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트립 투 잉글랜드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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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트립 투 잉글랜드 -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 오토카 코리아 편집부
  • 승인 2016.02.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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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잉글랜드 : 영국 북부를 누비는 레인지로버 
 

롭브라이든과 스티브 쿠건은 <옵저버>의 의뢰로 워즈워드의 자취를 따라 영국 북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동행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함께한 친구이자 동료, 천적이자 콤비인 두 사람은 그렇게 6일간의 여행을 시작한다.

사실 세밀한 루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리 예약된 고풍스런 혹은 고급스런 호텔에 묵으며 피시 앤 칩스가 영국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코스요리를 먹으며 여행 중간에 포토그래퍼와 만나 사진촬영을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뿐 이 여행은 전적으로 롭과 스티브, 두 사람만 함께하는 여행이다. 어떤 도로를 타고 갈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어떻게 시간을 쓸지 그건 온전히 두 사람의 몫이다. 
 

오래 알고 지낸 동료이자 친구이긴 하지만 첫날 호텔의 더블룸을 쓰게 되어 당황하기도 하고 미스 마플의 촬영 장소에서 (그들의 특기인) 성대모사를 하고 사이먼 로건의 그린 퀴진을 맛보면서도 독설을 서슴지 않고 ‘폭풍의 언덕’ 같은 곳에서 (실제로 그곳의 촬영지가 멀지 않은) 사진을 찍고 아바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롭과 스티브의 6일치의 시간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정말 수다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들의 수다는 정말 한순간도 쉬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그 수다의 스펙트럼이 넓다. 간단하게는 (두 사람이 배우이니만큼) 영화배우들 이를테면 마이클 케인의 성대모사를 하면서 비음을 내는 그의 발성까지 이야기하는 것부터 자신들의 연기, 일, 가정, 삶이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럽다. 이 남자들, 여행이 주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떠드는데 그것이 ‘여행의 목적’인 워즈워드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섞여 있긴 하나) 생각과 삶에 대한 이런 저런 폭넓은 이야기를 주로 나누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듯 물고 뜯는 화법에 시니컬하게 툭툭 내뱉는 말들, 일면 가볍고 진중하지 못해 보이는 행동들이 어딘가 슬쩍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이상하다. 무슨 힘을 갖고 있는 걸까 싶게 그렇게 6일의 여정을 함께하고 마칠 때쯤 느닷없이 두 사람에게 애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 나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오히려 거창함과 무게감을 벗어던지고 쉽게 무언가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어려운 일이구나. 그리고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은 삶의 연륜이 어느 정도 쌓이기 시작해서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들의 여정을 든든하게 함께한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다.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여행 첫날부터 광활 또는 황량한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영국 북부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전설과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롭과 스티브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이야기를 편견 없이 받아주고 아바의 노래를 부를 때 미소 지으며 들어주며 레인지로버는 롭과 스티브의 든든하고 믿음직한 동행자가 된다.

어쩌면 이 차는 롭과 스티브를 태우고 여정을 시작할 때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20대가 아니기에, 30대를 넘어서 이제 40대로 접어든 이들이기에 이들에겐 치기나 호기는 없겠지만, 신랄함과 스산함이 있고 인생의 맛을 슬슬 알아가는 시기여서 어떤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어떤 길로 가건 자신이 잘 받쳐주고 따라주고 달래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한 레인지로버 덕분에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고 여정이 중요했던 이 여행은 롭과 스티브가 한층 더 깊어지고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으로 무르익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포인트가 되는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롭과 스티브는 이제 막 그런 나이가 되었고 거기서 오는 혼란과 서운함이 교차되는 상황을 맞은 것인데 그 시점에서 이 여행은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해답을 갖게 한다.

맞아, 이 영화에는 롭과 스티브, 레인지로버 그리고 마이클 윈터바텀이 있었지. BBC TV 시리즈로 2010년에 방영된 6일간의 여행, 6개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장편의 영화 한 편이 되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쥐어준다. 

글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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