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GT, 마세라티 기블리 S 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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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GT, 마세라티 기블리 S Q4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4.12.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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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도어 쿠페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지만 진정한 4도어 쿠페는 기블리 S Q4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세단의 탈을 쓴 쿠페. 뒷좌석조차 GT의 성격에 충실하다.

푸른 바다가 성큼 내게로 다가온 듯했다. 처음 본 순간 기블리의 블루 이모지오네(Blu Emozione) 컬러는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강렬했다. 이모지오네 또는 에모치오네라고도 하는 이 이탈리아어는 감동, 감격이라는 뜻. 영국의 튜너 에볼루션 2 모터스포츠(E2M)가 페라리 458 이탈리아를 기반으로 ‘이모지오네’란 이름의 튜닝카를 선보인 바 있다. 거의 같은 컬러다. 감동적인 파랑. 사람도 그렇지만 첫눈에 반해버리면 단점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법. 애써 담백하게 차에 오른다.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바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기블리(ghibli)에는 마세라티 GT 역사가 농축되어 있다. 바다의 신, 넵투누스의 삼지창을 나타내는 브랜드 상징과 사막의 열풍이라는 조합이 이질적이면서 격정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브리도 이 기블리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 했다. 기블리라는 이름에는, 신화적인 또는 전설적인 스토리들이 바람의 때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긴 보닛은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차들의 공통점이지만 마세라티는 유난히 길다. 초대 기블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낮고’ 길다. 기블리는 콰트로포르테보다 차체 길이가 295mm나 짧지만 보닛 길이만 보면 그다지 짧아 보이지 않는다. 휠베이스는 170mm 짧아 보닛이 차지하는 비율을 짐작할 수 있다. 너비는 5mm 짧고 높이는 20mm 낮다. 전체적으로 길이를 줄였으되 마세라티 특유의 스타일은 오히려 강조된 느낌. 4도어 세단이지만 기블리의 전통을 이은 2도어 쿠페 스타일, 그리고 약간 뒤로 물러난 운전자세가 스포티한 비율을 완성한다. 그럼에도 앞뒤 무게배분은 거의 50:50에 가깝다. 독특한 C필러 역시 드라마틱한 초대 기블리의 특징을 그대로 안고 있다.
 

시트에 앉으면 눈앞에 파도가 너울 친다. 굴곡이 진 인스트루먼트 패널 상단은 파도의 형상처럼 리드미컬하다. 가운데 솟은 아날로그 시계는 바다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같다. 삼지창이 가로 새겨진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바다를 호령하는 포세이돈이 된 기분이다. 시동키는 처음에 잘 보이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 왼쪽 뒤에 동그랗게 오토 버튼으로 자리한다. 왼손으로 시동을 걸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조작해 0.1초라도 먼저 스타트를 끊으려는 레이싱카의 유산이다. 이런 하나하나의 디테일에서 브랜드의 역사를 향유한다.
 

파워 트레인은 콰트로포르테 S Q4의 것과 같은 V6 3.0L 바이터보 410마력 엔진에 자동 8단의 조합. 일단 크기와 무게가 작아진 차체에 같은 엔진이라면 더 강력한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다. 그밖에 기블리는 스티어링,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 많은 부품을 콰트로포르테와 공유한다. 바이터보(Biturbo)의 이탈리아어 ‘비투르보’는 기블리 역사에 자리한 하나의 모델 이름. 마세라티-데 토마소 시절일 것이다. 3세대로 부활한 기블리에서 바이터보는 그러한 전통을 잇는 의미도 있다. 근데 차 이름과 관련해 우아하게 발음되는 이탈리아어는 대개 뜻이 단순하다. 그 자체로 멋들어진 이름, 콰트로포르테가 그냥 4개의 도어를 의미하는 것처럼.
 

시동 버튼을 누르자 잔잔했던 바다에 격랑이 인다. 주변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면 창문을 열고 소리를 들어보자. 마세라티 특유의 날카로운 음색은 배기파이프를 서로 빠져나오려고 치고 박는 아우성 같다. 글쎄, V8의 것이 어떠했든 이 V6은 그 어떤 V6보다 강력한 울음을 운다. 슈퍼 스포츠카 영역에서 배기 사운드는 중요한 경쟁의 요소, 브랜드 고유의 사운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엔지니어들의 노력은 자동차의 세계가 복잡하고 심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인테리어지만 폴트로나 프라우 가죽과 나무의 클래식한 느낌, 천장을 덮고 있는 알칸타라가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지난겨울 만난 콰트로포르테 Q4는 눈길에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오늘 만나는 기블리 S Q4는 하얀 눈 대신 눈부신 햇살 속으로 달린다. 하늘은 블루 이모지오네만큼이나 푸르고 또 푸르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두 손은 자연스레 양쪽 패들 시프트를 안는다. 손끝에 전해지는 금속성의 차가운 질감이 열정에 사로잡힌 마음을 냉정하게 해준다. 항해사가 조종하는 키처럼, 패들 시프트를 다루며 속도를 조율한다. 방향을 잡아나가는 핸들링은 정확하다. 그런 한편으로 패들 시프트 뒤에 자리한 방향지시등 레버는 거리가 좀 멀다. 대신 와이퍼 기능을 하나로 통합했다. 오른쪽에는 거추장스런 레버가 없다. 1+1은 때때로 1이 된다.
 

기어 레버 왼쪽에 나란히 자리한 드라이빙 모드는 세 가지. M은 수동 변속 모드, I.C.E.(Increased Control Efficiency)는 효율성을 높이고자 할 때, 스포츠 모드는 좀 더 성격이 거칠어지는 곳. 아무 버튼을 선택하지 않으면 ‘노멀’ 모드로 달리게 된다. 그렇다고 이 상태가 평범한 것은 아니다. 액셀러레이터를 조금이라도 깊숙이 밀어 넣으면 씽 하고 등이 뒤로 떠밀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바이터보는 기민하게 출력을 상승시킨다.
 

계기판 사이 정보창에는 섀시 구동계의 토크 배분 현황이 표시된다. 주행 중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뒷바퀴로 곧장 구동력이 집중된다. 가속을 시도해도 좀체 앞바퀴 구동력은 20%를 넘지 않는다. 보다 강하게 밀어붙이거나 코너에서 가속할 때 30%를 살짝 넘기기도 하지만 코너를 돌아 나오자마자 구동력은 다시 뒷바퀴에 집중된다. 기본적으로 뒷바퀴굴림의 자기장이 매우 강하다. 지난겨울 콰트로포르테 Q4를 탔을 때, 앞바퀴가 빙판에 닿자마자 앞뒤 50:50으로 변환했던 기억이다. 말하자면 써야 할 때를 정확히 안다. 일반적인 주행에서 50:50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고속으로 순항해서 달리면 완전한 뒷바퀴굴림(FR)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네바퀴굴림이지만 0→시속 100km 가속 4.8초의 압도적인 성능을 내는 것은 토크를 네 바퀴에 분배하는 대신 뒷바퀴에 100%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56.1kg·m에 이르는 최대토크가 겨우 1,650rpm부터 발휘되기 때문에 초기가속이 폭발적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284km에 이른다. 그리고 마세라티 안정성 프로그램(MSP)의 ASP(Anti-Slip Regulation)가 접지력이 떨어지는 곳에서 타이어 슬립을 막아주고, 힐 홀더(Hill Holder) 시스템이 경사진 오르막길에서 뒤로 밀리는 것을 방지한다.

마세라티의 성격이 원래 그렇듯 기블리도 고분고분한 타입은 아니다. 달리면서 뭐랄까 지면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기분이다. 장거리를 달리는 GT카가 너무 얌전해도 재미없을 것이다. 통통 튀는 성격을 받아들이면 그다음엔 즐기게 된다. 앞 더블 위시본 뒤 5링크 서스펜션은 견고하면서도 터프한 인상을 준다. 전자장비가 철저히 개입한 매끄러움 대신 아날로그적인 생경함이 있다. 차가 알아서 다해 준다기보다 운전자의 개입의지가 받아들여지는 것. 차가 지면과 대화하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유벤투스의 미드필더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는 이탈리아 패션계의 러브콜을 받는 축구선수. 과감한 공간침투와 강력한 중거리 슛, 우수에 찬 표정에서 나오는 터프함으로 인기를 끈다. 세련된 슈트가 어울리는 축구선수는 많다. 베컴이나 호날두보다 마르키시오가 마세라티와 어울리는 것은 이탈리아 혈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트사커로 표현되는 프랑스 축구가 유연하다면(지단의 시대는 지났지만) 유연한 핸들링을 자랑하는 프랑스차를 닮았고,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독일축구는 독일차와 닮았다. 그러고 보면 그 나라의 축구 스타일과 자동차의 성격은 꽤 닮은 구석이 있다.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면 록 음악이 갑자기 헤비메달로 전환되는 순간과 같다. 발아래에서 누군가 신나게 드럼을 두드리는 듯하다. 이 순간에는 음악을 잠시 꺼두는 게 좋다. 그것이 아무리 바우어스 앤 윌킨스 오디오라 해도 말이다. 배기 사운드는 음악이 되고 심장은 리듬에 맞춰 쿵쾅거린다. 어느새 도시에서 멀어졌고 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이 시트에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풍취가 깊은 가죽의자는 세월과 더불어 몸에 더 잘 맞고 편안해질 것이다. 오너드라이버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뒷좌석은 보기에 좁아 보이지만 앉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무릎 공간은 적당하고 생각보다 헤드룸이 넓다. 무엇보다 파묻히는 안락함이 좋다. 그러면서 푹 꺼지지 않는, 좋은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자세다. 쿠페 라인이지만 차창 밖 시야는 좁지 않다. 풍경의 프레임은 맞춤하다. 뒤에 앉아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언제라도 운전석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기블리 S Q4는 그런 차다. 마성이 강한 다이내믹 GT다.

글 · 최주식 편집장
사진 ·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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