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오규열칼럼]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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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오규열칼럼]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
  • 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 승인 2019.07.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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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전쟁배상금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끼친 손해에 대하여 배상하는 돈을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미국 등 승전국에 1320억 마르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 규모는 당시 독일 국민총생산 2년 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독일은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화폐를 마구 발행하였고 이로 인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경제가 어려워졌다. 그러자 독일은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이 패전하지 미국 등 전승국들은 제1차 세계대전과는 다른 정책을 채택하였다. 전쟁배상금을 부과하지 않고 도리어 마셜플랜으로 독일의 경제 부흥을 도와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1971년 유엔에서 중국의 종주권을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하기 전까지 중국의 대표권은 대만의 중화민국정부에게 있었다. 중일전쟁의 패전국인 일본은 1952년 중화민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때 대만 총통 장개석은 일본에게 일체의 전쟁배상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1971년 7월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의 북경방문으로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완화되기 시작되었고, 1971년 10월 25일 유엔에서 대만이 축출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종주권을 획득하였다. 이에 일본은 1972년 9월 29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를 체결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도 대만과 같이 일본에 전쟁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중일 양국의 수교 성명 제5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위해 일본국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과도한 전쟁배상금이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은 독일과 일본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새로운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여기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동참함으로써 일본은 전쟁배상으로부터 상당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물론 일본이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일청구권으로 3억 달러 무상원조를 한 것처럼 1978년 15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중국에게 제공하였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전쟁배상과 관련하여 일본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라는 북한이다. 2002년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북한을 공식 방문하여 김정일과 북일 수교를 논의했으나 귀국 후, 돌연 납치자 문제를 들고나와 수교는 무산되고 양국 관계가 악화된 일이 있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당시 북한과 일본 사이에 전쟁배상금을 두고 의견 차가 워낙 커서 고이즈미가 판을 깼다고 이 사건을 해석한다. 최근 북한이 본격적인 개방에 나설 경우,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으로 100억 달러는 받아야 하다는 보도가 자주 나온다.

한국 대법원은 국가의 대일청구권이 민간인 강제징용피해자의 청구권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에 일본 기업들은 식민시대 민간인 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은 내렸다. 일본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대일청구권은 소멸되었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국인 강제징용피해자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식민지배 배상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지급해야 할 돈의 크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에 양보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최대한 시간을 벌며 남북한에 생존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릴지도 모르며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1972년 7월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중국이 일본에 전쟁 배상을 요구하면 일본 인민에게 부담을 지우게 된다. 전쟁 책임은 일부 군국주의 세력에게 있어 이들과 일반 국민들은 구별해야 한다. 때문에 일반 일본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되며 더욱이 차세대에게 청구권의 고통을 부과하고 싶지 않다”고 배상청구 포기 사유를 밝혔다.

히틀러가 과도한 전쟁배상금에 반발하여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듯이 일본이 강제징용피해자 보상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배상 확대를 지레 겁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은 아닌지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된다. 저우언라이의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배상청구를 포기했다는 말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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