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馬不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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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馬不死
  • 최주식
  • 승인 2019.07.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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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둬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뭇하다. 비슷한 상대와 마주 앉아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 좋은 나무로 만든 바둑판 위에 ‘딱’ 돌을 놓던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장고 끝에 악수여도 좋았던 그때처럼 말이다. 잠시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나마도 시들해진지 오래. 하긴 책장을 넘기는 일조차 게을러진 요즈음이다. 바야흐로 손바닥 위의 조그만 기계로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데 몰두하는 시대다.

   옛 선인들은 인간사를 곧잘 바둑에 비유했다. 통찰을 담은 바둑용어가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게 된 이유일 것이다. 몇 해 전 드라마로도 인기를 끈 웹툰 ‘미생’을 비롯해 흔히 쓰이는 정석, 범의 아가리를 뜻하는 호구며 그밖에 포석, 강수, 무리수, 자충수 등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바둑용어들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둑용어로 대마불사(大馬不死)란 말이 있다. 바둑돌, 즉 말들이 모여 큰 집을 이룬 대마는 방어태세가 굳건해 쉽게 죽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조직이나 세를 키우고자 하는 욕심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큰 회사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Too big to fail)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대형 회사가 파산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로 구제금융 등을 통해 살아남는 경우다. 그래서 더 규모를 키우려고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바둑 대국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대마라고 방심하다가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오래 전부터 자동차계에도 대마불사를 꿈꾸는 회사가 적지 않았다. 한때 세기의 결혼이라고 불렸던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 역시 대마불사를 기대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질적인 두 회사는 서로의 차이만 확인한 채 거대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 사례는 많은 회사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또는 주었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렇듯 그 당사자가 되면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서막을 앞두고 세계 자동차업계의 리더들은 600만 대 생산규모를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 전망은 어긋났고 자동차 산업 예측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리고 그후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를 생각해보면 ‘예측이 맞지 않는다’는 말만 비교적 정확해 보인다.

  오랜만에 대마불사 생각이 난 것은 모처럼 자동차계의 초대형 합병 이야기가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즈(FCA)와 르노 이야기다. FCA의 50:50 합병 제안을 르노가 일단 검토하겠다고 받아들이면서 초대형 자동차업체가 탄생할 것인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처음에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그것이 루머라고 생각될만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유를 찾자면 한 가지, 대마불사 말고는 없다.  

  아무튼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이번에도 크라이슬러가 끼어 있다는 점. 그리고 합병을 통해 두 기업이 얻게 될 이익, 예를 들어 서로에게 부족한 플랫폼을 이용하고 취약한 시장에서 입지를 높인다는 등의 내용이 모두 헛소리처럼 들렸다는 점이다. 과거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병을 시도할 때 내세운 논거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자동차 산업은 혼돈에 빠져 있다. 전기차에 대한 수요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한 전망 역시 터무니없다. 내연기관은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목소리에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전동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혼돈의 시작은 모두 아는 것처럼 디젤 게이트에서 비롯되었다. 근래 심각하게 이야기되는 인천 지역의 붉은 수돗물 사태는 무리하게 물줄기를 튼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디젤 게이트도 그와 다르지 않다.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규모가 크다. 이 정도 규모의 산업 방향이 틀어졌다고 했을 때, 누군가 책임지고 방향을 바로잡아 주지는 않는다. 그저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야 할 따름이다.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19.7월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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