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상 교수의 디자인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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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상 교수의 디자인 비평
  • 구 상 교수
  • 승인 2018.04.0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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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형 고급승용차, 아메리칸 럭셔리에 대하여
신형 콘티넨탈은 독일차와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링컨과 캐딜락으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 메이커의 전통적 고급승용차들은 1980년대말 높은 연비성능과 치밀한 품질을 지닌 일본제 고급승용차가 등장하면서 그 위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물론 물리적 품질이 고급승용차의 전부는 아니지만, 고효율과 고품질 역시 고급승용차에게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틀림 없다. 그로 인해 최근에는 미국의 토종 브랜드들도 실내 마무리나 기능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미국 브랜드의 승용차들은 그들 나름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드넓은 국토와 풍요로움이 바탕이 된 미국 문화 속에서의 고급승용차는 유럽의 그것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 명확히 대비되는 성격의 차량이다. 유럽의 고급승용차들이 이른바 ‘달리는 기계’ 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고성능인 데에 비해, 미국의 고급승용차가 지향하고 있는 모습은 기계로서의 자동차라는 느낌보다는 ‘넉넉하고 안락한 탈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실내 디자인도 자동차보다는 가구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럽의 고급승용차들은 브랜드 별로는 ‘귀족적’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미국의 차들에서는 그와는 다른 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청교도에 의해 세워진 미국은 귀족의 위엄이란 개념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동차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미국의 고속도로(프리웨이)의 속도제한이 시속 55마일(약 시속 88km, 1996년 이후부터는 65마일, 약 104km로 바뀌었다)로 달리는 고속도로 조건에서는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과는 다른 관점의 성능을 요구했다. 그런 미국 환경에서의 고급승용차는 유럽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여준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전까지 미국인들에게 고급승용차란 8기통 이상의 엔진에 의한 여유 있는 토크와 널찍한 차체에 부드러운 승차감이 중요했다.

 

새로운 캐딜락의 측면 프로파일은 매우 스포티하다

 

그런 그들에겐 3000cc의 엔진조차도 고급승용차에서는 상당히 작은 엔진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이제 미국의 고급 브랜드에는 이전에는 고급승용차의 엔진 배기량으로서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2000cc’도 존재한다. 한편 실내 구성은 자동차의 실내라기보다는 생활공간이라는 인상이 들 정도인데, 가령 큼직한 노브 류 등은 자동차이기보다는 거실 같은 여유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사실 은근히 긴장되는 느낌을 주는 독일차의 실내 분위기와 비교하면, 미국 고급승용차들의 운전석이나 뒷좌석은 오히려 거실에 앉아있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라고 할 법하다.

또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미국의 최고급 모델에 대한 인상은 거의 직각으로 서 있는 보수적 이미지의 C-필러 디자인에 각이 팍팍 선 차체 디자인에 앞바퀴굴림 방식의 물렁한 승차감을 가진 대형 세단이라는 게 보편적인 내용일 것이다. 캐딜락 역시 그런 룰에 들어맞는 차였지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캐딜락의 플래그십을 보면, 플랫폼도 새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진 후륜구동 방식이고, 샤프한 엣지를 가지면서도 부드러워진 이미지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달고 있다. 아울러 캐딜락의 개성 요소로 1950년대의 테일 핀에서 유래한 수직 형태의 테일 램프 디자인도 유지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미국차 특유의 느긋하고 넉넉한 느낌의 감성이 강하다. 그렇지만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도어 트림 질감의 마감은 유럽 브랜드의 고급승용차 같이 세련된 느낌이다.

어쩌면 과거의 미국차들과 달리 새로 등장한 링컨과 캐딜락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고급승용차들은 실내는 느긋한 미국적 감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차체 외부는 샤프하고 첨단적이면서도 젊고 스포티한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스포티함으로 내닫고 있지만, 넉넉하고 여유로운  감성은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역동적 디자인과 치밀한 품질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미국 고급승용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팔기 위해 만드는 일본차, 달리기 위해 만드는 독일차라는 식으로 특징을 구분한다면, 편하게 쓰기 위해 만드는 이른바 ‘생활형’ 자동차가 미국산 고급승용차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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