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마르타의 현대 엘란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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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 마르타의 현대 엘란트라
  • 신지혜
  • 승인 2019.12.3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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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생일 파티가 끝난 뒤 그가 눈을 감았다. 목에 나이프를 든 채 피를 흘리며 고요한 얼굴로 소파에 가로 누워 있는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 할란. 

타살이라기엔 아무런 단서도, 의심도 없는 완벽한 자살처럼 보이는 할란의 죽음이지만 탐정 브누아 블랑은 누군가의 의뢰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수사를 해야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누가 자신을 고용했는지 브누아 자신도 알지 못한다는 것. 어쨌든 사건은 일어났고 사건이 탐정에게 의뢰된 만큼 모든 사람은 용의자이다. 

‘나이브스 아웃’은 정통 추리물의 계보를 잇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추리물의 형식과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건, 다수의 용의자, 나타나지 않는 증거,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들 그리고 조사하는 와중에 드러나는 서로에 대한 반목과 의심.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첨가된다. 히치콕의 영화처럼 서스펜스를 주는 것이다. 히치콕에 의하면 서스펜스는 관객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알지 못하지만 관객들은 알고 있는 것들. 그것은 위험으로, 단서로, 맥거핀으로 등장인물들에게 다가가고,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은 서스펜스를 느끼게 된다. 

‘나이브스 아웃’은 그렇게 정통 추리물의 문법에서 살짝 벗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틈 사이로 다른 이야기들을 집어넣어 몇 개의 층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할란의 죽음의 동기와 전말을 알게 된다. 이렇게 다 알고 추리과정을 지켜보자니 조금 맹숭맹숭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잠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영화 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아주 단조롭고도 단순하게 조금씩 꿈틀거리며 작은 반전들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결론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이면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영리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핵심인물은 간병인 마르타다. 젊고 똑똑하고 성실한 마르타. 마르타는 할란과 그의 가족들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얻고 있다. 메그는 마르타를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 말하며, 린다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엄지를 들어 올린다. 할란의 집에서 기르는 개들도 마르타에게는 짖는 일 없이 꼬리치며 달려온다. 결정적으로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바로 토하는, 평범하지 않은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다.

마르타는 이민자이다. 왜 그는 이민자로 그려졌을까. 결말을 향해 가면서 마르타는 가족들의 시선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와중에 이민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태도와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식,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에 대한 자만심이 불거진다. 

마르타를 아끼고 신뢰한다고 말하는 할란의 가족들이지만 그녀가 니카라과인인지 브라질인인지 과테말라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이 가족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녀는 단지 ‘이민자’일 뿐이니까.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는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마르타의 경우 합법적인 ‘이민자’, 정당하게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라고 이야기하는 할란의 가족들은 그녀의 가족이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관심이 없다. 마르타는 자신들에게 가족과 다름없을 정도로 좋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불법’체류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마르타는 현대 엘란트라(아반떼의 수출명)를 탄다. 영화 첫 장면부터 빈번하게 등장하는 현대 엘란트라를 보면서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갑자기 엘란트라라니. 

하지만 마르타의 차가 엘란트라인 것은 점점 잘 계산된 선택으로 느껴진다. 마르타의 태생, 위치, 직업 등을 고려할 때 그녀의 차는 전형적인 미국차인 포드가 될 수 없고,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차인 BMW나 벤츠가 될 수 없다. 성실하고 정직한 마르타의 이미지처럼 신뢰도를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는 현대, 미국의 주류는 결코 될 수 없지만 합법적인 이민자인 마르타처럼 적당한 위치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현대, 마르타의 재정형편이나 가정형편으로 고려해 볼 때 실용적인 엘란트라는 꽤 괜찮은 선택지점이다.

영화 속에서 마르타와 엘란트라는 꽤 많은 장면에 등장한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이끌어 가는 것은 마르타이기 때문이다. 엘란트라는 마르타와 함께 할란의 집에 도착하고 떠나가며 자유롭게 드나들면서도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자동차와 확연히 구분되어 시시때때로 마르타의 정체성을 상기시키고 마르타의 동선과 행동을 함께 하며 사건의 과정을 지켜본다. 그렇게 엘란트라는 일면 마르타를 상징하는 것이다.

‘나이브스 아웃’. ‘칼을 빼어들다’로 시작된 제목의 뜻은 ‘상황을 험악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확장된 뜻으로 전이되면서 점점 흥미진진해지더니 결말에 이르러서는 감탄을 불러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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