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힌두스탄 앰배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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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힌두스탄 앰배서더
  • 샘 글로버(Sam Glover)
  • 승인 2020.10.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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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스탄의 인기 모델 앰버서더 오리지널 버전을 몰고, 그 차를 아이콘으로 만든 나라를 횡단해 봤다
이 사원은 14세기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수도였고 세계 제2의 중세 도시였던 함피 외곽으로부터 몇 마일 거리에 있다
솔렉스 32 PBI 카뷰레터의 인도 복제품

계획은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인도 서부 해안에서 1960년대의 힌두스탄 앰배서더를 사서 제대로 움직이게 만든 다음, 동부 해안으로 몰고 가서 배편으로 영국에 보낸다는 것이다. 

인도 여행은 친구인 도로여행 전문가 에드 휴즈(Ed Hughes)와 내가 오랫동안 술집에서 꿈꿔온 일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결심한 순간부터 앞서 이야기한 세부 사항을 결정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1947년에 인도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인도의 이른바 ‘라지 인증’(Licence Raj)이 자동차 수입에 엄청난 비용이 들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외국 자동차 업체가 인도에 발을 들이는 방법은 인도 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 유일했다. 힌두스탄(모리스와 협력을 맺었다), 스탠다드(당연히 스탠다드의 제휴 회사였다), 프리미어(크라이슬러에 이어 피아트와 제휴했다)가 인도의 3대 대형 자동차 업체가 되었다. 

 

오일 필터 성분은 악몽의 재료였다
휴즈는 모든 중요한 문제와 씨름한다

1980년대에 수입차 시장이 자유화될 때까지, 각 업체는 점점 더 구식이 되어가는 모델들로 매력적인 라인업을 생산했다. 특이함으로 주목받은 모델 가운데에는 힌두스탄 콘테사(처음에는 B시리즈 엔진을 얹다가 나중에 이스즈 엔진으로 바꾼 복스홀 FE 빅터), 스탠다드 가젤(라이브 액슬 서스펜션과 찡그린 얼굴을 갖춘 4도어 트라이엄프 헤럴드), 스탠다드 2000(스탠다드 뱅가드에서 파생한 오버헤드 밸브 4기통 엔진을 얹은 로버 SD1), 프리미어 118NE(닛산 엔진을 얹은 세아트 124) 등이 있었다. 1975년에는 신생 업체인 시파니가 바달(일부는 릴라이언트 리걸, 일부는 선더버드 4인 차)에 이어 키튼을 바탕으로 만든 돌핀을 차례로 내놓았다.

그래서, 인도는 언뜻 보기에 이국적 고전 모델이 넘쳐나는 시장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운전은 차들이 부딪치는 스포츠고, 더위와 먼지, 습기와 위험 요소들로 가득한 환경에서 혹사당하는 차들은 금세 노화된다. 디스토피아의 모습 그대로인 버스들이 이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1979년에 나온 영화 ‘매드 맥스’의 소품처럼 보이는 버스들은 실제로는 10년이 채 되지 않은 것들이다.

번화한 산업 단지에서는 고철이 잔인할 만큼 효율적으로 용광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30년 이상 살아남은 차가 드물고, 여러 차례 복원을 거치지 않고 그렇게 버틴 차는 사실상 전례가 없다.

 

현지의 기발한 연료 펌프 히트실드
못생겼지만 물이 새지 않는 라디에이터 수리

에드와 나는 몇 달 동안 중고차 매물 웹사이트인 OLX를 뒤졌다. 낡아빠진 프리미어 118NE 두세 대와 이스즈 엔진을 얹은 콘테사 몇 대를 빼면, 우리는 앞서 이야기한 차들 가운데 도로 주행에 적합한 상태에 가까운 것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근까지 인도 택시로 흔히 쓰이는 차들, 즉 모리스 옥스퍼드에 뿌리를 둔 힌두스탄 앰배서더나 피아트 1100을 기반으로 만든 프리미어 패드미니를 찾아보기로 했다. B 시리즈 엔진을 얹은 초기 모델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여, 우리는 식민지풍 화려함을 자랑하는 앰배서더로 관심을 돌렸다.

판매자와의 소통은 골치거리였다. 응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우리는 다양한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화 통화는 절망적으로 혼란스러웠다. 구체적 내용이 오간 통화에서는 외국인에게 차를 파는 데 관여하는 관료들을 상상하기가 너무 끔찍했다.

우리는 해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친구의 친구 중 한 사람인 프렘 찬드라(Prem Chandra)를 알게 되었다. 힌두스탄 앰배서더 관광 프로그램의 베테랑 기획자인 프렘은 일 처리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신사면서 학자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프렘의 고향인 코지코드(Kozhikode)로부터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목적지는 첸나이(Chennai)로 정했는데, 내가 보낸 수많은 이메일에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대응한 운송 업체인 프로 카고(Pro Cargo Ltd.)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로버가 파나지에서 브레이크를 조정한다
구글 지도에 표시된 경미한 도로는 종종 측정되지 않은 트랙으로 판명되었지만, 앰배서더의 오프로드 능력 이상으로 입증된 것은 없었다

몇 달 동안 쓸 만한 앰배서더를 찾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보기 좋으면서도 제법 온전한 형태인 1962년식 차가 부근에서 나타났을 때 프렘은 냉큼 낚아챘다. 차가 기본적으로 기계적인 부분과 구조적인 부분이 쓸 만한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다면 차를 사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에, 그는 그 차를 샀다. 우리는 브레이크와 전기 장치처럼 사소한 부분들은 나중에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프렘에게 3300파운드(약 500만 원)를 송금했다. 코지코드에 있는 그의 차고로 옮겨진 차를 받는 것은 값싸고 쉬웠지만, 내 이름으로 차를 이전 등록하고 일반도로 주행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인도의 서류 작업은 구식이고 장황할 뿐 아니라 불편할 만큼 고집스러웠다. 프렘은 6주 동안 공격적인 관료주의에 단호하게 개입했고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에드와 나는 공구, 예비 부품, 소모품을 채운 여행 가방을 들고 휘청거리며 히드로 공항으로 갔다. 인도에서는 낡은 앰배서더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없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손댈 수 있는 범위에서 차가 앞으로 움직이는 데 중요한 모든 것을 가방에 넣었다. 차종을 가리지 않는 여러 부품과 함께, 우리는 프렘에게서 받은 사진으로 추측해 전용 부품들을 골랐다. 그 중에는 개스킷 세트, 냉각수 펌프, 팬벨트, 브레이크 실린더 재생 키트, 오일 필터, 냉각 시스템 부품 같은 것들을 비롯한 모리스 옥스퍼드 시리즈Ⅲ용 부품이 많았지만, 우리의 초기형 앰배서더 변속기에 알맞은 옥스퍼드 MO 클러치 구동 플레이트와 모리스 마리나 1.8용 기계식 연료펌프도 있었다. 배전기는 루카스 25D의 인도판 복제품처럼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애큐스파크(AccuSpark)에서 신품을 샀다. 카뷰레터는 흔히 볼 수 있는 솔렉스 32 PBI와 무척 닮아 보였다. 랜드로버에서 타트라플란에 이르는 모든 차에 맞는 것이어서, 벌렌(Burlen)에서 산 재생 키트도 챙겼다.

 

더 조용한 B급 도로에 올라타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 광대한 힌두교 사원은 작은 도시의 공업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다

코지코드에 도착한 우리는 부서질 듯한 앰배서더 마크 IV 택시를 타고 - 무척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 호텔로 향했다. 우리가 산 앰배서더를 손질할 수 있을 만한 크고 그늘진 주차장 때문에 예약한 곳이었다. 차는 이튿날 아침에 도착했다. 웅장한 모습이었다.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 분명했지만, 품위를 온전히 지킨 채 살아남았고 잘 닳은 녹청색 차체는 기계적 상태와 잘 어울렸다. 대규모 복원을 받거나 오랫동안 방치되지 않고 60년 동안 꾸준히 관리하며 세심한 수리를 계속 받아온 차라는 느낌을 담고 있었다. 스미스(Smiths) 주행거리계가 표시할 수 있는 최대 숫자인 9만9999마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우리는 신나게 작업복을 입었다.

우리는 캠샤프트 타이밍을 확인하고 들쑥날쑥한 밸브 간극을 교정했다. 그 와중에 개스킷을 교체하면서 엔진 오일이 석탄가루가 섞인 오징어 먹물 같은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배전기를 분리한 다음 영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마모되고 헐거워진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가져온 애큐스파크 부품은 1:1로 교체할 수 있는 것이어서 바꿔 넣었고, 타이밍을 설정한 뒤 새 코일, HT 리드, 점화 플러그를 달았다. 냉각 시스템을 청소했고 서모스탯, 라디에이터 덮개, 호스, 클립을 교체했다. 그 과정에서 위쪽 라디에이터 고정 볼트가 스스로 풀리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 부분은 에폭시 퍼티를 가지고 흉하지만 효과적으로 수리했다.

우리는 카뷰레터를 전체적으로 손질하고, 오일배스 공기 필터를 청소하고, 연료 탱크와 배관에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연료 호스를 교체하고, 중간 연료 필터를 달았다. 우리가 가져온 마리나용 연료펌프의 캠샤프트 코 부분은 너무 길었지만, 원래 달려 있던 펌프가 작동하는 듯했다. 다만 생김새가 맞지 않아 보였을 뿐이다. 원래 있던 것을 다시 달고, 그러면서 연료 공급 압력을 맞췄다. 아울러 코코넛 껍질로 멋지게 만든 단열재도 복원했다. 호텔 직원과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의바르면서 재미있는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봤고, 종종 멈춰서 진행 과정을 살펴보며 지혜를 나눠주기도 했다. 마치 모두 아버지가 앰배서더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 같았다.

 

인도 도로에서는 좀처럼 따분한 순간이 없었다. 위험요소에는 생활형 트럭, 동굴 속 포트홀, 우르르 몰려가는 가축들, 그리고 무서운 원숭이가 포함되었다

 

가장 중요한 경음기를 비롯해, 우리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지거나 저절로 고장난 여러 전기 장치를 되살렸다. 나방이 먹어치운 몇몇 배선을 교체하고, 새 접지선을 달고, 여러 커넥터를 청소하거나 교체하고, 덩굴처럼 쓸데없이 엉켜 있는 배선들을 정리했다. 모든 배선은 도움이 되지 않는 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녹슨 브레이크 파이프가 새로 납땜해 수리한 흔적은 최근에 주목 받았음을 나타냈다. 그 부분은 알맞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고 수리한 부분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주차 브레이크 케이블과 연결 부분의 어수선한 잔해들은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트렁크에 넣었다. 그것들을 다시 설치하려 형식적인 노력을 해 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클러치 연결부를 조절한 덕분에 기어가 갈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도 1단과 후진 기어를 넣을 수 있게 됐지만, 엄청나게 마모된 컬럼 기어 레버를 만족스러울 만큼 조절할 방법은 없었다. 새로 만드는 것은 우리 간이 정비소의 작업 영역 밖이어서, 모든 전진 기어를 비교적 쉽게 넣을 수 있고 조금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후진 기어를 넣을 수 있게 된 정도로 타협했다.

니플에는 그리스를, 연결부에는 오일을 발랐다. 심각한 엔진 오일 상태와 관절이 부서질 것처럼 손이 닿기 어려운 필터 하우징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주차장에서 작업을 하는 것 때문에 우리와 호텔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앰배서더를 움직여 조심스럽게 부근의 자동차 용품점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레트로 카즈 인디아(Retro Cars India)라는 멋진 곳으로 안내받았다. 대문을 지키고 있는 콘테사가 마치 우리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앰배서더의 엔진, 변속기, 차축 오일 교환을 위해 적어도 여섯 명의 직원이 달려들었고, 가게 주인 부자인 바이주(Byju)와 미툰(Mithun)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소장품을 구경시켜주었다. 가장 돋보인 것은 B 시리즈 엔진을 얹은 초기형 콘테사였다. 미툰은 우리를 로얄엔필드 모터사이클로 안내해 타이어 창고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우리는 여러 종류가 뒤섞여 있는 타이어를 멋진 165 R15 규격의 것으로 교체했다. 휠을 커다란 망치로 솜씨 있게 교정하는 작업도 서비스에 포함되었다. 우리는 운 좋게도 녹슨 구멍이 난 부분을 대충 용접해 때운 휠을 교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앰배서더 원정 준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차를 모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주행 중에 변속하려면 더블 클러치 조작과 함께 흐느적거리는 스틱을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방향으로 힘껏 밀어넣어야 했다. 모든 부분이 낡은 동력계 때문에, 대단부 베어링으로부터 변속기, 프로펠러 샤프트 회전 소리는 물론이고 최종 감속 기어의 굉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음과 진동이 뒤섞여 났다. 그럼에도, 신기할 만큼 부서지지 않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구성 요소들은 고르게 낡아 있었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작동했다. 예상컨대, 한 가지 부품을 바꾸면 미묘한 균형이 깨지면서 결국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낮은 기어비 구성 덕분에 가속은 듬직할 만큼 빨랐고 다른 차들과 어울려 달리기에 괜찮은 속도인 시속 80km로 정속주행도 할 수 있었다. 속도가 그보다 빠르면 차축에서 저공비행하는 헬리콥터 같은 소리를 냈다.

 

동네 길을 달리는 것은 훌륭한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도심 지역과 국도는 보행자, 자전거, 가축, 모터사이클, 툭툭, 카트, 자동차, 버스, 트럭이 어우러진 총체적 난국이면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경음기는 악의 없이 자유롭게 쓰였다. 버스와 트럭은 지독하게 양보를 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차들은 모두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했고 말다툼은 보기 드물었다. 혼란 속을 느긋하게 거니는 소들은 가는 곳마다 차분하게 금욕주의를 전파했다.

확실한 규칙은 소를 치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다른 규칙들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복잡한 T자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에 마주오는 차들을 향해 도로 반대쪽 차선으로 넘어가 끼어들었다가 천천히 바른 차로로 넘어오는 방법도 괜찮다. 계속 움직이고, 진행 방향을 확실히 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밤에는 상향등을 켠 차와 전혀 불을 켜지 않은 차들이 불확실한 요소를 달갑지 않게 더하면서 상황이 험악해졌다.

코지코드에서 마이수루(Mysuru)로 향하는 여행 첫 구간은 불바다 같았다. 예쁜 서부 가트(Ghat) 산맥의 급커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커브에서, 차들은 트럭들을 추월하는 버스들을 추월했다. 깎아 지른듯한 절벽과 멀미가 절로 나는 낭떠러지는 피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길가의 사악한 원숭이들은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봤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존중하며 잘 지내지만 유동적인 도시 거리에서 차선과 교통 통제는 곧잘 무시된다

우리는 마이수루를 떠나 시바모가(Shivamogga)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힘겹게 달렸고, 이어서 서부 가트 산맥을 거꾸로 가로질러 히피들이 자주 찾는 해안 마을인 고카르나(Gokarna)로 향하는 경치 좋은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두 가지 계시를 얻었다. 인도에는 운전하기에 정말 멋진 길들이 있고, 앰배서더는 돌아다니기에 재미있는 차라는 사실 말이다. 국도와 지방도는 대개 황량하고 구불구불하면서 노면 상태가 좋았다. 나는 차가 단조롭고 역동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는 달리 나긋나긋하고 다루기 좋았고, 요철과 불규칙한 노면을 멋지게 지났고,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속도로 커브를 달려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우리는 작은 길을 따라 옛 포르투갈령 인도의 수도로 우아하게 퇴색한 도시인 파나지(Panaji)를 향해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열성적인 운전 탓에 브레이크 페달은 점점 깊이 들어가, 필요한 만큼 압력을 만들려면 두 번 밟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이를 수정하는 일은 그저 오랫동안 잊혀져있던 각 바퀴의 브레이크 슈 조절장치를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설정을 바로잡는 것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원래 뭄바이(Mumbai)를 향해 북쪽으로 갔다가 방향을 크게 꺾어 남동부 첸나이(Chennai)로 갈 계획이었지만, 재미있는 작은 길과 상대적으로 버거울 고속도로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폰으로 두 지점을 잇는 시골길을 찾은 우리는 구불구불한 동쪽 길을 택했다. 훌륭한 결정이었다. 진행은 느긋하면서도 그림 같았다. 작디작은 마을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판잣집에서 먹은 길가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케랄라와 카르나타카 주는, 스펙타클한 주행 도로를 제공했다
함피의 관광 중심지에는 소들과 사원, 원숭이, 그리고 불법 쓰레기 투기가 넘쳐난다

"맥주를 열두 병 갖고 계시는군요, 선생님!" 고아(Goa)와 카르나타카(Karnataka) 사이에 있는 한가한 검문소에서 한 건방진 관리가 소리를 질렀다. 인도는 주마다 주류법이 크게 다르고, 우리는 그제서야 한 주에서 다른 주로 술을 가져가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의 ‘선생님’은 조용한 삶을 즐기며 은퇴를 생각하는 배고픈 신사였다. 그는 접이식 의자에 앉은 채 우리를 무시하듯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함피(Hampi)에 있는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a) 제국 유적을 살펴본 뒤, 해적의 도시인 아난타푸르(Anantapur)와 번영하는 도시인 벵갈루루(Bengaluru)를 거닐었다. 벵갈루루에서는 두 가지가 특별했다. 소규모 양조장과 신호등이 그것이었다. 신호등은 유기적인 교통 흐름을 혼란시키고 정체를 일으켰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크리슈나기리(Krishnagiri), 벨로르(Vellore)와 프랑스 식민지였던 푸두체리(Puducherry)였다.

앰배서더는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우리의 첫인상을 강화시키며 계속해서 멈추지 않을 듯 앞으로 나아갔다. 섭씨 35도의 열기 속에서 공기 조절장치는 흠잡을 곳이 없었고, 구글 지도 상의 작은 길들이 실제로는 진흙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는 훌륭한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보여줬다. 

 

우리가 손을 댄 유일한 부분은 경음기를 다시 수리하고, 갈라진 배기 계통을 때우고, 컬럼과 떨어져 따로 돌아가기 시작한 스티어링 휠(달리는 도중에 깜짝 놀랐다)을 다시 다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예정했던 날짜에 첸나이에 도착하면서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우리는 안목있는 자동차 수집가인 스리 스리바르단(Sri Srivardhan)이 친절하게 준비한 마드라스 보트 클럽(Madras Boat Club) 잔디밭에서 진토닉을 홀짝이며 2690km에 이르는 여행을 돌이켜 봤다. 인도는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활기차고 다양하며 친절하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다. 그러나 운전하기에 멋진 길들이 넘쳐나고 그 길을 누비기에 아주 만족스러운 차에 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다. 앰배서더는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었다. 편안하고 경제적이면서 믿을 수 있는 버팀목이었던 그 차는 잘 닦인 포장도로에서는 현대적인 차들에 손색이 없었고 길이 험해질수록 그런 차들을 뒷전의 먼지 속으로 보내버렸다. 

앰배서더가 50년 이상 계속해서 생산된 이유는 분명하다. 완벽한 인도용 차라서다. 

 

오래 근무한 힌두스탄 앰배서더 

힌두스탄 모터스는 1947년 인도가 독립을 쟁취한 직후 캘커타의 새 공장에서 모리스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리스 텐은 힌두스탄 텐, 옥스포드 MO는 힌두스탄 14, 마이너 더 베이비 힌두스탄, 옥스포드 시리즈 2는 랜드마스터가 되었다.

옥스퍼드 시리즈 Ⅲ를 베이스로 한 앰배서더는 1957년에 데뷔하여 2014년까지 조금씩 변화해 왔다. 1980년에는 B시리즈 디젤 옵션을, 1992년에는 이스즈 엔진을 얹었다.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A시리즈는 저급의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품질 저하로 판매가 급감했다. 

 

Hindustan Ambassador MkI
판매/생산대수 1957-’62/n/a
구조 강철 통합 섀시
엔진 올-아이언, ohv 1489cc 4기통 솔렉스(Solex) 카뷰레터
최고출력 50마력/4200rpm
최대토크 10.2kg·m/3000rpm
변속기 수동 4단, RWD
서스펜션 앞 위시본, 뒤 토션 바
스티어링 랙 앤 피니언
브레이크 모두 드럼
길이 4361mm 
너비 1651mm 
높이 1603mm
휠베이스 2464mm
무게 1114kg
0-시속 97km 가속 29초 
최고시속 119km
가격 (출시 당시) 15,091루피(약 24만 원)
현재 2000-5000파운드(약 303만-758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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