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블리, 바람의 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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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블리, 바람의 혈통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4.12.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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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를 스쳐간 수많은 바람. 그중 최고의 GT에게만 허락된 이름, ‘기블리’의 역사를 되짚었다.
 

1세대 1967년 : 마세라티 고성능 GT의 시작
기블리 1세대는 1967년 등장했다. 마세라티 고성능 GT의 시작이자 정점에 선 차다. 동시대의 차들에 비해 강력한 성능을 뽐냈고, 마세라티 라인업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성능을 과시했다.

1950년대까지 마세라티는 자동차 경주를 지배했다. 전설의 레이서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와 함께 매 경기마다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갔다. 그러던 마세라티가 갑자기 자동차 경주를 그만두고 고급스러운 고성능차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깐깐한 기술자 혈기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당시 마세라티의 GT 라인업, 3500GT에 손을 댔다. 직렬 6기통 3.5L 220마력 엔진을 꺼내 V8 4.9L 엔진으로 바꿔달아 5000GT로 이름 붙였다. 최고출력은 325마력으로 뛰어올랐고, 1959년 당시 기준만이 아닌 지금 기준으로도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생산 물량은 34대에 불과했다. 3500GT의 두 배에 달하는 아주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세라티는 고민 끝에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만든다. 강력한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슈퍼카급 차체와 엔진을 얹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편안한 승차감을 더했다. 마세라티 초고성능 GT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차의 이름은 기블리. 콰트로포르테를 제외한 모든 라인업에 바람 이름을 바꾸며 붙이던 마세라티도 이 이름만은 소중하게 여기며 계승하는 이유다.
 

기아(Ghia)에서 일하던 젊은이,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만든 디자인은 낮고 날카로운 모습을 과시했다. 자동차 경주로 피 끓던 마세라티의 혈통을 그대로 담은 강력한 성능과 아름다운 디자인, 우아한 실내는 마세라티의 정점이었다. 라이벌은 페라리 데이토나와 람보르기니 미우라였다.

처음에는 V8 4.7L 310마력 엔진을 얹었다. 0→ 시속 100km 가속은 6.8초에 최고시속 248km를 냈다. 5단 수동 또는 자동 3단 변속기를 얹어 뒷바퀴를 굴렸다. 앞으로 GT 클래스의 기준이 될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지만, 먹성 또한 좋았다. 그래서 50L 연료탱크를 두 개 달았다. 양쪽에 똑같이 주유구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69년도에는 고성능 모델 기블리 SS와 변형 모델인 스파이더를 출시한다. 기블리 SS는 4.9L 엔진을 얹어 335마력을 냈다. 1973년에 후속 모델 캄신을 위해 생산을 마쳤다. 쿠페와 스파이더 모두 포함해서 1,295대가 팔렸다.

GHIBLI 1st Generation
크기 4700x1790x1160mm
휠베이스 2550mm
공차중량 1650~1770kg
엔진 V8, 4719cc, DOHC
V8, 4930cc, DOHC(SS)
최고출력 310마력 / 335마력(SS)
변속기 수동 5단, 자동 3단

2세대 1992년 : 고성능 GT를 새롭게 정의하다
1973년에 생산을 마친 이후, 약 20년 만에 기블리란 이름이 부활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두 번이나 바뀔 시기다. 그래서일까. 마세라티의 주인도 딱 두 번 바뀌었다. 1968년 시트로엥의 품에 안겼으나, 시트로엥의 부도로 마세라티는 흔들렸다. 1975년 데 토마소에 인수되며 안정을 찾는다. 데 토마소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레이싱 드라이버로, 자신의 이름을 딴 차를 만들고 있었다.

데 토마소 시기에 마세라티는 대격변을 겪는다. 대배기량 엔진 대신 터보 엔진을 얹어 다운사이징 시대에 접어든다. 사실 마세라티의 비싼 가격 때문에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 데 토마소는 마세라티 브랜드의 품격과 스포츠 성능을 섞어낸 조금 더 합리적인 자동차를 꿈꿨다.

1981년에는 마세라티-데 토마소 시대를 연 차, 비투르보(Biturbo)가 등장한다. 이름의 뜻은 트윈터보다. 마세라티 양산차 최초로 트윈터보를 달았다. 대배기량 엔진에 비하면 크게 달라진 행보다. 하지만 작고 가벼워진 엔진과 콤팩트 차체의 조합은 강력한 스포츠 성능을 뽐냈고, 마세라티의 명성을 지키기에 충분했다.

이후 마세라티는 V6 2.0L, V6 2.5L, V6 3.0L의 엔진 라인업을 만들고, 모두 트윈터보와 짝지었다. 이탈리아 내수용은 주로 V6 2.0L 엔진을 썼다. 그때 기준으로 이탈리아 자동차세는 배기량 2000cc를 넘을 경우 38%나 세금을 올렸기 때문이다.

트윈터보 엔진을 바탕으로 라인업을 키워가던 마세라티는 1992년, 데 토마소 시대를 완성하는 차를 내놓는다. 기블리의 부활, 2세대 기블리의 등장이었다. 마르첼로 간디니가 빚어낸 직선의 차체는 남성미를 과시했다. 기능을 우선시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홀려 실내로 들어서면 가죽과 나무로 장식한 호화로운 실내가 반기는 반전이 있었다.

기블리 2세대는 310마력을 내는 V6 2.0L 트윈터보 엔진을 얹어 고성능 GT의 자격을 충족시켰다. 수출 시장을 위해서 V6 2.8L 엔진을 얹었지만 성능은 288마력으로 낮췄다. 수동 5단 또는 자동 4단 변속기를 달아 뒷바퀴를 굴렸고, 이후 수동 6단 변속기를 추가한다.

기블리 2세대는 고성능 GT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차체, 배기량을 줄이고 효율을 키운 엔진의 조합은 뛰어난 운동성능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우아했다. 성능과 우아함을 겸비한 마세라티의 혈통을 잇는 동시에, 또다시 GT를 정의한 셈이다.

강력한 성능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이에 맞춰 마세라티는 기블리로 하는 자동차 경주인 ‘기블리 오픈 컵’을 열고 경주차로 ‘기블리 컵’ 모델을 내놓았다. 터보차저를 바꾸고, 배기 구조 및 ECU를 다시 짜 맞춰 25마력을 더했다. 최고출력은 335마력으로 올랐다.

당시 기블리 컵은 어떤 도로용 자동차보다 강력한 엔진배기량 대 출력비율을 자랑했다. 게다가 약간의 개조를 더하자 페라리 355 챌린지 모델과 비등한 랩타임을 기록했다. 지금도 수많은 자동차 수집가들이 기블리 컵 모델을 욕심내는 이유다.

기블리 2세대는 1997년에 후속 모델 3200GT의 생산을 위해 단종됐다. 판매대수는 2.0L 모델이 1,157대, 2.8L 모델이 1,063대였다. 특별사양인 기블리 컵은 57대, 프리마티스트가 60대를 기록했다.

GHIBLI 2nd Generation
크기 4223x1775x1330
휠베이스 2514mm
공차중량 1365~1406kg
엔진 V6, 1996cc, 트윈터보
V6, 2790cc, 트윈터보
최고출력 310마력/288마력(수출형)
변속기 수동 5단, 수동 6단, 자동 4단
 

3세대 2013년 : 마세라티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데 토마소의 시대는 기블리 2세대에서 정점을 찍고 끝났다. 1993년, 경영이 어려워진 데 토마소는 마세라티를 피아트 그룹에 매각했다. 누구나 욕심 낼 마세라티를 얻은 피아트는 고민을 거듭하며 신차 개발을 지속한다. 그리고 1997년에 마세라티 지분 50%를 페라리에게 넘겼다. 스포츠카만을 만드는 페라리가 뛰어들지 못하는, 새로운 럭셔리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시 창업 당시의 전통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듯, 페라리 품에 안긴 마세라티는 트윈터보 엔진 대신 자연흡기 엔진으로 돌아갔다. 처음에는 V8 4.2L 엔진을 얹었지만, 금세 V8 4.7L 엔진을 추가했다. 옛 고성능 마세라티의 배기량인 4.7L를 택해 아련한 향수를 자아냈다. 하지만 시대는 엔진배기량을 줄여 환경을 지키자며 강력한 규제를 시작했다. 생산대수가 적은 회사라면 큰 영향이 없겠지만, 마세라티의 야망은 컸다. 판매 대수를 늘여 럭셔리 시장을 지배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마세라티는 엔진 사이즈를 줄이고 트윈터보를 얹기로 했다. 이는 바이터보 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1980~1990년대 터보 엔진으로 매력을 뽐내던 마세라티다. 이와 동시에 신형 4도어 세단의 개발과정이 포착되며, 마세라티 마니아들의 기대를 자아냈다.

마세라티는 콰트로포르테 외에도 4도어 세단을 만든 적이 있다. 바로 비투르보를 바탕으로 만든 비투르보 세단이었다. 뛰어난 운동성능과 고급스러움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은 차다. 마세라티가 베이비 콰트로포르테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고, 수많은 기대를 모았다.

마세라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13년 4월에 상하이모터쇼에서 3세대 기블리를 최초로 공개했다. 20년 만에 전설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4도어 세단이지만 여전히 뛰어난 GT로서 기블리의 부활에 누구도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기블리는 마세라티 역사 중 언제나 최고의 정수를 담은,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마세라티 최초로 디젤 엔진을 기블리에 얹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소유주가 여럿 바뀌는 도중에도, 기블리는 언제나 마세라티 최고의 GT였다. 수많은 바람의 이름을 담은 GT들이 마세라티를 거쳐 갔어도,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은 기블리밖에 없는 이유다. 그만큼 마세라티에게 기블리는 소중한 차인 것이다.

GHIBLI 3rd Generation
크기 4970x1945x1455mm
휠베이스 3000mm
공차중량 1835kg~2070kg
엔진 V6, 2979cc, 트윈터보
V6, 2987cc, 터보디젤
최고출력 350마력, 410마력, 275마력(디젤)
변속기 모두 자동 8단

글 · 안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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