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루츠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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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루츠와의 대화
  • 최주식
  • 승인 2008.11.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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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도 다 가는데, 아직도 운전을 하다 보면 에어컨 스위치를 켜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이상하리만치 더운 가을이기도 하지만 참을성도 그만큼 없어졌나 때때로 반문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창문을 열고 싶은 게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사치가 된다. 도시의 도로 위에서는 아무래도 CO₂ 또는 NOx의 압박을 견디기 어렵다. 문득 이 모든 차들이 전기차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마음껏 창을 열고 달릴 수 있을까. 그런데 자동차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지지 않을까? 

어쩌면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전망과 보고서를 내놓으며 또 한편으로 슈퍼카와 슈퍼 스포츠카들의 화려한 그룹 테스트 기사를 싣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동차 세계다. 중요한 것은 람보르기니조차 CO₂를 줄이기 위한 개발 노력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동차 메이커들은 CO₂ 줄이기에 몰두해왔고 그 결과 10년 전에 비해 평균 CO₂ 배출량은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는 지난호에 이어 리처드 패리 존스의 미래 자동차와 환경에 대한 진단서를 실었다. 그에 따르면 자동차회사들이 아무리 저배출 모델을 내놓는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 1999년에 나온 폭스바겐 루포 3L은 경이적인 CO₂ 배출량 81g/km를 나타냈지만 고객의 외면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자동차를 단지 기계로 보는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자동차에서 ‘재미’와 ‘꿈’을 제거해 버리면 그야말로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 자동차의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한 이유다. 실제 지난 세기말을 거치며 제기된 미래 자동차에 대한 또는 자동차업계의 재편에 따른 모든 예언은 대부분 들어맞지 않았다.   

이번호에는 사상 최초의 양산 전기차가 될 시보레 볼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실었다. 한때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기차의 부활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마침 시보레 볼트가 GM 창사 100주년을 기념해 디트로이트에서 공개된 지 얼마 후 GM 제품개발 부회장 밥 루츠가 한국을 찾았다. GM대우 부평본사 디자인센터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시보레 볼트에 대해 개인적으로 궁금한 몇 가지를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전기차를 충전할 때 전력량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죠?”

“시간대를 분산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실제 볼트는 야간에 전력을 공급할 때보다 저렴한 값으로 충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요.”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 하지만 나중에 다 쓴 배터리가 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볼트에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토요타 프리우스와 혼다 인사이트가 쓰는 니켈-수소화물 배터리와 달리 다 쓰고 난 다음에도 가정용이나 병원, 관공서 등에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기술적인 설명을 덧붙이며 이게 자신이 가진 배터리 지식의 전부라며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에게서 대가다운 관록을 엿볼 수 있었다. 자동차계의 전설적 인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는 쉐보레 크루즈(라세티 프리미엄)에 이어 최신형 오펠 인시그니아의 성과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이 모델이 GM대우 토스카의 후속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분명하게 “노”(No)였다. 그리고 누군가 GM대우의 차가 해외에서 쉐보레 브랜드로 팔리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그는 “대우라는 브랜드는 이제 한국에만 존재한다. 다른 시장에는 쉐보레가 존재한다”며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두루뭉술하게 립 서비스를 할 만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소문난 것처럼 직설적인 성격 그대로다. 그는 GM의 제품개발 전략에서 세계 네트워크를 책임지고 있다. 명쾌한 노선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달에는 영국 <오토카>에서 현대 제네시스 쿠페의 시승기를 요청해왔다. 영국에도 이 모델이 시판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토카>의 기사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기사도 영문으로 해외에 제공된다는 데 네트워크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토카>는 현재 18개국에서 발행되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도 제네시스 쿠페 시승기가 실릴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엄청나다.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새삼스런 다짐을 해본다.  

월간 오토카 코리아 2008.11월호 편집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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