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랜드로버의 아이콘을 재창조한 게리 맥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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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랜드로버의 아이콘을 재창조한 게리 맥거번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
  • 승인 2020.11.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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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더를 탄생시킨 게리 맥거번은 새 랜드로버가 자신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사실, 그는 이미 미래 프로젝트에 관해 앞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에게 밝혔다

게리 맥거번(Gerry McGovern)은 지어낸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나는 게이던(Gaydon)에 있는 랜드로버의 밝고 넉넉한 디자인 사무실에 도착했다. 1948년에 나온 랜드로버의 아이콘을 대체할 신형 디펜더를 창조하는 데 있어 그와 그의 디자인 팀원들이 어떻게 전설적 존재를 감성적으로 완전히 바꿨는지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할 수 있었던 이야기는 모든 일이 ‘무척 오래 전에’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다. 현대의 대량생산에 관해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시장 포지셔닝, 주요 수치, 기계적 배치, 스타일링에 관해 정말 중요한 모든 것은, 어느 것이든 한 모델이 생산을 시작하기 5년 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신형 디펜더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맥거번의 기억에 남아있는 감상적인 내용을 최대한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2015년에 나왔지만 공개적으로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 콘셉트카, LR1의 신비로운 영향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62세인 맥거번은 실제로는 착실하게 준비해 확고하게 결심하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가 체육관에서 가장 즐겨하는 운동은 권투이고 그의 이두박근은 다른 사람의 허벅지만큼이나 굵다. “사람들은 저에게 새 디펜더가 저의 유산이냐고 물어 봅니다.” 가벼운 피로감 이상의 기분을 담아 그가 이야기한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저는 프로 디자이너이고 항상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하죠. 마침 저희의 다음 대형 프로젝트는 레인지로버 후속 모델이고, 그 일은 막 끝나서 털어냈어요.”

 

새로운 663 디펜더의 모습에는 DC100에는 없던 다부진 분위기가 있다

운 좋게도, 그의 디자인 인생 전부를 일궈온 것은 고도의 기교를 통한 강인함의 표현이었지만 - 그가 꿈꾸는 디자인이 구현되는 데 발목을 잡을 방법을 찾으려 애썼을 기술자들과 경영진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맥거번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 즉 반드시 차체가 높은 박스형 차여야만 한다고 해도 자동차의 아름다움에 대한 희귀하고 세련된 시각을 가진 영국의 위대한 디자인 리더 중 한 명으로 되돌아간다.

그는 강력한 영향력으로 지난 25년간 나온 대부분의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의 모습을 빚어냈지만(물론 미국에서 5년 동안 링컨-머큐리 브랜드에서 일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는 다른 디자인 담당 임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케치패드에 얽매이지 않는다. “저희에게는 환상적인 디자인 팀이 있어요.” 그의 설명이다. “저희가 하는 세부적인 일들을 모두 조율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저는 모든 직원이 퇴근한 뒤에도 어떤 것이 알맞고 그렇지 않은 지 확인하면서 스튜디오에 남아 있을 겁니다.”

 

맥거번은 스스로를 세부 사항을 다듬는 편집자라고 생각한다

1997년 당시 로버 그룹에서 비교적 신참이었던 맥거번은 MGF 스포츠카와 선구적 모델인 오리지널 프리랜더를 만들었다. 프리랜더는 유럽에 저렴한 가족용 4×4라는 새로운 차급을 만들어 7년 가까이 시장을 이끈 모델이다. 그 뒤에 디트로이트에서 호평을 얻은 일련의 링컨 콘셉트카들을 내놓았지만, 움직임이 느린 경영진에 좌절한 맥거번은 퇴직을 앞둔 조프 유펙스(Geoff Upex)의 후임이 될 것이라는 암묵적 이해를 바탕으로 2004년에 랜드로버로 복귀해 선행 디자인을 이끌다 2006년에 디자인 담당 이사가 된다. “심지어 그 시절에도 회사에서는 디펜더를 대체할 모델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의 말이다. “그러나 그 차들은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차를 현대화시키는 페이스리프트 성격이 강했죠.”

맥거번은 ‘디자인 바이블’(Design Bible)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책을 물려받은 것을 떠올린다. 그 책은 레인지로버의 조개껍질 형태 보닛, 유리와 차체가 이루는 50/50 비율(오리지널 레인지 로버는 바퀴를 단 갤러리 같았다), 레인지로버의 성벽을 형상화한 보닛 등 랜드로버가 오랫동안 활용해 온 디자인 특징과 DNA 요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디자인 책임자는 랜드로버에서 정말 해야 할 일은 이 모든 것이 ‘현대적 맥락에서’ 의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정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많은 논의와 고민 끝에 현재 랜드로버에 쓰이고 있는 3필러 철학, 디펜더와 디스커버리 및 레인지로버 패밀리를 구성하고 각각에 모델을 추가하는 계획이 나왔다. 이는 아직도 진행 중인 일이다.

 

전통과 현대성을 결합한 새 디펜더

디자인 담당 이사로 일하기 시작한 초기에 맥거번이 맡았던 다른 대형 이벤트로는 LRX 콘셉트카를 선보인 것이었다. 대단히 영향력이 컸던 LRX 콘셉트카는 - 지금은 재규어 디자인 담당 이사로 일하고 있는 줄리언 톰슨(Julian Thomson)이 이끌었던 선행 디자인 팀이 만들었다 - 2011년에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출시로 이어졌다. 그가 이룬 업적은 이것이 판도를 바꿀 디자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핵심 아이디어를 희석하지 않고 양산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고집의 결과였다. 

맥거번은 “후방 시야가 나쁘다는 것을 비난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탁월한 것은 아니었죠. 그러나 위로 솟아오르는 허리선과 비스듬히 내려가는 지붕은 이보크의 모습을 결정하는 절대적 핵심 요소였죠. 저는 그게 정말 싫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차를 사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디자인 담당 이사의 조언을 받아들이기 불편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회사 내부의 마케팅 전통주의자들은 연간 3만 대 판매를 예상했지만, 그 수치는 13만 대를 넘었다. 최근 어려운 시기를 맞기는 했지만, 이는 재규어랜드로버의 재정 상황을 완전히 바꾼 성과였다.

모두가 기억하는 ‘신형 디펜더’에 대한 제안은 DC100으로, 2012년에 다양한 차체 스타일과 컬러(휠베이스가 짧은 로드스터와 하드톱)로 등장했다. 몇 가지를 개조할 수 있게 만든 차로(<오토카>가 참여한 것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찍은 엄청나게 많은 시승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대대적인 논쟁이 뒤따랐다. 몇몇 사람들(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에게는 크기와 현대적 단순함에 매력을 느꼈지만, 콘셉트카는 전통적 랜드로버와는 뚜렷하게 달랐던 만큼 많은 순수 오프로드 마니아가 분노했다. 맥거번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 “대단한 기대에 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제 일이죠.” 그의 말이다. “그리고 저는 팀이 그런 사람들과 거리를 두도록 했어요. 제가 그런 의견을 따랐다면, 무척 맥이 빠졌을 겁니다.”

 

이보크의 ‘결과로서 나타난 선’은 타협하지 않았다
DC100은 순수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맥거번은 잠들지 못했다
2015년에 만들어진 LR1 콘셉트카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맥거번은 "DC100은 주로 저와 홍보 담당자들 사이에서 논의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회상한다. “저희는 이 신형 디펜더에 관한 아이디어를 계속 이어나가야 했습니다. 회사 내부의 어느 누구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죠. 그리고 분명히 토론을 이어나갔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DC100이 663(새 디펜더)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 차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례는 괜찮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지나치게 과장되었고,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려 지나치게 애쓴 차였죠. 충분히 다부진 모습도 아니었고요.” 무엇보다도, 그 차는 맥거번이 말하는 이른바 ‘결과로서 나타난 선들’ 즉 한 모델의 형태를 정의하는 독특한 차체 선이 없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이 단순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대개는 그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디자인에는 결과로서 나타난 선들이 있고, 벨라나 신형 이보크처럼 맥거번이 최근에 내놓은 모델들을 살펴보면, 금세 그 선들이 보일 것이다. 맥거번의 말에 따르면, 새 디펜더의 형태, 크기, 철학에 진정한 원동력이 된 것은 2011년에 시작한 LR1 콘셉트카였는데, 그 차는 그보다 조금 앞서 만들어지고 있던 DC100 콘셉트카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콘셉트카는 일반에 전혀 공개된 적이 없었는데, 랜드로버가 DC100을 둘러싼 혼란에 지쳐가고 있었던 탓이었다. “우리가 LR1을 만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차를 이해했습니다.” 그의 회고다. “달리 보면, 그 사람들은 저와 싸우기 싫었을 겁니다.” 

LR1은 맥거번에게 있어 최선의 승부수였고 비교적 쉽게 성숙한 상태에 다다랐다. DC100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단순하고 곧게 뻗은 ‘결과로서 나타난 선들’을 담았다. DC100 같은 ‘유치함’도 없었고, 다부진 모습이었다. 오리지널 디펜더보다는 더 비스듬히 기울기는 했지만, 앞 유리 각도는 딱 알맞아 보였고 차체 뒤쪽의 형태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앞뒤 오버행은 인상적으로 단단한 모습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맥거번은 “다양한 버전을 만들게 되리라는 점이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90과 110이 나오지만, 구형 디펜더에는 130 모델도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모델 변경주기를 겨우 7년으로 정한 랜드로버는 오리지널 디펜더의 영원한 특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맥거번은 그렇다고 믿는다. “저희가 일단 틀을 잡은 뒤로 많은 사랑을 받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변화를 일정보다는 기술이나 소재, 제조기법의 개선에 따르도록 저희의 모델 철학을 이미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신형 이보크가 그 좋은 예이고, 앞으로 그런 철학이 더 많이 쓰이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디자인 조직으로서 저희를 차별화하는 것은 환원주의적 디자인, 훌륭한 비례, 결과로서 나타나는 선 그리고 유치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대성을 구현하려는 저희의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개 경쟁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런던으로 차를 몰고 갈 때, 저는 어떤 모델은 또 어떤 모델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저희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

게리 맥거번은 순수 전기차의 디자인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다음 단계의 큰 변화’라고 여기지만, 그는 보닛이 달린 랜드로버의 몰락을 예측하는 것을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론 저희는 전동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에 엔진이 필요 없는 시기도 다가오고 있죠. 그러나 박스형 차 하나만 있어야 한다면 무척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러분이 비누 한 덩어리처럼 생긴 차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재규어의 I-페이스 디자인이 - 앞 유리를 차체 앞쪽으로 밀어낸 배치 - 거의 한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차들 같은 모델은 알맞아 보이는 비율이 필요합니다. 결국 그 공간에는 다른 것들을 담게 되죠. 그러나 중요한 점은 특별한 제품에는 나머지 것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패션을 예로 들어보죠. 사람들은 늘 바뀐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의 고전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디자인이 여러분의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뚜렷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여러 브랜드의 기술이 비슷한 수준에 이르고 나면, 디자인은 브랜드 가치의 주된 차별화 요소가 됩니다. 그런 것을 망쳐버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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