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고급차의 대명사였던 그랜저는 상위 모델들이 자리함에 따라 오너 드라이버를 위한 하이 세단으로 이미지를 변신했다. 이에 따라 과거 권위적이었던 디자인을 벗고 한층 스포티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준대형차의 실루엣에서 연상되는 쿠페 라인은 신세대 그랜저의 스포티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앞모습은 보수적인 고객층을 배려해 중후함을 덧대었다. 리어 램프는 상징인 육각형 모양을 만들다보니 길게 이어진 형태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타입이 되었다. 요즘엔 잘 쓰이지 않는 방식이다.
기아 K7은 최근 더 프레스티지 K7이라는 이름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외관의 변화는 미미하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이 블랙 매쉬 타입으로 바뀌었고 리어 턴 시그널 램프를 LED로 바꾸었다.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의 특징이 묻어나는 K7은 선의 흐름이 유연하면서도 준대형차의 권위도 잘 버물렸다. 뒷모습은 아우디를 연상시킨다.
인테리어
그랜저는 원형 듀얼 계기판 가운데 정보창 그래픽이 선명하고 보기 좋다. 잘록한 허리 라인의 센터 페시아 뒤로 빈 공간을 마련한 센스가 돋보인다. 가운데 2개의 로터리식 조절장치 주변으로 각종 버튼류가 일목요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는 오디오 조절, 오른쪽에는 크루즈 컨트롤과 스티어링 휠 히팅 스위치가 달려있다. 그 아래 디스플레이 모드를 누르면 계기판 정보창에 나침반이며, 차량설정 선택 모드가 나타나 원하는 세팅을 할 수 있다.
주행성능
그랜저의 시동버튼을 눌러 3.0 GDI 270마력의 파워를 깨운다. 조용하게 기지개를 켠 엔진은 차체를 가볍게 내몬다. 스티어링 휠은 저속에서 조금 가벼운 느낌이고 속도를 늘려갈수록 적당한 무게감을 갖는다. 서스펜션은 말랑말랑한 느낌으로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충격흡수력이 좋은 편이다. 최근 현대차의 서스펜션은 조금 하드하게 가는 추세인데, 그랜저는 소프트함에 치중했다. 이런 세팅은 확실히 승차감이 좋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그랜저의 주요 고객이 40대이기 때문이라는 게 개발팀의 설명이다.
자동 6단 트랜스미션은 이전보다 변속 타이밍이 매끄러워졌다. 기어 레버는 수동기능을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짧고 아담한 사이즈다. 시속 120km 이상의 고속에서 GDI 엔진은 오히려 더 조용해진 느낌이다. 가속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이어진다. 시속 180km를 넘어서는데 주저함은 없다. 하체의 움직임은 유연하면서 차체의 움직임을 잘 받쳐준다. 이러한 움직임은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시트도 그랜저보다 좀 더 단단한 느낌. 같은 3.0 GDI 엔진이지만 좀 더 스포티한 느낌을 받는다. 이 차로 얼마 전 영암 F1 서킷을 달려 본 적이 있다. 급격한 고속 코너링에서 무게중심을 잃지 않았고 자세의 변화에 따른 응답성과 회복력이 뛰어났다. 직선구간에서의 가속성도 뛰어났다. 한마디로 기대 이상의 스포츠 성능을 보여주었다. 오늘 일반도로에서의 달리기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탄탄한 주행성능은 스포츠 세단의 자질도 보여준다.
과거에는 플랫폼을 공유했다고 하면 스타일 이외에는 차별성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그랜저와 K7은 데뷔시기를 다르게 하면서 서로 경쟁력있는 부분을 앞세우거나 보완하는 식으로 경쟁하고 있다. 처음에는 엔진 라인업이 달랐으나 이제는 똑같아졌다.
장비도 거의 같다. 하지만 색깔은 분명히 다르다. 그랜저가 남성적인 분위기에 안락한 승차감을 강조했다면, K7은 부드러운 디자인에 오히려 주행성능은 보다 남성적인, 스포티한 세팅에 치중했다. 실내에서는 시트 질감이 부드러운 그랜저가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차분하고 정제된 느낌의 K7은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차의 성격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차를 고르는 것이 포인트다. 가족용 패밀리카로서는 그랜저, 비즈니스 세단으로서는 K7이 좀 더 어울린다고 할까? 경쟁을 통한 발전은 당사자에게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결과를 안겨준다. 자존심을 내세운 경쟁은 보는 이들에게는 재미있는 볼거리를 주기도 한다.
글 · 최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