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스는 바닥에 깔린 기포고무 조각 위에 앉았다. 만일 좌석을 갖췄다면 동료들이 그의 머리 위에 덮을 비행기 캐노피가 제대로 보디에 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승객 공간은 단단한 금속제 좌석이었고, 밑바닥의 모든 장비도 덮여있었다. 수준 높게 엔진을 조율했고, XK의 오른쪽 헤드램프를 제거하여 터보의 공기밀도를 높였다. 안개 낀 선선한 이른 아침이었다. 더해진 힘이 굉장히 소중했다. 더위스는 제1차 주행에 들어갔다. 몇 분 뒤 폐쇄된 고속도로에 들어가 왕복주행에 도전했다. 그의 왕복 평균인 시속 277.4km는 신기록이다. 벨기에 왕립자동차클럽이 그 기록을 공인했다.
아무튼 시속 277.4km는 현지 경찰이 보기에 충분히 빨랐다. 그들이 자베케 고속도로의 공식 속도시험을 심판했다. 당연히 속도가 약간 과도하게 높다고 평가했다. 더위스는 재규어 드라이버로 계속 모터스포츠에 나갔다. 거기에는 참사가 벌어진 1955 르망 24시간도 들어 있었다. 게다가 수십 년간 재규어 수석 엔지니어의 자리를 지켰다. 다가오는 그의 100회 생일에 XJ13(고속질주하던 MIRA에서 뒹굴었지만 무사히 빠져나온)을 시속 160km로 몰아보고 싶다고 했다.
8년 뒤 1961년 3월 제네바모터쇼 불과 몇 주 전에 재규어가 되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해 재규어 한 대가 돌아왔다. <오토카>는 시승용으로 신형 E타입 한 대를 받았다. 제네바에서의 첫선을 몇 주일 앞둔 때였다. 쿠페형의 등록번호는 9600HP. 똑같은 고속도로 구간에서 시속 240km를 돌파했다. <오토카>의 최대 라이벌 <더 모터>(The Motor. 뒷날 우리 <오토카>에 흡수‧통합됐다)가 같은 목적으로 로드스터 한 대를 빌렸다. 이탈리아 고속도로 한 구간에서 한 방향으로 시속 240km를 냈지만, 양방향 기록 작성에는 실패했다.
생산이 계속된 13년간 E타입은 당대 영국 자동차산업의 장단점을 모두 갖췄다. 출시 때는 혁명적이었고, 그 뒤 정성껏 손질하여 몇 가지 결함을 덜어냈다. 한데 때로는 큰 손질을 하느라 생산이 중단됐다. 차는 점점 더 길고 무거워졌다. 결국 제 수명보다 더 오래 시장에 나왔다. 마침내 E타입은 약간 해괴한 시리즈 Ⅲ에 도달했다. 게다가 섀시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V12를 얹었다.
마침내 그 후계차가 F타입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때였다. XF, XK와 XJ 라인업은 재규어의 역사상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XF 바로 아래 중역형이 대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규어의 부활은 빈틈없이 완성된다.
따라서 E타입을 다시 찾아보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가 없다. 지금 당장 어떤 과제나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알파벳 순서로 F타입을 들어서게 만든 차를 고속으로 신바람 나게 몰아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현재의 상태를 보고 과거 전성기의 실체를 상상해보기로 했다.
<오토카>가 시승했던 가장 이름난 쿠페 9600 HP는 개인의 손에 들어갔다. 한데 재규어는 지금도 <더 모터>의 시승차 로드스터 77RW를 갖고 있다. 게다가 상태도 아주 좋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그 차를 빌려 벨기에를 갔다 올 수 있을까? 자베케 고속도로로?” “물론” 원더플!
그리하여 어느 가을날 아침, 사진기자 스튜어트 프라이스와 나는 코번트리의 브라운스 레인에 있는 재규어 역사센터를 찾았다.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이사를 하느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대지는 몇 년 전에 팔렸다. 따라서 테일러 윔피는 주택건설업자가 으레 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규어는 떠나야 하고, 이 시설을 떠나는 마지막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차들은 모두 떠났고, 재규어의 기록과 서류가 상자에 들어가 다른 작업장과 창고로 실려 갔다. 재규어 역사센터 총수의 사무실 의자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럴 때 가슴 아픈 감상에 젖기 쉽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옛날이 반드시 ‘더 좋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규어가 대중에게 보여줄 영구 역사자료 센터를 잃게 된다니 안타까웠다.
처음 몇 백 미터 사이에 차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페달은 간격을 잘 잡았고, 무게가 골랐다. 스티어링은 정확하고 묵직했고, 허술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그 나이에 비해 정말 뛰어난 실력이었다. 그보다 E타입의 승차감이 그럴 수 없이 좋았다. 현행 메르세데스 S클래스만큼 험악한 노면을 매끈하게 달렸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액셀반응도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대형 카뷰레터형 엔진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회전대에서 액셀을 내리밟자 기침을 하며 가볍게 키들거렸다. 하지만 그밖에는 깔끔하게 뻗어나갔다.
영불해협을 건너 프랑스의 칼레에 도착하면 거기서 자베케까지는 상당히 짧은 거리여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E타입을 몰고 시내에 들어가기는 즐거웠다. 그곳에는 더위스와 재규어의 업적을 기리는 동판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현지인들이 오래된 재규어가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니는 깊은 뜻을 알고 있었다. 하룻밤을 쉬고 나서 우리는 곧장 자베케 고속도로로 달려갔다.
기본형 E타입이 시속 240km에 도달했다고 해서가 아니다. 출시 때 E타입은 XK120S에서 가져온 3카뷰레터 3.8L 엔진을 갖췄다. 도로시승차에 달린 엔진을 날치기했다고 하면 좀 지나치지만 ‘최적화했다’고 하면 결코 과소평가했다고 할 수 없다. 9600HP의 현재 오너가 엔진을 해체했을 때 가스흐름 헤드가 나왔다. 당대의 엔진 튜너가 현대의 카센터를 넘어섰다고 할 수준이었다. 아무튼 어느 양산차보다 메이커가 주장하는 269마력에 가까웠다.
그곳 커다란 LED 화살표가 달팽이로 꾸민 로터리에서 도로 끝을 가리켰다. 빛의 속도에서 스피드를 확 떨어트리라는 신호였다. 뒤이어 이 도시의 동쪽으로 갔다. 한층 북적대는 3차선이었다. 당시 시승자들은 도로구간 전체를 이용했었다. 그런데 그날 사진기자 프라이스는 훨씬 차분하게 머리 위에서 정속으로 오가는 나를 잡았다. E타입은 똑 바로 달렸다. 한데 안전벨트도 없는 차로 고속도로에서 시속 240km에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기침을 하며 멈칫하던 직렬 6기통이 폭발하며 죽도록 매끈하게 노래를 불렀다. 가령 밑바닥까지 내리밟은 클리오 컵만큼 빠른 느낌이 들었다. 당시로서는 실로 파격적인 속도였다. 3단에서 다시 4단으로 올라갔지만 스티어링은 안정됐고 보디는 흔들림이나 떨림이 없었다. 오버드라이브가 없는데도 E타입이 최고의 고속 머신이라는 명성을 얻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글: 맷 프라이어(Matt Pr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