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자동차 기업, 라다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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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자동차 기업, 라다를 방문하다
  • 앤서니 피콕
  • 승인 2014.04.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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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러시아의 피아트라고 시시덕거린 세월이 참으로 길었다. 한데 그런 비아냥이 마침내 끝날 때가 됐다. 정치노선을 과시하기 위해 리바(Riva)를 몰고 다니던 순정파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발맞춰 탈바꿈한 라다는 지난날과는 인연이 없다. 전기형 라다, 천연가스 라다가 있다. 심지어 모터스포츠 부서의 한쪽 구석에는 제대로 굴러다니는 슈퍼카 콘셉트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변화에도 라다는 여전히 러시아 풍토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요컨대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라다를 몰고 다닌다. 간혹 러시아 갑부가 람보르기니를 몰고 모스크바 순환도로를 달리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와 눈길을 끈다. 하지만 러시아 도로에는 실로 다양한 성능․장비를 갖춘 깨끗한 라다가 수천-수만 대에 이른다. 결국 대부분이다.

현재 러시아 최대의 베스트셀러는 라다 그란타. 앞으로 2년이면 사라질 프리오라를 바탕으로 2011년 시장에 나온 모델이다. 그란타는 모터스포츠 혈통을 타고 났다. 지난해 영국계 레이싱 드라이버 제임스 톰슨이 선두에서 FIA 세계투어링카 선수권(WTCC)을 공략했다. 꾸준히 톱 10에 진입하는 놀라운 전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따라서 라다는 역사상 처음으로 과분하게 스포티한 그란타 스포트를 내놨다. 지난해 4월에 출시한 이 차는 수제 스포츠 세단.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핵심 생산라인(독일 기업 아이젠만이 담당했다. 사실상 독일 쾰른의 포드 시설을 그대로 본떴고, 길이 2km의 환상코스를 따라 건설됐다)과 별개의 공장에서 백색 보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란타 스포트가 주문형이라고 하지만 특별히 정교한 손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엔진과 서스펜션을 손질하고, 기어비를 바싹 끌어당기며, 독특한 스포츠 시트에 빨간 실밥자국을 넣는다. 한데 그것만으로 사실상 값은 2배나 올라간다.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반가운 소식이 있다. 그래봤자 기본형 그란타의 5천450파운드(약 970만원)에 비해 약 9천 파운드(약 1천600만원)로 올라갈 뿐이니까 말이다.

가령 중국제나 다른 러시아제에 비해 훨씬 좋은 차를 손에 넣게 된다. 요코하마 타이어를 신었고, 열선시트를 비롯해 몇 가지 옵션장비를 고를 수 있다. 특히 열선시트는 천지가 얼어붙는 시베리아의 동토대에 필수적이다. 생산량은 적다. 현재 하루 8대 꼴이고, 올해 후반에 가서 15대로 늘어난다. 지금 당장 그란타 스포트는 러시아 시장에만 나간다. 국내시장 수요(현재 대기 기간은 3개월)를 맞출 수도 없다.

기본형 그란타—러시아의 확고한 베스트셀러—는 한결 기본적이다. 하지만 상쾌한 크렘린의 아침, 비실거리는 대통령, 털모자와 존 르 카레의 첩보 소설을 떠올리는 매연투성이 고물딱지 피아트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라다는 요즘 괜찮은 차를 만든다. 특히, 값에 비해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구파로 돌아간다면 조금만 더 줘도 사마라를 손에 넣을 수 있다. 5도어 해치백뿐이지만 여전히 시장에 나온다. 혹은 라다 4×4(라다는 가장 뛰어난 아이콘이었던 명칭 ‘니바’(Niva)를 쓸 수 없게 됐다. 쉐보레가 사용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로 한 단계 올라갈 수도 있다. 라다 4×4에 만족한 고객 중에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도 포함됐다. 그는 사냥용으로 특수 장비를 갖춘 위장형 모델을 주문했다.

라다는 푸틴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많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러시아 총리였던 푸틴이 정부지원으로 라다를 구출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라다가 살아남았을지 의심스럽다. 그 위기에 뒤이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뛰어들어 수많은 새 모델에 접근할 길을 열어주며 라다를 부축했다.

하지만 라다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현대적 모델에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란타와 칼리나가 그런 본보기. 후자는 덩치가 커진 5세대 포드 피에스타를 상당히 닮은 해치백이다. 신형 칼리나가 얼마 전 시장에 나왔고, 현재 그란타에 이은 제2의 베스트셀러. 다만 값이 훨씬 비싸다.

라다의 최신 모델은 전혀 라다가 아니다. 르노-닛산과의 합의에 따라 배지를 갈아 단 다시아 로간. 라다 라르구스라 불리는 이 차는 러시아 시장에 나온 유일한 7인승이다. 유럽 다른 지역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러시아의 도로와 연료에 맞춰 특히 서스펜션과 엔진을 다시 손질했다.

라르구스 역시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따라서 다시아 시장 밖으로 수출할 계획은 아직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그란타가 이미 팔리고 있는)처럼 도로사정이 러시아와 비슷한 지역에 앞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과 체코에 그란타가 들어간다. 하지만 내년에 디자인 총책 스티브 매틴이 설계한 차세대 모델이 나오면 수출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러시아에는 2개의 대형 라다 공장이 있다. 그중 핵심이라고 할 공장은 톨리아티에 터를 잡았다. 톨리아티는 영국의 대거넘과 독일의 볼프스부르크(그들을 본떴다), 보다 정확히 말해 이탈리아 토리노와 같이 러시아 자동차 생산의 수도다. 1970년 현행 공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톨리아티는 토리노에서 바로 가져온 피아트 124 생산라인으로 흥청거렸다. 피아트 124가 고전적 라다의 바탕을 마련했고, 뒷날 영국에서는 리바로 불렸다. 리바는 2년 전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톨리아티는 철저한 라다의 도시. 약 6만6천 명(전체 인구 72만 명 중)이 라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한데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그 숫자는 10만2천 명에 이르렀다. 더구나 이들이 회사와 상호간에 느끼는 충성심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높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치자 라다 사장 이고르 코마로프는 소액의 감봉을 받아들인다면 감원은 없다는 서신을 사원들에게 보냈다. 사원 10만2천 명 가운데 27명을 제외하고 동의했다.

질펀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거대한 정문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서로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그곳에서 ‘라다가 아닌 차를 찾아내는 것.’ 5분간 걸어가는 동안 초록색 BMW 한 대와 초라한 르노 몇 대가 있을 뿐이었다.

톨리아티는 사회주의 낙원으로 건설됐다. 1927년에서 세상을 떠난 1964년까지 이탈리아 공산당 당수였던 팔미로 톨리아티의 성을 따왔다. 소련의 절대적 친구였던 톨리아티는 아브토바즈와 피아트의 협력을 끌어내는 주역이었다. 그에 따라 지난날 볼가 강변의 스타보로폴이라는 도시가 톨리아티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라다 공장은 피아트의 미라피오리 공장과 흡사하지만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으레 모든 일을 사내에서 해결한다. 강철 프레스공장에는 지금도 당초의 형단조기가 남아 있다. 그들은 보다 현대적인 장비로 대체되고 있다. 이곳이야말로 옛 라다의 마지막 요새다. 불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부품을 찍어내는 낡은 기계가 쿵쾅거린다. 조용히 정확하게 돌아가는 첨단기계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는 낫과 망치로 상징되는 공산국가 소련의 마지막 흔적이다. 펑 뚫린 건물 안에 길이 1km의 거대한 구덩이가 최신 형단조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계를 조립하려면 약 1년이 걸린다.

칼리나, 프리오라와 그란타 생산 공장은 2003년 문을 열었다. 라르구스와 닛산 알메라를 만드는 최신 생산라인은 2년 전에 들어왔다. 내년에는 거기서 닷선도 만들게 된다. 아울러 아직 이름을 짓지 않은 중형 르노도 합세한다. 이 방대한 시설을 24층의 라다 본부 건물이 내려다보고 있다. 1997년 문을 열었고, 기발한 건축가의 손을 빌렸다. 그는 양파형 황금돔을 갖춘 초대형 러시아 정교 예배당을 톨리아티에 세웠다.

본부 건물 꼭대기에는 라다 로고를 말해주는 선박 조각이 얹혀 있다. 알고 보면 ‘라다’는 러시아어로 ‘돛단배’라는 뜻이다. 동시에 ‘아름다움의 여신’이라 옮길 수 있는 여인의 이름이기도 했다. 아무튼 상당히 품격 있는 식당에서는 음식도 현대화됐다. 식당 바깥의 반 이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거기 나가서야 톨리아티 공장이 얼마나 방대한가를 알 수 있었다. 이 공장은 저 유명한 볼가강으로 뻗어나갔고, 거기서 돛단배 ‘라다’라는 이름이 나왔다.

모든 건물은 1966년에 시작된 거의 그대로였다. 당시 동서 냉전은 절정에 달했고, 소유즈 제1호 로켓이 우주로 날아갔다. 한데 요즘 공장 안에서는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 앤서니 피콕(Anthony Pea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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