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초의 후계 그 이상, 라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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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초의 후계 그 이상, 라페라리
  • 스티브 서트클립
  • 승인 2014.06.2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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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일의 즐거움이 기대를 훨씬 밑도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말을 바꿔, 그럴 때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피오라노에서 라페라리를 몰게 됐을 때 몇 주 전부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었다. 한데 바로 이 경우에는 이 행사 자체(라페라리 시승)는 내 기대를 넘어설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리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어떤 생뚱한 이유로 110만 파운드(약 19억2천300만원)짜리 950마력 라페라리가 운전해보니 실망스럽다면 어떻게 될까? 내 세계는 완전히 뒤집히고 말 것이다. 그러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자. 이 물건이 카 마니아에게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어느 것도 기대를 채워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단 몇 센티를 더 나가기 전에 라페라리의 역사를 되짚어보기로 한다. 아울러 그것을 둘러싼 사실 몇 가지를 살펴보자. 나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이 환상적인 차에 오르려면 앞으로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페라리의 사내 디자인팀이 설계했고 마라넬로 제작진이 전적으로 담당한 제품이 라페라리. 이름이 암시하는 그대로 궁극적인 페라리다. 그에 앞서는 선조 또는 선배는 단지 넷뿐이다. GTO, F40, F50과 엔초. 이들은 각자 라페라리처럼 한정판이다. 그중 라페라리는 앞으로 2년에 걸쳐 꼭 499대가 나온다.

고정된 카본파이버 좌석 뒤 차체 한복판에 6,262cc 자연흡기 V12 엔진이 790마력/9,000rpm과 71.2kg·m/6,750rpm를 내뿜는다. 이런 파워만으로도 라페라리는 스쿠데리아의 마지막 V12 F1 머신 1995년의 412T보다 강력하다. 아울러 좌석의 뒤와 밑에 60kg 리튬이온 배터리팩이 도사리고 있다. 25.7kg 전기모터를 통해 160마력과 27.4kg·m를 추가하여 종합 파워는 950마력과 98.6kg·m로 올라갔다.

그러나 포르쉐(918 스파이더) 및 맥라렌(P1)과 라페라리는 전혀 다르다. 라페라리는 파워장치가 언제나 최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기에는 독자적인 전력구동용 e-모드가 없다. 대신 재래식 엔진과 Hy-KERS 시스템이 하나로 작동하도록 제작했다. 운행 중(브레이크, ABS 시스템, 트랙션 컨트롤과 심지어 E-디퍼렌셜을 통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회수하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950마력을 몽땅 쏟을 수 있다.

이 동력장치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는 뒷바퀴에 들어간다.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뒷바퀴에만 보낸다. 기어박스는 게트라크가 페라리 전용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전기모터 하나를 연결시켜 최종 드라이브에 바로 공급하도록 차를 세팅했다. 헌신적인 기어가 구동력을 파이널 드라이브에 직송하여 대형 클러치를 제거했다. 라페라리 기술 전반에 걸쳐 이같이 치밀하게 무게를 줄였다.

P1 및 918처럼 라페라리는 카본파이버 터보에 엔진과 서스펜션을 실었다. 네 귀퉁이에는 더블위시본(앞쪽은 카본파이버)과 전자조절형 댐퍼가 달린 코일 스프링을 썼다. 더하여 브렘보의 초대형 카본세라믹 디스크 브레이크를 달았다. 앞쪽 398mm, 뒤쪽 380mm. 전자장비가 라페라리 기술과 엄청난 파워를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차가 달릴 때 앞뒤 윙은 2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주행방식을 준비한다. 높고 낮은 다운포스 모드. 대체로 이들은 어느 순간의 그립을 극대화하고 공기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코너링 때 시속 200km에서 최고 360kg, 직선코스에서 시속 200km에서 최저 90kg의 그립을 빚어낸다. 주행 중일 때 운전자가 아니라 차가 필요한 다운포스를 결정한다. 한데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윙은 엔진, 배터리, 변속기, 카본세라믹 브레이크를 냉각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예상대로 실내는 지극히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헬멧을 쓴 드라이버를 받아들이기 위해 엔초보다 머리 공간이 30mm 더 크다. 그럼에도 예상보다 작고 한층 친숙했다. 그리고 운전위치는 아주 낮고, 좌석은 고정됐으나 페달과 스티어링을 움직일 수 있었다. 페라리에 따르면 운전위치는 정상적인 스포츠카와 F1 머신의 중간이다. 드라이버의 등판은 그의 발가락과 거의 같은 높이다. 방바닥에서 벽을 향해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자세로 앉아 등을 약간 구부리고 스티어링을 잡는다. 그리고 엉덩이를 앞으로 당겨 벽과 등의 각도를 32°로 유지한다. 그러면 1인승 경주차 ‘싱글-시터’의 운전위치가 어떤지 대충 알 수 있다. 그리고 실내의 다른 부분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를 잡고 있다.

실내에는 대시보드 TFT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조절할 수 있는 3개의 서로 다른 계기 클러스터가 있다. 모두가 다양한 각도로 회전계를 차지한다. 458에 앉아봤다면 즉각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한데 라페라리 실내의 순수한 아우라는 다른 어떤 페라리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실제로 마치 잘 정리된 르망 24시간 경주차 안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비’(rain) 또는 ‘피트레인 속도 제한장치’(pitlane speed limiter) 스위치가 있던 자리에 알칸타라가 덮였고, 내비게이션 버튼이 달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라페라리 안에 앉으면 자연스러웠다. 편안하면서 동시에 친밀했다—말을 바꿔, 운전하기에 완벽한 환경. 다양한 기능을 갖춘 4각형 스티어링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페라리가 따르는 방식. 너무 굵지도 너무 가늘지도 않고 감촉이 지극히 절묘했다. 역시 부드러운 알칸타라로 덮었고, 페달과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라페라리 안에서 완벽한 운전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아예 운전석을 나와야 한다. 실내에 앉아 있으면 더없이 아늑하고, 지극히 뛰어난 전방시야를 제공하는 윈드실드를 통해 바깥 세상을 내다봤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키를 돌리고 시동 버튼을 누를 때 약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내가 그 증거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런 차를 타면 단 1cm를 움직이기 전에 으레 그런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결국 이런 차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현실이 된 환상. 너무나 극단적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행운아와 물론 이 차를 실제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총천연색으로 꿈을 실현할 수 있다. 네 바퀴로 인생의 절벽 끝에 서서 그 너머를 훤히 바라볼 수 있다. 그러기에 앞서 나는 조수석의 열광적인 승객이 돼야 했다. 싹싹하고 차분하지만 고삐 풀린 페라리의 테스트 드라이버 총책 라파 시모네가 운전석을 차지했다. 여러모로 라페라리는 그의 차였다. 지금과 같은 라페라리가 태어나는 과정에 처음부터 시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제공한 주역이 그였다. 따라서 그가 먼저 라페라리의 정체를 알려주는 걸 마다할 수 없었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 자리를 지켰다. 시모네는 이 차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힘들이지 않고 몰아붙였다. 굉음을 울리며 피오라노의 피트박스를 빠져 테스트 서킷으로 나갔다.

첫째, 시모네는 마네티노 다이얼을 이미 레이스(Race)에 갖다 놨다. 하지만 댐핑이 너무나 느긋하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둘째, V12의 사운드는 내 예상보다 훨씬 장쾌했다. 셋째, 이 차 안의 시트는 섀시+서스펜션과 아름답게 리듬을 맞췄다. 넷째, 그 결과 피렐리 P 제로 코르사 타이어 하나가 안쪽 연석을 잠시 타고 올랐지만 마치 지면을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그리고 다섯째, 제1주 후반에 메인 헤어핀 커브를 향해 백 스트레이트를 따라 슬쩍 액셀을 밟았다.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헤어핀에 들어가 브레이크를 걸 때에 비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턱을 가슴팍에 박은 채 안전띠를 움켜잡고 버텼다. 예상대로 내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때 시모네가 나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를 믿고, 차를 믿어!”

솔직히 뒤이어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는 드라마가 없지 않았다. 우리는 2주에 걸쳐 힘차게 몰아붙였다. 그때 뼈저리게 분명한 것이 있었다. 라페라리는 (a) 직선코스에서 천지가 뒤집힐 만큼 빨랐다. (b) 스피드보다 제동력이 더 뛰어났다. (c) 뭐랄까, 사운드는 스피드와 제동력보다 더 좋았다. 그리고 (d) 엄청난 그립을 자랑했다. 한데 제1주 중반에 이미 알 만큼 알았다. 특히 시모네가 트랙의 초고속 에세스 구간의 중간 출구 콘을 잘랐을 때였다. 내 오른쪽 귀에서 채 10cm가 되지 않는 거리에서 조수석 도어를 때리는 요란한 소리에 질겁했다.

사실 나는 라페라리를 몰아보러 여기에 왔을 뿐 식겁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감속랩에서 시모네와 상당한 대화를 나눴다. “가능한 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성능을 가다듬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했다. 페라리는 ‘추월 버튼’이나 공기저항 감소장치를 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느라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의 천적 맥라렌과는 달리 어떤 속도와 세팅에도 승차고를 일정하게 유지하기로 했다. 피트박스에서 우리는 내렸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시동 버튼을 누르고 큼직한 오른쪽 기어쉽트 패들을 눌러 1단을 골랐다. 레이스 모드로 폭음을 울리며 트랙으로 나가고 있을 때도 조수석의 체험으로 내장이 약간 떨렸다. 승차감은 괴괴하도록 매끈했고, 스티어링은 놀랍도록 가벼우면서도 맛깔스런 구식 감각이 넘쳤다. 브레이크 페달도 발아래 가벼웠지만 물결치는 감각으로 찰랑댔다. 처음으로 액셀을 지긋이 밟자 충격적으로 폭발했다. 대형 V12가 전기모터와 어우러질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가를 깨우쳐줬다. 저회전대에서 전기모터는 즉각 토크를 뿜어냈다. 거기서 약 3,000rpm으로 올라가자 V12가 이어받았다. 한데 그 과정이 너무나 매끈해 느낄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막강 저회전대 토크를 담은 10L V12가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즉각적인 스로틀 반응이 라페라리의 주행감각을 거의 결정했다. 실제로 페달을 밟기 이전, 액셀을 밟아야겠다고 생각할 때 이미 토크가 쏟아졌다. 어느 정도 숙달해야 했다. 일단 익숙해지자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다. 이처럼 복잡한 차 안에는 폭넓은 능력이 숨어 있었고, 열어야 할 큼직한 비밀상자가 있었다. 이 물건이 뿜어내는 거대한 추진력이 처음부터 거의 모든 사람에게 겁을 줬다. 가령 라페라리는 정말 획기적으로 빨랐다. 게다가 전혀 지칠 줄 몰랐다. 가속과 사운드와 폭력이 한결같이 크랭크샤프트 회전대가 올라갈 때마다 한층 강력하고 요란하게 다가왔다. 고막이 찢어지는 9,250rpm의 리미터가 뛰어들 때까지…. 처음으로 내가 3단으로 리미터에 도달하자 내 목덜미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나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틀어막으려 기를 썼다.

그럼에도 변속기, 브레이크, 스티어링, 턴인, 핸들링 밸런스, 승차감과 가속은 엔진—미안, 동력장치—못지않게 환상적이었다. 이 차의 스펙을 보면 대단히 복잡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우리 인생이 평생을 바쳐도 이 요물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낼 수 없으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러모로 라페라리는 458 이탈리아처럼 자연스럽고 몰기 쉬웠다. 고차원적 정밀반응, 초강력 그립과 광적인 한계를 넘나드는 성능을 자랑했지만 운전성능은 놀랍도록 정상적이었다. 게다가 전자장비는 은밀히 작동했다. 마치 명연설가의 등 뒤에서 일하는 연설집필자와 같았다. 라페라리의 핵심요소지만 운전성능이나 감각을 판가름하지는 않았다.

대담하게 라페라리의 마네티노 스위치를 마음대로 돌리고 모든 보조장치를 해제한다고 하자. 그런 다음 이 경이적인 머신을 마음껏 몰아붙이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일찍이 나는 이토록 완벽한 밸런스와 안락성을 뽐내는 미드십 엔진을 몰아본 적이 없었다. 뒷타이어가 연기를 내뿜어도 반 정도의 스티어링 록이 남아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내 세계에서 이런 차를 그렇게 몰아볼 수는 없었다. 한데 운전석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넓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국 똑같이 해낼 수 있다. 이 차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몰아붙일 수 있게 조율됐기 때문. 아무 두려움 없이 정말 힘차게 몰아붙일 수 있었다.

따라서 초강력 그립이 1mm의 오차도 없이 생성 소멸하는 것을 느꼈다. 스티어링도 마찬가지. 초기 458과는 달리 초민감 스티어링은 조금도 정신병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난폭한 성능마저 예측가능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액셀을 바닥까지 밟고 2초 이상 끌면 윈드실드 넘어 풍경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졌다. 그러나 드라이버를 찌르려고 덤비는 흉기는 없었다. 내가 잠시 몰아봤던 도로에서 라페라리는 훨씬 빠른 느낌을 줬다. 신나게 액셀을 밟기 전에 숨을 골라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승차감은 여전히 경이적이었고, 스티어링은 완벽하게 요리할 수 있었다. 시야는 내가 기대하는 최상의 경지였다. 이 차의 성능과 쓸모는 결코 458 이탈리아에 뒤지지 않았다. 다른 측면에서 라페라리의 샘이 얼마나 더 깊은가를 생각할 때 실로 비범한 성과였다. 내가 지금까지 몰아본 어떤 차보다 주변의 눈길을 힘차게 끌어당기는 능력도 그 덕목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큰 의문이 남는다. 라페라리는 P1 및 918 스파이더보다 좋은가, 나쁜가, 그냥 다를 뿐인가? 그리고 막강 엔초의 후계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엔초의 가치 있는 후계 이상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거의 모든 면면에서 라페라리는 엔초를 압도한다. 나아가 몰기에 훨씬 수월하고 상쾌한 차다. 그렇다면 P1보다 더 뛰어난 하이퍼 카인가? 앞으로 몇 달 안에 우리가 정확한 대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한데 지금 여기서 나는 세기의 대혈투가 벌어지리라 예상한다. 적어도 세계에서 가장 짜릿한 2대의 운명을 건 결투가 벌어진다. 한편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있다. 라페라리는 마라넬로의 진정한 걸작이다.

글 · 스티브 서트클립(Steve Sutclif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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