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로드스터,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 vs 르노 플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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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로드스터,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 vs 르노 플로리드
  • 크리스 칠튼(Chris Chilton)
  • 승인 2020.04.27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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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카르만 기아와 르노 플로리드는 이상적인 컨버터블이라는 점에서 똑같이 매력을 발산하지만, 하나는 광적인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완전히 잊혀졌다

포드 세단의 화려한 트림 이름으로 격이 낮아지기 훨씬 전,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기아(Ghia)는 평범한 유럽 패밀리카의 매력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벨루어와 가짜 목재 대시보드 장식을 덧붙이는 대신, 오랫동안 피아트, 알파 로메오, 란치아의 스포츠카들과 경주에서 우승한 차들의 디자인을 해온 역사를 바탕으로 보잘 것 없는 근본을 거의 완벽하게 감춘 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차를 만드는 업체들에게 참신한 이미지를 불어 넣었다.

르노 플로리드와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가 완벽한 사례다. 단순하고 솔직하며 값싼 도핀과 비틀을 바탕으로 만든 이 우아한 후방배치 엔진의 2+2 모델 두 대는 각 브랜드 전시장에서는 살 수 없는 차 같은 분위기였다.

그 혜택을 처음 누린 것은 폭스바겐으로, 비틀을 바탕으로 만든 쿠페를 1953년에 선보였다. 다만 폭스바겐이 직접 그 아이디어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르만 기아는 이름에 담긴 두 회사가 아이디어를 폭스바겐에 제시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빌헬름 카르만(Wilhelm Karmann)의 회사는 이미 비틀 컨버터블을 만들어 폭스바겐에 공급하고 있었고, 그는 그런 협력관계를 절실하게 키우고 싶었다. 기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루이지 세그레(Luige Segre)는 국제적 관계를 맺도록 회사를 압박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에 자극 받은 세그레는 폭스바겐 비틀을 사서 개조한 뒤 1953년 후반에 카르만에게 완성된 시제품 쿠페를 선보였다. 11월에 이르러 카르만은 시제품을 폭스바겐에 보여주었고, 그 차가 마음에 든 폭스바겐은 계획을 승인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로 20여 년간 거의 45만 대에 이르는 쿠페와 1957년에 자매 모델로 등장한 컨버터블이 판매되었다.

 

폭스바겐 모델은 1967년 54마력의 1500cc 사양에서 10년 전 출시 때보다 20마력 증가했다
거대한 바퀴가 폭스바겐의 크루징 실력을 보여준다
코치빌더의 이름이 우아한 방식으로 충돌한다

카르만 기아의 상당 부분은 르노가 절실하게 진출하고 싶었던 고수익 시장인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에서 폭스바겐이 거둔 성공을 프랑스 회사도 똑같이 거둘 수 있도록, 북미 딜러들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전시장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뭔가 섹시한 것을 내놓도록 르노에 제안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 1950~60년대 인기 프랑스 여배우)를 모델로 마케팅용 사진을 찍었는가 하면 브로슈어에는 패션지 보그에 사진이 자주 실렸던 작가 프랭크 호바트(Frank Horvat)의 사진을 넣었다.

르노 최고경영자였던 피에르 드레퓨스(Pierre Dreyfus)는 스포티한 2+2 모델의 생산을 승인했고 1958년에 판매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모델 이름은 시장에 따라 달랐다. 유럽용으로 만든 차에는 회의가 시작된 장소를 기념해 플로리드(Floride)라는 이름이 붙었고, 다른 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미국 딜러들은 카라벨(Caravelle)이라는 배지가 붙은 같은 차를 받았다. 그 이름은 현대적인 프랑스제 개인용 제트기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1962년에는 모든 시장에 팔리는 모델을 그 이름으로 통일했다.

두 차를 나란히 놓고 보면 뚜렷하게 구분될 만큼 몇 년 사이에 자동차 디자인이 급진적으로 변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펜더와 발판이 따로 달려 있던 비틀을 가진 사람들은 카르만 기아의 일체형 펜더가 놀랄 만큼 현대적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뚝 떨어지는 뒷부분과 부풀어 오른 앞부분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현대적 분위기를 반영했을지언정, 이어지는 10년 동안 유행한 모서리가 날카로운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세 개의 굴곡이 두드러진 앞부분은 스튜드베이커 챔피언을 연상시키고, 포물선을 그리는 차체 뒤쪽은 마치 카르만 기아의 초기 양산 모델을 세그레가 버질 엑스너에게 보내는 찬사였다고 해도 믿겨질 만큼 엑스너가 디자인한 1953년형 크라이슬러 델레강스 콘셉트카와 닮았다.

그런 스타일링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또는 소문처럼 실제로는 몇몇 기아 직원의 손으로 디자인이 완성되었는지와는 관계없이, 세그레의 팀이 비틀을 바탕으로 그런 차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비틀의 바닥 패널에 새로운 윗부분을 얹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이 연관되었다. 카르만은 섀시를 개조해 쿠페를 비틀보다 더 넓고 길고 낮게 만들었고, 차체 윗부분에는 공격적으로 눕힌 앞 유리와 믿을 수 없을 만큼 얇은 B 필러와 C 필러로 마치 떠 있는 듯 보이는 거품처럼 부푼 지붕을 품었다.

그 기둥들이 모두 사라진 카르만 기아 컨버터블은 195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등장했다. 이번에도 카르만이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기아가 한 일이 없었다. 카르만은 직접 디자인을 바꾸면서 쿠페의 뒤쪽 적재공간 일부를 줄였지만, 자주 쓰지 않는 접이식 뒷좌석은 간신히 남겨두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3중 직물 지붕을 씌웠을 때에는 우아한 모습도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불만거리는 기껏해야 신통치 못한 시야와 작은 플라스틱제 뒤 창이 긁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정도였다. 후자는 1969년에 유리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대럴 콜리어(Daryl Collier) 소유의 멋진 오리올 옐로우(Oriole Yellow)색 차가 처음 시동을 건 이듬해의 일이다. 

외부에서 비틀의 원형은 거의 사라졌으며, 전반적인 비율은 더 길어졌고 필러 없는 라인으로 더 깔끔해졌다

콜리어의 차는 클래식 카르만 기아다. 1970년대에 못난 모습으로 바뀌기 전의 작은 테일램프와 범퍼가 1961년에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지면서 높이 달린 헤드램프와 세 개의 돌출부가 생긴 차체 앞 부분의 공기 흡입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1961년 이전의 ‘로 라이트’(low-light) 모델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많은 사람이 카르만 기아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플로리드를 생각할 때에는 무엇이 떠오를까? 아마도 이 르노 차들을 처음 봤던 때가 기억날 만큼 나이가 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치약 상표의 오타라고 생각할 것이다. 생산량이 12만 대에 가까울 만큼 인기 있는 차였지만, 지금은 이 르노 컨버터블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토니 내핀(Tony Nappin)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고, 이 차는 그가 처음 산 플로리드가 아니다. 사실 이 차는 그가 세 번째 산 플로리드로, 그는 이 멋진 S 모델을 10년 이상 소유했다. 그는 1959년에 피아트를 도핀(Dauphine)으로 바꾼 뒤로 다른 브랜드 차를 소유한 적이 없을 만큼 르노 차들에 홀딱 반했다.

내핀이 현재 갖고 있는 플로리드는 영국으로 수출되었다가 리버풀에서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1960년대 초반에 4년간 그곳에 있었다. WAN(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이라고 쓰인 국가식별기호 판이 뒤쪽에 달린 이유다. 소유주가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차도 함께 가져왔고, 처음 몇 년 동안은 거의 쓰지 않았고 이후 35년 동안은 전혀 쓰지 않았다. 

기아는 플로리드의 스타일링을 위해 피에트로 프루아(Pietro Frua)와 계약했다. 프루아는 전에 여러 마세라티 A6G의 작업을 맡았고, 나중에는 미스트랄 등 다른 차들을 디자인하게 된다. 그가 내놓은 디자인은 비틀로 만든 카르만 기아가 그랬듯 도핀과는 놀랄 만큼 달랐다. 소재로 쓴 르노 세단의 날카로움이 어린이용 칼 세트 정도였다면, 말쑥한 플로리드는 산뜻한 선과 핀, 옆구리의 이중 굴곡을 갖춰 정교하고 도시적인 모습이었다. 아래쪽 굴곡은 1964년형 머스탱을 닮았다며 포드로부터 비난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소소하게 흉내낸 흔적은 그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금은 수륙양용차처럼 생긴 앞부분의 헤드램프 처리가 4년 뒤에 나온 MGB와 조금 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면, 르노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지붕이 고정된 쿠페, 소프트톱 카브리올레, 탈착식 하드톱을 갖춘 컨버터블로 나왔고, 전통적인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다는 점을 빼면 비교적 보닛이 길고 트렁크가 짧은 플로리드를 일반적인 앞 엔진 뒷바퀴굴림 스포츠카로 착각하기 쉽다.  두툼한 좌석과 조금 세워진 앞 유리가 스포츠카보다는 GT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어 레버 - 청테이프만큼 끈적하게 움직인다 - 는 약간 멀리 떨어져 있고, 이 차가 나왔을 때에는 선택사항이던 4단 변속기가 기본으로 바뀌었음에도 1단에는 싱크로가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변속은 멋질 만큼 가벼워서, 단마다 움직일 때 거의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 점이 다행인 이유는 뒷바퀴 사이에 놓인 직렬 4기통 956cc 엔진을 주기적으로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형 플로리드는 도핀에서 가져온 38마력 845cc 엔진을 얹었고, 차체 아래쪽 구석에 공기 흡입구가 있어 엔진과 차체 뒤쪽 격벽 사이에 낀 라디에이터로 냉각을 위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1962년에 플로리드가 플로리드 S로 바뀌면서 새로운 베어링 다섯 개짜리 크랭크와 오버헤드 밸브를 갖춘 46마력 ‘시에라’(Sierra)엔진을 르노 8로부터 물려받으면서 성능이 꽤 높아지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성능 향상은 거리를 달리는 다른 차들의 성능이 높아지면서 일찌감치 무의미해졌다. 엔진은 활기차고 반응이 뛰어나면서 놀랄만큼 부드러운 느낌이다. 오스틴 A40 정도의 크기인 차를 몰며 환상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음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오늘날의 교통상황 속에서 이 정도 크기의 차를 몰면서 그런 깊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내핀은 플로리드 같은 차를 좋아하지만 더 빠른 차를 원한다면 1964년 이후에 1108cc 58마력 엔진으로 업그레이드한 카라벨을 찾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기아와 비교해 수평 속도계는 대시를 업그레이드하는 요소다
단단하면서도 작은 4기통 956cc 엔진은 2기통보다 토크가 작다
계속해서 르노 차량을 소유해온 나핀이 그의 세 번째 플로리드/카라벨에 올라있다

그러나 플로리드와 카라벨 모두 진정한 스포츠카의 성능을 낸다고 한 적은 없다. 카르만 기아도 마찬가지여서, 폭스바겐은 광고에서 차의 힘이 부족한 것을 자학적인 재미거리로 삼기까지 했다. 카르만 기아는 비틀보다 두 배는 빨리 달릴 것처럼 보였지만, 같은 엔진을 쓰면서 90kg 정도 더 무거운 차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포장한 것이었다.

초기형 카르만 기아에 쓰인 35마력 1192cc 엔진은 1962년에 41마력으로 성능이 좋아졌고, 1966년에는 51마력짜리 1300이, 1년 뒤에는 콜리어의 차와 같은 54마력 엔진의 1500이 나왔다. 엔진은 스테인리스 머플러를 단 플로리드보다 더 조용하고, 다른 공랭식 엔진 폭스바겐 차들처럼 변속은 가볍고 게이트 위치는 장터의 타로 카드처럼 애매하다. 그러나 르노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1500 모델의 엔진이 내는 토크다. 겨우 2600rpm에서 10.8kg·m의 토크가 나와, 르노의 7.5kg·m과 차이가 크다. 심지어 마지막에 나온 61마력 1.6 기아는 시속 97km까지 가속하는 데 간신히 20초를 넘기지 않는다(1200 모델은 거의 30초 가까이 걸렸다). 그런 토크로는 이 카르만 기아가 정말 빠르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최소한 느긋한 주행특성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성능을 낼 뿐이다.

미국형 카르만 기아의 운전석에 몸을 기대면 플로리드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바닥으로부터 높이 솟아오른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하려면 발재주가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는 앞 디스크, 뒤 드럼 구성이지만 초기형 모델은 네 바퀴 모두 드럼이었다. 처음 나온 플로리드도 그랬지만, 내핀의 차가 나왔을 때에는 이미 플로리드가 네 바퀴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달고 있었다. 1960년대 초로서는 앞선 장비였고, 좀 더 안심하고 적당한 성능을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차의 스티어링 특성은 뚜렷하게 갈라진다. 카르만 기아의 웜섹터 시스템은 매우 가볍고 빠른 느낌이다. 그러나 직진할 때는 어리둥절할 만큼 어정쩡하기도 해서, 토션 바 방식 앞 스프링이 바깥쪽 앞 타이어에 무게를 싣기 시작하면 앞바퀴와 운전자가 그냥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앞 서스펜션은 더블 위시본 구조이고 더 정교한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을 쓰는 플로리드는 스포츠카를 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느린 속도로 달릴 때에는 스티어링이 더 무거운 느낌이고, 접지면 너비가 135mm에 불과할 만큼 작은 앞 타이어기 어떻게 구르고 있는지 느끼기에는 더 낫다.

수륙양용차 같은 요소가 코에 더해졌다

그러나 당대의 진짜 스포츠카들을 특징짓는 궁극적 자세와 열정적인 스티어링 특성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실, 플로리드의 강점은 다른 영역에 있다. 탁월한 승차감, 놀라운 회전반경, 그리고 아주 빈약한 성능으로 스윙 액슬식 뒤 서스펜션의 캠버 변화가 운전자를 곤란하게 만들 만큼 빨리 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카라벨 생산은 1968년까지 계속되었고, 그 때까지 약 11만7000대의 카라벨과 플로리드가 주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카르만 기아는 1970년대까지 투입되었고, 다른 카르만 기아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은 모서리가 날카로운 타입 3 기반의 T34가 1961년에 추가되었다. 오리지널 카르만 기아는 마침내 1974년에 폭스바겐 전시장과 카르만의 생산 라인에서 모두 새로운 골프를 바탕으로 만든 시로코로 대체되었다. 모두 합쳐 36만4000대 이상의 카르만 기아 쿠페와 8만1000대 가까운 컨버터블이 오스나브뤽 공장을 떠났다.

카르만은 2009년에 파산 신청을 하고 폭스바겐 왕국에 편입되기 전까지 BMW,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그리고 르노와 폭스바겐도)와 같은 브랜드들의 차와 차체를 만들게 된다. 기아는 어땠을까? 세그레 사후에 회사는 마침내 알레한드로 데 토마소(Alejandro de Tomaso)의 손에 넘어갔고, 그의 판테라를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오랫동안 살아 있다가 1970년대 초반에 포드에 매각되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이 차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한, 더 많은 폭스바겐 생산량 덕분에 카르만 기아의 등록대수는 둘 중에서 더 많다. 그러나 폭스바겐에 관한 요인에는 더 고려할 것도 있다. 과거 폭스바겐은 옛 르노차들과는 달리 참신하고 바람직한 차로 여겨진다. 그래서 상태가 훌륭한 플로리드는 1만5000~2만 파운드(약 2310만~3080만 원)면 살 수 있지만, 정말 최상급인 카르만 기아 값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멋지고 훨씬 더 빠른 - 그러나 이국적 분위기는 적은 - MGB라면 수 천 파운드 더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은 느리기는 해도 감각적인 스포츠카 스타일 승용차들이 보잘 것 없는 뿌리를 지닌 자동차 브랜드의 차들에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대릴 콜리어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

에섹스에 살고 있는 콜리어는 “구식 포르쉐나 메르세데스 파고다 중에서 고민하다가 굿우드에서 폭스바겐 전문가 타입 2 디텍티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2017년 이 차를 사게 됐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폭스바겐 자바를 타던 조니 애보트는 2005년 미국에서 그 차를 가져와 다시 칠하고 다듬었고, 대시보드도 교체하고 다이얼을 재조정했는데 많은 비용을 들여야했다. 후면 데크리드도 벗겨져서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다시 했다.”

 

토니 내핀
르노 플로리드 S

르노 마니아인 내핀은 “1960년대 초 플로리드와 카라벨을 차례로 소유했었고, 이 차는 10여년 전에 산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프로젝트를 원한게 아니라 단지 35년 간 처박혀 있다가 이전 주인에 의해 막 복원된 이 차를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되길 원했다. 나는 일상적인 유지보수를 넘어서는 것 외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4CV를 비롯해 르노 차량이 여러 대 있는데, 내 운전사는 현대적인 라구나 쿠페를 몰고 있다. 하지만 이 차를 파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폭스바겐 카르만 기아
판매/생산량    1955~74년/44만4300대(타입 14)
구조    강철 플랫폼 섀시와 차체
엔진    알루미늄 크랭크 케이스/헤드, 강철 배럴, OHV 1192/1285/1493/1584cc
             수평대향 4기통, 싱글/트윈 솔렉스 카뷰레터 혹은 보쉬 퓨얼 인젝션
최고출력    30마력/3700rpm-55마력/4000rpm
최대토크    7.7kg·m/2000rpm~12.0kg·m/3000rpm
변속기    4단 수동, 뒷바퀴굴림
서스펜션    토션 바, 병렬 트레일링 암, 텔레스코픽 댐퍼, 앞 안티 롤 바
스티어링    웜 앤 롤러
브레이크    드럼: 1966년 8월 앞 디스크 브레이크로 교체
크기(길이×너비×높이)    4140×1630×1325mm
휠베이스    2400mm
무게    810kg
0→시속 97km 가속    21.3~28.8초
최고시속    117.5~136.8km
연비    10.6~14.2km/L
신차가격    1166파운드(쿠페, 1960년)
현재가격    1만~3만 파운드(약 1526~4578만 원)

 

르노 플로리드 S
판매/생산량    1959~1968년/11만7113대(캐러벨 포함)
구조    강철 모노코크
엔진    뒤 배치, 강철 블록, 알루미늄 헤드, OHV 4기통 956cc, 싱글 솔렉스 카뷰레터
최고출력    46마력/5500rpm
최대토크    6.6kg·m/3300rpm
변속기    4단 수동, 뒷바퀴굴림
서스펜션    독립식, 앞 더블 위시본, 안티 롤 바, 뒤 스윙 하프 액슬, 래디우스 암:코일 스프링,
                     보조 고무 스프링 f/r
스티어링    랙 앤 피니언
브레이크    모두 디스크
크기(길이×너비×높이)    4260×1570×1310mm
휠베이스    2267mm
무게    746kg
0→시속 97km    17.6초
최고시속    143.2km    
연비    15.9km/L
신차가격    1168파운드
현재가격    6000~1만7000파운드(약 915~259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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