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V8 트윈터보의 매력, 페라리 488G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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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V8 트윈터보의 매력, 페라리 488GTB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6.05.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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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488 GTB의 동력 성능은 도로를 압도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V8 트윈터보의 세련미다

페라리 488 GTB는 458 이탈리아의 후계 모델. 이탈리아 대신 붙인 GTB는 그란 투리스모 베를리네타(Gran Turismo Berlinetta)의 약자. 예쁜 소녀의 이름 같은 베를리네타는 스포티한 쿠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원래 의미는 ‘작은 세단’이었다고. 베를리네타 라인은 미드십에서도 2+2가 아닌 오직 2시터에 해당하는 모델로 분류된다. 512 BB처럼 B가 두 개 붙은 모델의 경우 박서 엔진 베를리네타를 의미한다. 그리고 현행 F12 베를리네타는 페라리의 기함. 가장 고성능 모델이다. 그런 만큼 GTB에서 B는 최고의 GT카임을 암시한다. 물론 GTB는 이전에도 쓰인 이름이다. 미드십 V8의 상징으로 1975년 데뷔한 308 GTB가 있었다. 308은 3.0L 8기통의 의미, 458이 4.5L 8기통인 뜻과 닿는다. 그런데 488 GTB는 V8 3.9L 트윈터보 엔진을 얹었다. 여기서 488은 8기통 엔진의 각 실린더당 배기량이 488cc라는 의미다. 458의 작명법을 그대로 적용했다면 398이 되었겠지만 해석을 달리하면서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전에도 쓰였던 작명 방식은, 말하자면 그때그때 다르다.
 

페라리 458 이탈리아를 시승한 때는 지난 2013년. 3년 만에 그 후속 모델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얼핏 변함없는 듯한데 자세히 보면 꽤 성형을 한 모습이다.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에서 성형하고 온 488 GTB는 과거 308 GTB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더 커진 공기흡입구 중앙에 에어로 필러와 그 아래 F1 타입 더블 스포일러를 달았다. 라디에이터 냉각 성능을 높임과 동시에 가속 시 하체를 지면으로 눌러주는 다운포스를 향상시킨다. 그리고 리어 펜더 위로 에어 인테이크가 눈길을 끈다. 458과 차별되며 308 GTB와 맥을 잇는 부분이다. 에어 인테이크는 아래 위 2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아래쪽은 터보 인터쿨러를 식히고, 위쪽은 엔진 흡기로 일부는 차체 뒤쪽으로 흘려 공기저항을 줄인다.

뒷모습에서 블론 스포일러(Blown Spoiler)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페라리의 새로운 패턴이다. 리어 윈도를 타고 넘어온 바람이 스포일러 아래쪽으로 난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다운포스를 향상시킨다. 아래쪽의 액티브 플랩 역시 직선 구간이나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 열리고, 코너를 돌 때나 브레이크를 밟을 때 닫혀 효율을 높인다. 와류발생장치(vortex generator)를 포함한 하체 밸런스 조절을 통해 488 GTB는 458 이탈리아보다 다운포스가 50% 향상되었다. 시속 250km로 달릴 때 다운포스가 325kg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공기저항계수(cd) 1.67은 양산 페라리 중 사상 최저치다.
 

실내도 비슷한 듯하면서 달라진 모습이다. 우선 다기능 스티어링 휠은 그대로다. 센터 터널은 브리지 타입으로 가늘어졌다. 비상등 위로 가로로 놓여 있던 PS(론치 컨트롤), R, AUTO 버튼은 세로 배치로 바뀌었다. 새로운 에어벤트 디자인은 군용 제트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계기판을 비롯한 일부 그래픽과 시스템 구성도 조금 바뀌었다. 블루투스를 연결할 수 있고 라디오를 켜면 디지털 속도계가 보이지 않는다. 후방카메라는 신세대 페라리의 반영. 키를 꽂지 않고 버튼만으로 엔진을 깨우는 것은 페라리 최초다. 458에서 엔진 스타트 버튼은 488에서 엔진 스타트-스톱 버튼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헤드라이트 조절 다이얼 옆으로 추가된 버튼 하나가 눈에 띈다. 리프트 기능으로 차체가 40mm까지 높아진다.
 

두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으면 무언가 가득 찬 기분이 든다. 대부분의 조작 장치는 스티어링 휠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룰 수 있다. 오토 버튼을 누르고 오른쪽 패들 시프트를 툭 치면 1단에 들어가면서 출발이다. 타이어 온도를 끌어올리는 등 달리기 좋은 상태로의 워밍업 시간은 30~40분 정도가 적당하다. 천천히 도심을 빠져나가며 담금질을 한다. 오토 버튼을 한 번 더 누르면 수동 모드다. 커다란 카본 시프트 패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달리고 있으면 458 이탈리아보다 확실히 터프해진 느낌. V8 3.9L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670마력, 최대토크 77.5kg·m을 낸다. 저회전에서부터 맹렬하게 터지는 토크는 3,000rpm에서 정점을 찍는다. 터보랙을 찾을 수 없는 가속성능은 날카로우면서도 매끄럽다. 왠지 자연흡기의 풍미를 말하기에는 이 터보 엔진의 단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물론 고회전 영역에서의 반응과 사운드의 차이는 있다. 오래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458의 사운드가 그립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1, 2, 3, 4, 5… rpm 게이지를 보지 않아도 스티어링 휠 상단에 켜지는 붉은 점의 개수만으로 회전수를 짐작하고 변속을 한다. 불이 하나만 들어와도 변속할 시점은 되지만 5개가 들어올 때까지 몰아붙이는 재미도 크다. “텅!” 변속은 소리로 전해질 뿐 몸으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7단 듀얼 클러치의 변속 반응은 정말 빠르다. 488 GTB는 역대 페라리 중 가장 반응성이 뛰어난 모델. 가변식 토크 시스템은 넘치는 토크를 적절하게 제어하며 강렬한 가속을 뒷받침한다. 0→시속 100km 가속은 단 3초에 불과하고 0→시속 200km 가속에도 8.3초가 걸릴 뿐이다.
 

보통은 스포트 모드로 달리지만 레이스 모드로 바꾼다고 해서 차체의 반응이 금세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횡가속력 등 차체가 버티는 한계상황의 범위를 더 넓혀주는 개념이다. 1, 2단에서부터 보여준 끈적한 접지력은 강력한 터보 리스폰스와 함께 상큼하게 도로를 제압했다. 새로 설계되었다는 488 GTB의 서스펜션은 유연한 듯하면서도 견고했다. 재빨리 균형을 잡아나가는 솜씨가 더한층 숙성된 느낌이다. 카본-세라믹 브레이크의 응답력도 무척 빨랐다. 가끔씩 “삐익!” 하는 소리는 거슬리기도 하는데 카본-세라믹 재질의 특성상 나오는 소리다.

488 GTB는 차체가 미끄러지는 각도를 조절해주는 ‘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Side Slip Angle Control) 시스템의 진보된 기술인 SSC2가 적용됐다. 이 기술은 주행안정장치 F1-TRAC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과 E-Diff 전자식 디퍼렌셜 및 액티브 댐퍼를 통합 제어한다. 페라리의 전자식 주행안정장치는 치밀한 계산 아래 차체를 제어하지만 운전자가 전자적인 간섭을 좀 덜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운전 재미를 위해서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CT-OFF나 ESC-OFF를 사용할 수 있지만 트랙이 아닌 일반도로에서는 안전이 우선이다.
 

488 GTB는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도 충격을 잘 흡수했다. 스티어링 휠의 댐퍼 버튼을 눌러 ‘Bumpy road’로 하면 거친 길을 좀 더 편안하게 달릴 수 있다. 예전의 F1 챔피언 슈마허가 페라리 개발에 참여할 때 그의 요청에 따라 만든 장치다. 페라리의 고성능을 좀 더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 어쩌면 488 GTB야말로 그의 바람에 가장 잘 맞는 차가 아닐까. 차체는 견고하지만 딱딱함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시트의 질감은 맞춤옷처럼 몸에 착 맞았다. 차고에 넣어두었다가 특별한 날에만 끌고 나오는 슈퍼카가 아니라 일상에서 늘 함께하고 싶은 슈퍼카. 최강의 V8 페라리와 함께 지낸 하루는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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