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럭셔리의 새로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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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럭셔리의 새로운 기준
  • 임재현
  • 승인 2014.08.2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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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F-117 나이트호크 스텔스 공격기를 닮은 콘셉트 카 1대가 공개됐다. 캐딜락의 이보크(Evoq) 콘셉트다. 당시 캐딜락은 고객 평균 연령이 업계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었고 올드한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었다. 이에 젊은 층을 끌어들일 방안이 필요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새로운 디자인 철학 ‘아트 앤드 사이언스’(Art and Science)였다. ‘아트 앤드 사이언스’의 아트와 사이언스는 각각 디자인과 기술력을 상징한다. 캐딜락은 이보크 콘셉트를 통해 ‘아트 앤드 사이언스’를 소개하는 한편 브랜드의 성격을 재정립했다.

‘아트 앤드 사이언스’을 반영해 개발한 첫 양산차가 CTS다. 2002년에 첫 선을 보인 1세대 CTS는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날카로운 각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이전의 캐딜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003년에는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 등장해 도심지와 고속도로에서 추격전을 벌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캐딜락은 CTS를 필두로 한 신세대 ‘아트 앤드 사이언스’ 라인업을 통해 미국에서 쿨(cool)한 자동차의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지난 6월 국내에 출시된 ‘올 뉴 CTS’는 3세대 모델이다. 캐딜락은 1, 2세대 CTS를 D세그먼트와 E세그먼트 사이에 두어 양쪽 모두에 대응하고자 했다. 고객들이 BMW 3시리즈의 가격으로 5시리즈 크기의 차를 구입하기 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이전 CTS는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캐딜락 자체 조사 결과 이미 3시리즈를 소유하고 있는 잠재고객들은 더 큰 차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캐딜락은 새로운 엔트리 모델 ATS를 개발해 D세그먼트에 위치시키고, CTS는 E세그먼트로 올렸다.

3세대 CTS는 새로운 위상에 걸맞게 풍채가 당당하다. 얼핏 봐도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신형 CTS의 길이는 4,966mm로 이전 세대에 비해 121mm나 늘어났다. 커진 크기와 함께 이전 세대보다 직선과 각이 부드러워져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고 중후한 인상이다. 이전 모델에 비해 대담함은 줄었지만 훨씬 성숙해 보이며, 차체 비례도 더욱 좋아졌다. 앞면의 양쪽 끝에 세로로 길게 자리 잡은 LED 주간 주행등은 신선할 뿐만 아니라 존재감도 또렷하다. 신형 CTS는 국내에 2.0 럭셔리(5천450만원), 2.0 프리미엄(6천250만원), 2.0 프리미엄 AWD(6천900만원) 3종류로 출시됐고, 시승차는 국내에서 주력 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 프리미엄이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면 호화로운 전경이 펼쳐진다. 좋은 소재를 아낌없이 써서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 상단 등 눈에 보이거나 피부가 닿을 만한 부분은 모두 품질 좋은 가죽으로 덮었다. 스티어링 휠 중앙의 에어백 홈 표면마저 가죽으로 감쌌다. 벤츠 S클래스급 이하에서는 보기 힘든 호사스러움이다. 가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부분적으로 스웨이드를 덧대고 꼼꼼한 스티치로 장식했다. 심지어 조수석의 글러브박스와 컵홀더 덮개는 전동식으로 작동된다! 한마디로 CTS의 실내는 차급과 가격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사치스럽다.

계기판은 12.3인치 LCD 화면으로 대신한다. 디지털화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보기 좋게 띄워주며, 각 메뉴의 동적 화면도 잘 구현됐다. 다만, 그래픽 디자인의 세련미는 조금 떨어지는 편. 센터 페시아의 버튼들은 모두 터치 방식이다. 전원이 꺼지면 버튼의 흔적은 사라지고 고광택의 새카만 센터 페시아만 남는다. 센터 페시아가 하나의 거대한 터치 패널인 셈. 따라서 버튼보다 아이콘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비상등마저 터치 방식이다. 더군다나 다른 기능과는 달리 비상등은 2초 이상 손가락을 대고 있어야 작동한다. 위급상황에서는 2초가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갖추고 있다. 시인성은 뛰어나지만 내비게이션 연동 기능이 없어서 기능성은 떨어진다.

‘2.0 프리미엄’이라는 트림명이 암시하듯 2.0L 엔진이 들어갔다. ATS에 들어간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엔진이지만 출력과 토크가 약간 더 세다. CTS의 직렬 4기통 휘발유 터보 엔진은 276마력, 40.7kg·m을 발휘한다. 저중속에서 힘이 풍부하고 조용하며 부드럽다. 6기통 엔진으로 착각이 들 정도. 엔진 힘에는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엔진 출력은 휘발유 엔진을 단 독일 경쟁모델들을 크게 앞선다(벤츠 E 300: 252마력, BMW 528i: 245마력). 단점은 연비. CTS의 복합연비는 10.0km/L로 발표됐지만, 시승 중 실제 연비는 공인연비에 도달하기 어려웠다.서스펜션은 상하 스트로크에 여유가 있는 세팅이다. 노면 상태에 상관없이 시종일관 승차감이 좋은 대신 반응은 다소 느린 편이다. 스포티한 주행보다는 여유 있는 항속주행 때의 감각이 더 좋다.

그동안 캐딜락은 브랜드 인지도에 비해 국내에서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신형 CTS는 다시 한 번 상품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으며, 독일 경쟁자들을 기죽이는 호화로움을 자랑하며 아메리칸 럭셔리의 새로운 기준을 보여준다. 국내시장에서의 선전을 기대해봄직하다.

글 · 임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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