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비긴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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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영화와 자동차] 비긴어게인
  • 신지혜
  • 승인 2014.11.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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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마크 10 : 노래는 꿈을 싣고, 음악은 마음을 싣고

그날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시작되었다. 날이 밝고 약간의 막막함과 암담함, 버석한 슬픔의 얇은 파편, 그리고 시간의 흐름. 각자의 지치고 화가 난 하루가 저물어가는 그 시간, 느닷없이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그레타와 느닷없이 들어간 펍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된 댄이 만나는 그 시간까지 그날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하루에 불과했다. 하지만 채 다듬어지지 않은 그레타의 노래에서 순수함과 진정성을 느낀 댄은 그녀의 노래에 악기와 소리들을 이리저리 대보며 가능성을 발견한다.

뮤지션의 꿈을 안고 연인이자 파트너인 데이브와 함께 꿈과 진심을 담은 노래를 만들며 행복했으나 갑자기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된 데이브로부터 버림받은 그레타. 재능 있는 음반 프로듀서이며 오랜 친구이자 파트너인 사울과 함께 탄탄한 레코드 회사를 차렸으나 수년 동안 인재발굴에 실패하며 좌절에 빠진 댄. 두 사람은 그날 그렇게 운명적으로 그 시간, 그 장소, 그 노래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순수함으로 충만한 숭고한 음악을 위해 의기투합하게 되는데 자금도 스폰서도 없는 상황에서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고 골목에서, 빌딩 옥상에서 녹음을 하며 데모 음원을 만든다.
 

영화는 바로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과정 속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와 존중과 가치관의 공유와 치유와 회복이 담겨 있다.

지저분하고 좁은 아파트에서 댄이 피곤과 권태에 찌들어 간신이 눈을 뜬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깎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 구겨진 단 한 벌의 양복을 대충 걸치고 나와 타는 차는 재규어 마크 10. 어라? 뭐 하시는 분인데 저런 차를 타지? 분명 그의 주거환경이나 차림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재규어 마크 10은 첫 등장부터 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둘 중 하나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폼만 잡고 그날 그날 대강 수습하며 살아가는 한량이거나 한때 잘 나가던 인물이거나. 답은 바로 등장하는 그의 행선지에서 나온다. 굴지의 음반회사. 그는 그곳의 ‘사장’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울과의 언쟁에서 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음악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게 되며 과거와 지금의 간극을 메우고 연결하는 것이 바로 재규어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댄과 재규어가 함께 간 곳은 그의 딸이 다니는 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딸을 데리러 간 그는 딸과 댄의 공간이 되어 아빠가 필요한 사춘기 딸과 가족이 그리운 아빠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며 감싸안아준다.

또한 여기저기서 보내온 데모 CD를 듣는 작업실이기도 하고 그레타의 데모 음원을 녹음하기 위해 장비를 싣고 다니는 수단이자 임시 녹음실이 되기도 하는 재규어는 댄에게 있어서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친구이자 파트너와도 같은 역할을 해준다. 댄의 재규어 마크 10은 그렇게 영화 속에서 꾸준히 등장하며 댄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며 영화 속 중요한 공간이 되어주며 댄의 시간과 꿈을 이어주는 핵심적인 오브제로 자리한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우리는 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인가, 아니면 아직도 추구할 만한가. 아니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존의 가치인가, 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레타도 댄도 그 지점에 있기 때문에 밀어붙이고 갈등하고 회의를 품고 고민한 것일 게다. 그리고 본질은 잃지 않되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고의 체계를 활용했기에 이상을 현실에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긴 어게인〉은 그렇게 당신의 꿈을 재차 묻는다.

글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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