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엥(Citroen)이 걸어온 100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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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Citroen)이 걸어온 100년의 역사
  • 송지산
  • 승인 2019.06.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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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오래된 브랜드가 대중적으로 널리 호평 받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오래 유지되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낸 혁신적인 업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사 100주년, 한 세기동안 한 길을 걸어오며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늘 혁신하는 브랜드, 바로 프랑스의 국민 자동차 브랜드 시트로엥의 이야기이다

시트로엥의 설립자인 앙드레 시트로엥(1878~1935), 그가 자동차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오토모티브 모스에 스카우트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생산 공정 정비를 통해 연간 125대에 불과하던 자동차 생산량을 연 1200대로 10배 가까이 늘리며 미국식 대량생산 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14년 세계 1차대전 때는 포병대 소위로 포탄 생산을 담당하며 단 몇 달 만에 하루 5만5천개의 포탄을 생산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이때의 생산 공장이 바로 시트로엥의 시작점인 콰이 드 자벨 공장이었다.

 

시트로엥의 설립자 앙드레 시트로엥

휴전협정 이후, 공장의 업종을 바꿔야했던 그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통한 대중화로 목표를 세우고 1919년, 시트로엥의 첫 차인 ‘타입 A’를 탄생시키며 자동차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군수품을 생산하던 콰이 드 자벨 공장. 이후 이 곳은 시트로엥의 시발점이 된다

다양한 자동차들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려나간 시트로엥은 파격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며 승승장구했지만, 1929년 전 세계를 덮친 경제 대공황에는 당해낼 수 없었다. 1934년에는 미쉐린에 인수되는 상황도 있었으나, 창의적이고 실용성을 갖춘 제품을 끊임없이 선보이며 유럽 자동차산업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시트로엥의 첫번째 차, 타입 A

1976년에는 푸조와의 합병을 통해 지금의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이 세워졌다. 브랜드가 합병됐음에도 시트로엥은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독창적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조절식 댐핑 시스템이 탑재된 플래그십 모델 XM으로 국제상을 휩쓰는가 하면, 1990년 파리모터쇼에 전기차 C15와 C25를 선보이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널리 알렸다.

 

사하라 사막 횡단을 통해 제품의 성능과 내구성을 널리 알렸다

시트로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모터스포츠다. 1990년 시트로엥 모터스포츠로 시작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연속,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으로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제조사 타이틀을 석권했다. 이렇게 승리의 원동력이 된 기술과 노하우는 실제 양산 제품에도 적극 반영됐다. 거친 노면을 안정적으로 달리기 위한 서스펜션 기술은 지금의 ‘프로그레시브 하이드롤릭 쿠션’ 서스펜션으로 이어지는 등 제품 개발에도 기여했다.

 

XM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성능으로 많은 상을 휩쓸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시트로엥만의 디자인과 운전자를 고려한 실용적 제품을 연이어 선보이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브랜드 최초의 SUV인 C-크로서, 그랜드 C4 피카소, C1 등을 출시하며 라인업을 다양화했으며, 2009년에는 창립 90주년을 맞아 에어범프가 장착된 C4 칵투스와 같은 시트로엥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모델로 변화를 시도했다. 2016년에는 ‘시트로엥 어드밴스드 컴포트 프로그램’을 통해 신체적, 심리적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새로운 플래그십인 뉴 C5 에어크로스 등 SUV 라인업을 강화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시트로엥은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SUV 열풍에 힘입어 C4 칵투스, 그랜드 C4 스페이스투어러, 뉴 C5 에어크로스, 뉴 C3 에어크로스 등 SUV 라인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2019년 1분기 22만 9천여 대를 판매하며 유럽 내 12개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유일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참가를 통해 기술력을 알렸으며, 여기에서 쌓은 노하우를 양산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까지 쌓아온 100년간의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가기 위한 새로운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이를 따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놀랍고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보여줄 것이다. 이는 시트로엥이 지금껏 해왔던 것이고, 시트로엥이 가장 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년 역사를 꽃피운 영광의 이름들

 시트로엥 100년의 역사는 수많은 모델의 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빛나는 모델을 살펴보았다.

 

트락숑 아방(Traction Avant)
1934년부터 1957년까지 76만여 대가 생산된 모델로, 당시로썬 흔하지 않았던 앞바퀴굴림 방식을 채택하고, 강철 모노코크 섀시, 유압식 브레이크, 독립 서스펜션 등을 갖춰 뛰어난 핸들링으로 사랑받았다. 또한 경쟁 모델보다 훨씬 가볍게 제작되어 시속 100km까지 달릴 수 있었음에도 연비가 리터당 10km에 달할 정도였다.

 

타입 H
TUB를 바탕으로 1947년에 출시된 타입 H는 슬라이딩 사이드 도어, 낮은 바닥, 높은 실내 공간 등으로 1200kg의 짐을 실을 수 있어 상용차량으로 큰 인기를 얻어 1981년까지 총 49만 대 이상 제조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경찰의 죄수 호송용 차로도 잘 알려졌다. 근래에는 푸드 트럭으로 개조되며 다시 한 번 인기를 얻고 있다.

 

2CV
1948년부터 1990년까지 총 380만 대 이상(파생 차량까지 500만 대 이상) 생산된 시트로엥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모델. 2CV는 프랑스어로 ‘2마력’을 뜻한다. 뛰어난 승차감, 우수한 연비, 높은 적재성, 쉬운 조작법 등 ‘대중적인 차’를 목표로 개발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자동차 26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DS
1955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된 시트로엥 DS는 처음 공개된 파리 모터쇼에서 첫 날에만 1만 2000대, 모터쇼 마감 때까지 무려 8만 대의 주문이 이뤄졌을 만큼 큰 인기를 얻은 모델이다. 진보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은 공기역학적 설계로 이루어졌으며,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 파워스티어링, 디스크 브레이크, 반자동 기어박스 등이 적용됐다. 특히 계기반을 잘 볼 수 있도록 설계한 단일 스포크 핸들은 지금 다시 봐도 매우 획기적인 디자인이다. 이후 시트로엥의 고급 브랜드 DS의 디자인 기반이 되었으며, 현재는 PSA그룹 산하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CX
1974년 공개되며 DS의 자리를 이어받은 모델로, 이름의 CX는 항력계수를 뜻한다. 공기역학적 설계가 이루어져 낮은 항력계수를 갖는다는 의미다. 지금과 같은 스티어링 칼럼 대신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도 모든 제어장치를 이용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의 조작계를 사용했다. 1975년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1991년 생산종료 시까지 110만 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C4 칵투스
2013년 칵투스 콘셉트 카로 처음 선보였다. 이름의 ‘칵투스’는 선인장을 뜻하는 단어로, 물을 조금만 줘도 잘 자라는 선인장처럼 연비가 우수하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외관에서 가장 특징적인 차량 손상 방지 시스템인 에어범프를 비롯해 지붕에 설치된 조수석 에어백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도입되며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대를 선도한 시트로엥의 신 기술

 

대량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시트로엥의 첫 차인 타입 A

시트로엥의 첫 번째 차량인 타입 A는 1919년 출시됐으며, 헨리 포드의 대량 생산 방식을 적용한 유럽 최초의 차량이었다. 이를 통해 타입 A는 경쟁 모델보다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많은 대수를 판매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 당시의 자동차 차체는 목조 프레임에 장착된 강철판으로 구성된 마차와 같은 형태였다. 1924년 출시된 시트로엥 B10은 강철 프레임을 사용한 유럽 최초의 자동차였다. 


1926년 B14에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혁신적인 안전 기능이 도입됐다. 바로 브레이크 라이트가 그것으로, 1950년대가 되어서야 고속도로 안전규정에 브레이크 라이트가 포함됐을 정도로 당시에는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이와 함께 간접 조명이 더해진 계기판, 조정이 가능한 앞좌석, 제동 효율을 높여주는 파워 어시스트 브레이크 시스템이 더해져 안전성을 높였다.

 

부동엔진이 장착된 차량에 부착되는 백조 배지

1932년부터는 시트로엥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 부동엔진 기술을 적용했다. 엔진과 섀시 사이에 고무 블록을 장착해 진동을 흡수하게 한 것으로, 이 기술이 적용된 차량에는 시트로엥의 더블 쉐브론(갈매기) 로고 하단에 물에 떠있는 백조를 형상화한 특수 배지를 추가했다. 


1934년의 트락숑 아방은 앞바퀴굴림 엔진과 함께 강철 모노코크 섀시, 유압식 브레이크, 독립적인 서스펜션 등 당시 생산되는 자동차가 갖추지 못했던 선구적인 기술을 탑재했다.


1967년 DS에 도입된 혁신적인 신기술은 바로 차량 조향에 따라 헤드라이트의 조사 방향이 함께 바뀌는 기술로, 지금의 전자식과 달리 케이블을 통해 이루어지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차체에 ABS 소재를 사용한 메하리

1968년의 메하리에는 독특한 소재를 적용했다. 바로 ABS 플라스틱으로, 차체에 ABS 소재를 적용해 높은 내마모, 내부식성을 갖도록 했다. 레저용 차량인 메하리의 ABS 소재 사용은 해변에서의 주행에 이상적이었다.


1989년 XM에는 세계 최초로 하이드롤릭 서스펜션과 전자식 서스펜션인 하이드라 액티브 서스펜션이 장착됐다. 일반과 스포츠 2가지 모드를 적용, 도환경에 따라 운전자가 서스펜션의 특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시트로엥의 독창적 마케팅과 홍보 전략

 

에펠탑을 광고판으로 사용한 홍보는 현재까지 시트로엥이 유일하다

시트로엥은 1919년 설립됐지만, 당시 경쟁 브랜드였던 푸조나 르노에 비하면 후발주자였다. 앙드레 시트로엥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첫째로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조립 공정으로 대량 생산이 이루어져야 하며, 둘째로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헨리 포드가 개발한 조립 공정을 이용해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마케팅과 홍보 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첫 번째는 바로 ‘애프터세일즈’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수많은 정비 네트워크의 확보를 통해 판매 이후에도 고객들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트로엥의 자동차를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그리고 유럽 최초의 자동차 금융 회사를 설립, 고객들이 저금리 대출을 받아 쉽게 차를 구입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으로 고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1926년에는 업계 처음으로 서비스 수리 매뉴얼과 부품 카탈로그를 제작, 배포하며 더욱 원활한 정비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홍보에 있어서도 시트로엥은 남달랐다. 1921년 당시 교통 표지판에는 스폰서를 표시할 수 있었다. 앙드레 시트로엥은 이것에 주목하고 10만 개가 넘는 프랑스의 교량 표지판에 시트로엥 로고를 삽입해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파리 하늘에 그린 시트로엥

1922년에는 파리 모터쇼가 개최됐는데, 개막 몇 시간 전 샹젤리제 거리 상공에 비행기 연기로 시트로엥 브랜드 이름을 하늘에 써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같은 해 시트로엥은 자동차의 내구성을 증명하고 무한궤도 트랙 기술을 알리기 위해 사하라 사막 횡단을 결정, 알제리 북동부의 투구르트에서 말리 팀북투에 이르는 3200km의 대장정을 치렀다. 이후에도 시트로엥은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레바논에서 중국 북경까지 달리는 등 대규모 원정을 수차례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신문과 잡지를 통해 홍보하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등 적극적으로 브랜드와 기술력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1923년에는 시트로엥에서 판매중인 모든 라인업을 이끌고 도시에서 시골까지 전국을 도는 로드쇼 ‘카라반 시트로엥’을 개최했다. 이 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직접 차를 타보고 운전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는 현재에도 진행하는 고객 시승 행사와 같은 ‘다이렉트 마케팅’의 초기 모델인 셈이다.


시트로엥은 홍보를 위한 미니어처 제작에도 나섰다. 이는 주 고객층이 아닌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아이들이 부모의 의사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향후 자동차를 소유하게 될 잠재적 고객이라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앙드레 시트로엥은 “프랑스의 아이들이 처음으로 말하는 단어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시트로엥’이라고 말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트로엥은 에펠탑에 광고를 한 유일한 기업이자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옥외광고를 진행한 기업이었다. 1925년 25만개의 전구와 600km의 전선으로 시트로엥의 이름과 로고를 에펠탑에 빛으로 수놓았다. 이 광고는 1934년까지 이어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옥외광고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이 광고를 바탕으로 유명인을 통한 셀러브리티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비행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세계 최초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비행한 바로 다음날, 시트로엥 공장으로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린드버그가 “에펠탑의 시트로엥 광고를 보고 착륙지점인 파리 르부르제 공항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이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방영되며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


이후 시트로엥은 이러한 유명인을 통한 광고 가치를 높게 평가해 영화배우나 유명 정치인을 이용한 광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클라우디아 쉬퍼, 그레이스 존스 등을 통한 유명인 마케팅을 진행했으며,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이름을 따 21세기 첫 차의 이름을 ‘엑사라 피카소’로 명명하기도 했다.

 

 

 

HOT NEWS - 브랜드 성장을 위한 영업직 분리 실시

 

시트로엥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는 5월부터 시트로엥 전담 영업사원 배정을 골자로 하는 영업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브랜드의 중장기 성장 발판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 딜러사 영업사원들은 시트로엥과 푸조 제품을 모두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트로엥 제품 라인업이 확대됨에 따라, 독립된 판매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고 보고 5월부터 각 브랜드별 전담 인력을 배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푸조·시트로엥 멀티 브랜드 딜러사별로 총 영업 인력의 20% 이상, 전시장 별 최소 3명 이상을 시트로엥 전담 영업사원으로 배정해 전국적으로 최소 30명 이상의 시트로엥 전담 영업사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시트로엥 영업사원만을 위한 교육 및 인센티브 제도 강화, 전담 마케팅 조직 운영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브랜드 독립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한불모터스 송승철 대표이사는 “시트로엥 브랜드 성장의 주요 동력인 전담 영업 인력 배치를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 모멘텀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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