인피니티 QX50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6.03.18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휠베이스를 늘린 신형 QX50이 한동안 잊고 있던 불꽃을 되살렸다

QX50은 인피니티가 작명법을 바꾸기 전에는 EX37로 불렀던 차다. 그 이전에는 EX35였다. EX35가 데뷔한 것은 지난 2007년. 고 스티브 잡스가 “오늘, 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할 것”이라면서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해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만큼 인피니티 EX가 시대를 앞선 자동차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르쉐 마칸이나 BMW X4가 지향하는 쿠페형 콤팩트 크로스오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QX50으로 이름을 바꾼 지금도, 일본에서는 닛산 엠블럼을 달고 ‘스카이라인 크로스오버’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닛산에서 ‘스카이라인’ 브랜드가 갖는 의미를 안다면, QX50이 어떤 차일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다, 분명 잘 달리는 차일 것이다. 

QX50은 닛산의 FR-L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엔진이 앞 차축 뒤에 자리 잡은 프런트 미드십(FM) 레이아웃으로, FM 플랫폼이라고도 부른다. GT-R 개발자로 유명한 미즈노 카즈토시가 개발을 진두지휘했으며, 기본적으로 짧은 앞뒤 오버행, 긴 휠베이스, 대형 휠 패키지의 뒷바퀴굴림 플랫폼이다. 370Z도 FM 플랫폼이다. 
 

보닛 아래에 세로로 놓인 V6 3.7L VQ37VHR 엔진은 과급기나 직분사 같은 기술 없이 최고출력 329마력, 최대토크 37.0kg.m을 발휘한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차를 출발시키기도 전에 그저 그런 SUV가 아니라는 자기주장이 전해진다. 

초반 스로틀 반응이 약간 민감한 느낌이지만 발진은 부드럽다. 최신 터보 엔진처럼 저회전부터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듯 강력한 토크가 쏟아져 나오는 타입은 아니다. 회전수가 올라갈수록 그에 상응하는 힘을 발휘하는, 좋은 의미에서 구식 엔진이다.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엔진회전계 바늘이 7,000rpm 너머까지 관통하는 호쾌함이 있어서 돌리는 맛이 짜릿하다. 레드존은 7,500rpm부터. 그야말로 스포츠카다운 심장이다. 

엔진 사운드도 마음에 든다. 엔진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굳이 막지 않았다. 회전수를 한껏 높이면 상당히 큰 목소리를 내는데,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음색이 거칠고, 고회전 영역에서는 다소 성긴 느낌도 있어서 더욱 강력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때 손끝과 발끝에 전해지는 진동도 묘한 희열감을 준다. 상당히 카리스마 있는 엔진이다. 
 

엔진과 짝을 이룬 토크 컨버터 방식의 7단 자동변속기는 직결감이 좋고, 변속도 빠르고 매끄럽다. 변속 제어도 만족스럽다. QX50의 무게는 1,840kg. X4가 6기통 터보디젤 엔진을 얹고도 1,820kg인 걸 감안하면 동급에서 무거운 편이다. 그럼에도 힘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 건, 강력한 동력성능 덕분이기도 하지만 변속기 덕도 분명히 보고 있다. 

좋은 변속기다. 어째서 닛산이 이런 변속기를 놔두고 CVT를 선호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DS 모드에 두면 한층 스포티한 세팅으로 바뀐다. 수동 모드에서도 변속이 원활하지만, 연속으로 2단을 내리면 세련되지 못한 반응을 보인다. 시프트 패들이 없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코너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차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GT-R과 작동 방식이 같다. 평소에는 뒷바퀴를 굴리다가 상황에 따라 0:100~50:50 범위 내에서 앞바퀴로 토크를 보낸다. 

특이한 것은, 횡G가 큰 상태에서 뒷바퀴에 휠 스핀이 일어나도 앞바퀴로 구동력을 왕창 보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액셀 워크로 뒷바퀴를 제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동시에, 앞바퀴의 조종성도 확보하고 있다. 덕분에 코너링은 상쾌하고 달콤하다.  
 

승차감은 고급 크로스오버에 거는 기대에 부합한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세팅이지만, 큰 충격에 대해서는 온화한 반응을 보이며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코너에서는 허둥대지 않고 상체를 잘 붙든다. 보디 컨트롤은 제대로 끓여내 숙성시킨 맛이다. 

다만, 19인치 휠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다. 도로 이음새 등 파장이 짧은 곳을 지날 때 따로 노는 느낌이고, 잔 충격이 전해진다. QX50 세팅에는 18인치 이하 사이즈와 더 잘 맞을 것 같다. 
 

스티어링은 무거운 편이고, 적당히 정보를 주긴 하지만 특별히 생생하진 않다. 가죽으로 감싼 스티어링 휠 림은 알맞게 굵어서 쥐었을 때 느낌이 좋고, 지름이 작은 편이라 돌리는 재미도 있다. 

신형 QX50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보다 8cm 늘어난 휠베이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길이를 늘이는 것은 생각보다 큰 대공사다. 루프, 도어 프레임, 리어 도어, 차체 바닥 등을 모두 재설계했다. 사실상 B필러를 중심으로 차체 뒤쪽을 다 뜯어고친 것. 
 

동급에서 가장 작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휠베이스를 늘이기 전에도 가장 긴 차였다. 신형 QX50의 길이는 4,750mm로, 마칸보다 약 7cm, X4보다는 약 8cm 길다. 휠베이스 또한 동급 SUV 가운데 가장 길어서 렉서스 NX에 비하면 22cm나 길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모두 승객 공간에 할애했다. 덕분에 뒷자리 다리 공간이 눈에 띄게 넓어졌다. 수치를 재보진 않았지만, 뒷좌석 앞뒤 공간은 동급 최대 아닐까. 트렁크 용량은 527L 그대로다. 60:40으로 분할되는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최대 1,419L까지 확대된다. 리어 시트는 전동식으로 접고 펼 수 있어서 편리하다. 
 

실내에선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처음 데뷔했을 땐 근사한 공간이었지만, 세월의 풍파를 전부 피해가진 못했다.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은 전체가 소프트 패드로 덮였지만, 소재의 질감은 지금 기준으로 별로 좋지 않다. 계기판이나 버튼들의 디자인도 이제는 예스럽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7인치로 작고 보잘 것 없다. 해상도가 낮은데, 내장된 국산 내비게이션 화면은 깔끔한 것으로 봐선 하드웨어 스펙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스마트기기로 고해상도 화면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몸을 푹 감싸는 시트는 여전히 편안하고, 부드러운 선과 면이 휘감은 실내는 우아하다. 공간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기분 좋게 둘러싸인 아늑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작은 부분에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편안하고 여유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스포티한 면모도 갖춘 QX50은 크로스오버임에도 스카이라인의 명성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차다. QX50을 시승하는 내내, 잊고 있던 자연흡기 V6 엔진이 주는 쾌락을 다시금 느끼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주행의 즐거움을 위한 대가는 꽤 큰 편이다. QX50의 정부 공인 복합연비는 8.3km/L. 실제 연비는 트립 컴퓨터 기준으로 그보다 조금 낮은 수준을 보였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빠르고 스포티한 크로스오버를 찾는다면, QX50만한 차를 찾기 힘들다. 비슷한 크기의 SUV들 중에서 QX50만큼 스포티한 차는 마칸 정도가 생각난다. 마칸 S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이만한 차를 즐길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조건 아닌가.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