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l Balance Point, 볼보 V40 & V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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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l Balance Point, 볼보 V40 & V60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1.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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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대명사 볼보가 스포티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벤츠, BMW, 아우디·폭스바겐과 함께 국내 수입차 시장 ‘원년멤버’인 볼보는 1990년대 초중반에 걸쳐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94년에는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때 대표적인 수입차 브랜드였던 볼보는 2000년을 전후해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차츰 거리에서 볼보를 보기 힘들어졌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횟수도 점차 줄었다.

비슷한 시기 볼보는 해외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고, 주인이 볼보 그룹에서 포드 그룹으로, 다시 지리자동차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볼보가 지리자동차에 인수됐을 때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볼보는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며 가장 주목할 만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드라이브-E’가 있다. 드라이브-E는 볼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새로운 모듈식 직렬 4기통 2.0L 엔진과 아이신제(製)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한 구동계를 통칭한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성능과 연비가 크게 개선된 드라이브-E 모델을 발 빠르게 국내에 출시했고, 최근에는 드라이브-E를 적용한 R-디자인 모델 3종을 추가하며 라인업 강화에 나섰다. 지난 2007년 처음 선보인 R-디자인은 스포티한 이미지를 담은 모델이다.

먼저 강렬한 색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V40의 색상은 잘 익은 토마토 같은 ‘패션(passion) 레드’, V60은 가을 하늘처럼 청명한 ‘파워 블루 메탈릭’이다. 볼보 모터스포츠 DNA를 담은 R-디자인이지만, 과도한 공격성을 띠고 있지는 않다. 일반 모델의 기본 조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약간의 스포티한 터치를 가미한 수준. 물론 일반 모델과는 한눈에 구별된다.
 

두 모델 모두 앞 범퍼 하단 공기흡입구의 테두리를 감싼 에이프런이 근사하다. 측면은 우아함 속에서 스포티함이 엿보인다. 한때 극단적으로 네모난 형태였던 볼보는 1990년대 말 피터 호버리가 디자인디렉터일 때 현재의 곡선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유려하게 흐르는 풍만한 숄더는 관능적이다. V60은 S60 세단으로부터 파생됐지만, 파생 모델 특유의 어색함이 없다. 오히려 왜건을 먼저 디자인한 듯 비례가 좋다. 과연 왜건의 명가답다.

두 R-디자인 형제는 공통적으로 18인치 5스포크 다이아몬드 커팅 휠을 끼웠다. 디자인은 같고 색상조합만 다르다. 스포츠 섀시가 적용된 R-디자인 모델은 일반 모델 대비 지상고가 V40은 10mm, V60은 15mm 낮아 다부진 모습이다. 뒤에서는 박력 있는 디퓨저와 양쪽 끝에 자리한 커다란 배기구가 고성능을 암시한다. 외부의 금속성 부품들은 일반 모델의 것과 달리 광택이 곱게 처리해 차분하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두 형제의 실내공간은 매우 비슷한 분위기다. 실제로 서로 공유하는 부품이 많다. 하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디자인이 같은 듯 다른 부분이 상당하다. 실내 디자인은 언뜻 투박해 보이기도 하는데, 진중한 조형미가 돋보여 어른스러운 분위기다.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정갈하며 기능적인 인상이다. 천장까지 짙은 회색으로 덮인 실내공간과 대비되는 흰색 스티치와 금속성 부품들로 멋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품들은 오래 써도 웬만해선 상처 하나 나지 않을 것처럼 튼튼해 보인다. 대시보드 상단의 곡면은 흡사 어느 겨울날 훼손되지 않은 눈 덮인 들판의 완만한 기복을 보는 것 같다. 대시보드 표면은 가죽 느낌을 흉내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V40과 V60의 것은 나무껍질을 닮은 게 색다르다.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고, 앞 유리에 대시보드가 반사되는 것을 억제해 기능적으로도 만족스럽다.
 

시트는 디자인만큼 착석감이 좋다. 쿠션은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너무 푹신거리지도 않다.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푹신하다. 가죽 질감은 동급 최고 수준이다. V60 뒷좌석의 ‘2단 부스터 시트’는 어린이용 안전시트에 앉기를 싫어하는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쌍수를 들고 반길 기능이다. 실제로 부모들 사이에서 호응도가 매우 높다. 시트 아래를 들어 올리고 아이를 앉히면, 안전벨트와 사이드에어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되기 때문에 별도의 안전시트 장착이 필요 없다.

V40은 실내조명 색상을 7가지로 개별 설정할 수 있고, 실내온도 설정에 맞춰 자동으로 조절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실내 조명기구가 발달한 북유럽에서 건너온 차답다.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컵홀더다. 두 모델 모두 컵홀더가 둘레는 넓은데 지지대가 부실해 255mL 캔을 넣어두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서 불안하다.
 

두 형제에는 공통적으로 직렬 4기통 2.0L 트윈터보 디젤 엔진이 들어간다. 하지만 최고출력은 V40이 190마력, V60이 181마력으로 동생이 더 강한 심장을 지녔다. 최대토크는 40.8kg·m으로 같다. 엔진은 저회전부터 시종일관 매끄럽게 돌아간다. 화끈하기보다 꾸준한 감각이다.
 

V40은 제원표 상의 주요 지표가 경쟁모델인 폭스바겐 골프 GTD보다 모두 우위에 있다. 더 강력하고, 더 빠르고, 더 멀리 간다. 그런데 수치와는 별개로 체감성능은 GTD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유는 힘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 토크를 우악스럽게 쏟아내는 GTD에 비해 V40은 훨씬 점잖게 힘을 내기 때문.

GTD는 액티브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소리를 내며 체감성능을 높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수치가 증명하듯 실제로는 V40이 더 빠르다. GTD에 비해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0.3초 빠른 7.2초, 최고시속은 2km 빠른 230km다. 복합연비는 V40이 16.8km/L, GTD가 16.1km/L다.
 

V60은 0→시속 100km 가속시간을 제외하면 경쟁모델인 BMW 320d 투어링 M 스포츠 에디션과 비등한 성적표를 쥐고 있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V60이 7.6초, 320d가 7.1초로 0.5초 차이가 나는 반면, 최고시속은 V60이 225km, 320d가 226km로 거의 같다. 박차고 나가는 느낌은 아무래도 뒷바퀴굴림인 320d가 우세하지만, 실제 체감 성능은 대동소이하다. 복합연비 역시 V60이 15.8km/L, 320d가 15.7km/L로 사실상 같다.

두 형제가 공유한 8단 자동변속기는 모난 구석이 없다. 빠르고 매끄러우며, 똑똑하게 작동한다. 엔진과의 궁합이 매우 좋고, 시프트패들 조작 응답성도 빠르다. 다만, 스포츠 모드에 두고 고회전에서 변속하면 약간 튀는 경향이 있다. 의도된 파워시프트 연출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표현이 너무 소심하다.
 

구동계를 공유한 V40과 V60이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승차감과 핸들링이다. V40의 서스펜션이 V60보다 훨씬 단단하게 세팅됐다. 요철이 많은 구간에서 V60이 노면을 누르며 달리는 느낌인 반면, V40은 노면을 타고 달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충격을 예리하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스포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감각이 살아 있다. V60은 V40에 비해 시종일관 온화한 움직임을 보인다.

더 작고 가벼운 차체에 더 단단한 서스펜션을 갖춘 V40이 코너에서 V60보다 좋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전자식 디퍼렌셜을 갖춘 독일 라이벌만큼 날카롭게 돌아나가지는 못했다.
 

코너 안쪽으로 파고드는 감각이 덜하다. 하지만 의도대로 경쾌하게 움직인다. V60은 앞바퀴굴림 왜건치고는 움직임이 좋지만, 앞이 무겁고 뒤가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다. 스티어링은 정확하지만 날카롭지는 않으며, 약간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다. 3단계로 무게감을 조절할 수 있다.

V40과 V60에 들어간 각종 운전 보조 장비들에 관해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것들만으로 6페이지를 빼곡히 채울 수 있을 정도.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360° 서라운드 카메라만 제외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장비를 다 집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전자장비는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나다. 안전 관련 기능은 시각적으로 충분히 표현함으로써 운전자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은 매우 인상적이다. 시속 30~200km 범위에서 작동하며, 스티어링 휠에 달린 버튼으로 간격과 속도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다. 가·감속에 위화감이 없고, 시속 30km 이하에서는 ‘큐(Queue) 어시스트’가 완전 정지와 재출발을 자연스럽게 수행해낸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답답한 출퇴근길이나 주말 고속도로에서 오직 스티어링에만 집중하면 된다.

ACC와 큐 어시스트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자동으로 감속하거나 멈출 때 브레이크 페달이 스스로 아래위로 움직인다. ACC가 달린 차들 중에 이런 차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게 된다. 브레이크 페달 동작을 통해 기계에게 운전을 맡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일부 해소하고, 신뢰감과 안도감을 안겼다.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시티 세이프티’ 기능은 시속 50km 이하에서 작동하며, 전방 150m 범위 안의 차량과 사람을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추돌이 예상되면 스스로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제 보행자나 자전거를 탄 사람처럼 부피가 작은 물체도 감지한다고 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제로 확인해볼 기회는 없었다.

그밖에 수많은 첨단 안전장비를 탑재했지만, 전자 조절식 댐퍼 등 운동성능과 직결된 기능이 없는 것은 아쉽다. R-디자인 모델들이기에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통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센서스’는 메뉴와 서브 메뉴가 너무 많아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보다 논리적이고 능률적인 구성이 필요하다.
 

아마 본지 독자는 ‘나쁜 녀석들’이라고 하면 현재 방영 중인 케이블 방송 드라마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나쁜 녀석들〉에서 화끈한 추격전을 벌이던 포르쉐 911 터보와 쉘비 코브라 427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포르쉐와 쉘비는 각각 잘생긴 총각 경찰 마이크 라우리(윌 스미스)와 마약상 푸셰(체키 카료)가 애지중지하는 애마다. 여기 또 한 명의 주요인물이 있다. 라우리의 동료 마커스 버넷(마틴 로렌스)이다. 공처가이자 세 아이의 아빠인 버넷의 차는 낡은 볼보 240 에스테이트. 은신처를 급습한 마약조직 일당을 피해 달아난 줄리 모트(테아 레오니)는 버넷의 볼보에서 이렇게 외친다. “이런 고물차로는 도망칠 수 없어요! 맙소사, 이거 스테이션 왜건이에요?”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볼보 왜건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볼보로는 안전하고 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고, 볼보는 1994년 모터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왜건을 경주에 투입했던 브랜드라고.
 

안전의 대명사 볼보에게 아드레날린은 위험 물질일까? V40 D4 R-디자인과 V60 D4 R-디자인은 스포츠 모델을 표방하지만, 일반 모델과의 주행감각 차이가 크지 않으며, 동급 경쟁모델들에 비해 박진감이나 짜릿함도 다소 부족하다. 자극이 덜한 대신 훨씬 포용력 있고 어른스럽다. 어쩌면 운전에 대한 열정과 가족사랑 사이의 이상적인 균형점일지도 모른다.

글 · 임재현 에디터
사진 ·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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