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앵그리스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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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앵그리스트맨
  • 아이오토카
  • 승인 2014.11.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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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5시리즈와 기아 세도나 - 당신에게 90분이 주어진다면

25년 전의 헨리는 자상하고 웃음이 가득한 가정적인 남자였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 차 있다. 헨리의 ‘내가 싫어하는 목록’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는 것들이고 그래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화가 난다.

자신의 BMW 5시리즈(E34)를 몰고 병원으로 가던 그날도 그랬다. 시끄러운 브룩클린의 거리는 그의 혈압을 서서히 올리는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택시가 그의 차를 받아버려 그의 분노 수치를 올려버렸다. 앞 측면이 구겨져버린 차, 사과도 하지 않고 ‘노란불’에 출발했다며 대꾸하는 택시기사에 화가 나 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고 겨우 진료를 받나 했더니 담당의가 아닌 새파랗게 어린 여자 인턴이 들어온다. 그의 분노는 이제 하늘을 찌를 듯한데 여의사 섀런은 그가 뇌동맥류란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그는 섀런에게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느냐며 숫자를 말하라고 닦달하고 그녀는 홧김에 잡지에 쓰인 숫자 ‘90분’이라 이야기한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90분. 헨리는 흐트러지고 엉켜버린 자신의 삶을 바로잡아보려고 가족과 친구들을 쫓아다니고 섀런 또한 자신의 엄청난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헨리의 뒤를 쫓는다.

헨리.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함께 춤을 추던 그에게 25년은 어떤 세월이었을까. 어린 아들들과 뛰어놀며 아내가 들이대는 캠코더에 대고 행복하다고 말하던 그에게 25년은 어떻게 흘러가버린 걸까. 시뻘건 얼굴을 하고 자신의 BMW에 올라탄 채 모든 소리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화를 내고 있는 헨리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채워진 걸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어긋나버린 걸까.

하긴, 어쩌면 우리의 삶도 우리의 마음도 헨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 삶의 무게가 실리고 뜻하지 않은 일을 겪고 서로 부딪히며 마음이 상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도 서먹해지고 짜증과 분노가 점점 쌓여간다. 이것은 비단 헨리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섀런은 또 어떤가. 아직 젊은 그녀지만 외롭고 버겁고 자신의 이상과 다른 병원의 현실에서 숨 막혀 한다.

택시에 받혀 찌그러진 BMW 5시리즈는 어쩌면 헨리의 모습과도 같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변호사라는 직업에 걸맞은 멀쩡한 BMW였는데, 예측할 수 없었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사고로 엉망이 되어버린 자동차. 아마도 그 차는 꽤 긴 시간 헨리와 함께해 왔을 것이다. 헨리를 태우고 회사로 출근하고 헨리의 가족들을 태우고 나들이를 갔을 것이며 헨리를 태우고 그의 시간의 일부를 채웠을 것이다. 멀쩡하고 근사하게 지내왔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는 아내와 남은 아들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옮기고야 말았다. 지금 그의 차는 꼭 그런 그의 모습처럼 보인다.

헨리의 차를 들이받은 택시는 기아 세도나(국내명 카니발). 헨리는 택시기사와 한바탕 싸우고 협박을 한후 병원에 가는데 섀런과 함께 촉박한 시간에 쫓기며 잡아탄 택시가 바로 그 택시다. 한 시간 동안 두 번의 인연을 맺은 이 택시는 결국 헨리의 BMW 대신 그를 아들에게 데려다주고 많은 것을 돌이키고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BMW 5시리즈와 기아 세도나는 그렇게 헨리에게 90분이라는 시간을 설정해주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매개인 것이다.

글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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